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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재능(Feat. 대한 TV)-78화 (77/331)

78화 <하이스>

대한은 뭔가 강한 확신이 왔다. 하이스 올리베이라가 뉴욕 패션쇼에 간다면 뭔가 반드시 좋은 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말이다. 그만큼 그녀의 하드웨어는 탁월했다.

“계속 여기서 개인 방송을 하실 작정이세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공개된 장소에서 방송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우리 집에 오셔서 개인 방송을 하세요. 어머니가 가꿔놓은 정원이라면 아마 시청자들도 많이 좋아할 거예요.”

대한은 하이스의 말에 혹했다. 사실 개인 방송을 할 장소가 마땅치 않아 고민 중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좋은 제안을 해주자 마음이 동하기 시작했다.

“조동혁 매니저가 한번 가보세요.”

“알겠습니다. 제가 가서 살펴보고 오겠습니다.”

“대한! 고마워요.”

대한의 말에 하이스가 뛸 듯이 좋아했다.

사실 고맙다고 해야 할 사람은 대한이었다.

그는 그녀에게 환하게 미소를 지어주고 몸을 돌렸다. 얼핏 보니 하이스의 경호원들이 주변에 포진되어 있었다. 확실히 하이스의 집이 잘살기는 하는 모양이었다.

하이스는 대한의 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았다. 그녀는 팬심 가득한 표정에 반짝이는 눈으로 대한의 모습을 가득 담고 있었다. 아니, 그의 그림자까지 기억하려고 노력하는 것 같았다.

쿠르바 다 주레마 해변에 일렁이는 파도가 조명을 받아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 * *

부우웅― 끼익!

호텔 앞에 하얀 리무진이 섰다.

리무진에서 거대한 덩치를 가진 운전사가 나오더니 뒷문을 열어줬다. 그 덩치는 삼보(Zambo)라 불리는 흑인과 원주민의 혼혈이었다.

대한과 동혁은 서로 얼굴을 한번 쳐다보더니 리무진에 탔다. 운전사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더니 문을 닫았다. 그리고는 카메라와 조명 등이 담긴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었다.

“사장님, 괜찮겠죠?”

동혁이 불안한 눈빛으로 대한에게 물었다.

“아마 크게 우려할만한 일은 생기지 않을 겁니다.”

대한은 담담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동혁은 어째 쉽게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했다.

그러자 괜히 대한도 점차 불안한 생각이 들었다.

‘에바!’

―네, 마스터.

‘우리 정말 문제없는 거지?’

―전혀 문제없습니다. 하이스 올리베이라가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아 정식으로 마스터를 초대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

에바의 단호한 말에 그는 오히려 안정감을 되찾았다.

‘그건 그렇고. 벌써 이틀째 재능 흡수를 하지 못했어.’

―U-17 국가 대표팀에서는 흡수할 만한 쓸만한 등급의 재능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이대로 있기에는 시간이 아깝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는 거죠.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조만간 좋은 재능을 흡수할 수 있을 겁니다.

‘될 수 있으면 축구 관련 재능이면 좋겠는데.’

―당장 시합을 앞두고 있으니 지금으로선 그게 최선이겠죠.

대한은 에바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그 사이 리무진은 고급 저택이 즐비한 비토리아의 부촌으로 들어갔다.

사방에 CCTV와 전기 철조망이 처져 있고 무장한 경비들이 보초를 섰다.

리무진은 그중에서도 유난히 규모가 큰 대형 저택을 향해 다가갔다.

“이건 다시 봐도 집이 아니라 무슨 성 같네요.”

“확실히 저택이라 할 만 하군요.”

거대한 정문이 성문처럼 양쪽으로 열렸다.

리무진은 멈추지 않고 그대로 안으로 들어갔다.

잔디가 시원하게 깔린 축구장만 한 정원을 지나자 위로 올라가자 언덕 위에 그림같이 아름다운 하얀색 저택이 눈에 보였다.

리무진은 저택의 중앙 현관문 앞에 멈춰 섰다.

운전사가 리무진을 멈추고 밖으로 나왔다.

뒷문을 열자 현관문이 열리며 안에서 하녀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그들은 물라토(mulatto)라 불리는 유럽인과 흑인 사이의 혼혈들이었다.

대한과 동혁이 밖으로 나오자 하녀들이 두 줄로 서서 살짝 고개를 숙였다.

그는 그 모습에 기묘한 감정이 생겼다. 세상에 아직도 이런 권위적이고 신분 차별적인 모습을 볼 수 있다니, 한편으론 신기하기도 했다.

운전사가 트렁크를 열자 동혁이 뒤로 가서 캐리어를 들려고 했다. 하지만 동혁의 시도는 하녀들의 완강한 저항에 실패하고 말았다.

동혁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위로 살짝 들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안에서 낯익은 얼굴이 등장했다. 하이스 올리베이라였다.

그녀는 잘생긴 중년의 남성과 팔짱을 끼고 같이 걸어왔다.

“대한! 어서 오세요.”

“하이스 올리베이라 양! 반가워요.”

두 사람은 미소를 지으며 서로 반갑게 인사를 했다.

대한의 시선이 중년인에게 향하자 하이스가 자부심 넘치는 얼굴로 그를 소개했다.

“이분은 제 아버지예요.”

“안녕하세요!”

“아빠! 내가 말했던 대한이에요.”

하이스의 말에 중년 사내는 대한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환영합니다. 난 마누엘 올리베이라입니다.”

“이대한입니다.”

두 사람은 환하게 웃으면서 굳게 악수를 했다.

순간 대한의 미간이 살짝 위로 올라갔다.

‘뭐지?’

마누엘 올리베이라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하지만 그가 잡은 손에는 힘이 잔뜩 들어가 있었다. 사내들의 유치한 신경전이긴 했지만, 일단 대한도 수컷인 이상 먼저 걸어온 싸움을 그저 꼬리를 말고 피할 수는 없었다.

대한은 점차 강하게 손에 힘을 주었다. 처음에는 미소를 짓고 있던 마누엘의 표정이 점차 변해갔다.

“한국에서 왔다고 들었습니다.”

“네, 대한민국에서 왔습니다. 하이스 올리베이라 양을 보고 짐작은 했습니다만 굉장한 미남이십니다.”

“하하하! 과찬이십니다. 오히려 대한이 더 잘생기셨습니다.”

두 사람은 서로 손을 잡고 얘기를 나눴다.

동혁은 전혀 몰랐다. 하지만 하이스는 즉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눈치챘다.

뭔가 많이 비슷한 상황이 데자뷔처럼 떠올랐던 것이다.

“아빠!”

그녀의 톤이 살짝 올라가자 마누엘은 그 핑계로 급히 대한의 손을 놨다. 대한도 굳이 마누엘과 척을 질 생각이 없기에 순순히 손을 놔줬다.

마누엘은 하얗게 변한 자신의 손을 보고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잘못하면 개망신을 당할 뻔했다. 자신의 악력이 절대 약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런데 상대의 힘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강했다. 마냥 비실비실하기만 한 연예인은 아닌 것 같았다.

사실 마누엘은 좀 심통이 났었다. 아시아 어느 모퉁이에 있는 나라에서 온 가수가 감히 자신의 소중한 딸의 마음을 홀라당 가져가 버렸다.

하이스의 강권에 못 이겨 일단 집으로 초대는 했지만 그렇다고 호락호락 딸을 빼앗길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먼저 기를 확 죽이려고 악수로 수작을 부린 것이다. 전형적인 딸바보들이나 하는 생각이었다.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를 저택의 메스티소 집사가 대한을 안내했다.

그는 감사의 인사를 하고 그를 따라갔다.

“이 방을 쓰시면 됩니다.”

“저희는 묵고 가려는 게 아닙니다.”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손을 씻거나 조용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프라이빗이 보장된 공간이 필요할 경우를 생각해서 미리 안내해 드린겁니다.”

“아! 그럴 수도 있겠군요. 고맙습니다.”

대한은 집사의 타당한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사이 하녀들이 캐리어를 가져왔다.

동혁은 둘이 대화하는 것을 쳐다보다가 슬쩍 캐리어를 열어 장비를 꺼냈다.

카메라 3대와 삼각대, 조명, 붐마이크 등, 그가 해야 할 일은 하나둘이 아니었다.

“집사님을 제가 뭐라고 불러야 합니까?”

“그냥 안소니라고 불러주십시오.”

“좋은 이름이네요. 저는 대한, 이쪽은 동혁입니다.”

“동양인의 이름은 참 독특하군요.”

안소니 집사는 여유만만한 표정으로 동혁을 쳐다봤다. 동혁도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반사적으로 한 손을 들고 흔들었다.

“이제 다이닝룸으로 가시지요. 저녁 식사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전에 오늘 저희가 쓸 정원이라는 곳을 가보고 싶습니다.”

“하이스 님이 말씀하신 곳은 다이닝룸에서도 잘 보이는 곳입니다.”

“그럼 손만 씻고 가겠습니다.”

안소니의 말에 대한은 동혁을 불렀다.

그들은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고 안소니를 따라나섰다.

두 사람은 2층에 있는 다이닝룸으로 이동했다.

다이닝룸은 화려한 중세풍으로 중앙에는 거대하고 웅장한 테이블이 놓여있었다.

대한과 동혁이 들어가자 기다리고 있던 하이스와 마누엘이 의자에서 일어났다.

“어서 오세요.”

“정말 멋진 다이닝룸입니다.”

“하하하! 보는 눈이 참 정확하군요.”

마누엘은 겸손이라는 단어 자체를 모르는 사람 같았다. 하지만 당당하고 자신감이 넘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뭔가 성공한 사람은 이런 것이라는 보여주는 전형적인 롤모델이라 할 수 있었다.

안소니의 인도로 두 사람이 자리에 앉자 하이스와 마누엘도 자리에 앉았다.

“하얀 드레스가 참 예쁘군요. 하지만 하이스 올리베이라 양의 눈부신 미모에 좀 가려지는 분위기입니다.”

“어머! 고마워요.”

대한의 말에 하이스는 당장 얼굴이 발갛게 변해 갔다. 그 모습에 마누엘은 살짝 마뜩잖은 표정을 지었다. 이제는 아예 대놓고 경계하는 모습이었다. 그런 미누엘의 표정과는 대조적으로 하이스는 정말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하이스 올리베이라 양이라고 부르지 마시고 그냥 하이스라고 불러주세요.”

“알겠습니다, 하이스!”

하이스는 대한이 자신의 이름을 불러주자 더욱 기뻐했다.

크고 웅장한 테이블 위는 깨끗하게 비어있었다. 그러나 하녀들이 각종 요리가 담긴 커다란 접시를 나르기 시작하자 금세 가득 차버렸다.

“우와! 이걸 어떻게 다 먹죠?”

“많이 드세요.”

대한이 놀라자 마누엘은 살짝 거만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어떻게 보면 참 속을 알기 쉬운 존재였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대한은 큰 목소리로 말하며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포르투갈어를 1도 모르는 동혁은 공기화되어 있다가 눈치껏 슬며시 식사를 시작했다. 누구도 자신을 신경 쓰지 않자 동혁은 오히려 편하게 요리를 먹었다.

“평소에도 이렇게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나요?”

“그렇진 않아요. 다만 해가 떨어지기 전에 어머니의 정원을 보여드리고 싶었을 뿐이에요.”

짝짝!

하이스는 밥을 먹다가 두 손을 위로 들어 손뼉을 두 번 쳤다.

그러자 창가에 쳐져 있던 화려한 커튼들이 일제히 양옆으로 밀려났고, 통짜 유리로 만들어진 거대한 창밖의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우와!”

“와아!”

대한과 동혁은 식사를 하다 말고 즉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 사람은 창가로 다가가 눈을 떼지 못하고 쳐다봤다.

저택의 뒤쪽에 자리한 정원은 한마디로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마치 판타지 소설에 나오는 요정의 나라에라도 온 듯 그곳에는 아름다운 수풀과 연못이 보였다. 연못 안에는 운치 있게 정자가 세워져 있었고 주변으로 기화요초가 가득했다.

왼쪽에는 유럽 영화에서나 봤던 숲의 미로가 있었고 오른쪽에는 커다란 수영장과 관람석 같은 게 세워져 있었다.

“어떠세요?”

“멋져요. 정말 어머니가 신경 많이 쓰신 것 같네요.”

어느새 옆으로 다가와 묻는 하이스의 말에 대한은 솔직한 심정을 얘기했다.

“맞아요. 이걸 다 만드는데 10년의 세월이 걸렸으니 정성이 이만저만 들어간 게 아니죠.”

“대단한 정원이에요.”

자부심이 가득한 하이스는 뭔가 아련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 속에 담겨진 것은 처연함과 그리움이었다. 대한은 감히 더 이상 묻지 못하고 그저 엄지를 높이 치켜들었다.

“개인 방송을 하게 되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이 아름다운 정원을 볼 수 있을 거예요.”

하이스는 그의 말에 환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은 순간 눈앞에서 하얀 꽃이 피어나는 줄 알았다. 모델치고는 얼굴이 너무 예쁜 게 흠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래서야 누가 옷을 보겠는가?

모델만 쳐다보지.

옷을 씹어먹는 모델!

과연 쓰려는 사람이 존재할지 의문이었다.

“엄마도 무척 좋아하셨을 거예요.”

“…….”

대한은 순간 하이스의 어머니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하긴 초대한 손님이 왔는데 안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

그의 눈빛이 부드럽게 하이스의 얼굴을 어루만졌다.

하이스는 따뜻한 대한의 표정에 살짝 가슴이 두근거렸다.

젊은 청춘남녀가 한 뼘도 떨어지지 않는 사이에서 눈이 부딪쳤다. 분위기가 달달한 핑크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러나 여기에 초를 치는 한 인간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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