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4화 <호사다마>
이건 도저히 막을 수 없는 골이라는 것을 인정한 모양이었다. 반대로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벤치는 아주 마그마처럼 들끓어 올랐다.
“골이다.”
“대한이 골을 넣었어.”
“방금 뭐냐? 총알이었냐?”
“대한이 최고!”
“X발 죽였다.”
“환상적인 발리킥이다.”
“2대2 동점이다.”
대한의 골은 지지부진한 경기를 단박에 뜨겁게 바꿔놓았다.
선수들은 모두 달려와 대한과 포옹을 하며 축하했다. 대한이 넣은 슛은 너무나도 시원한 골이라 사기 진작에 특효였다.
삐익!
경기가 속개됐다.
아이티는 어떻게든 한 골을 넣으려고 파상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수비진은 전과는 달리 빗장수비를 펼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이번만 잘 막으면 대한이 분명히 한 골 넣어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미드필더진과 공격수들도 모두 한마음이었다. 어떻게든 공격수에게 패스하고 공격수는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돌파해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반드시 아이티 선수들의 실수가 나오게 될 것이다.
남은 시간은 5분!
대한민국도 아이티도 굳이 승부차기로 승부를 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양 팀은 최선을 다해 정면충돌했다. 하지만 대한민국에는 칭호 워크라이로 스탯을 증폭하고 투지의 신병으로 재능을 부스터 한 대한이 있었다.
그는 마력으로 도핑까지 한 상태로 잔디 위를 적토마처럼 달리고 있었다.
“대한아!”
“오케이!”
미드필더 양지면이 다짜고짜 대한을 향해 볼을 찼다.
아이티 수비들이 달려와 대한의 앞에 섰다. 하지만 어느새 아이티 수비들 사이로 어깨를 밀어 넣는 대한!
역시 그가 한 수 더 빨랐다.
퉁!
대한은 발등으로 날아오는 축구공을 받았다. 볼이 위로 살짝 떠 오르며 아이티 수비수 둘의 머리를 넘어갔다.
그는 부드럽게 몸을 돌려 볼을 향해 나아갔다. 순간 다급했던 아이티 수비수 한 명이 그의 옷을 붙잡고 늘어졌다.
―마스터, 뒤로 넘어지세요.
대한은 순간적으로 갈등했다. 그러나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보더니 즉시 뒤로 발라당 자빠졌다. 그가 쓰러진 곳은 페널티 에어리어 정면이었다.
삐익!
주심은 가차 없이 휘슬을 불었다. 누가 봐도 명백한 파울이었다.
“이겼다.”
“프리킥이다.”
“크크! 성공이다.”
대한민국 축구 대표팀 선수들은 모두 환하게 웃으며 자축했다. 파울로 그저 프리킥을 얻었을 뿐이다. 그런데 저렇게들 좋아한다.
이 모습을 본 아이티 선수들은 다들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들은 대한민국 U-17 축구 대표팀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대한에 대한 정보는 일체 가진 바가 없었다. 아이티 대표팀에게 대한은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진 별똥별이나 마찬가지였다.
‘이렇게 정보가 어두워서야.’
대한은 속으로 혀를 차며 축구공을 들었다 잘 세워놓았다. 뒤로 물러나자 전면에 아이티 선수들이 쌓은 벽이 보였다. 성인들이 쌓아도 안 되는 것을 17세 이하 선수들이 벽을 쌓는다고 될 리 없었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자 대한은 빠르게 달려갔다. 그는 골키퍼의 시야가 가려지는 틈을 이용해 교묘하게 볼을 감아 찼다.
뻥!
아이티 선수들이 일제히 위로 뛰어올랐다. 축구공은 비웃기라도 하듯 딱 머리 하나만큼 더 떠올라 골대를 향했다.
볼은 오른쪽 골대를 나갈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어느 순간 급격히 휘어지며 땅에 내려꽂혔다.
퉁!
촤아악!
축구공은 딱 한 번 바닥에 튕기고는 골문 안으로 쏙 들어갔다.
와아아아!
다시 한번 경기장이 우레같은 함성이 터졌다.
대한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하늘로 쭉 뻗었다.
하이스와 친구들은 그 모습에 다들 손을 맞잡고 깡충깡충 뛰어댔다. 일부는 눈물까지 흘리며 좋아했다. 정말 응원을 하러 나온 보람이 있었다.
아이티 대표팀 벤치는 절망의 탄식으로 가득했다. 반대로 대한민국 대표팀 벤치는 흥분으로 뜨겁게 달아올랐다. 채팅 창도 마찬가지로 화끈하게 타올랐다.
[터프가이: 지렸다.]
[치킨효린: 역시 프리킥은 대한이야.]
[고로쇠콜라: 나도 지렸다.]
[코란도일: 기가 막히네.]
[화가난다: 프리킥 마법사가 오늘도 한몫했네.]
[비도깨: 스카우트들 난리 나겠다.]
[대폭주: 대한아! 분데스리가 가즈아!]
[코만도: 뭔 개소리야? EPL 가즈아!]
[올망졸망: 득점왕 가즈아!]
다들 대한의 미래에 세계적인 축구 리그에 넣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주심은 서둘러 경기를 속개시켰다. 그렇지만 5분간 단단히 빗장을 걸어버린 대한민국 대표팀의 골대를 뚫는 것은 불가능했다.
삐이익!
결국, 주심의 긴 휘슬 소리로 경기가 끝났다.
최종 스코어 3대2.
펠레 스코어이자 짜릿한 역전승이었다.
대한민국과 아이티의 축구경기는 실시간으로 대한민국에 방송됐다. 그래서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경기를 지켜봤다.
덕분에 대한의 이름이 전국적으로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그동안은 아는 사람만 알음알음 알았다면 이제는 U-17 브라질 월드컵에서 2골이나 넣은 이대한 축구 선수로 이름을 알리게 됐다는 말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대한은 상상도 하지 못한 깊은 늪에 빠져들고 있었다.
* * *
“쾅!”
대한은 주먹으로 탁자를 치며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의 앞에 놓인 노트북!
현재 대한은 대한민국의 모든 포털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 1위로 등극한 상태였다. 그것도 U-17 브라질 월드컵에서 아이티와 접전 끝에 2골을 넣은 역전승의 주역으로 나온 게 아니었다.
“지금 이게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되죠. 당장 언론사와 축구 협회에 강력히 항의해야 합니다.”
동혁은 대한보다 오히려 더 화가 난 표정이었다. 대한은 그 모습에 마음이 좀 가라앉았다.
“잠시 혼자 생각할 수 있게 해줘요.”
“네, 사장님.”
동혁은 대한의 눈치를 살피며 조용히 밖으로 나갔다.
이곳은 동혁이 묵고 있는 쉐라톤 비토리아 호텔이었다.
나가려면 대한이 나가야 옳았지만 당장 그런 것까지 신경을 쓰기에는 대한은 지금 너무 화가 많이 나 있었다.
지난 이틀 동안은 아주 좋았다. 아이티에게 발목을 잡힐 뻔했지만, 대한의 활약으로 짜릿한 역전승을 이뤘다. 팀 분위기도 좋았고 선수들도 모두 그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감독과 코치들도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경기가 끝나자 바로 짐을 싸서 비행장으로 갔다. 목적지는 비토리아에서 1,000km도 넘게 떨어진 브라질리아 남서쪽의 고이아니아.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내내 다들 승리의 기쁨을 만끽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연일 대한의 활약상을 방송하며 매스컴에서 띄워주기 바빴다. 그런데 오늘 아침 상황이 완전히 반전됐다.
‘에바! 사건 정리 좀 해봐!’
―네, 마스터.
대한의 말에 에바는 허공에 온갖 사진과 자료를 다 띄워놓았다.
―시작은 대한축구협회로 익명의 제보가 들어간 것입니다.
‘제보야, 짜고 치는 고스톱이야?’
―둘 다입니다. 어쨌든 마스터의 행적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는 상황에서 이런 악의적인 제보와 사진 등이 들어가니 특종에 목마른 기레기들에게는 이만한 먹이도 없는 셈이지요.
에바는 상당히 냉정한 어투로 말했다.
‘제보를 한 놈이 누군지 알아냈어?’
―네, 마스터. 김을남 코치입니다. 그가 비토리아에서 있었던 일들을 모두 악의적으로 짜깁기해서 축협에 넘겼습니다.
대한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그도 이런 일을 벌일 인간이 노유상이 아니라면 김을남 코치라고 생각했었다.
‘그럼 축협에 들어간 제보가 어떻게 매스컴을 탄 거지? 아니 누가 뿌린 거야?’
―공식적으로는 축협 대변인이 매스컴에 흘렸습니다. 하지만 사실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노재정이 친한 기자 몇과 짜고 벌인 일입니다.
‘노재정? 설마 노유상과 관련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왜 아니겠습니까. 노재정은 노유상의 삼촌입니다. 거기에다 노유상의 친할아버지가 누구인 줄 아십니까? 로티 그룹의 부회장 노동규입니다.
‘로티가 여기서 왜 나와?’
―노재정이 저렇게 멋대로 할 수 있는 돈이 어디서 나오겠습니까?
‘로티라면 일본의 자금으로 만들어졌다는 그 친일 기업 로티 맞지?’
―네, 그렇습니다.
로티는 대한민국 재벌 그룹이다. 재계 서열 1위인 제일 그룹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자산 규모 115조, 계열사 95개, 재계 서열 5위의 막강한 대기업 집단이었다. 그런 재벌의 부회장을 할아버지로 뒀다니 노유상도 보통 금수저가 아니었다.
‘이런 금수저, 아니 다이아몬드 수저가 왜 축구를 하고 있냐?’
―그러게 말입니다. 머리가 안 좋으니 몸으로 때우려는 모양입니다.
대한은 잠시 생각을 해보더니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사정까지 일일이 그가 알 바는 아니었다.
‘일단 계속 브리핑해 봐!’
―네, 마스터! 현재 여론이 극도로 안 좋아지고 있습니다. 특히 개인 방송을 하면서 하이스를 비롯해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수영장 파티를 하는 영상이 악의적으로 편집되어 매스컴에 계속 노출되고 있습니다.
‘그게 왜 문제가 돼지? 술을 마신 것도 아닌데.’
대한은 억울한 생각이 들었다.
―문제로 만들기 위해 작정을 했으니 문제가 되는 거죠.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마스터는 지금 천하에 싹수없는 놈이 되어버렸습니다.
‘왜?’
―감독의 말을 듣지 않고 매일 멋대로 호텔을 나가서 놀고 있는 불성실한 축구 선수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습니다. 또한, 수술로 살을 뺐다거나 마약을 먹고 살을 뺐다는 등 각종 악성 루머까지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이번 경기도 마약에 취해서 두 골을 넣었다는 뇌피셜 기사도 있습니다.
정말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일이었다. 그동안 단 한 명의 기자도 대한에게 찾아와서 물어보지 않았다.
기자들이 기사를 쓰는데 사실인지 확인 한번 하지 않고 그냥 베끼어 쓰기에다 뇌피셜까지 섞어서 소설을 썼다는 것이다.
‘그건 대한 TV만 봐도 아니라는 것을 당장 알 수 있을 텐데. 외출도 감독한테 처음부터 허락을 받은 거였잖아.’
―대중은 절대 현명하지 않습니다. 괜히 사회 지도층이 대중을 돼지라고 놀리겠습니까? 진실을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고뇌하지 않고, 바꾸려고 노력하거나 실천하지 않고, 그저 자극만 좋아하니까 돼지라고 생각하죠.
에바는 정말 신랄하기 짝이 없는 비판을 해댔다
덕분에 그의 기분도 조금씩 풀리고 있었다.
‘대중이 돼지이건 아니건 나한테는 그딴 것은 전혀 중요한 게 아니야. 내게 피해를 주는 놈이 누군지 또 어떻게 이 사태를 해결해야 할지가 중요해.’
―돈을 벌더니 눈에 뵈는 것이 없어졌다든가 거만해서 다른 사람을 무시한다든가 하는 추측성 기사들도 마구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시간을 주면 점점 더 여론이 악화하고 루머성 기사들로 마스터의 명성이 난도질 되어버릴 것입니다.
‘거기까지. 대충 이해했으니까 이제부터는 어떻게 할지 대책을 세우자.’
대한의 말에 에바는 허공에 살생부를 떠올렸다.
―먼저 마스터에게 물어보겠습니다.
‘물어봐!’
―마스터의 명성에 흠집을 내고 악의적인 기사로 명예를 훼손한 이들을 모두 죽여버릴까요?
대한은 급히 고개를 저었다.
가끔 에바는 정말 무서울 때가 있다. 그녀의 귀여운 겉모습에 속아서는 안 된다. 진짜 죽인다면 정말 죽이고도 남을 에바다.
‘살인은 안 돼!’
―그럼 응징을 할 마음이 아예 없다는 겁니까?
‘그건 아니야. 다만 살인을 하고 싶지 않아. 그것 외에는 전부 가능할 것 같아. 특히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는 게 제일 좋겠어. 누구든 자신의 재산이 날아가는 것을 보고 좋아하지는 않을 거야.’
그는 아무리 자신이 손해를 봐도 사람의 생명까지 해치고 싶지는 않았다. 그것 말고도 얼마든지 응징할 방법은 많았다.
‘일단 법무법인 율율의 정반석 변호사에게 연락해서 대책을 마련해 보라고 해! 특히 가짜 뉴스와 악의적인 기사 및 날조된 추측성 기사를 내보낸 기자와 언론사는 전부 고발 조치하고 법적으로 대응하라고 해!’
―알겠습니다.
‘유아영 대리에게 기자회견을 하라고 하고 김을남 코치가 제보한 내용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도록 해! 혹시 돈 먹은 거 있으면 그것도 터트리고.’
―김을남 코치의 이름을 폭로해도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 대한축구협회 부회장 노재정까지 같이 엮어도 돼.’
―그럼 노유상은 어떻게 할까요?
‘그놈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면 같이 엮고 모르고 있으면 내버려 둬!’
―예, 마스터.
그제야 에바는 눈에 힘을 준 것을 풀었다. 대한은 굳이 노유상까지 이 일에 엮고 싶지는 않았다. 그가 전혀 연관되어있지 않다면 말이다.
‘여기까지가 공식적인 대응이야.’
―히히! 알고 있습니다. 이제 본격적인 응징을 할 차례지요.
에바는 갑자기 검은 옷으로 바꾸고 손에 긴 낫을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