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86화 (85/331)

86화 <그라운드의 적토마>

대한은 김수정 감독을 좀 도와주기로 했다. 지금은 그를 돕는 것이 사실은 자신을 돕는 일이었다.

대한민국 축구계에는 그야말로 광풍이 불고 있었다. 하지만 U-17 브라질 월드컵에 출전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김수정 감독과 코치들이 일부로 정보를 적절히 차단하고 있었다.

강호 프랑스를 맞아 전반전은 0:1로 무난하게 마쳤다. 프랑스의 공격수 엔조가 전반 20분에 한 골을 넣었다. 워낙 잘 찬 공이라서 다들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축구에서 한 점 차는 언제든지 뒤집힐 수 있는 스코어다.

강팀이라는 압박감에 처음에는 다들 살짝 쫄았다. 하지만 직접 프랑스 선수들과 몸을 맞붙어본 결과 선수들은 잘하면 이길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다들 수고했다.”

“앉아서 물을 마시고 쉬어라!”

대한민국 벤치는 전반전을 마치고 들어온 선수들로 인해 북적거렸다.

대한은 옆에서 열심히 몸을 풀며 감독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나 특별히 탁월한 작전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준비해온 대로 차분하게 경기를 잘 풀어가라는 충고 정도였다.

우웅!

그때 익숙한 공명음이 들렸다.

―마스터! 축하합니다. 재능 ‘순간 돌파(A)’를 획득하셨습니다.

‘아!’

대한은 짧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그동안 계속 S등급을 획득한 터라 A등급을 보자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축협과 언론사 문제로 골치를 썩였던 것을 고려하면 그래도 나름 선방한 것이었다.

―상태 창을 열어드릴까요?

‘응.’

대한은 에바가 열어준 상태 창을 확인했다.

이름: 이대한

등급: 워리어(B)

칭호: 워크라이(스탯 증폭↑10%), 투지의 신병(재능 부스터↑10%)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알파로메오(S급),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S)

언어 ▶ 포르투갈어(A), 이탈리아어(S), 영어(S)

축구 ▶ 순간 돌파(A), 양발잡이(S), 넓은 시야(S), 축구 지능(S), 축구 재능(S), 프리킥(S), 축구 기본기(A), 드리블(A), 개인기(A), 패스(A), 골 결정력(A), 주력(B), 스프린트(B), 지구력(B), 수비(B)

격투 ▶ 주짓수(S), 태권도(S), 격술(S)

스탯: 근력 95, 민첩 77, 체력 82, 지력 81, 마력 10

신장 185cm, 몸무게 83kg

축구 재능에 순간 돌파(A)가 들어와 있었다.

스탯은 근력과 지력이 각각 하나씩, 민첩과 체력이 각각 2개씩 올랐다.

신장과 몸무게는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에바, 오늘은 칭호를 잘 써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래도 빠른 수비수가 많아서 속도로 압도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럼 방법은 하나밖에 없지.’

―민첩 스탯을 증폭하고 ‘개인기(A)’ 재능을 부스터 하면 되겠네요.

‘맞아.’

역시 에바였다. 대한이 뭘 원하는지 바로 알아차렸다.

―다음 재능은 어떻게 할까요?

‘쓸만한 재능을 발견한 모양이군.’

―네, 그렇습니다. 프랑스의 유망주 중 루시앙의 몸싸움이 범상치 않습니다. ‘뉴 포그바’로 불리는 루시앙은 현재 빅클럽 이적을 눈앞에 두고 있는 선수입니다.

‘프랑스는 유럽의 한복판이라서 백인이 많으리라 생각했는데 선수들은 대부분 유색인종이네.’

―흑인이 좀 많은 것이 특징입니다. 어쨌든 미드필더 루시앙과 접촉해 주세요.

‘알았어.’

대한은 에바의 말에 공을 몰고 살짝 옆으로 빠져나왔다. 그는 열심히 몸을 푸는 척하면서 물을 마시고 있는 프랑스의 유망주 루시앙에게 다가갔다.

“루시앙!”

“뭐야?”

“난 이대한이야. 너 엄청나게 잘하더라. 앞으로 자주 만날 것 같아서 인사하는 거야!”

“그, 그래.”

프랑스 리그2 소쇼의 신성 루시앙 아구메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악수를 했다. 아직 경기가 끝나지 않은 상대 팀 선수와 얘기를 나누는 게 영 탐탁지 않은 것 같았다.

대한도 루시앙의 눈치를 보면서 바로 뒤로 물러났다. 그러면서도 한손을 흔들고 미소를 짓는 것을 잊지 않았다.

루시앙은 대한의 이런 태도에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에바!’

―피코셀을 주입했습니다. 재능 흡수 대상자 루시앙 아구메의 DNA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대 재능이 뭐야?’

―몸싸움(SS), 크로스(SS), 탈압박(SS) 등입니다.

‘뭐야? 그럼 더블 S등급의 재능이 더 있다는 거야?’

―재능충이네요. 그냥 축구를 위해 타고난 선수라고 보면 됩니다.

대한은 루시앙의 재능에 놀라다 못해 질투를 느꼈다.

세상은 이처럼 공평하지 않았다. 누구에게는 하나도 없는 것을 누구에게는 몇 개씩이나 준다. 물론 천만재능을 가질 수 있는 그가 할 소리는 아니었다.

대한은 몸싸움뿐만 아니라 크로스와 탈압박 재능도 탐이 났다. 하지만 당장 그에게 필요한 것은 크로스와 탈압박이 아니었다.

‘몸싸움(SS)를 흡수해!’

―네, 마스터. 재능 몸싸움(SS)를 흡수합니다.

삐익!

대한이 나름 휴식 시간을 알차게 보내고 있는 사이, 후반전이 시작됐다. 후반전은 전반전과 달리 프랑스의 일방적인 공세가 펼쳐졌다.

대한민국은 수비진을 중심으로 똘똘 뭉쳐 어떻게든 실점을 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확실히 프랑스의 전력이 한 수 위였다.

“골!”

아쉽게도 후반전 10분 만에 대한민국은 프랑스 팀에게 한 골을 더 먹고 말았다.

프랑스의 공격수 조르지뇨 루터가 대한민국의 오프사이드 트랩을 기가 막히게 깨고 침투하여 기어코 골을 넣은 것이다.

0대2.

스코어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두 골을 먹자 대한민국은 바로 패색이 짙어졌다.

김수정 감독은 이를 앙다물었다. 그리고는 고개를 돌려 대한을 쳐다봤다.

“대한아! 나가라! 가서 다 씹어먹어!”

“네, 감독님.”

김수정 감독은 오늘따라 유난히 언사가 과격했다. 그런데 대한은 그의 말에서 지금 그가 느끼는 답답한 심정을 느낄 수 있었다.

오늘따라 영 힘을 못 쓰는 노유상이 나오고 대한이 대신 들어갔다. 아직 경기가 끝나려면 30분이나 남았다.

대한은 경기장에 들어서자 두 손을 옆으로 활짝 벌렸다. 마치 몸으로 십자가를 만드는 자세였다. 물론 배 앞에서 하면 전혀 다른 의미가 되지만 말이다.

그는 고개를 위로 치켜들고는 크게 소리쳤다.

“나는 이대한이다.”

관중은 이대한의 퍼포먼스에 다들 재미있다고 웃었다. 주심이 경고를 하려다가 그냥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시합하다 보면 가끔 저런 또라이들이 하나씩 있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대한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았다.

대한은 당장 칭호 두 개를 사용했다. 에바와 의논한 대로 민첩 스탯을 증폭하고 개인기(A)를 부스팅했다. 그리고는 정말 미친놈처럼 그라운드를 누비고 다녔다.

붉은 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한 마리의 야생마!

이날 대한은 ‘프리킥의 마법사’라는 별명 외에 ‘그라운드의 적토마’라는 별명을 얻게 됐다.

“이리 줘!”

“대한아! 받아!”

대한이 들어오자 대한민국의 공격에 활력이 돌았다. 그는 가지고 있는 재능을 아끼지 않고 잘 써먹었다.

미드필더 테오 지단이 대한의 앞을 막았다. 대한은 부딪칠 듯 달려들더니 팬텀 드리블로 가볍게 한 선수를 제쳐냈다. 그리고는 재능 순간 돌파를 이용해 수비수 사이를 뚫고 지나갔다.

빠르게 드리블로 치고 올라오자 놀란 프랑스 수비진이 일제히 그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대한에게는 선택권이 많았다.

패스해도 되고 이대로 파고들어도 된다. 상대방에게서 반칙을 얻어내도 좋고 그렇지 않아도 그만이었다.

“대한아!”

대한의 선택은 최민석이었다. 그는 어느새 프랑스 골대 오른쪽까지 파고 들어가 있었다. 대한은 그에게 강하게 패스했다.

뻥!

축구공은 낮게 깔리면서 빠르게 대각선으로 날아갔다. 놀랍게도 프랑스 수비진이 전혀 막을 수 없는 틈을 절묘하게 파고들었다.

최민석은 굳이 볼을 차려고 하지 않았다. 워낙 빠르고 정확히 날아오는 볼이라 그냥 한쪽 발만 정확히 가져다 댔다.

퉁!

프랑스의 콜키퍼 아미하드 나지가 몸을 날려봤지만, 워낙 코너라서 손이 닿지 않았다.

“골이다.”

“야호!”

“한 골 넣었다.”

“대박!”

“지렸다.”

대한민국 벤치는 일제히 일어나 환호성을 질렀다. 최민석은 유유히 골대를 한 바퀴 돈 뒤에 축구공을 집어 중앙선으로 뛰었다.

다들 그의 곁으로 몰려들어 축하 인사를 했다. 하지만 대한만은 굳이 그러지 않고 느긋하게 중앙선으로 걸어갔다.

나중에 최민석이 다가오자 그제야 서로 포옹을 했다.

“멋진 패스였다.”

“잘 넣었어.”

둘은 굳게 악수를 하고 옆으로 늘어섰다.

삐익!

다시 경기가 시작됐다.

프랑스는 생각대로 파상공격을 해왔다. 하지만 이미 사기를 충전한 대한민국 선수들에게 먹힐 만한 전술은 아니었다. 오히려 볼을 빼앗기자 곧바로 역습의 기회를 제공하는 단초가 되었다.

“대한아!”

뻥!

목소리가 먼저 들려오고 축구공 차는 소리가 들렸다. 대한은 힐끗 한번 뒤를 쳐다본 후에 미친 듯이 프랑스 골대를 향해 달려갔다.

‘누구야? 이 미친 새끼!’

―수비수 이태선이 찬 공입니다.

그는 에바를 힐끗 한번 보고는 두 다리로 마력을 밀어 넣었다.

‘어디까지 날아가냐?’

―거의 다 왔습니다. 마스터는 표시된 공간으로만 가십시오.

‘지금도 가고 있어.’

대한은 에바와 대화를 나누며 부지런히 발을 놀렸다. 수비수 이태선이 찬 볼은 중앙선을 넘어 페널티 에어리어까지 날아갔다.

아미하드 골키퍼가 앞으로 나갈까 말까 고민하는 모습이 보였다. 그는 이걸 보자 입가에 살짝 미소를 지었다.

대한이 생각할 때 골키퍼가 나오기에는 이미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숨이 턱까지 차오름에도 불구하고 그는 힘껏 한쪽 다리를 쭉 뻗었다.

퉁!

아슬아슬하게 발에 걸렸다. 대한의 발등에 축구공이 정확히 떨어져 내린 것이다.

속도가 팍 죽은 공은 허공으로 살짝 떠올랐다. 순간 그는 재빠르게 골키퍼와 골대를 살폈다.

―마스터! 로빙슛!

‘알고 있어.’

대한은 가볍게 축구공의 아래쪽을 찼다. 그러자 볼이 허공으로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그 모습에 아미하드 골키퍼가 기겁하며 뒷걸음질 쳤다. 힘껏 점프해 손을 뻗어봤지만, 볼을 잡을 수는 없었다.

퉁, 퉁, 퉁! 데굴데굴!

기적처럼 골이 들어갔다.

온 힘을 다한 스프린트와 그림 같이 절묘한 로빙슛의 조합이었다.

“골이다!”

“와아아아!”

“미쳤다.”

“대한이 최고!”

“이게 실화냐!”

“봤냐? 저 새끼 죽였다.”

대한민국 벤치는 흥분으로 들끓어 올랐다. 다들 목에 핏대를 세우며 소리를 질러댔다. 경기장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곳에서 프랑스를 응원하는 브라질 사람은 많지 않았다. 관중은 비토리아에서 이곳까지 원정을 온 하이스 치어리더팀(?)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대한민국을 응원하고 있었다.

또한, 이미 브라질에 대한이 떴다는 것을 알게 된 그의 구독자와 팔로워들이 재빠르게 경기장으로 몰려들었다. 그러니 이곳이 브라질인지 대한민국의 안방인지 프랑스 팀은 알 수가 없었다.

이러한 현상은 비단 경기장뿐만이 아니었다. 채팅 창도 동시에 팔팔 끓어올랐다.

[아메리카노: 미쳤다.]

[수트라치먹었다: 이게 실화냐!]

[아담한여자: 대한이 너무 멋져!]

[오리온처녀: 꺅! 또 골이다.]

[X소톨: 대한이 만세!]

[대한육군: 네가 진정한 애국자다.]

[유람선선장: ‘발로들어’가 멀지 않았다.]

[스마트걸: 발롱도르 아니에요?]

[유람선선장: 대충 알아들어.]

[스파이더맨: 죽이는 골이네. 프랑스 개 박살 내라!]

[나는조아라: 대한 존잘! 대한 졸멋!]

[아스피린: 멋짐이 뿜뿜!]

시청자들은 대한의 골을 보며 카타르시스를 느꼈다.

이건 누가 봐도 멋진 골이었다.

U-17 브라질 월드컵 경기를 중계하는 정광용 축구캐스터와 박승재 아나운서도 이 대열에 자연스럽게 합류했다.

“이대한 선수! 정말 대단합니다.”

“이태선 선수가 패스한 볼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따라가서 기어코 골을 넣었어요.”

“사실 이태선 선수가 패스한 볼은 실축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이 어려운 볼을 이대한 선수가 살리네요.”

“퍼스트 터치도 기가 막혔습니다.”

“맞아요. 볼을 컨트롤 한 후 바로 쏘아 올린 로빙슛도 일품이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별거 아니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하나 따져보면 고도로 집약된 축구 기술과 센스가 뭉쳐진 골이었어요.”

“한마디로 종합 선물 세트처럼 멋진 골이란 말씀이시군요.”

“네, 맞습니다.”

정광용과 박승재는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신나게 떠들어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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