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1화 <파주 NFC>
에바가 MR을 켰다. 잔잔한 멜로디가 울려 퍼지다 채팅 창이 조용해졌다.
♬ 나의 책상 위에 놓인 나무판. 그 위에 뿌려진 모래들. 손가락을 따라 그려지는 내 모습. 아빠 엄마 그리고 잊혀진 누나의 얼굴. ♭
시작은 아주 부드러웠다.
시나브로 점점 노래에 힘이 생기고 비트도 강해졌다.
♩ 희망은 날개가 있대요. 그런데 날 수 없는 건 웬일이죠. 행복을 찾으러 간 그녀. 행복을 누릴 만큼 성숙하지 않았어요. 피에 젖은 두 손 흐르는 검은 눈물. ♪
노래는 점차 대서사시처럼 변해 갔다. 멜로디는 산들바람에서 변해 거친 광풍처럼 솟구쳤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는 점차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아니, 산산이 부숴버렸다.
강한 톤의 고음이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탄탄하게 뚫고 올라갔다. 속이 시원해질 정도의 샤우팅! 그건 듣는 사람의 팔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격렬했다. 그리고 일순 멜로디가 멈추고 노래가 멈추고 음악이 멈췄다.
셋을 세기 전에 다시 미약한 노래가 흘렀다.
♬ 어린 시절에는 보이지 않았던 눈물과 아픔과 슬픔 나를 안아준 그녀는 늘 웃었죠. 그게 피눈물인 줄은 몰랐어요. 깊으나 옅으나 급한 여울이나 당신은 건너갑니다. 손에 든 칼날에 붉은 피가 흘러도 행복을 찾으러 갑니다. 그녀의 이름은 나디아.♪
사람의 애간장을 닳게 하는 처연한 목소리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감성의 바이브레이션! 모든 것을 포기한 듯 담담하게 말하면서도 애타게 붙잡고 있는 감정의 끈!
환상적인 오케스트라가 연주되면서 이 모든 것을 부드럽게 하나로 이어줬다. 호흡으로 만들어진 비브라토가 피치를 떨어뜨리지 않고 음악과 하나가 됐다.
이어 서서히 치솟는 중저음의 목소리는 순간 모든 것은 빨아들이더니 마침내 애절한 절규로 아련하게 끝을 맺어갔다.
[여친찾았다: 아! 내 눈물!]
[미투멘트: 너무 좋다.]
[졸라부부: 지렸다.]
[개좋앙: 개좋다]
[해골단: 이건 마약이다.]
[동해란다: 가슴이 먹먹해진다.]
[터프가이: 왜 이렇게 좋냐!]
[8484보미: 목소리 넘 조아.]
[바운티헌터: 가수보다 낫다.]
[봉천동아재: 뭔 개소리야? 이미 음원 낸 가수다.]
채팅 창은 노래 한 곡에 완전히 감동한 분위기였다. 노래가 끝났지만 여운은 무척 길었다. 그래서 그런지 다들 탈진한 듯 축 처졌다.
대한이 천천히 눈을 떴다. 모니카가 옆에서 다가와 그를 안아줬다. 순간 발끈한 시청자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자신도 모니카처럼 대한을 안아주고 싶어 했다. 노래 하나로 모두가 대동단결하는 분위기였다.
대한은 울먹이는 모니카의 등을 토닥거려줬다. 그러자 그녀는 아예 대놓고 안겨버렸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다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대한과 모니카의 합방은 아롱아롱 추억을 만들어갔다.
* * *
축구 국가 대표 트레이닝 센터.
이곳은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스포츠 시설이다. 대한축구협회에서 축구 국가 대표팀의 각급 대표팀의 훈련을 위해 운영하고 있다. 보통 흔히 ‘파주 NFC’라고 부르기도 한다.
끼익!
파주 NFC 주차장에 미니밴이 섰다. 정차한 미니밴에서 조동혁 매니저가 재빠르게 밖으로 나와 차 문을 열어줬다.
대한은 편한 운동복 차림에 등에 배낭을 메고 내렸다.
“사장님! 파이팅!”
“고맙습니다. 이제 들어가 보세요.”
“네.”
차 안에는 아직도 눈물을 닦으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모니카가 있었다.
대한은 미니밴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그녀는 그의 행동에 뭐가 그리도 서러운지 다시 눈물을 펑펑 쏟아냈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모니카처럼 울지는 않으셨다.
‘에바! 원래 여자는 다 저래?’
―그걸 왜 저한테 물어보시는 건데요?
‘누가 보면 남편이 군대 가는 줄 알겠다.’
―그럼 모니카가 마스터를 기다리는 아내란 말이에요?
‘그냥 말이 그렇다는 거지.’
웃자고 하는 얘기에 에바는 죽자고 달려들었다. 대한은 에바와 쓸데없는 얘기를 나누며 미니밴에서 멀어졌다.
이제는 뒤를 돌아보지 않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그의 마음을 눈치챘는지 조동혁도 미니밴을 몰고 쌩하니 가버렸다.
그제야 대한의 마음도 좀 편해졌다. 그녀를 달래는 게 어째 축구 경기를 한번 뛴 것보다 더 힘들었다.
대한은 커다란 4층짜리 본관 건물을 향해 걸어갔다. 그 건물에는 ‘축구 국가 대표 트레이닝 센터’라고 큼지막하게 적혀있었다. 그걸 보자 대한은 괜히 가슴이 다 뭉클해졌다.
잠시 멍하니 서 있는데 누군가가 그를 불렀다.
“어이! 거기!”
“네?”
대한이 고개를 돌리고 쳐다보자 삼십 대 중반의 사내가 손을 까딱거렸다.
“이리 와봐!”
누군지 몰라서 일단 그에게 다가갔다.
“혹시 이름이 이대한이냐?”
“네, 그런데요.”
“숭신고의 그 이대한 맞지? 프리킥 잘 찬다는.”
“예, 맞습니다.”
“오느라 수고했다. 난 17세 이하 축구 대표팀 김을남 코치다. 다들 기다리고 있으니 청룡구장으로 가봐라!”
“네, 코치님.”
대한은 힘차게 대답을 했다.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가자 잘 정돈된 축구장이 보였다.
그는 커다란 천막이 쳐있는 곳을 향해 다가갔다.
거기에는 김수정 감독과 코치 둘, 최종 소집된 26명의 어린 축구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앉아 있었다.
“여어! 이대한! 어서 와라!”
“안녕하세요.”
“그래, 잘 왔다.”
김수정 감독은 대한을 보자 크게 반가워했다.
그는 검은 뿔테 안경을 추켜올리며 연신 대한의 얼굴과 몸을 쳐다봤다.
“너 많이 변했다.”
“다이어트에 성공해서 그렇습니다.”
“혹시 그동안 키가 더 큰 거냐?”
“네, 그렇습니다.”
대한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 김수정은 대한을 보며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대충 봐도 180cm는 넘겠는데.”
“마지막에 쟀을 때가 181cm였습니다.”
“음, 그동안 훈련도 아주 열심히 한 모양이다?”
“예, 열심히 했습니다.”
대한은 자신 있게 대답했다.
김수정은 크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소개는 나중에 하고 일단 저기 가서 프리킥 좀 보여줘!”
“예!”
그는 씩씩하게 대답을 하면서 천막 안을 쳐다봤다. 경쟁자를 경계하는 26쌍의 눈빛들이 대한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다.
“승운아! 네가 골대로 가서 막아라!”
“네, 감독님.”
김수정 감독은 금호고의 신승운 골키퍼를 골대에 세웠다.
“김대양 코치! 대한의 프리킥 솜씨 좀 보게, 가서 공 좀 놔줘요. 블록도 세워주세요.”
“네, 감독님.”
체격이 단단한 김대양 코치가 김수정의 말에 재까닥 일어났다.
그는 축구장으로 달려가 축구공을 여기저기에 세워놓았다. 그런 후 앞쪽으로 사람의 모형을 한 블록을 세워놓았다. 시합에서 상대편 선수들이 쌓는 인간 탑 대신이었다.
‘이거 오자마자 프리킥을 차네.’
―몸도 안 풀렸을 텐데 괜찮으시겠어요?
‘다른 것은 몰라도 프리킥은 상관없어.’
―기왕 이렇게 된 것 칭호를 쓰세요.
‘아! 그게 있었군.’
대한은 에바의 조언에 칭호 ‘투지의 신병’을 발동했다. 그가 선택한 재능은 당연히 ‘프리킥(S)’이었다. 이제 앞으로 10분 동안 프리킥(S) 재능이 10% 증폭된다.
“대한아! 편하게 차봐라!”
“네.”
김수정 감독이 제대로 판을 깔아줬다.
최종 훈련에 참여할 26명에 포함되지 않은 유일한 선수인 대한이다. 아이들은 그런 대한을 절대 인정하려 들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게끔 만들어야 했다. 그 시작은 당연히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프리킥이었다.
솔직히 김수정 감독도 어지간하면 대한을 뽑지 않으려 했다. 몸도 뚱뚱하고 어딜 봐도 축구 선수의 기본이 전혀 되어있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가공할 프리킥 실력을 확인하자 U-17 월드컵 우승을 원하는 이상 대한을 부르지 않을 수 없었다.
게다가 김수정 감독은 지금 대한의 변해버린 모습을 보자 가슴이 떨려왔다. 몸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았을 때도 프리킥이 엄청났다. 그런데 이제는 누가 봐도 단단한 몸을 가지고 있었다.
아니, 다른 선수들과 비교해 봐도 월등한 체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과연 대한이 어떤 프리킥을 보여줄지 정말 기대가 되었다.
대한은 배낭에서 축구화를 꺼내 신었다. 그리고는 천천히 일어나 축구장 안으로 들어갔다.
골대에는 신승운 골키퍼가 열심히 몸을 풀고 있었다. 대한은 잠시 그를 쳐다보다 첫 번째 볼을 향해 걸어갔다.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 우측 모서리였다. 뒤로 몇 발짝 움직이자 신승운이 자세를 잡았다.
대한이 고개를 돌려 김수정 감독을 바라봤다. 그러자 김수정 감독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은 시선을 돌려 골대를 슬쩍 한번 쳐다봤다. 그리곤 빠르게 달려가 왼발로 공을 감아 찼다. 정면을 막아선 블록들은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도도도도도! 뻥!
축구공은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그러다가 기가 막힌 곡선을 그리며 골대의 좌측 상단으로 빨려 들어갔다.
“골!”
김대양 코치가 크게 소리쳤다.
신승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분명히 골대를 벗어날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골대 안에는 축구공 하나가 들어가 있었다. 그는 서 있는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못하고 한 골을 먹었다.
신승운은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포지션도 아니고 골키퍼다. 볼을 차는 것을 보면 당연히 상대의 실력이 느껴진다. 그리고 절대 대한의 프리킥은 평범하지 않았다. 그래도 신승운은 포기하지 않고 다음번에는 반드시 막아보리라 의지를 세웠다.
―마스터! 나이스 슛입니다.
‘뭐 이 정도는 보통이지.’
대한은 볼이 들어간 게 당연하다는 목소리였다.
그는 두 번째 볼을 향해 걸어갔다. 이번에는 페널티 에어리어 바깥 중앙이었다. 이번에는 굳이 감독을 쳐다보지 않았다. 곧바로 볼을 향해 달려가 오른발로 아래쪽을 강하게 찼다.
다다다다다! 뻥!
볼은 빨랫줄처럼 날아와 우측 상단에 팍 꽂혔다.
신승운은 이번에도 움직이지 못했다.
“무회전 슛이다.”
그는 작게 독백했다.
누구나 무회전 슛을 찰 수 있다. 하지만 개나 소나 다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더군다나 무회전 프리킥으로 골을 넣은 것은 절대 쉽지 않다.
신승운은 허공에서 볼이 마구 흔들리는 것을 보다가 또다시 한 골을 먹었다. 그제야 대한의 프리킥 실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세 번째 볼은 바나나 프리킥, 네 번째 볼은 UFO 프리킥을 찼다.
신승운 골키퍼는 날아오는 공을 막기 위해 몸을 날려도 보았지만 도저히 막을 수 없었다.
대한이 다섯 번째 프리킥을 차려고 할 때, 김수정 감독이 그를 불렀다.
“대한아! 수고했다. 인제 그만하고 이리 와라!”
“네.”
대한은 얌전히 감독의 말에 따랐다. 김수정 감독은 대한을 불러 옆에 세우더니 그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다들 봤지? 우리의 비밀 병기다. 프리킥 기회가 오면 과감하게 기용할 거야. 그러니까 너희에게 남은 자리는 이제 20개다. 모두 열심히 하도록 해라!”
“네, 감독님.”
누구도 반론의 여지가 없었다. 실력으로 찍어 누르는데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100발 100중의 프리킥 마법사인 대한이 특이한 변종일 뿐이었다.
‘카아! 김수정 감독이 저렇게 사이다를 쏘시네!’
―축하합니다. 마스터!
‘고마워! 에바!’
김수정 감독은 상당히 기분이 좋아졌다. 자신의 생각한 비장의 무기가 더욱 예리해져서 왔다. 오랜 축구의 역사에도 이처럼 확실한 골 득점원은 없었다.
숭신고 최정규 감독은 대한은 경기가 끝나기 직전에만 사용했다. 하지만 김수정은 전반전이고 후반전이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감히 써먹을 생각이었다.
어쨌든 오자마자 모두의 눈에 큼직한 도장을 쾅 찍었다. 당연히 대한은 싱글벙글했다.
몇 놈이 아니꼬운 눈초리로 쳐다봤지만 대한은 깔끔하게 무시해버렸다. 저런 놈들과 신경전을 벌이는 것처럼 비생산적인 일은 없다. 키로 보나 체격으로 보나 얼굴로 보나, 이젠 그 누구에게도 절대 꿀리지 않았다.
“오늘은 가볍게 몸만 풀고 쉬도록 하겠다. 하지만 내일부터는 강훈련이 시작될 것이다. 그러니 잘 먹고 푹 쉬도록 해라!”
“네, 감독님.”
대한은 배낭을 천막 한쪽에 내려놓았다. 그는 김대양 코치를 따라 선수들과 같이 축구장으로 들어갔다.
대한은 감독이 말한 대로 정말 가볍게 몸만 풀었다.
우웅!
그때 머릿속에서 익숙한 공명음이 들렸다.
―마스터! 축하합니다. 재능 포르투갈어(A)를 획득하셨습니다.
‘아싸! 나이스 타이밍!’
대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일주일이란 짧은 시간에 재능 포르투갈어(A)를 획득했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욱 기뻤던 것은 당장 재능을 하나 흡수할 수 있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