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94화 (93/331)

94화 <벤치 신세>

이스타지우 올림피쿠 페드루 루도비쿠 경기장.

고이아니아에 있는 이 경기장은 13,500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다.

삐이익!

“와아아아!”

주심의 휘슬이 울렸다.

관중들의 함성과 함께 U-17 브라질 월드컵 4강 경기가 시작됐다.

대회 최고의 이변을 낳고 있는 대한민국과 남미의 절대 강호 아르헨티나!

아무래도 관심이 가는 4강 경기라 경기장에는 빈자리를 하나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양측 선수들은 지난 닷새 동안 푹 쉬어서 그런지 다들 쌩쌩했다. 덕분에 두 팀은 초반부터 격렬하게 맞부딪쳤다.

‘에바!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글쎄요. 갑자기 노유상을 선발로 뽑은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김수정 감독이 다 썩어가는 얼굴로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뭐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대충 짐작은 갔다.

‘우리 아버지가 안 봐도 비디오라는 말을 많이 하셨지.’

―지난 며칠간 김수정 감독이 통화한 사람과 움직인 동선을 확인하고 있습니다.

‘아마 축구협회에서 거부할 수 없는 제안이나 압력을 받았을 거야. 노재정 부회장 하나 사라진다고 축협이 바뀌고 개과천선하는 것은 아니니까. 구정물을 생수로 바꾸는 일은 웬만한 각오로는 쉽게 성공할 수 없어.’

―국회, 검찰, 경찰, 법원, 정부를 개혁하는 일이 전부 이에 해당합니다.

‘맞아.’

대한은 자신이 오늘 벤치에서 시작했다고 억울하거나 슬프지 않았다.

선발로 기용하겠다는 말을 하루 만에 바꾼 김수정 감독에게 일말의 섭섭한 마음도 없었다.

원래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는 법이다. 그리고 지금 보고 있는 이 현실이 바로 대한축구협회의 한계이자 현주소였다.

이런 생각은 비단 대한만 하는 게 아니었다. 오늘도 U-17 브라질 월드컵 대한민국과 아르헨티나의 4강전을 중계하러 나온, 정광용 축구캐스터와 박승재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였다.

“우리 선수들 정말 잘해 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좀 이상합니다.”

“어떤 점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어제만 해도 이대한 선수가 선발로 나올 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시합을 뛰고 있는 것은 이대한 선수가 아니라 노유상 선수예요.”

“아! 저도 좀 의아해하고 있었습니다. 이대한 선수가 다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대한 선수는 후보 명단에도 올라가 있고 벤치에 앉아 있는 모습이 아주 편안합니다. 무엇보다도 유니폼을 입고 있습니다. 이건 언제든지 경기에 나올 수 있다는 반증입니다.”

“저희가 모르는 무슨 일이 있었나 봅니다.”

“최소한 후반전에는 이대한 선수가 나와줘야 합니다. 아르헨티나는 FIFA U-17 월드컵의 남아메리카 지역 예선을 겸한 CONMEBOL U-17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을 한 강팀입니다. 지금의 전력으로는 완패를 당할 수 있습니다.”

“후반전에 이대한 선수가 꼭 나오길 기대해 보겠습니다.”

답답한 마음이었지만 방송을 하는 그들로서는 이 정도가 최선이었다.

―마스터, 어젯밤 축협에서 김수정 감독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럴 줄 알았어.’

―축협의 노지성 부회장입니다.

‘기업도 아닌 단체가 부회장도 참 많네.’

에바의 말에도 대한은 마치 달관한 사람처럼 행동했다.

그는 느긋하게 의자에 몸을 기댔다. 코치를 비롯해 벤치에 앉아 있는 선수들이 가끔 그를 힐끔거리며 쳐다봤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노유상 저놈이 오늘 아주 펄펄 날아다니고 있다는 점이야.’

―안 그래도 몸 상태가 아주 좋아 보입니다.

‘뭐 그래봤자 오래가지는 못할 거야. 멘탈이 약한 놈이 살아남을 수 있을 정도로 이 동네가 그리 만만한 곳은 아니거든.’

―오늘 마스터께서 참 멋진 말씀을 많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아부 섞인 발언에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러다 VIP 좌석에 떡하니 자리 잡고 앉아 있는 조동혁을 쳐다봤다.

‘우리 조동혁 매니저가 출세했다.’

―스타우터들이 조동혁에게 잘 보이려고 아주 난리를 피우고 있습니다. VIP 좌석도 스카우터들 중 하나가 구해준 것입니다.

‘잘됐지 뭐야! 벤치 옆보다는 아무래도 VIP 좌석에서 내려다보며 찍는 게 경기가 더 잘 보이잖아!’

―그래봤자 지금은 마스터를 찍을 수 없지 않습니까?

‘곧 찍을 수 있을지도 모르지.’

대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르헨티나의 골이 터졌다.

수비수 브로노가 미드필더 마티아스에게 연결하고, 공격수 에세키엘에게 넘겨준 볼을 다시 공격수 후안에게 패스했다.

대한민국의 수비벽에 가로막히자 중앙으로 파고드는 마티아스에게 슬쩍 넘겼는데 이걸 마티아스가 기습적으로 볼을 차 골을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선수들은 모두 함께 골 세레모니를 하며 기쁨을 나눴다.

대한민국 선수들은 아쉬움에 다들 한숨을 내쉬었다.

“아! 이건 아니죠.”

“정말 안타깝습니다.”

“이럴 때 이대한 선수의 자리가 더욱 크게 느껴지네요.”

“아직도 이대한 선수가 나올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아쉬워하는 건 정광용 축구캐스터와 박승재 아나운서도 마찬가지였다.

삐익!

경기가 재개됐다. 양 팀은 한 치도 양보하지 않고 격렬한 중원 싸움을 벌였다. 지면 바로 탈락이라서 모든 것을 이번 경기에 걸었다.

김수정 감독은 고개를 돌려 대한을 쳐다봤다. 그의 눈에는 숨길 수 없는 갈등의 빛이 엿보였다.

대한은 힘내라고 한 손을 들고 주먹을 불끈 쥐었다.

‘애도 아니고 알아서 잘 극복하겠지.’

―맞습니다. 선택은 언제나 자신의 몫이니까요.

에바의 나몰라라 성 발언을 끝으로 대한은 다시 고개를 돌렸다.

경기장을 쳐다보며 에바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어디에서 스카우터들을 저렇게 많이 보낸 거야.’

―영국 프리미어리그를 시작으로 스페인의 라리가, 이탈리아의 세리에, 독일의 분데스리가, 프랑스 리그1 등 현재 관중석에는 세계 10대 리그의 각 구단에서 보낸 스카우터들로 바글바글합니다.

U-17 월드컵이 열리는 장소는 언제나 각 구단에서 보낸 스카우터들로 붐볐다.

그들은 전 세계의 유망주들을 선점하기 위해 모인 것이다.

대한을 주목하고 있는 스카우터들이 꽤 많았다. 조동혁이 가져온 것 말고도, 그는 상당히 많은 명함을 받았다. 개중에는 구단의 스카우터가 아닌 스포츠 에이젠시의 명함도 섞여있었다. 이제는 매니지먼트 회사까지 대한을 노리고 있는 모양이다.

이런 상황은 꼭 브라질에 국한되지 않았고, 대한민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집에 계신 부모님에게도 K리그의 각 구단이 보낸 스카우터들이 접근했다. 그들은 온갖 감언이설로 어떻게든 대한을 끌어들이려고 노력 중이었다.

당연히 준프로계약을 제안한 것은 기본이었다. 준프로계약은 K리그 구단이 소속 유소년 선수 중 만 17세에서 18세 선수에 국한해서 맺을 수 있으며 연간 3명으로 제한된다.

다른 구단 산하 유소년 클럽에 소속된 적이 있는 자는 유소년 시행 세칙 규정에 따라 전 소속 구단 서면 동의가 있어야 한다.

계약 체결은 선수가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해의 1월 1일부터 가능하다.

계약 기간은 계약 체결일로부터 고등학교 3학년이 된 해의 12월 31일까지로 최대 2년이다.

연 1,200만 원(국제축구연맹(FIFA) 규정상 이적료 발생 근거가 되는 연봉)의 기본급과 함께 수당은 구단과 선수의 합의로 이뤄진다.

아버지 이태산과 어머니 김혜영이 서명 한번 잘못하면 대한은 한 달에 겨우 100만 원 받고 코를 꿰이게 된다.

그래서 K리그의 스카우터나 스포츠 매니지먼트 회사의 직원이 접근한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대한은 절대 함부로 사람들 만나지 말고 어떤 계약서에도 서명해선 안 된다고 신신당부했다.

이후 이태산과 김혜영은 아예 직장도 나가지 않고 집에서 두문불출했다. 어차피 일을 나가봐야 스카우터, 기자, 스포츠 매니지먼트 직원들이 찾아와 귀찮게 굴뿐이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돈 잘 버는 아들을 둬서 당장 먹고살 것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점이었다.

‘에바!’

―네, 마스터.

‘현재 어떤 구단이 가장 적극적이지?’

―어떤 구단이 가장 적극적인 것이 뭐가 중요하겠습니까! 마스터께서 어떤 구단으로 가고 싶으시냐가 중요한 것이 아닐까요?

에바의 말에 대한은 자신의 무릎을 ‘탁’ 쳤다.

‘맞아. 에바의 말이 정확해. 내가 지금 어디로 가고 싶으냐가 중요한 거야.’

―어디로 가고 싶습니까?

대한은 잠시 생각을 해봤다.

일단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은 배제했다. K리그보다 뛰어난 리그 같지도 않고, 가봐야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시선을 좀 더 바깥쪽으로 향했다. 중동리그, 터키리그, 러시아리그 등이 보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쪽은 별로 관심이 가지 않았다. 그래서 축구 선수라면 꿈꾸는 궁극의 목적지인 유럽으로 눈을 돌려봤다.

영국, 스페인,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네델란드…….

참 이놈의 유럽에는 축구 리그도 많았다.

그렇지만 역시 마음이 가는 곳은 한곳 뿐이었다.

‘당연히 세계 최고의 리그가 있는 곳으로 가야지.’

―현재 세계 최고의 축구 리그는 단연 영국의 프리미어리그입니다.

‘맞아. 영국으로 가자.’

―그럼 EPL의 빅식스(6)를 대상으로 작전을 짜보겠습니다.

‘빅식스라면 맨시티, 리버풀, 토트넘, 첼시, 맨유, 아스널을 말하는 거겠지?’

―그렇습니다. 기왕 가시려면 필요에 따라 얼마든지 황금 지갑을 열 수 있는 빅식스로 가시는 게 좋습니다.

‘토트넘은 황금 지갑 아니잖아. 구단주가 짠돌이로 유명한데.’

―그건 참고하도록 하겠습니다.

‘기본적으로 그렇게 가도록 하고, 라리가의 바르셀로나와 레알 마드리드까지는 한번 고려해 보자.’

―네, 마스터.

‘당장은 상황을 좀 더 지켜보는 게 좋을 것 같기도 해.’

―네, 그러셔도 됩니다. 마스터께서 더욱 활약하실수록 몸값도 기하급수적으로 올라가게 될 테니까요.

대한은 살짝 고개를 모로 돌렸다.

과연 몸값을 올려서 돈을 많이 받는 게 최선일까?

그는 왠지 그런 의문이 들었다.

‘에바가 한번 연락을 해서 그들의 생각과 제안이 뭔지 파악해 봐!’

―알겠습니다. 그런데 계약할 때 특별한 조건이나 요구사항이 있으십니까?

‘일단 개인 시간과 휴식 시간에는 무슨 짓을 해도 상관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받아줘! 특히 개인 방송과 초상권은 절대 양보할 수 없어, 안 된다고 하면 그냥 협상에서 배제해버리도록 해!’

―물론입니다. 마스터께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에바는 대한이 무엇을 걱정하는지 잘 알았다.

당장 그가 개인 방송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정상급 선수가 받는 주급에 부럽지 않을 정도였다. 그러니 괜히 계약 하나 잘못해서 두고두고 코를 꿰일 필요는 없었다.

대한은 축구 선수도 하려는 것이지, 축구 선수만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얼마나 벌었어?’

―이번 달 정산으로 65억을 벌었습니다.

‘우와! 엄청 많이 벌었네.’

개인 방송으로 대한은 매달 거액을 벌어들이고 있었다.

물론 실제로 돈을 찾아서 만져본 건 아니었다. 그래서 그런지 그냥 장부상의 숫자에 불과한 느낌이 들었다.

―이번에도 번 돈을 투자하실 생각입니까?

‘물론이지.’

―그럼 운용비로 5억을 남기고 투자금 60억을 그레이트원 투자회사로 송금하겠습니다.

‘그렇게 해.’

대한은 수십억이나 되는 돈을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투자금으로 밀어 넣었다. 그만큼 에바를 믿고 있다는 말이기도 했다.

‘참! 지난번에 투자한 것은 어떻게 됐어? 작전 세력 하나 털어버린다고 하지 않았나?’

―맞습니다. 예상대로 놈들은 작전주로 설계를 해서 주가 조작을 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이상한 눈치를 채는 바람에 완전히 털어버리지는 못했습니다.

‘설마 투자금을 손해 본 것은 아니겠지?’

―그건 아닙니다. 이득을 보긴 했는데 생각보다 많이 벌지는 못했습니다.

에바가 실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대한은 그녀의 말에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얼마나 벌었는데?’

―140억이 조금 넘습니다.

‘140억?! 그게 많이 못 번 거야?’

―작전주에 투입한 마스터의 투자금이 71억입니다. 2배도 못 먹었으니 많이 못 번 거지요.

‘그럼 작전 세력은?’

―우리가 번 만큼 손해를 보았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계산에 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녀의 말을 들으면 맞는 것 같기도 했다. 하지만 그에게 140억이란 돈은 여전히 어마어마한 거금이었다.

―수익금을 찾을까요? 아니면 재투자할까요?

‘당연히 재투자해야지.’

―알겠습니다. 그럼 이번에는 외환 거래에 투자하겠습니다.

‘외환 거래? 알아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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