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화 <소매치기>
채팅 창도 난리가 났다.
[만수르SUH: 자랑스러운 우리 대한!]
[닥공: 역시 닥공 최고! 해트트릭 가즈아!]
[어벤저스: 지렸다. 더 갈 기저귀가 없다.]
[자주국방: 역시 공격이 화끈하네. 대한 화력 만세!]
[카리스마: 미쳤다. 대한이 드디어 미쳐버렸어.]
[No재팬: ㅋㅋ ㅇㅈ]
[핵인싸: 너무 멋지다.]
[낼름: 개시원!]
[말벌봉준: 개화끈!]
[다섯공무원: 골 결정력이 이 정도면 월클 아닌가요? 지립니다.]
[치킨효린: 이쯤 되면 국대 예약이네요.]
[코란도일: 국대가 문제가 아님. 프리킥만 하던 예전의 대한도 아님.]
[화가난다: 대한을 유럽으로 보내자.]
[비도깨: 분데스리가 가즈아!]
[대폭주: 개소리 그만해! EPL 가즈아!]
[코만도: 세리에는 가지 마라. 거긴 인종 차별에 외국인 선수에겐 지옥이란다.]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이자 사람들의 반응도 다들 시원하다는 분위기였다.
삐익!
경기가 재개됐다.
칠레는 전열을 가다듬고 양쪽 윙을 이용해 얼리크로스를 시도했다. 하지만 대한이 미친놈처럼 뛰어다니며 한쪽 라인을 완전히 틀어막아 버리자 어쩔 수 없이 반대쪽을 노렸다. 그마저도 최민석이 수비에 가세하자 여의치만은 않았다.
“대한아!”
“나이스 패스!”
또다시 볼을 빼앗긴 칠레는 일제히 후퇴했다.
대한은 볼을 받아서 그대로 앞으로 돌려놓고 달렸다. 최민석이 눈치 빠르게 반대편에서 달려왔다.
대한은 페널티 에어리어 모서리에 도착하자 낮고 빠르게 크로스를 날렸다.
뻥!
바닥으로 착 붙어서 날아간 볼!
골키퍼 앞에서 옆으로 확 휘어지며 속도가 죽었다. 최민석은 그걸 보고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회심의 슛을 때렸다.
강력한 슛이 골키퍼의 옆으로 날아갔다. 그런데 훌리오 골키퍼가 어떻게 알았는지 반사적으로 한쪽 다리를 쭉 뻗었다.
골키퍼의 다리에 맛은 볼이 앞으로 튕겨 나왔다.
“아오!”
최민석은 달리는 힘을 이기지 못하고 골 대신 골대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쉬움에 비명을 지르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쌌다. 그러나 볼은 아직 살아 있었다.
훌리오 골키퍼와 스위퍼가 급히 볼을 쳐내려고 달려들었다. 하지만 황소처럼 돌진한 대한이 간발의 차이로 앞섰다.
뻥!
대한은 오른발 강슛을 때렸다. 공은 수비수의 몸에 맞고 튀어나왔다.
대한은 흘러나온 공을 다시 왼발로 슛을 때렸다. 이번에는 골키퍼의 허벅지에 맞고 나왔다.
허공으로 떠오른 볼에 급히 머리를 가져다 댔다. 그러자 아슬아슬하게 수비수와 골키퍼의 사이로 쏙 들어가 버렸다.
와아아아!
또다시 경기장이 함성으로 들끓었다.
모든 관중이 일어나 기립 박수를 쳤다.
대한은 기분 좋게 해트트릭을 달성하며 골 세레모니를 했다. 두 팔을 벌리고 하이스와 그녀의 친구들을 향해 달려갔다. 그리고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날려줬다.
하이스와 친구들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제자리에서 방방 뛰어댔다.
그것이 마치 대한이 보낸 하트에 화답인 것처럼.
정광용 축구캐스터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이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남미의 축구 강호 칠레가 4대0으로 뒤지고 있습니다.”
박승재 아나운서가 눈치껏 맞장구를 쳐줬다.
“오오! 지금쯤 칠레에선 난리가 났겠네요. 사실 그리 만만한 팀은 아닌데요.”
“칠레가 절대 약한 게 아닙니다. 우리 대한민국 U-17 축구 대표팀이 너무 강한 거예요.”
“그 핵심은 역시 이대한 선수겠죠?”
오늘 이대한 선수의 이름을 빼고는 그 어떤 얘기도 할 수 없었다.
“물론입니다. 이대한 선수가 있을 때와 없을 때의 차이는 명백합니다. 앞으로 이대한 선수로 인해 우리는 또 한 명의 월드클래스 선수를 보유한 나라가 될지도 모릅니다.”
“이미 월드클래스 아닌가요?”
“그건 아직 확신할 수 없습니다. 20세 이하 월드컵을 씹어먹던 선수들도 성인 무대에만 올라가면 얌전한 새색시가 되는 경우가 참 많습니다.”
“그렇군요. 앞으로 이대한 선수의 활약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이미 활약은 충분히 하고 있었다. 보고 있는 시청자들도 그 정도는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이 정도면 이미 U-17 브라질 월드컵을 씹어먹고 있다고 봐야겠어요.”
“지금까지 무려 8골을 넣었군요.”
“3경기 만에 8골이라니! 이게 말이나 되는 얘깁니까? 거기에다 도움도 3개나 있습니다.”
“펠레나 마라도나가 전성기 시절로 돌아온다고 해도 이렇게 활약하는 것은 아마 힘들 겁니다.”
“무엇보다도 이대한 선수가 프리킥만 잘 차는 선수가 아니라는 것이 증명된 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맞습니다.”
이대한은 한순간에 대한민국 축구계를 짊어질 핵심 선수로 탈바꿈했다. 무명에서 일약 스타가 된 것이다.
물론 개인 방송은 제외하고다.
스코어가 4:0이 되자 칠레 선수들은 그만 싸울 의욕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아무리 잘해도 결코 4골 차를 만회할 수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덕분에 대한민국은 아예 작정하고 파상공세를 펼쳤다.
“골!”
이윽고 최민석이 골을 터트렸다. 대한이 보내준 킬패스를 이번에는 잘 성공시킨 것이다. 어떻게 보면 입에다 넣어준 것을 그냥 씹기만 했다고 볼 수도 있었다.
삐이익!
주심의 긴 휘슬 소리가 경기장을 울렸다. 대한민국에는 신나는, 그러나 칠레에는 악몽이었던 경기가 마침내 끝났다.
스코어는 5:0으로 칠레가 대패를 당했다.
이건 U-17 브라질 월드컵의 최대 이변이었다. 좀 전에는 프랑스가 대한민국에 진 것이 이변이라고 했었는데 하루 사이에 이변의 상대와 크기가 달라져 버렸다.
아니, 프랑스전의 참패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충격적인 경기였다.
대한도 큰 이슈가 됐다.
3경기 8골, 도움 4개!
공격 포인트가 무려 12개나 됐다.
세계 10대 축구 리그의 스카우터들이 일제히 대한민국의 어린 선수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U-17 브라질 월드컵 조별 경기가 끝났다.
대한민국은 C조 1위로 8강전에 올라갔다.
* * *
브리스톨 에비던스 호텔.
고이아니아(Goiania) 중심가에 있는 4성급 호텔이다.
대한민국 U-17 축구 대표팀은 일찍 아침을 먹고 호텔을 나섰다. 목적지는 이스타지우 다 세히냐(Estádio da Serrinha) 경기장이다.
호텔에서 500미터도 떨어지지 않은 곳으로 나흘 뒤에 8강전이 열리는 곳이다.
“야! 거기 뒤처지지 마!”
“소매치기 많다는 말 못 들었어.”
“정신 차리고 바짝 붙어서 걸어.”
김수정 감독과 코치들은 선수들에게 연신 고함을 질렀다. 가까운 거리였지만 언제든지 사고가 일어날 수 있었다.
특히 치안이 불안한 브라질의 도시에서는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랐다. 그러나 대한만은 김수정 감독 바로 뒤에서 느긋하게 걸었다. 이렇게 대열에 중심에 껴있으면 사고 날 일도 적어진다.
물론 모든 일에는 예외도 있는 법이다.
다다다다다!
청년 한 명이 길을 걷고 있는 대한민국 U-17 축구 대표팀을 향해 달려왔다.
대한은 즉시 뭔가 이상한 예감이 들었다.
‘에바! 뭔지 알아봐!’
―네, 마스터.
하지만 에바가 미처 대답하기도 전에 뒤에서 비명이 들려왔다.
“Pegar carteiristas(소매치기 잡아라)!”
대한은 눈에 힘을 줘서 달려오는 청년의 뒤를 봤다. 푸짐한 몸매를 가진 중년 여인이 고함을 치며 쫓아오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돌려 청년, 아니 소매치기를 쳐다봤다. 손에 여자 핸드백을 든 것을 보니 그녀의 말이 맞는 모양이다.
“다들 뒤로 물러서!”
상황을 모르는 김수정 감독이 선수들을 보호하려고 한쪽으로 물러나게 했다. 그러자 소매치기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그들을 지나쳤다.
아니, 지나치려고 했다.
툭!
꽈당! 우당탕 쿵쾅!
갑자기 튀어나온 발에 걸린 소매치기는 중심을 잃고 사정없이 바닥으로 쓰러졌다.
그는 달려오던 관성을 이기지 못해 몸이 데굴데굴 굴러갔다. 그러다 길가에 주차해놓은 승용차 옆에 강하게 부딪혔다.
“으으!”
고통이 심한지 소매치기는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얼른 도망치기 위해 억지로 몸을 일으켰다.
아직도 넘어진 충격 때문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는 세차게 머리를 좌우로 흔들며 눈을 깜빡거렸다.
“이놈! 잡았다.”
그러나 소매치기는 도망치지 못했다. 뒤쫓아온 중년 여인의 손에 멱살을 딱 붙잡혔다.
이 여자도 보통내기는 넘었다. 소매치기가 도망치려고 반항하자 대뜸 사타구니를 세게 걷어차 버렸다.
퍽!
“끄아악!”
소매치기는 두 손으로 사타구니를 감싸며 그대로 꼬꾸라졌다.
“감히 내 돈을 훔쳐!”
푸짐한 여인은 쓰러진 소매치기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는 신나게 뒤통수를 마구 쥐어박았다.
대한은 잠시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김수정 감독에게 말했다.
“여기서 이렇게 구경하고 있다간 괜한 소동에 휘말립니다.”
“아! 그렇지. 다들 출발하자.”
김수정 감독은 대한의 말에 즉시 출발 신호를 보냈다. 선수들은 어미를 따르는 새끼오리들처럼 나란히 줄을 서서 감독을 쫓아갔다.
그때 골목에서 소매치기와 한패로 보이는 청년 둘이 나타났다. 그들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중년 여인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방향이 뒤쪽이라 여자는 뒤쪽에서 다가오는 사내들을 미처 발견하지 못했다.
‘마스터, 저들은 소매치기 일당입니다.’
―그건 이미 눈으로 봐서 알고 있어.
‘놈들이 무기를 꺼냅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에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이거 어떻게 하지? 도와줄까? 아니면 그냥 모른 척할까?’
한 놈의 손에 잭나이프가 들렸다. 다른 녀석의 손에도 쇠망치 같은 게 쥐어져 있었다.
대한은 몇 초 안 되는 그 짧은 시간 동안 수십 번도 넘게 고민했다. 그러다 소매치기 일당이 살인을 하려는 마음을 먹자 몸을 벼락같이 튕겼다.
자신도 모르게 놈들의 살기에 반응해버린 것이다.
도도도도!
‘에바!’
―네, 마스터! 공격 루트를 산출하겠습니다.
대한의 한마디에 에바는 즉시 움직였다. 소매치기 두 놈을 가장 효과적으로 제압할 루트를 계산하는 것이다.
왼쪽에 있는 놈이 잭나이프를 든 손을 높이 들자 대한은 자신이 너무 늦게 움직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대한은 달려가다가 옆을 쳐다봤다. 길을 걷고 있는 꼬마의 손에 야구공이 들려있었다.
“미안하다. 잠시만 빌릴게!”
“앗! 안 돼!”
꼬마는 갑자기 대한이 달려들어 야구공을 빼앗아가자 비명을 질렀다. 대한은 무시하고 소매치기를 향해 힘차게 야구공을 던졌다.
쌩! 빡!
다행히 잭나이프를 든 놈의 뒤통수에 야구공이 정통으로 꽂혔다.
뇌가 크게 흔들린 놈은 그대로 앞으로 꼬꾸라지며 기절했다.
“뭐야? 어! 너 누구야?”
그제야 소매치기 일당을 발견한 중년 여자가 몸을 일으켰다.
작은 쇠망치를 든 나머지 한 놈이 여자를 보더니 당황한 표정을 지었다. 그 순간, 놈의 뒤쪽에서 이미 커다란 그림자가 덮쳐오고 있었다.
바로 대한이었다.
그는 달려가는 관성을 이용해 한발을 세게 내뻗었다.
퍽! 와장창! 쿵! 창!
덩치가 제법 있는 놈이었다. 하지만 대한의 발차기에 등을 맞고는 그대로 앞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혔다.
“괜찮으세요?”
“누, 누구세요?”
“저놈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해서 도와드린 거예요.”
“헉!”
대한의 말에 여자는 쓰러진 놈의 손에 들린 잭나이프를 보곤 깜짝 놀랐다. 보기와는 달리 겁은 많은지 사시나무처럼 몸을 떨기 시작했다.
다행히 브라질 경찰이 곧바로 출동해 소매치기 일당을 모두 체포했다. 대한은 경찰이 나타나자 조용히 현장에서 사라졌다. 뒤에서 지켜보던 U-17 대표팀도 그의 눈짓에 따라 말없이 가던 길을 걸어갔다.
“대한아! 너 끝내준다.”
“아주 하늘을 날아다니더라.”
“그거 태권도냐? 발차기는 언제 배웠어.”
“그런데 너 꼬마에게 뺏은 야구공 찾아서 돌려줬냐?”
“아차!”
대한은 그제야 꼬마의 손에서 빼앗아 쓴 야구공이 생각났다.
‘에바!’
―꼬마의 이름은 빼냐입니다. 코너에 있는 햄버거 가게 주인 아들입니다.
‘누군지 알 수 있어서 참 다행이다. 좋은 것으로 보상해 줘야겠다.’
―어떻게 보상할까요?
‘저런 꼬마는 어떤 선물을 좋아할까?’
―브라질은 축구의 나라이니 축구공을 주면 좋아하지 않을까요?
‘아! 그게 좋겠군.’
대한은 반색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에바를 시켜 새 야구공 하나와 축구공을 주문해 택배로 보내줬다.
경기장에 도착하자 김수정 감독이 그를 따로 불렀다.
“감독님! 부르셨어요?”
“아까 네 행동은 너무 위험했다.”
“죄송합니다. 하지만 사람을 죽이려는 것을 보자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 잘했다. 솔직히 좀 위험했지만 그래도 사람을 살리는 게 옳은 일이지.”
김수정 감독은 야단을 치려던 생각을 바로 바꿨다. 사람을 살리기 위해 뛰어든 대한을 야단치는 것은 자신의 성격이나 도리에 맞지 않는다.
오히려 불의를 보고도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었던 자신을 반성해야 했다.
이 일은 그렇게 해프닝으로 끝나는 줄 알았다. 누군가 경기장에 직접 찾아오기 전까지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