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화 <등급 워리어>
“그럼 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그래. 이따 환승할 때 보자.”
“네, 감독님.”
대한은 꾸벅 인사를 하고 몸을 돌렸다. 모니카도 그들을 향해 한 손을 흔들었다.
조동혁 매니저가 다가와 그에게 배낭을 내밀었다. 대한은 배낭을 받고 모니카와 함께 비행기를 탔다. 그런데 비즈니스 클래스인 줄 알았더니 퍼스트 클래스였다. 뒤에서 김수정 감독과 코치는 물론 선수들까지 모두 입을 딱 벌렸다.
“모니카! 우리 좌석이 퍼스트 클래스였어요?”
“아까 탑승권 받을 때 같이 있었잖아요.”
솔직히 전혀 몰랐다. 난생처음 타보는 비행기다. 그래서 비행기 탈 때 신발을 벗으라고 해도 아마 그는 믿었을 것이다.
어쨌든 첫 비행기가 퍼스트 클래스라니 기분이 좋았다. 둘은 많은 사람의 부러운 시선을 뒤로하고 제일 먼저 비행기에 탑승했다.
확실히 퍼스트 클래스는 좌석의 크기나 서비스가 이코노믹 클래스와는 차원이 달랐다. 물론 대한은 아직 그 차이를 뼈저리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다만 이코노믹 클래스의 좌석을 힐끗 한번 보고는 참 좁다고만 생각했다. 그렇게 대한의 첫 외국 나들이는 럭셔리하게 시작됐다.
시간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누구에게는 지루한 여행이 누구에게는 너무 빨리 끝났다. 비행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무려 11시간 10분이 걸렸다. 하지만 대한에게는 너무 즐겁고 유쾌한 비행이었다.
모니카는 눈물을 흘리며 그와 헤어지는 것을 아쉬워했다. 대한도 그녀와 헤어지는 게 조금 아쉬웠다. 그는 모니카와 재회를 약속하고 비행기를 갈아탔다.
그때부터 대한의 고생이 시작됐다. 퍼스트 클래스를 타고 올 때 비행기 여행은 마냥 좋은 것이었다. 전담 스튜어디스가 항상 대기 중이었고 필요한 게 있으면 재까닥 가져다줬다.
좌석도 혼자 앉기에는 미안할 정도로 크고 넓었다. 무엇보다도 구역이 나누어져 있고 사람들이 별로 없어서 조용했다.
그런데 환승을 하자마자 지옥이 시작됐다. 로스앤젤레스에서 상파울루까지 가는 직항은 이코노믹 클래스였다. 덩치가 커진 대한에게는 좌석이 더욱 좁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것도 로스앤젤레스에서 상파울루까지 무려 12시간 15분이나 되는 긴 시간이었다.
결국 참다못한 대한은 4시간 만에 에바를 불렀다.
‘에바, 도착할 때까지 나 그냥 푹 재워줘!’
―네, 마스터.
에바는 대한의 요청에 즉각 응답했다.
그는 상파울루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그대로 잠이 들었다. 김수정 감독과 코치 및 선수들은 다들 이런 대한을 너무 부러워했다. 그들도 길고 지루한 비행에 신물이 넘어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고생 끝에 상파울루 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대한을 포함한 국가 대표팀은 입국 심사를 받고 짐을 찾은 다음 출구로 나왔다. 미리 대기하고 있던 현지 여행사 직원이 그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브라질 상파울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환하게 웃으며 인사하는 인상 좋은 여행사 직원! 하지만 김수정 감독과 코치 및 선수들은 그의 말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피곤함에 찌든 일행은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는 전세 버스를 타고 호텔로 향했다.
다행히 호텔은 깔끔하고 좋았다. 서둘러 체크인을 하고 방 배정을 했다. 그러고는 내일 일정을 듣고 각자 자신의 방으로 올라갔다.
그들은 방에 도착한 후 대충 샤워를 하고 침대로 직행했다. 그리곤 이내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비행기에서 8시간 동안 단 한 번도 깨지 않은 채 단잠을 잔 단 한 명만 빼고서 말이다.
우웅!
대한의 뇌리에 익숙한 공명음이 들려왔다. 대한은 침대에 누워 코를 골고 있는 최민석을 한번 쳐다봤다. 피식 웃음을 흘리며 그는 욕실로 들어갔다.
―마스터, 축하합니다. 재능 ‘양발잡이(S)’를 획득하셨습니다.
‘고마워!’
고맙다고 말은 했지만 솔직히 대한은 재능 ‘양발잡이(S)’에 대한 기대가 없었다.
‘축구 기본기(A)’를 획득할 때 이미 양발잡이의 재능을 얻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건 그의 성급한 판단이었다.
양발잡이의 진정한 위력은 대한의 생각과는 조금 차이가 있었다. 아마 차차 경기장에서 확실히 그 진가를 드러나게 될 것이다.
‘에바, 상태 창을 열어줘!’
―네, 마스터.
에바는 대한의 요청에 즉시 상태 창을 열었다.
이름: 이대한
등급: 워리어(B)
칭호: 워크라이(스탯 증폭↑10%), 투지의 신병(재능 부스터↑10%)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S), 폭풍 성장(S)
언어 ▶ 포르투갈어(A), 이탈리아어(S), 영어(S)
축구 ▶ 양발잡이(S), 넓은 시야(S), 축구 지능(S), 축구 재능(S), 프리킥(S), 축구 기본기(A), 드리블(A), 개인기(A), 패스(A), 골 결정력(A), 주력(B), 스프린트(B), 지구력(B), 수비(B)
격투 ▶ 태권도(S), 격술(S)
스탯: 근력 93, 민첩 73, 체력 78, 지력 82, 마력 0
신장 184cm, 몸무게 83kg
제일 먼저 재능을 확인했다. 축구 칸에 ‘양발잡이(S)’가 보였다. 시선을 내려 스탯 칸을 봤다. 근력, 민첩, 체력, 지력이 각각 하나씩 올랐다. 신장도 1cm가 커져서 이제 184cm나 됐다.
대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그러다 등급과 칭호를 보고는 깜짝 놀랐다. 어느새 등급이 ‘솔저(C)’에서 ‘워리어(B)’로 바뀌어 있었다. 칭호도 ‘워크라이’라는 10분간 스탯을 10% 증폭시키는 새로운 칭호를 얻었다,
‘에바, 이게 어떻게 된 거야?’
―스탯이 전부 70을 넘겨서 등급이 자동으로 승급했습니다.
‘그럼 또 신체 강화를 받아야 하는 거야?’
―아닙니다. 이번에는 새로운 재능을 배우셔야 합니다.
‘새로운 재능을 배우다니? 재능을 흡수하는 게 아니고?’
재능을 배운다는 말에 대한이 의문을 표했다. 그러자 에바가 친절하게 설명을 시작했다.
―등급이 ‘워리어’로 올라가면 스파이럴 제국의 나이트들이 익히는 동(同) 계열 최상급 오러·마나 연공법 ‘알파로메오(S급)’를 배울 수 있습니다.
‘알파로메오?’
―네, 매일 아침과 저녁으로 알파로메오를 꾸준히 연마하시면 기초강화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신체 강화와 가공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이거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에서 나오는 내공 수련이나 오러 연공 같은 거야?’
―비슷합니다. 다만 오러와 마나는 동시에 같이 익힐 수 없다는 판타지 소설의 설정과는 전혀 다릅니다.
‘오러와 마나가 있는 것을 보니 판타지 소설 작가들은 전부 외계인이었던 모양이군.’
대한의 말에 에바는 고개를 흔들며 살벌한 말을 했다.
―그건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들의 뇌를 직접 열어서 살펴보지 않고는 말입니다.
‘어쨌든 알파로메오를 연마하면 신체가 강화된다는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정확히는 신체만 단련되는 것이 아니라 전신이 강화되는 것입니다. 또한, 필요할 때 마력을 이용해 본신이 가지고 있는 능력의 몇 배의 힘을 끌어낼 수도 있습니다.
대한은 알파로메오를 연공하면 내공이나 오러 비슷한 것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물론 더 자세한 것은 익혀보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다.
‘알파로메오는 언제 배우지?’
―지금 즉시 업로드 하겠습니다. 욕실 바닥에 편하게 누우십시오.
‘여긴 차갑잖아. 욕조에다 뜨거운 물 받아놓고 누우면 안 될까?’
―됩니다. 전혀 문제없습니다.
알파로메오는 무협지나 판타지 소설처럼 꼭 가부좌를 틀어야 배울 수 있는 게 아니었다. 그저 편안한 자세로 움직이지만 않으면 연공 할 수 있었다.
대한은 욕조에 뜨거운 물을 받아 가득 채웠다. 그리고는 안으로 들어가 편하게 몸을 뉘었다.
―눈을 감고 심신을 편하게 하십시오.
‘알았어.’
대한이 대답하자 에바는 즉시 알파로메오의 연공법을 업로드했다.
그의 머릿속에 생소한 문자와 지식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알파로메오를 익히는데 필요한 경험이나 주의사항, 심지어는 깨달음까지 전부 전송됐다.
‘알파로메오는 정말 대단한 연공법이로구나.’
그제야 대한은 알파로메오에 대한 자신의 인식을 대폭 수정했다.
이건 그냥 단순한 연공법이 아니었다.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궁극적으로 초인에 이르게 해주는 비법이었다.
대한은 천천히 심호흡했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알파로메오를 연성하기 시작했다.
지식과 경험 및 깨달음까지 같이 업로드되자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이었다.
다들 호텔에서 깊이 잠이 든 사이, 대한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경이로운 신세계로 한발을 내디뎠다.
* * *
다음날 새벽.
U-17 축구 대표팀은 호텔에서 체크아웃했다.
모두 짐을 싸서 전세 버스를 타고 비행장으로 향했다.
그들은 비행기를 타고 상파울루를 떠나 다시 직선 거리로 750km나 떨어진 ‘이스피리투산투’주(州)의 ‘비토리아(Vitória)’로 이동했다.
브라질은 정말 더럽게 큰 나라였다. 도시와 도시를 이동하는 데 비행기를 이용하지 않으면 갈 수가 없었다.
그들은 ‘에우리코 지 아기아 살리스’ 공항에 도착했다. 이후 전세버스를 타고 ‘비토리아’ 시(市)로 들어갔다.
비토리아는 브라질 동남부 이스피리투산투주의 주도이다. 인구는 약 31만 명이고 대서양에 속해 있는 섬인 항구 도시이며 브라질 본토와는 여러 개의 아름다운 다리로 연결되어 있었다.
2주 뒤, 아이티 U-17 대표팀과 첫 경기를 벌이는 장소인 ‘카리아시카’의 ‘이스타지우 클레베르 안드라지 경기장’과도 직선으로 13km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았다.
버스는 대서양이 보이는 바닷가 근처에 있는 코스타 빅토리아 호텔에 멈춰 섰다.
특급 호텔까지는 아니었지만 1박에 4만 원 정도 하는, 그럭저럭 쓸만한 호텔이었다.
U-17 축구 대표팀은 먼저 호텔에 체크인했다. 이후 짐을 풀고 샤워를 한 후 호텔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잠시 쉬었다가 유니폼으로 갈아입은 그들은 쿠르바 다 주레마(Curva da Jurema) 해변을 거닐었다.
대서양이 보이는 그림같이 아름다운 해변이었다.
손바닥만 한 비키니를 입은 헐벗은 이국의 미녀들이 육감적인 몸을 흔들며 지나가자 다들 눈이 휘둥그레졌다.
입가에 침이 고일 무렵 그들은 해변에 있는 축구장에 도착했다.
바다를 보면서 축구를 하는 낭만이 그려져서일까, 모두의 입가에 기분 좋은 미소가 지어졌다.
아직 선수들은 피곤함이 완전히 가시지 않은 상태다. 그래서 김수정 감독은 가볍게 몸만 풀고 끝냈다.
운동을 마치자 모두 호텔로 돌아와 몸을 씻었다. 그런 후 식당에 모여서 함께 저녁을 먹었다. 저녁을 먹는 내내 다들 해변에서 본 글래머 미녀들에 대해 떠들어댔다.
식사가 끝나자 그들은 모두 콘퍼런스장으로 이동했다. 김수정 감독과 코치들은 일정에 관해 자세히 설명했다. 또한, 호텔 밖으로 나갈 때는 반드시 코치와 동행하라고 주의도 줬다.
미팅을 마친 그들은 내일을 위해 일찍 들어가 쉬라며 선수들을 방으로 올려보냈다.
대한은 눈치를 보다가 슬며시 로비로 나갔다.
“사장님!”
“조 매니저님!”
조동혁이 대한을 보자 반갑게 인사를 했다. 그는 브라질 현지인처럼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있었다.
“신수가 훤하십니다.”
“하하! 전부 사장님 덕분이지요.”
“호텔은 잡았어요?”
“네, 바로 옆에 있는 쉐라톤 비토리아 호텔에 방을 잡았습니다.”
“쉐라톤이요?”
유명호텔 체인의 이름을 듣자 대한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가 아는 그 쉐라톤 말입니까?”
“맞습니다. 그런데 1박에 8만5천 원밖에 하지 않습니다.”
조동혁은 대한의 서늘한 눈빛에 서둘러 핑계를 댔다.
하지만 대한의 말에 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제가 묵고 있는 호텔은 1박에 4만 원 하던데요.”
“아, 그, 그게…….”
그는 졸지에 사장보다 좋고 비싼 호텔에 묵는 눈치 없는 직원이 되고 말았다.
“머나먼 브라질까지 오셨으니 호텔이라도 좋은 데서 묵으셔야지요. 그런데 방송 준비는 다 됐습니까?”
“네, 해변 앞 카페에다 준비해 놨습니다.”
“김수정 감독에게 외출 허가는 받으셨죠?”
“예, 받았습니다.”
“그럼 가봅시다.”
대한은 조동혁이 묵는 호텔에 대해 더는 말하지 않았다.
그보다 더 중요한 방송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방송을 하루 쉬면 손해가 막심하다. 물 들어올 때 노를 저으라고 했다. 벌 수 있을 때 열심히 벌어놓는 게 현명한 일일 것이다.
둘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쿠르바 다 주레마’ 해변을 걸었다.
어느새 석양이 하얀 구름을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에바!’
―네, 마스터.
‘조동혁 매니저가 감독에게 외출 허가받은 거 맞아?’
―네, 맞습니다. 원하시면 두 사람의 대화 내용을 들려드리겠습니까?
‘아니야, 됐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