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아이티전>
―마스터! 내일은 시금치를 많이 먹어주세요.
‘왜?’
―철분이 부족해서 보충해야 합니다. 물론 제가 필요한 성분도 좀 있고요.
‘알았어.’
에바의 요청에 그는 두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금목걸이와 은 발찌는 잠잘 때 차고 자세요.
‘금과 은도 흡수하려고 그래?’
―앞으로 둘 다 조금씩 얇아지다가 완전히 사라지게 될 거예요. 그러니까 놀라지 마세요.
‘응, 기억해 둘게. 또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네, 마스터.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고맙기는, 우리 사이에.’
대한의 말에 에바는 두 손을 배꼽에 대고 정중하게 인사를 했다.
그는 에바를 한번 쳐다보고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하는 알파로메오(S) 오러·마나 연공법을 시작했다.
마력 스탯이 0에서 1로 변하더니 스탯이 조금씩 상승하고 있었다.
대한은 앞으로 마력이 제일 중요한 스탯이 될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그래서 에바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열심히 알파로메오를 연성했다.
오늘도 알찬 하루가 지나가고 있었다.
* * *
이스타지우 클레베르 안드라지 경기장.
“와아아아!”
21,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카리아시카’의 축구장이다.
현재 입추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관중이 꽉 차 있었다.
같은 시각, 조별 경기가 벌어지는 다른 지역은 이렇지 않았다.
브라질 시민들의 무관심으로 인해 U-17 브라질 월드컵은 벌써 대회가 망했다는 암담한 말을 듣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곳 경기장만 유난히 관중 동원에 성공했다.
이건 모두 올리베이라 가문에서 적극적으로 홍보해 줬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번 경기를 위해 TV와 라디오는 물론이고 전단을 뿌리고 심지어는 대형 관광 버스까지 동원해 줬다. 그러니 축구를 좋아하는 브라질 사람들이 가지 않을 리가 없었다.
덕분에 대한을 비롯한 대한민국 U-17 축구 대표팀은 신이 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대한민국!”
짝짝, 짝, 짝짝!
‘어디서 본 것은 있어서는…….’
치어리더들의 구령에 따라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은 대한민국의 응원 문화를 흉내 냈다.
대한은 고개를 들었다. 관중석에서 방방 뛰어다니고 있는 하이스와 그녀의 친구들이 보였다. 관중의 대부분이 아이티보다 대한민국을 일방적으로 응원하고 있는 결정적인 이유였다.
“대한아! 저 치어리더들 전부 네 친구냐?”
“예, 제가 시합이 있다니까 우리 팀을 응원하겠다고 자원봉사를 나왔어요.”
“고맙다. 네 덕분에 시합할 맛이 난다.”
김수정 감독은 축구장을 꽉 채운 관중을 보며 순수하게 기뻐했다.
승패를 떠나 경기장을 찾은 관중들이 대한민국을 연호하자 즐거워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특히 경기장에 온 브라질 교민들은 관중들의 반응에 크게 고무되어 있었다. 그들은 목이 쉬도록 대한민국을 외쳐대며 열띤 응원을 펼쳤다.
아이티 U-17 축구 대표팀은 이런 황당한 분위기 속에 절로 위축되어갔다.
삐익!
드디어 아이티와의 첫 번째 조별 경기가 시작됐다.
대한민국은 C조에 속해있다. 아이티를 시작으로 프랑스와 칠레 같은 축구 강국들과 맞붙어야 했다.
시작은 순조로웠다. 거의 일방적인 응원처럼 아이티의 골문을 일방적으로 두들겨댔다. 그런데 이상하게 골이 터지지 않았다.
‘이거 어째 불안한데.’
―아이티가 전반에 힘을 비축하고 후반에 승부수를 던지려 하고 있습니다.
역시 생각대로 아이티는 속으로 날카로운 비수를 갈고 있었다. 그러나 대한이 할 수 있는 것은 현재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벤치에서 시작해 전반전을 속수무책으로 그냥 지켜봐야만 했다.
삐이익!
일방적이긴 하지만 무기력한 전반전이 끝났다. 대한은 즉시 몸을 풀기 시작했다. 후반전이 시작되자마자 나갈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막상 후반전이 시작되자 김수정은 대한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렇다고 그가 몸을 푸는 것을 멈추지는 않았다. 늦게 나가더라도 언제든지 나갈 준비를 하는 게 옳았기 때문이다.
“골!”
그때 대한민국의 원더골이 터졌다.
부동의 스트라이커 최민석!
그가 정면에서 쏜 중거리 슛이 스위퍼를 맞고 굴절되며 운 좋게도 볼은 골대 안으로 휘어져 그대로 들어가 버렸다.
관중은 마치 브라질 축구 대표팀이 골을 넣은 것처럼 크게 기뻐했다.
모두 기쁨에 환호성을 질렀다. 하지만 대한만은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아이티의 공세가 여간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헉, 골이다.”
“제길, 골을 먹었어.”
“어라! 벌써 골을 먹었네.”
“골을 넣은 지 얼마나 됐다고 동점 골이냐.”
다들 아쉽다고 탄식을 했다. 하지만 문제는 그냥 골을 먹은 것이 아니었다.
아이티 선수들은 뛰어나 조직력과 정교한 패스에 의해 골을 만들어 냈다.
이후부터는 대한민국이 일방적으로 아이티에게 끌려갔다. 파상적인 공세는 물론이고 기습적인 역습에 노출되어 몇 번이나 실점 위기를 넘겼다.
불안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은 대한만이 아니었다. 김수정 감독과 코치진도 모두 얼굴에 근심이 가득했다.
‘이건 완전히 작전 실수다.’
―아이티를 너무 얕본 게 실패의 원인입니다. 예상보다 아이티의 전력이 막강합니다. 또한, 조직력도 뛰어나네요.
‘내가 보기에도 그래. 그런데 우리 선수들이 왜 모두 저렇게 허둥지둥하지?’
―글쎄요. 뭔가 다들 손발이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경기하다 보면 이런 날이 있다. 이유 없이 뭐가 잘 풀리지 않는 날 말이다.
“헉! 골 먹었다.”
“어떻게 그걸 못 막지?”
“아! 진짜 열 받네.”
역시 예상대로 아이티에게 또다시 골을 먹었다. 아이티 선수들의 짧은 패스에 의한 기습적인 슛이 성공한 것이다.
스코어는 1:2로 한 골 뒤지고 있는 상황.
대한이 시간을 확인하니 후반전이 20분도 채 남지 않았다.
물론 아직 골을 넣을 시간은 충분했지만, 역시 문제는 김수정 감독이 대한을 기용할 생각을 전혀 안 하고 있다는 점이다.
대한은 그제야 몸을 푸는 것을 중단했다. 아니, 너무 열심히 몸을 풀어서 온몸에서 열이 펄펄 났다.
이제는 오히려 몸의 열을 식혀야 할 때였다.
‘에바! 상태 창이나 확인하자.’
―네, 마스터.
대한은 막간을 이용해 상태 창을 살폈다.
이름: 이대한
등급: 워리어(B)
칭호: 워크라이(스탯 증폭↑10%), 투지의 신병(재능 부스터↑10%)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알파로메오(S급),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S)
언어 ▶ 포르투갈어(A), 이탈리아어(S), 영어(S)
축구 ▶ 양발잡이(S), 넓은 시야(S), 축구 지능(S), 축구 재능(S), 프리킥(S), 축구 기본기(A), 드리블(A), 개인기(A), 패스(A), 골 결정력(A), 주력(B), 스프린트(B), 지구력(B), 수비(B)
격투 ▶ 주짓수(S), 태권도(S), 격술(S)
스탯: 근력 94, 민첩 75, 체력 80, 지력 84, 마력 7
신장 185cm, 몸무게 83kg
몸무게는 그대로고 신장이 184cm에서 1cm가 더 자라서 185cm가 됐다.
그런데 이제 더는 성장할 게 없었던지 재능 ‘폭풍 성장(S)’이 사라지고 없었다.
‘에바! 폭풍 성장 어디 갔어?’
―폭풍 성장은 패시브 재능입니다. 최대치까지 성장하면 자연히 사라지게 됩니다.
‘그럼 185cm가 최대치라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머리로는 충분히 이해가 갔다. 그러나 심정적으로는 뭔가 매우 아쉬웠다. 그렇다고 키가 더 크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도 이미 충분히 큰 상태다.
격투 칸에는 주짓수(S)가 들어가 있었다. 막연하게 주짓수(SS)를 기대했는데 확실히 그건 도둑놈 심보였나보다.
스탯을 살펴 보니 근력이 하나 올랐다. 거기에 민첩, 체력, 지력이 2개씩 올랐다. 그리고 마력이 0에서 7로 변했다.
한 자리 숫자에 불과한 마력이지만 전신을 강화하고 순간적이나마 힘을 폭발시키는 데 꼭 필요한 스탯이었다. 앞으로 마력 스탯이 어떻게 자신에게 작용할지 대한은 정말 궁금했다.
‘이틀만 일찍 순간 돌파 재능을 흡수했다면 오늘쯤 획득했을 텐데…….’
대한은 뒤늦게 연습경기를 하러 왔던 ‘비토리아FC’ 팀을 살짝 원망해 봤다. 물론 그런다고 없던 재능이 당장 생기는 기적 같은 일은 없었다.
시간은 덧없이 흘러갔다.
모두 열심히 공격했지만 자꾸 어이없는 실수가 나왔다.
파상 공세를 펼치고 있어도 전혀 위력적이지 않았다. 유효 슈팅은 고사하고 마무리도 짓기 전에 볼을 빼앗기기 일쑤였다.
경기 종료 10분을 남겨놓고 마침내 김수정 감독은 결단을 내렸다.
“대한아! 나가라!”
“예.”
대한은 고개를 살짝 갸웃거렸다. 지금은 프리킥 기회가 온 것도 아니었다.
뭐, 어쨌든 일단 나가라니 나가야 했다.
노유상이 얼굴을 찌푸리며 들어오고 대한은 최민석과 투톱으로 섰다.
‘이거 오늘 무슨 날인가 보네.’
―다들 바이오리듬이 최악입니다.
경기장에 서보니 확실히 알겠다. 오늘은 그냥 뭔가 재수가 없는 날이었다.
다들 미묘하게 박자와 리듬이 어긋나 있었다. 패스는 조금 빠르거나 조금 약했고 방향도 약간씩 틀어져 있었다.
이러니 공격이 제대로 먹힐 리 없었다. 한마디로 어떻게 손을 쓸 수 없는 총체적인 난국이었다.
할 수 없이 대한은 중앙선까지 내려와 볼을 받아야 했다.
“대한!”
다행히 수비진에서 골을 빼앗아 즉시 패스를 해줬다. 대한은 부드럽게 퍼스트 터치를 가져갔다. 한 동작에 볼을 아이티 방면으로 돌려놓았다. 그러자 그의 시야에 아군과 적군의 상황이 일목요연하게 들어왔다.
최민석이 눈치 빠르게 앞으로 쌩하니 달려갔다.
대한은 일단 앞으로 드리블을 치고 나갔다.
아이티 선수들이 그를 경계하며 빠르게 물러섰다.
‘워크라이! 투지의 신병!’
대한은 즉시 칭호 ‘워크라이’와 ‘투지의 신병’을 동시에 사용했다.
‘워크라이’는 민첩 스탯에 걸어 10분 동안 10%를 증폭시켰다.
민첩 스탯이 75이니 10% 면 7.5가 증폭됐다.
그의 민첩이 당장 82.5로 증가했다.
‘투지의 신병’은 ‘스프린트(B)’에 걸었다.
재능 부스터 10% 상승 효과로 10분 동안 스프린트의 등급이 거의 A등급에 가까워졌다. 그리고 민첩 스탯과 재능 ‘스프린트(B)’가 시너지 효과를 냈다.
대한의 스피드와 순간 속도가 엄청 빨라졌다.
대한은 신나게 볼을 몰고 올라갔다. 그러다 최민석이 아이티의 선수들과 나란히 선 순간, 그는 기습적으로 강하게 볼을 찼다.
뻥!
촤아아악!
대한의 발을 떠난 축구공은 낮고 빠르게 잔디 위를 스쳐 갔다.
대지를 가르는 축구공!
정말 기가 막힌 킬패스가 나왔다.
아이티 선수들이 발을 뻗어봤지만 모두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는 거리였다.
“나이스 패스!”
자신의 발 앞으로 정확히 배달되어 온 축구공!
볼을 잡고 최민석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냅다 골문을 향해 후려 찼다.
뻥!
축구공은 맞고 죽으라는 듯 쏜살같이 날아갔다.
텅!!
그런데 이게 무슨 조화란 말인가!
안타깝게도 볼은 골대 오른쪽 모서리를 맞고 하늘로 붕 떠올랐다.
최민석은 안타까운 마음에 두 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하지만 볼은 아직 골라인을 벗어난 게 아니었다.
오히려 페널티 에어리어 선상으로 빠르게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장소를 향해 대한이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고 있었다.
‘마스터! 잡지 말고 바로 차세요.’
―알고 있어. 발리슛이다.
쥐꼬리만큼 생긴 마력까지 몽땅 두 다리에 때려 박으며 대한은 정말 미친 듯이 달려갔다.
아이티 선수들은 모두 하늘을 쳐다보며 볼을 잡으려고 했다. 하지만 미친 황소처럼 달려오는 대한보다 빠르진 않았다.
뻥!
축구공이 터질 듯이 압축됐다가 총알처럼 골문을 향해 쏘아졌다. 정확히 발등에 걸린 볼은 빨랫줄처럼 일직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아이티의 골키퍼는 몸을 날리려다가 그 자리에 멈춰서고 말았다. 이미 축구공이 그물망을 만나 팽그르르 돌고 있었다.
“골!”
와아아아!
이스타지우 클레베르 안드라지 경기장에 거센 함성이 터져 나왔다.
보는 사람의 가슴이 다 후련해지는 엄청난 발리슛!
다들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난리를 쳤다.
하이스와 그녀의 친구들은 모두 두 손을 높이 들고 방방 뛰었고 동혁은 카메라를 급히 돌려 그녀들의 모습을 찍으며 마구 소리쳤다.
“우와! 대박! 죽였다. 우리 사장님, 아니 대한이 최고다!”
채팅 창도 바로 폭발했다.
[만수르SUH: 우와! 개시원!]
[닥공: 형이 닥치고 달풍선 쏜다.]
[어벤저스: 지금 나 챔피언스리그 보냐?]
[자주국방: 이런 미친 발리킥을 봤나.]
[카리스마: 개후덜덜!]
[No재팬: 대한축구 만세!]
[핵인싸: 아오! 시원하다.]
[낼름: 미쳤다.]
[다섯공무원: 가공할 발리슛이었어.]
[손톱이빨개: 바로 EPL로 가즈아!]
[부부젤라: 아이티 개박살 나겠다.]
아이티 축구 대표팀 감독은 입을 딱 벌리고 혀를 내둘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