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9화 <아름다운 정원>
“크흠! 거 식사는 마치고 얘기합시다.”
“아! 네.”
그제야 대한과 하이스는 둘만 있는 장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다시 식사가 재개됐다.
이제는 요리 하나 집어먹고 정원을 한번 쳐다보는 게 당연한 식사 패턴이 됐다.
적당히 배를 채우자 대한은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았다. 그러자 하녀들이 눈치껏 다가와 커피와 홍차를 줬다.
보통은 커피나 홍차 중 어떤 것을 하겠냐고 물어본다. 하지만 이곳은 그냥 둘 다 줘버렸다.
대한은 이게 또 마음에 들었다.
홍차로 입가심을 하고 커피를 마셔 텐션을 올렸다.
“참! 제 친구들을 불렀는데… 괜찮죠?”
“제 개인 방송에 출연시킬 생각이세요?”
“그럼 안 되나요?”
“그럴 리가요. 하이스와 친구들 모두 제 개인 방송에 초대할게요.”
“꺄악! 너무 좋아요. 고마워요.”
대한은 물론이고 마누엘과 동혁까지 모두 그녀의 비명에 놀라버렸다.
마누엘은 영 마뜩잖은 표정으로 심통을 부렸다.
“너무 시끄럽게는 하지 맙시다.”
“물론이죠.”
대한이 선선히 고개를 끄덕이자 오히려 하이스가 허리에 두 손을 올리며 화를 냈다.
“아빠! 약속이 틀리잖아요. 우리 수영장에서 파티를 벌이기로 했다고요.”
“수영장 파티?”
“네.”
“그, 그래? 술은 안마실 거지?”
“당연하죠. 우리가 언제 술 마시면서 파티하는 거 보셨어요?”
“못 봤어.”
대한은 두 부녀의 대화를 들으며 싱긋 미소를 지었다.
술을 마시면 방송으로 내보낼 수가 없다.
술은 안 마시고 수영장 파티를 한다면 건질 영상이 많을 것이다.
“몇 명이나 오죠?”
“열 명쯤 될 거예요.”
“그렇구나.”
“모두 여자예요.”
“아하!”
하이스의 친구들이 모두 여자라는 말에 대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동혁은 말도 못 알아 먹으면서도 뭔가 좋은 일이 있나보다 하고 같이 미소를 지었다.
“그럼 슬슬 방송을 시작해 볼까요?”
“나 옷 갈아입고 올게요.”
“지금 드레스도 참 예쁜데.”
“수영장에서 이렇게 입고 있을 수는 없잖아요.”
“아! 그렇군요. 어서 다녀오세요.”
하이스의 말에 대한은 그녀를 얼른 보냈다.
그녀가 수영복을 입는다고 생각하자 정말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무척 궁금했다.
마누엘은 잠시 대한을 쳐다보다가 손을 흔들었다.
“그럼 재미있게 놀다 가세요.”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천만에요.”
대한이 정중하게 인사를 하자 마누엘도 살짝 고개를 숙이더니 쌩 하고 몸을 돌렸다.
마누엘은 여전히 유치찬란한 인간이었다.
“우리도 갑시다.”
“네, 사장님.”
대한은 동혁에게 하이스와 했던 말을 전해 줬다.
동혁도 대한과 같이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좋아했다.
갑자기 의욕이 솟구친 동혁은 인생작을 찍겠다며 장비를 가지고 먼저 정원으로 향했다.
해가 지며 하늘이 노을에 점령되어 갔다. 그러자 정원과 수영장 일대에 조명이 켜지기 시작했다.
‘이건 이거 대로 괜찮네.’
―정말 멋진 정원이네요.
‘어떻게 방송을 하는 것이 좋을지 동선을 정해 봐!’
―네, 마스터! 시작은 하이스와 정원을 거닐면서 오프닝을 하겠습니다.
‘나쁘지 않은 생각이야.’
―그러다가 친구들을 만나러 간다면서 수영장으로 가서 공연을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대한은 고개를 크게 위아래로 흔들었다. 단순한 구상이지만 효과적일 것 같았다.
그는 방으로 올라가서 캐리어에서 하얀 티셔츠와 베이지색 반바지를 꺼내 입었다.
대한은 이제 누가 봐도 멋진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184cm의 키에 운동으로 단련된 탄탄한 육체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다 재능 ‘미모(S)’로 인해 하루가 다르게 멋짐이 폭발하고 있었다.
가끔 거울을 볼 때마다 이게 정말 자신의 얼굴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때가 있었다.
대한은 거울을 향해 손가락을 총을 쏘는 포즈를 취했다.
‘가자! 오늘도 다 씹어먹는 거야!’
유치한 대사를 얼굴도 붉히지 않고 속으로 외쳐대는 대한이었다.
―마스터, 방송 준비가 끝났습니다.
‘응, 갈게.’
대한은 에바의 재촉에 발걸음을 서둘렀다.
그는 계단을 타고 1층으로 내려갔다. 현관 정문이 아닌 뒤쪽의 문으로 나가자 안소니가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식사는 잘 하셨습니까?”
“덕분에 잘 먹었습니다.”
“하이스 님이 정원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안내를 부탁합니다.”
둘은 서로 예의를 잃지 않고 대화를 나눴다.
대한은 안소니를 따라 정원으로 향했다.
연못 중앙에 세워진 정자에 하이스가 서 있었다.
블랙 앤 화이트 시스루 드레스를 입은 그녀!
조명을 받아 마치 빛의 요정처럼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와우!”
“어때요?”
“아름다워요.”
대한은 엄지 두 개를 들어 내밀었다.
그러자 하이스는 볼을 붉히면서도 아주 좋아했다.
“그런데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고 하지 않았었나요?”
그의 질문에 하이스는 재빨리 그에게 다가와 귀에다 대고 속삭였다.
“사실 수영복은 안에 입고 있어요.”
“아하!”
대한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동혁이 삼각대를 가져와 누각의 입구에 세웠다. 그런 후 카메라를 연결하고는 대한에게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렸다.
“하이스! 방송 준비가 끝난 것 같아요. 준비됐어요?”
“물론이죠. 동혁한테 얘기는 들었죠?”
“네, 이곳에서 시작해서 수영장으로 걸어가라고 했어요.”
“맞아요. 제가 리드할 테니 저만 따라오세요.”
“예.”
대한이 리드를 한다는 말에 하이스는 자연스럽게 그의 옆에 서서 팔짱을 꼈다. 순간 뭉클한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
‘에바!’
―네, 마스터.
‘시작하자.’
―예, 방송 초읽기에 들어갑니다. 3, 2, 1, 스타트!
에바의 말이 끝나자마자 대한은 환하게 웃었다.
“안녕하세요! 대한입니다. 대한 TV를 찾아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는 아주 천천히 연못 안의 정자 안을 걸어 이동했다.
“오늘은 아주 특별한 게스트를 모셨습니다. 현재 브라질에서 모델 활동을 하고 있는 하이스 올리베이라 양입니다.”
“안녕하세요! 하이스 올리베이라입니다.”
대한이 자연스럽게 하이스 옆에 서자 그녀는 생글생글 웃으며 인사를 했다.
그런데 인사말이 놀랍게도 한국어였다.
그는 하이스를 바라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한국어를 아주 잘하시네요.”
“아니에요. 그냥 조금 할 줄 알아요.”
두 사람은 포르투갈어로 대화를 나눴다.
에바는 즉시 실력을 발휘해 동시 송출, 동시통역 자막을 내보냈다. 덕분에 세계 어느 곳에서도 대한 TV를 시청하는 시청자는 자국의 언어로 편하게 시청할 수 있었다.
“혹시 따로 한국어를 배웠나요?”
“그렇진 않아요. 하지만 브라질에서 유행하고 있는 한국 영화와 드라마, K-POP과 각종 방송 프로그램을 통해 자연스럽게 알게 됐어요.”
“역시 이곳 브라질에서도 한류가 큰 인기를 끌고 있는 모양이군요.”
“맞아요. 저나 친구들 모두 한국의 유명한 아이돌이나 걸 그룹의 노래 하나둘은 모두 부를 줄 안답니다.”
“그럼 어디 한번 들어봐도 될까요?”
대한의 말이 끝나자 에바가 곧바로 MR을 틀어줬다.
최근 한국을 비롯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그룹 ‘블레틴’의 ‘Boys with Love’였다.
대한의 유명세가 날로 커지자 이제는 아이돌 그룹이나 걸 그룹의 노래 및 MR을 마음껏 틀 수 있게 됐다. 대한 TV의 구독자와 팔로워 수가 천만이 넘어가자 엔터테인먼트 회사와 가수들이 먼저 연락해 왔다. 저작권료를 받지 않을 테니 얼마든지 노래와 MR을 틀어달라고 한 것이다.
물론 모든 기획사나 가수들이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아직도 반 이상은 소속 가수의 노래가 나오면 저작권료를 칼 같이 챙겨갔다. 당연히 에바는 이런 경우를 대비해 대한에게 미리 수십 개의 곡을 선정해 줬다.
♬ 모든 게 궁금해 How’ your day Oh tell me 뭐가 널 행복하게 하는지 Oh text me ♪
반주에 맞춰 하이스는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솔직히 잘 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정확한 발음과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그녀의 몸의 율동이 결합되자 꽤나 볼 만한 그림이 만들어졌다.
대한도 옆에서 움칫둠칫 춤을 추며 작게 노래를 따라불렀다.
‘에바, 나 춤이나 배워볼까?’
―원하시면 하이스의 몸에 피코셀을 주입하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봐도 그녀에게 춤에 대한 재능이 있어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냥 클럽에서 재미있게 즐길 정도입니다.
‘흠, 그럼 곤란하지. 기왕 배울 거면 전문가에게 배우는 게 좋겠지.’
대한은 즉시 자신의 생각을 털어버렸다.
짝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그는 힘차게 박수를 쳤다.
채팅 창에도 박수 이모티콘이 도배가 됐다.
[아마데우스: 귀엽다.]
[매크로뿅뿅: 바디라인이 예술이네.]
[Jelousy: 솔직히 노래는 좀…….]
[미녀가좋아: 역시 브라질 미녀라 몸이 다르네.]
[모니카존버당: 모니카가 더 예뻐!]
[리나짱: 리나가 이 방송을 싫어합니다.]
[류연바라기: 류연도 이 방송을 싫어합니다.]
[아이조아라: 난 이 방송을 좋아합니다.]
[네클럽맨_서: 부러운 ㅅㄲ]
[대한대박: 이번에는 남미미녀냐? 졸귀!]
[-바른사나이: 장래희망 대한이!]
하이스는 볼이 상기된 채 부끄러워했다. 춤출 때 보면 절대 부끄럼이 많지는 않아 보였는데 나이가 어려서 그런지 생각보다 샤이한 성격이었다.
“여러분! 기왕 시작한 거 하이스가 춤을 추는 것도 한번 볼까요?”
대한은 물들어 오는 김에 배를 띄우기로 했다.
여캠은 역시 춤과 노래다. 사실 노래는 영 아니올시다였다. 그러니 이제는 춤으로 승부를 보기로 했다.
채팅 창은 당연히 좋다고 난리가 났다.
“시청자들이 전부 하이스의 춤을 보고 싶다고 하네요.”
“춤이요?”
“왜요? 안 돼요?”
“뭐 꼭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하이스는 말을 흐렸지만 그렇다고 뺀 것은 아니었다. 에바는 즉시 하이스가 좋아하는 댄스 음악을 찾아봤다. 다행히 저작권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아이돌 그룹과 걸 그룹의 노래가 꽤 많았다.
쿵, 쿵, 쿵, 쿵, 쿵!
에바가 댄스음악을 틀어주자 하이스는 익숙한 멜로디에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역시 열정적인 삼바의 나라인 브라질 미녀답게 춤은 격렬하고도 자극적이었다.
대한을 비롯한 시청자들은 그녀의 춤을 보면서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데도 하이스에게 춤에 대한 재능이 없다는 것이 좀 안타까웠다.
짝짝짝짝!
댄스 음악이 끝나자 대한은 힘차게 물개박수를 쳤다.
그녀는 손으로 자신의 가슴을 누르면서 크게 심호흡을 했다.
물론 그 덕분에 수컷들은 눈에 불을 켜고 자세를 앞으로 당겨야 했다.
“하이스! 정말 멋진 춤이었어요.”
“정말요?”
“그럼요. 여기 채팅 창을 보세요. 다들 박수 이모티콘을 올리고 있잖아요.”
하이스는 대한의 옆으로 다가오더니 그의 얼굴에 자신의 얼굴을 붙였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이 좀 발끈하긴 했지만 그녀가 눈치를 채는 일은 없었다.
워낙 시청자가 많아서 이제는 채팅 창이 그냥 줄줄 흘러내렸다.
누구도 그런 상태에서 채팅 창을 일일이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론 에바의 도움을 받은 대한 만큼은 예외였다.
대한은 자연스럽게 하이스의 허리를 잡고 정자를 나섰다.
동혁이 카메라를 서서히 돌리며 그들의 모습을 잡았다.
두 사람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정원을 거닐었다.
채팅 창은 정원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다들 감탄사를 난발했다.
[꽃이예뻐: 참 아름답다.]
[나도하고싶어요: 무슨 영화 스튜디오 같다.]
[주머니가득: 도대체 저기 어디야? 가보고 싶다.]
[변덕쟁이: 하이스 집 아닐까?]
[쿠키매니아: 설마!]
[아기고양이다섯: 지금까지 본 정원 중 최고다.]
대한은 에바를 통해 시청자의 반응을 살피며 정원 투어를 했다. 그렇다고 굳이 이곳이 하이스의 집이라는 것을 말하진 않았다. 그러다 미로 같은 정원에 도착했다.
“나 ‘잡아봐라’ 해볼까요?”
“그게 뭐예요?”
대한은 자신의 손가락에 입술을 댄 후 그녀의 입술을 살짝 눌렀다. 그리고는 짓궂은 표정을 하며 소리쳤다.
“나 잡아봐라!”
“아!”
하이스는 그제야 대한의 말이 이해가 갔다. 그녀는 얼굴을 붉히면서도 절대 싫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채팅 창에서는 부럽다고 난리가 나는가 하면 질투에 눈이 멀어 욕을 하는 시청자도 있었다.
대한은 그녀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러자 하이스가 맹렬한 속도로 달려들었다.
그녀는 원피스를 입었지만 하이힐을 신지는 않았다. 대신 구두처럼 보이는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빠르다.’
대한은 하이스가 달려오는 속도를 보더니 재빨리 원을 그리며 달려갔다.
그녀는 그를 잡으려고 열심히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