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82화 (81/331)

82화 <다니엘로 120년>

‘에바! 이거 괜히 이상한 데 온 거 아니야?’

―그렇지 않습니다. 나름 합리적인 가격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대한의 의심을 에바는 한마디 말로 일축했다.

대한은 하이스를 따라 주얼리 스트리트를 걸었다. 과연 들은 대로 세계적인 보석 브랜드가 이 작은 거리에 다 모여있었다.

한쪽에는 커다란 금은방이 보였는데 골드바와 금화를 시작으로 각종 금은 세공품과 다이아몬드, 사파이어, 루비, 에메랄드 등의 보석으로 만든 액세서리가 가득했다.

“여기 가볼래요?”

“아니요. 난 금은방 갈 거예요.”

“알았어요. 그럼 저도 같이 갈게요.”

유명 보석 브랜드 앞에 서 있던 그녀는 대한의 말에 바로 꼬리를 내렸다.

대한이 금은방으로 들어가자 하이스도 같이 쪼르르 따라왔다.

“어서 오세요.”

기생오라비같이 생긴 남자가 대한을 쳐다봤다. 자신을 쳐다보는 그남의 눈은 마치 뱀의 눈깔처럼 섬뜩했다.

대한은 보통 놈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이 그를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대한과 같이 들어온 하이스를 바라보는 끈적한 놈의 눈동자를 보자 절로 기분이 나빠졌다.

‘에바! 이 새끼 뭐야?’

―한번 알아볼까요?

‘응, 정말 기분 나쁜 눈빛이네.’

에바는 3초의 간격을 두고 말을 이었다.

―이름은 다니엘로, 나이는 37세, 브라질 갱단과 연관이 있는 중범죄자입니다. 현재는 신분을 세탁한 채 이곳에 숨어있습니다.

‘무슨 범죄를 저질렀는데?’

―살인, 강간, 강도, 절도, 폭행, 마약 밀매, 탈옥 등 아주 다양합니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이놈은 그냥 범죄자가 아니라 아주 악질 탈옥범이었다.

―어떻게 할까요?

‘이놈의 정보와 비리를 몽땅 털어버리고 경찰에 익명으로 제보해!’

―네, 마스터.

에바는 즉시 대한의 명령에 따라 움직였다.

다니엘로의 핸드폰을 통해 사는 집과 스위스 은행의 비밀 계좌를 털었다. 동시에 연락처를 통해 동료들과 비토리아시에 암약하는 갱단들의 정보까지 확인했다.

또한, 핸드폰에 저장된 사진과 동영상을 분석해 놈이 저지른 범죄와 증거를 찾아내어 클라우드에 올려놓았다. 그런 후 경찰에 익명으로 제보를 했다.

브라질 연방 경찰서는 제보를 받는 순간 난리가 났다. 그동안 백방으로 수소문해 찾고 있던 탈옥범의 소재와 범죄를 저지른 결정적인 증거를 찾았기 때문이다.

“이것과 저것 그리고 요것도 보여주세요.”

“네, 손님.”

대한은 태연하게 쇼핑을 즐겼다. 에바가 다니엘로의 스위스 은행 계좌를 털어 백만 달러의 가외 수입을 얻었다. 그는 그 돈으로 조금도 거리낌이 없이 쇼핑을 즐겼다.

물론 대한의 은행 계좌에도 충분한 돈이 들어있었다. 그래도 자신의 돈으로 쇼핑하는 것과 남의 돈으로 쇼핑하는 것은 전적으로 기분이 달랐다.

“금목걸이와 은팔찌를 사려고요?”

“네, 참 보기가 좋네요.”

대한은 에바가 골라주는 순금 목걸이와 순은 발찌를 택했다.

순도를 속이려고 해도 에바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이어서 다이아몬드 반지, 사파이어 목걸이, 루비 귀걸이, 에메랄드 팔찌도 샀다.

하이스는 의외로 통 크게 쇼핑을 하는 대한을 보고 놀랐다. 아무리 아버지가 부자라도 그녀가 쓸 수 있는 액수는 한계가 있었다.

그녀의 놀란 얼굴을 쳐다보자 왠지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거 좀 꺼내주세요.”

“네, 손님.”

다니엘로는 호구가 왔다며 속으로 크게 기뻐했다.

“어머! 참 예쁜 나비 브로치네요.”

“마음에 들어요?”

“네?”

“이건 내가 하이스에게 주는 선물이에요.”

대한은 그녀의 가슴 위쪽에 순금으로 만든 나비 브로치를 달아줬다.

하이스는 기쁘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흥분이 돼서 호흡이 가빠졌다. 덕분에 하이스의 가슴이 오르락내리락하며 대한의 시선을 붙잡았다.

“정말 이거 나 사주는 거예요?”

“물론이죠. 그동안 하이스가 내게 해준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에요.”

“고마워요. 잘 간직할게요.”

하이스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녀는 이 선물을 오랫동안 잘 간직하기로 다짐했다. 그녀의 방심에서 피어오르는 핑크빛 감정까지 잘 담아서 말이다.

그런데 대한은 그녀가 자신에게 보여준 호의에 비해 아무것도 아닌 선물이라고만 생각했다.

이 선물로 인해 앞으로 어떤 파문이 일어날지 아직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다.

지난 일주일 동안 대한은 거의 매일 하이스의 집에서 방송했다. 이제는 시청자들도 그곳이 하인스의 집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또한, 슬슬 (대)한(하)이스!

일명 ‘대하’ 존버가 생기기 시작했다.

소득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그녀의 막냇삼촌인 주짓수 마스터 찰스 올리베이라! 그를 통해 대한은 주짓수의 각종 고급 기술을 쉽게 익힐 수 있었다.

대한 TV의 구독자와 팔로워를 통해 주짓수가 더욱 대중적으로 퍼지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시작한 일이었다. 그런데 엄청난 속도로 기술을 습득해가는 그를 보자 찰스는 자신의 제자가 되라며 은근히 부탁까지 할 정도였다.

물론 대한은 찰스의 제안은 정중히 거절했다. 어딘가에 묶여 있는 걸 그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저건 뭐죠?”

“아! 이건 운석입니다.”

대한은 금은방 한쪽 구석에 장식된 운석을 발견하자 눈을 빛냈다. 운석을 통해 에바를 만난 기억 때문인지 왠지 꼭 한번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다니엘로는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이건 판매하는 게 아닙니다. 그냥 장식품이에요.”

“그럼 그냥 한번 구경해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파는 것은 안 되지만 구경하는 것은 괜찮다고 했다. 하이스도 호기심이 돌았는지 대한에게 다가와 어깨에 턱을 걸쳤다.

아기처럼 쌕쌕대는 그녀의 숨소리! 그로 인해 그는 귓가에 솜털이 모두 곤두서는 것만 같았다.

“꽤 크네요.”

“인근에서 발견한 운석을 저희 사장님이 사서 보관하고 계신 겁니다.”

대한은 다니엘로의 설명을 들으며 수박만 한 운석을 자세히 살폈다.

―마스터! 이 운석을 사주세요.

‘왜?’

―이 안에 제게 꼭 필요한 물질이 들어있어요.

‘그으래?!’

―혹시 모르니 일단 필요한 물질부터 당장 흡수하겠습니다. 계속 그대로 손을 대고 있어 주세요.

에바의 말에 대한은 그대로 따라 했다.

“만약 이걸 판다면 얼마에 파시겠어요?”

“그건 판매품이 아니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혹시 사장님께 전화해서 한번 물어봐 주실 수 있나요?”

“음,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다니엘로는 오래간만에 보는 아시아 호구에게 크게 옴팡 씌울 작정으로 금은방 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사실, 이 금은방은 갱단이 자금 세탁을 목적으로 은밀하게 운영하는 곳이었다. 말은 사장에게 물어본다고 했지만, 실권은 다니엘로에게 있었다.

그러는 사이 에바는 운석에 피코셀을 주입해 필요한 물질을 쪽쪽 빨아들였다. 지구에는 존재하지 않은 물질이라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대한은 손이 약간 뻐근한 느낌이 들었다.

에바가 아주 완벽히 작정하고 결사적으로 일을 하는 중이었다.

약간의 무리가 이런 작은 부작용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아픈 것은 아니었다. 그저 약간 뻐근한 정도여서 얼마든지 에바를 위해서 참아줄 수 있었다.

“사장님께서 팔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래요? 할 수 없군요.”

“하지만 제가 특별히 말씀을 잘 드려서 10만 달러에 팔자고 했습니다.”

“10만 달러라.”

대한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 새끼가 어디서 개수작을 부려!’

―수작을 부리는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이 운석의 가치를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면 그 정도의 돈은 아깝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어떻게 할까? 그냥 살까?’

―당장 10만 불 있으십니까?

‘아니 없는데.’

―포기하세요.

‘에바가 필요하다고 했잖아.’

―필요한 양은 이미 확보했습니다. 지금은 만약의 사태를 대비해서 조금 더 비축해 놓는 중입니다.

에바의 말에 대한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흔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10만 달러는 너무 비싸군요.”

“아! 안타깝네요. 그럼 협상은 결렬이네요.”

“그런 것 같습니다.”

대한은 미련 없이 운석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 대신 자신이 산 물건값을 치렀다. 한국에서 발행한 카드였지만 다니엘로가 긁으니 영국의 은행 이름이 떠올랐다.

에바가 만든 페이퍼컴퍼니의 이름으로 대금을 지급한 대한은 물건을 들고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그러자 다니엘로가 다가오더니 은밀하게 말했다.

“8만 달러에 운석을 팔겠습니다.”

“그것도 비쌉니다.”

“그럼 6만 달러는 어떠십니까?”

“그냥 포기하겠습니다.”

대한은 다니엘로가 적극적으로 나올수록 관심 없는 표정을 지었다.

다니엘로는 예상과는 다르게 일이 돌아가자 살짝 열이 받았다. 그가 기억하기로 저 운석은 100달러에 주고 산 것이다. 사실 이게 운석인지 아닌지 다니엘로는 확신조차 없었다.

“통 크게 양보하겠습니다. 5만 달러에 팔겠습니다.”

“다음에 또 올게요.”

“잠깐만, 제가 3만 달러만 받겠습니다.”

“아닙니다. 나중에 사장님에게 혼날 수 있으니까 임자 만나면 잘 파세요.”

대한은 아쉬울 게 없었다. 에바가 이미 필요한 만큼의 물질을 뽑아놓았다고 했다. 그리고 이곳에 언제든지 와서 운석을 구경하고 감상할 수도 있었다.

그사이 에바는 얼마든지 필요한 물질을 뽑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괜히 큰돈 들여서 살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죄송합니다. 그냥 딱 1만 달러만 받겠습니다.”

“아닙니다. 운석은 이곳에 장식으로 잘 어울리는 것 같네요. 나중에 오면 그때 또 구경할게요.”

대한의 말에 다니엘로는 낭패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힘이 하나도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1천 달러에 사주시면 안 될까요?”

“그렇게 하죠.”

대한은 기다렸다는 듯이 백 달러 지폐 열 장을 내밀었다. 다니엘로는 그제야 자신이 당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인제 와서 말을 바꿀 수는 없었다.

다니엘로는 돈을 받고는 운석을 넘겼다.

대한은 무표정으로 받았지만,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까지는 참지 못했다.

“또 오세요.”

“네, 행운이 있기를 빌겠습니다.”

대한은 다니엘로를 보며 묘한 웃음을 지었다. 다니엘로는 그의 표정에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나 끝까지 웃는 표정을 허물어뜨리지는 않았다.

대한과 하이스가 즐거운 마음으로 금은방을 떠났다. 다니엘로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가 풀면서 이를 갈았다.

“저런 칭크 새끼! 나중에 꼭 몇 배로 바가지를 씌워주마.”

다니엘로는 화풀이하듯 쓰레기통을 발로 세게 걷어찼다. 하지만 그에게 대한을 등쳐먹을 기회는 절대로 오지 않았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브라질 연방 경찰 기동 타격대의 급습을 받았기 때문이다.

결국, 다니엘로는 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탈옥을 시작으로 그동안 유죄 선고를 받았던 사건까지 전부 소급적용되어 넉넉한(?) 형량을 받았다. 모르긴 해도 아마 120년 뒤에는 다시 감옥을 나와 자유를 누리게 될 것이다.

한편 대한과 하이스는 기분 좋은 미소를 지으며 리무진을 탔다.

“어디로 가세요?”

“호텔로 돌아갈 거예요.”

“오늘은 방송 안 해요?”

“네, 하루 쉬려고요.”

“아!”

하이스는 많이 아쉬워했다. 아마 집에 모여있는 그녀의 친구들도 무척 아쉬워할 것이다.

그동안 패션쇼와 연극 등 여러 가지 콘텐츠를 같이 하면서 대한과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다.

요새처럼 흥분되고 짜릿한 순간들은 아마 평생 찾기 힘들 것이다. 그런데 그 좋은 걸 안 한다고 하니 이제는 막 서운한 감정까지 느껴졌다.

“아이티와의 시합이 일주일도 남지 않았어요.”

“아! 그래서 축구 연습을 해야 하는군요.”

“맞아요.”

“그럼 할 수 없죠. 참! 우리가 응원하러 가도 돼요?”

“물론이죠.”

“그럼 갈 수 있는 사람들 다 데리고 갈게요.”

“하이스가 우리를 응원해 주면 아마 큰 도움이 될 거예요.”

“알겠어요. 그리고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비토리아 사람들이 모두 한국을 응원하도록 만들 테니까요.”

하이스는 장난꾸러기 같은 짓궂은 표정을 지었다.

대한은 이 엉뚱한 미녀가 또 무슨 짓을 저지를지 궁금해졌다.

호텔에 도착한 대한은 하이스와 아쉬운 이별의 포옹을 나눴다.

방으로 올라간 그는 곧바로 운석부터 흡수했다. 운석 전체가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대부분은 지구에서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성분이었다. 그래서 에바는 지구에서 구하기 힘들거나, 아예 존재하지 않는 물질만 모두 뽑아냈다.

그리고 대한의 두개골을 비롯한 전신의 뼛속에 잘 보관해놓았다. 덕분에 대한의 뼈가 무지하게 단단해지고 강해지는 부작용이 생겨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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