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화 <대참패>
삐이익!
“와아아아!”
이스타지우 다 세히냐 경기장이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였다. 드디어 U-17 브라질 월드컵 8강전이 시작된 것이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왼쪽, 이탈리아 대표팀은 오른쪽에 골대를 뒀다.
양 팀은 경기 초반부터 치열하게 맞붙었다.
대한은 난생처음으로 축구 경기에 선발 출전했다.
“대한!”
“오케이!”
대한은 미드필더진이 어렵게 빼앗은 볼을 넘겨받았다.
최민석이 기대 가득한 표정으로 열심히 골대를 향해 달려갔다. 대한은 패스하는 척하다가 옆으로 툭 치고 드리블을 해 올라갔다.
빗장수비로 유명한 이탈리아 팀! 하지만 이탈리아 U-17 축구 대표팀까지 빗장수비를 잘하는 건 아니었다.
막강한 공격력과는 달리 이탈리아 팀의 수비는 평범했다.
‘초반에 승부를 보자!’
―칭호를 활성화하시겠습니까?
‘응.’
대한은 단 5분 만에 이탈리아 팀의 색깔을 파악했다. 물론 에바의 도움이 있긴 했지만, 그의 생각과 크게 다르진 않았다.
워크라이로 민첩 스탯을 증폭하고, 투지의 신병으로 재능 패스(A)를 부스팅했다.
A등급이면 아주 뛰어난 패스 실력을 말한다. 그런데 투지의 신병으로 재능을 부스팅 하자 거의 S등급의 패스 능력이 나왔다.
물론 두 호칭 모두 유효시간은 단 10분에 불과했다. 그래서 대한은 십 분 동안 최선을 다해 골을 넣을 생각이었다.
삐익!
다행히 이탈리아 팀은 대한의 생각대로 움직여주었다. 정면으로 돌파하러 들어가자 알아서 다리를 걸어주었다.
대한은 저항하지 않고 그대로 넘어졌다. 당연히 주심은 휘슬을 불고 그에게 프리킥 기회가 생겼다.
“아싸! 프리킥이다.”
“시작이 좋다.”
“이탈리아 놈들 대한에 대해서 전혀 모르나 봐!”
“콧대가 센 놈들이니 이번 기회에 납작해지는 것도 좋겠지.”
대한민국 대표팀 선수들은 프리킥 기회가 나오자 다들 환한 미소를 지었다.
위치도 아주 좋았다.
페널티 에어리어 중앙 서클 근처였다.
대한도 편하게 프리킥을 찼다.
뻥!
대한은 골키퍼의 시선이 가려지는 라인을 보고 왼발로 감아 찼다.
골키퍼 정면으로 날아가던 볼이 갑자기 휙 휘어버리더니 골대 오른쪽 모서리 앞의 땅에 뚝 떨어졌다.
이탈리아 골키퍼 베니스는 허망한 표정으로 땅바닥을 후려 찼다. 하지만 이미 골이 들어간 것을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와아아아!”
경기장이 뜨거운 함성으로 뒤덮였다. 이탈리아 팀을 응원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그러나 하이스 치어리더팀을 따라 대한민국을 응원하는 사람은 아주 많았다.
일방적인 응원의 열기! 거기에다 골까지 먹자 이탈리아 팀 선수들의 어깨가 축 늘어졌다.
“이야아! 정말 기가 막힌 프리킥이네요.”
“괜히 이대한 선수를 프리킥의 마법사라고 부르는 게 아닙니다.”
오늘도 U-17 브라질 월드컵을 중계하고 있는 정광용 축구캐스터와 박승재 아나운서는 기분 좋은 출발을 기뻐했다.
“강호 이탈리아를 맞아 선제골을 넣은 대한민국 대표팀입니다.”
“이대한 선수! 벌써 9골째입니다. 이 상태로 간다면 득점왕은 문제없겠습니다.”
“득점 2위와 무려 다섯 골이나 차이가 납니다. 여기서 한두 개만 더 넣으면 무조건 득점왕입니다.”
살짝 흥분한 정광용 축구캐스터와 박승재 아나운서와는 달리!
채팅 창은 이제 오히려 당연하다는 분위기였다.
[대마초나빠: 대한은 오늘도 약 빨았구나.]
[검찰개혁완수: 약쟁이 꺼져!]
[체육학교사: 정말 프리킥 하나는 끝내준다.]
[연수원오빠: 프리킥만? 얼굴과 몸매도 끝내준다.]
[나도하고싶어요: 볼이 휘는 궤적이 죽이네.]
[조각미남: 정말 기가 막힌 프리킥이다.]
[쿠키한봉지: 9골째다. 대회 득점왕과 MVP는 무조건 대한!]
[오른팔만쓴다: 대한아! 우승 가즈아!]
[힙합프린스: 어차피 우승은 이대한!]
대한민국 벤치도 차분히 경기를 지켜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제 손뼉을 치면서 기쁨을 함께 나눴다.
“대한을 선발로 넣은 것이 신의 한 수다.”
“역시 대한이 있어야 해!”
“노유상은 어디 갔냐?”
“아파서 호텔에서 못 나왔다고 그러던데.”
“뭐야, 이 새끼?”
“와아! 프리킥이 그냥 미쳤구나.”
“볼 휘는 각도 봐라! 프리킥 장인이다.”
삐익!
주심의 휘슬로 경기가 재개됐다.
이탈리아 팀은 예의 그 막강한 공격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니, 발휘하려고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방해꾼이 나타났다.
축구 지능(S)과 넓은 시야(S)를 가진 대한!
그는 어렵지 않게 이탈리아 팀의 공격 루트를 파악했다. 그리곤 미친 야생마처럼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니며 압박을 해댔다. 몸싸움에 밀린 선수들은 허둥지둥 댈 수밖에 없었다.
“아싸!”
대한은 기어코 볼을 빼앗았다.
최민석이 달리자 그는 바로 얼리크로스를 날렸다.
“땡큐!”
최민석은 볼을 잡자마자 바로 슛을 때렸다.
텅!
“아악!”
하지만 안타깝게도 볼은 골대를 맞고 튀어나왔다.
뻥!
그런데 갑자기 축구공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보니 대한이 허공을 차고 있었다.
아니, 시선을 골대로 돌리자 어느새 골대 안에 볼이 들어가 있었다.
‘저놈 언제 왔지?’
궁금했지만 당장 호기심을 푸는 게 중요하지 않았다. 일단 골만 들어가면 만사 오케이다. 최민석은 나는 듯 달려가 대한을 껴안았다.
“2대0이다. 실화냐!”
“크크크, 내가 두 개 넣었다.”
“나도 넣게 도와줘!”
“줘도 못 먹는 새끼가!”
“그건 맞네.”
대한은 침울해하는 최민석의 어깨를 툭 쳤다.
“오늘 킬패스 뿌려줄 테니까 마음껏 때려봐!”
“알았어. 고마워!”
삐익!
경기가 속개됐다.
이탈리아 팀이 이제는 아주 거칠게 나왔다.
사방에서 휘슬 소리가 난무했다.
“얘들아! 아예 반칙을 유도해서 프리킥을 얻어내자.”
“오케이!”
주장의 말에 다들 사악한 미소를 지었다.
그때부터 이탈리아의 악몽이 시작됐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었다.
대한은 좋다고 가서 프리킥을 찼다.
위치는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 모서리!
뻥!
무회전 슛이 허공을 가르는 번개가 되어 골문에 꽂혔다.
“으악!”
골키퍼는 비명을 지르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대한은 두 손을 들고 신나게 경기장을 뛰어갔다. 김수정 감독을 끌어안으려는 것이다. 다들 벤치에서 뛰어나와 대한을 반겼다.
“너 벌써 해트트릭이야!”
“전반전 20분도 안 지났어.”
“오늘 두 자리 숫자 골 넣으려고 그러냐?”
“잘 찼다.”
“멋진 프리킥이었어.”
이때부터 대한의 프리킥 쇼가 시작됐다.
삐익! 뻥!
삐익! 뻥!
삐익! 뻥!
대한은 전반전만 프리킥을 세 번이나 더 찼다.
덕분에 점수는 6대0이 됐다.
이탈리아 팀 선수들은 완전히 멘탈이 나갔다. 그 어떤 강심장의 선수라도 이런 상황에 온전한 정신을 유지할 수 없었다.
“야! 패스해 준다며.”
“패스할 시간을 안 주는 걸 나보고 어떻게 하라고.”
“우씨! 저 새끼들 왜 자꾸 반칙만 하고 지랄들이야.”
“크크, 덕분에 프리킥으로 골 많이 넣었잖아.”
대한의 말에 최민석은 금세 얼굴을 폈다.
골을 넣는 것도 좋지만 이기는 게 더 중요했다. 그렇게 전반전이 끝났다.
휴식을 취하고 후반전이 됐지만, 이탈리아 팀은 변하지 않았다. 그들은 무리한 돌파에 볼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거기에다 그렇게 당하고도 페널티 에어리어 부근에서 자꾸 반칙을 저질렀다. 이탈리아 팀 감독은 그 모습에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덕분에 후반전이 시작된 지 20분도 안 되어 다시 3골을 먹었다.
점수는 9대0이 됐다.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이렇게 많은 점수 차로 진 적은 아마 없을 것이다.
이건 그냥 악몽일 뿐이었다. 아니, 그렇게 생각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들의 악몽은 이제 막 시작했을 뿐이었다.
대한의 킬패스가 터지기 시작한 것이다. 전의를 상실한 이탈리아라는 먹이를 최민석은 잔인하게 요리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달려들어 기어코 한 골을 넣고 말았다.
“야호!”
“골이다.”
이제는 관중의 환호성도 잘 들리지 않았다. 다만 손뼉을 치는 소리만 울려댈 뿐이었다.
“겨우 하나 넣었냐?”
“이제 시작이야.”
최민석은 아주 이를 갈았다. 덕분에 후반전이 끝날 때쯤 최민석과 서지훈이 각각 한 골씩 더 넣었다.
그것도 모두 대한의 킬패스를 받아 거의 주워 먹다시피 한 골이었다.
삐이익!
이탈리아 축구 역사상 최악의 참사가 벌어진 경기의 스코어는 12대0이었다. 놀랍게도 그 막강한 공격력을 가지고도 단 한 골을 넣지 못했다.
축구 선수가 멘탈이 박살 나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단적인 예였다.
우웅!
그때, 기분 좋은 공명음이 뇌리를 울렸다.
―마스터! 축하합니다. 재능 ‘몸싸움(S)’을 획득하셨습니다.
‘아싸!’
대한은 크게 기뻐했다. 안 그래도 몸싸움에 강점이 있는 대한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재능으로 몸싸움을 얻게 되니…….
앞으로 어지간해서 누구한테 밀리는 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에바! 상태 창을 열어줘!’
―네, 마스터.
대한은 에바가 열어준 상태 창을 확인했다.
이름: 이대한
등급: 워리어(B)
칭호: 워크라이(스탯 증폭↑10%), 투지의 신병(재능 부스터↑10%)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알파로메오(S급),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S)
언어 ▶ 포르투갈어(A), 이탈리아어(S), 영어(S)
축구 ▶ 몸싸움(S), 순간 돌파(A), 양발잡이(S), 넓은 시야(S), 축구 지능(S), 축구 재능(S), 프리킥(S), 축구 기본기(A), 드리블(A), 개인기(A), 패스(A), 골 결정력(A), 주력(B), 스프린트(B), 지구력(B), 수비(B)
격투 ▶ 주짓수(S), 태권도(S), 격술(S)
스탯: 근력 96, 민첩 79, 체력 84, 지력 82, 마력 17
신장 185cm, 몸무게 83kg
축구 재능에 ‘몸싸움(S)’이 얌전히 들어와 있었다. 스탯은 근력과 지력이 하나씩, 민첩과 체력이 두 개씩 올라갔다.
마력은 그동안 꾸준히 알파로메오 오러·마나 연공법을 단련해서 17이 됐다.
이제 민첩 스탯 하나만 오르면 마력을 제외한 스탯 전체가 80대를 넘기게 된다. 그럼 또 다른 세계가 열리게 될 것이다.
―마스터, 다음 재능은 어떻게 할까요?
‘좋은 재능이라도 발견했어?’
―이탈리아 팀의 후보 선수 피구의 전술 이해도가 좋아 보입니다.
‘후보 선수?’
―네, 아직 그의 진가를 모르고 있는 모양입니다.
대한은 즉시 패잔병처럼 처져 있는 이탈리아 팀 벤치로 다가갔다. 그는 곧바로 피구라는 후보 선수를 찾아가 악수를 청했다.
대한의 모습을 본 이탈리아 선수들의 눈에서 살기가 돌았다. 하지만 웃는 낯으로 피구와 대화를 나누며 유니폼까지 교환하자 다들 이상한 놈이라고 쑥덕거렸다.
대한은 단물을 쪽 빨아 먹은 이탈리아 팀에 궁둥이를 붙이고 앉았다. 에바가 피구의 ‘전술 이해도(SS)’를 흡수할 때까지 그는 일어나지 않았다.
덕분에 대한은 패배한 팀을 위로한 훌륭한 인격의 소유자로 이름을 날리게 됐다. 기행이긴 했지만, 대한에겐 꼭 필요한 행동이었다.
나중에 피구는 대한이 찾아와 용기를 준 일이 축구 선수로 성공하는 데 큰 도움이 됐다는 인터뷰를 하게 된다. 물론 이것은 먼 훗날에 일어날 일이었다.
‘에바, 간만에 구독자와 팔로워 수 좀 확인해 보자.’
―네, 마스터. 개인 방송을 시작한 지 이제 다섯 달이 조금 넘었습니다.
‘벌써 시간이 그렇게나 많이 지나갔군.’
대한은 지난 다섯 달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아메리카 TV의 평균 시청자 10만, 구독자 120만입니다. 풍력은 8만이고 여캠은 이제 별 의미가 없어서 집계하지 않았습니다.
‘잘했어.’
―유티비는 드디어 구독자 수 2천만을 달성했습니다.
‘2천만!’
정말 어마무시한 숫자였다.
대한은 정말 이게 꿈인가 생시인가 파악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역시 에바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한이 은근한 미소를 짓자 에바가 계속 말을 이었다.
―트워치 구독자 수도 856만을 돌파했습니다. 페이스노트 팔로워 1,505만, 원스타그램의 팔로워 1,392만입니다.
‘숫자가 정말 무시무시하게 늘어간다.’
―어디 대륙만 하겠습니까!
에바의 말에 대한은 갑자기 기대가 만발해졌다.
―중국의 또위 팔로워 1,258만, 롱주 1,199만, 판다TV 1,076만, 유쿠 1,001만, 후야 1,009만입니다.
‘전부 천만이 넘었네.’
―역시 중국의 쪽수에는 당해낼 재주가 없네요.
중국에서 왜 이렇게 인기가 좋은지 모르겠다. 아무래도 같은 동양인으로서 서양의 미녀들과 합방을 많이 해서 그런가 보다. 그게 아니라면 게임 방송이 시원시원해서 그럴 수도 있었다.
대한은 앞으로 중국 팬들을 위해서라도 중국어를 꼭 배워야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