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존잘>
어이가 없었다.
‘날 쳐내면 다른 누군가를 올리려는 계획도 있었겠군.’
―그렇습니다.
축협이 개판이라는 소리는 들었다. 하지만 남의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런 식으로 자신에게 피해를 줄지는 정말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대한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잡초 근성이라도 있는지, 밟으니까 오히려 자꾸 기어 올라가고 싶어졌다.
‘17세 이하(U-17) 축구 대표팀의 현재 상황이 어떤지 말해 봐!’
―네, 마스터. 지난 3월 국내에서 소화한 1차 훈련을 시작으로 7월 독일, 9월 영국에서 전지훈련을 통해 조직력을 키우고 다양한 전술들을 가다듬었습니다. 이번 최종 훈련을 통해 마지막으로 선수들의 기량과 몸 상태를 점검하고 최종 명단을 추려낼 생각으로 보입니다.
에바의 깔끔한 설명에 대한은 대번에 상황을 이해했다.
‘26명, 아니 나까지 27명에서 여섯 명을 쳐내고 최종 명단 21명을 선발할 계획이란 말이군.’
―그렇습니다.
‘이거 또 아싸가 돼버렸네. 그동안 자기들끼리 열심히 손발을 맞춰놨으니 내가 파고들 틈이 없겠는데.’
―브라질에 친목 도모를 하러 가는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누가 넣든 골만 잘 넣으면 인정받게 되어있습니다.
‘하긴 결과를 보고도 뭐라고 할 놈은 없겠지.’
대한은 이상하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저 기초 강화를 한번 받았을 뿐인데 온몸에서 흘러넘치는 힘이 그에게 강한 자신감을 부여했다.
―기회는 충분히 있습니다. 2주간 훈련을 하고 연세대와 연습 경기를 치른 후 최종 명단을 확정합니다. 다시 1주 후에 U-17 월드컵이 열리는 브라질로 출국하게 됩니다.
‘그 정도면 내가 축구에 관련된 재능을 최소한 2개는 더 얻을 수 있는 시간이로군.’
―일단 2개를 흡수하고 떠나기 전에 1개를 더 흡수하시면 실전에서 많은 도움이 될 겁니다.
‘좋아. 그럼 이번에 모인 녀석 중에서 쓸만한 재능이 있는지 한번 살펴봐!’
―알겠습니다. 가장 등급이 높은 재능을 얻을 수 있도록 해보겠습니다.
에바의 말을 끝으로 대한은 더는 이번 일에 신경 쓰지 않았다.
일단 파주는 꼭 가고 싶었다.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난다 긴다는 재능충들이 모이는 곳이다. 외국에 나가서 직접 재능충들의 재능을 흡수하려는 생각이 아니라면 당연히 U-17 축구 대표팀이 모이는 파주로 가는 게 좋다.
‘나한테 손해날 일은 아니다.’
아마 나름의 재미도 있을 것이다. 재능도 흡수하고, 국가 대표 트레이닝센터인 파주 NFC도 구경할 수 있다.
김수정 감독이 생각하는 전략 전술이 뭔지도 한번 살펴보고, U-17 축구 대표팀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직접 몸으로 겪는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 자신의 몸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객관적인 자료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대한은 마음을 다잡았다.
그는 매일 독하게 홀로 계획을 소화해 냈다. 낮에는 모니카에게 포르투갈어를 배웠고 오후에는 게임 방송을 했다. 저녁에는 숭신고 축구장으로 가서 축구 기본기와 개인기, 드리블 연습을 했다.
물론 자신의 최고의 무기인 프리킥 연습도 빼놓지 않았다. 밤에는 은평 종합 격투기 체육관에서 격술과 태권도를 훈련했다.
이 모든 것을 에바는 동영상으로 잘 촬영해 놓았다. 나중에 쓸모가 생기면 하나씩 풀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흘이 지나갔다.
* * *
“안녕하세요, 여러분!”
“반가워요.”
대한의 인사에 모니카도 손을 흔들었다.
“그동안 제가 많이 아팠습니다.”
“대한이 아프다고 해서 저도 걱정 많이 했어요.”
“고마워요, 모니카!”
“앞으로는 아프지 말기!”
모니카가 귀엽게 새끼손가락을 내밀었다. 그는 웃으면서 자신의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달달한 두 사람의 모습이 카메라를 통해 생방송으로 퍼져 나갔다. 오늘은 아메리카 TV가 메인, 트워치와 유티비 라이브가 서브로 동시 송출 됐다.
채팅 창은 당장 난리가 났다. 대한과 모니카의 사이가 달달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일주일 만에 마스크를 푼 대한의 얼굴이 정말 몰라보게 달라져 있었기 때문이다.
[만수르SUH: 대한이 존잘!]
[닥공: 성형했냐?]
[우리두리: 성형은 개뿔! 매일 겜방하고 있었구먼.]
[어벤저스: 아픈 게 약이 됐다.]
[톰과제리: 아파서 살 빠진 것 봐!]
[꼬끼오: 미쳤다. 존잘!]
[NO재팬방사능: ㅇㅈ]
[핵인싸: 이게 뭔 일이냐? 대한이 맞아?]
[홍콩여자: 꺅! 대한 졸귀!]
[화가난다: 시바! 이제는 얼굴까지!]
놀란 것은 비단 시청자들만이 아니었다. 옆에 서 있는 모니카도 지금 속으로 엄청나게 놀라고 있었다.
‘분명히 얼마 전까지만 해도 키가 나와 비슷했는데…….’
그녀는 대한의 얼굴 때문에 만나는 것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의 얼굴이 빛이 날 정도로 잘생겨진 것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키가 월등하게 커진 것은 쉽게 이해가 가지 않았다.
대한은 모니카가 자꾸 자신을 묘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속이 뜨끔했다. 이럴 때는 그저 한 가지 방법밖에 없다.
그는 카메라 아래쪽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 깍지를 꼈다. 그러자 모니카의 입가에 대번에 만족한 미소가 그려졌다.
“모니카!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요?”
“전 잘 지냈어요. 방송도 하고 운동도 하고 나름 바쁘게 보냈답니다.”
“그렇군요. 다행이에요.”
“오랜만에 합방했는데 저를 위해 노래 한 곡만 불러주세요.”
“아오!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오시네요.”
“헤헤! 그래도 불러주실 거죠?”
“어떤 노래 듣고 싶어요?”
“당연히 대한이 부른 노래, ‘더 빠르게’죠.”
“알겠어요.”
대한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에바가 MR을 켜자 대한은 마이크를 끌어다 앞에 놓았다. 그리고 천천히 눈을 감고 살짝 미소를 지었다. 그 모습에 여성 시청자들이 깜짝 놀랐다.
[EmmyLove: 악! 심쿵!]
[Jenny1004: 멋지다.]
[Anna따봉: 대한이 존잘!]
[토모다치: 스고이!]
[미호예뻐: 꺅! 멋져!]
[Valerina서: 뭐야? 막 가슴이 떨려!]
[Pink팬더: 잘 생겼다. 대한이가?]
처음부터 대한의 방송을 봤던 사람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중간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의 변화에 감탄했다. 최근에 구독한 이들은 잘생긴 얼굴에 그저 보기만 해도 흐뭇해 했다.
♬ 내가 널 볼 때마다 시선이 날 부르고 있어. 세워둔 계획은 아무 필요가 없어. 심장이 떨리는 건 나만 그런 게 아니야. 누구라도 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어. ♭
대한의 목소리가 마이크를 타고 울려 퍼졌다.
경쾌한 음악과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박자!
대한의 노래는 듣기만 해도 절로 몸이 흔들릴 정도였다. 깊고 진한 저음이 뼈를 때리듯 마음을 흔들었고 묵직한 고음이 부드럽게 널뛰며 펌프질하듯 고막을 쳐댔다.
그의 노래를 듣고 있는 시청자들은 모두 몸을 흔들었고 같이 노래를 따라부르며 같이 발을 굴렀다.
♪난 너를 원해. 난 네게 미쳐. 난 더 빨리 누구보다 더 빠르게 다가가 너에게 키스할 거야. 소리를 지를 거야. 이성이 날아갈 때까지 널 사랑한다고 고백할 거야. 더 빠르게 누구보다 더 빠르게 달려가.♩
대한의 노래는 어느새 한 단계 더 발전해 있었다. 이제는 투박한 면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듣기가 너무 좋았고 가사도 귀에 팍팍 꽂혔다.
모니카는 자신의 몸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음악에 맞춰 박자에 따라 노래를 부르며 몸을 흔들었다. 두 팔이 위로 들리고 엉덩이가 들썩거렸다. 리듬을 타고 목이 흔들리고 허리가 돌아가고 발이 저절로 스탭을 밟았다.
그녀는 어느새 대한의 노래에 맞춰 춤을 추고 있었다. 프로처럼 잘 추는 것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의 눈이 즐거울 만큼은 됐다.
짝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모니카는 힘차게 물개 박수를 쳤다. 채팅 창에서도 일순 박수 이모티콘으로 도배됐다.
정말 순식간에 한 곡이 끝나버렸다. 그만큼 ‘더 빠르게’라는 대한의 노래는 즐겁고 흥겨운 노래였다.
노래가 끝나자 모니카는 아쉬움을 느꼈다. 이심전심인지 채팅 창에서도 한 곡 더 불러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하지만 대한은 적당히 밀당을 할 줄 아는 남자였다.
“달풍선 감사합니다. 비트와 후원도 고맙습니다. 여러분께 한 가지 전해드려야 할 소식이 있습니다.”
“그게 뭔데요?”
모니카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방송이라서 모른 척했다. 대한은 그녀를 슬쩍 한번 쳐다보고는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제가 17세 이하 축구 대표팀에 차출됐습니다. 아직 최종 명단 21명에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만, 내일 오후에 경기도 파주 NFC로 들어갑니다. 앞으로 2주 동안 훈련을 받고 연세대와 연습 경기를 하고 나서 최종 명단이 발표될 겁니다.”
“어머! 그럼 그동안 우리는 대한을 못 만나는 건가요?”
모니카가 눈물을 글썽이며 쳐다봤다.
다들 그녀가 연기한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모니카는 지금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건 아닙니다. 훈련이 끝나거나 휴식 시간에 방송을 켤 테니 그때 만나 뵐 수 있을 거예요.”
“참 다행이네요.”
“하지만 지금처럼 편하게 방송하지는 못할 겁니다. 틈틈이 방송할 테니까 여러분도 많은 양해 부탁드립니다.”
시청자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그래도 국가 대표팀 훈련에 참여하는 것이다. 대견하다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요즘 뒤늦게 키가 자라고 살이 빠져서 전신이 욱신거립니다.”
“혹시 그게 성장통이라는 건가요?”
“하하하! 그런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점점 정상인이 되어가고 있으니 저는 만족합니다.”
“정상인이요? 이렇게 잘생겼는데요?”
모니카는 대한의 얼굴을 손으로 만지며 개구쟁이 같은 표정을 지었다.
채팅 창이 순간 뜨겁게 달아올랐다. 이제는 달달하다는 말보다 어딜 만지냐는 말이 더 많았다.
대한의 얼굴이 잘생겨지고 멋짐이 폭발하자 이제는 아이돌 대하듯 하는 사람도 생겼다.
그녀는 적당히 대한의 얼굴을 만지다가 슬쩍 손을 뗐다.
“여기서 이벤트 걸겠습니다. 제가 17세 이하 축구 대표팀 최종 명단 21명에 든다 안 든다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나중에 결과를 확인하고 추첨해서 소정의 상품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상품이 뭐예요?”
“아직 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여러분이 좋아할 만한 상품을 준비하겠습니다.”
“난 무조건 든다는 것에 한 표 걸겠습니다.”
모니카가 한 손을 높이 쳐들고 외치자 채팅 창에서 큰손들이 요동을 쳤다.
“어! 이거 뭐죠? 달풍선 1만 개 미션이 나왔네요.”
“이번에는 2만 개 미션이에요. 헉 3만 개짜리도 떴어요.”
“비트 미션도 생겼어요. 아오! 후원금 미션까지…….”
대한과 모니카는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일단 가장 많은 미션은 열심히 훈련을 받아서 17세 이하 축구 대표팀 최종 명단에 드는 것이다. 그것만 10만 개의 달풍선 미션이 걸렸다. 트워치의 비트 미션과 유티비 라이브의 후원 미션도 비슷한 숫자가 떴다.
셋을 합치니 거의 2,400만 원짜리 대형 미션이 되어버렸다.
‘이야! 이거 이러면 절대 떨어질 수 없겠는데…….’
―무조건 붙어서 돈 버셔야겠습니다.
이어서 U-17 월드컵 우승, 득점왕, MVP 등 각종 미션이 걸리기 시작했다. 에바는 재빨리 화면 한쪽에 노트를 띄우고 모든 미션을 정리해 올렸다. 일단 이렇게 박제를 해버리면 나중에 절대 딴소리를 못 하게 될 것이다.
“모니카는 무슨 미션 없어요?”
“저도 최종 명단에 들면 선물을 드릴게요.”
“선물이요?”
“네.”
“어떤 선물이요?”
대한은 궁금해서 죽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모니카는 아무런 말 없이 그저 몸을 배배 꼬며 얼굴을 붉혔다. 그러자 그는 알겠다는 듯 주먹을 불끈 쥐었다.
“모니카가 주는 선물은 무조건 받겠습니다. 여러분도 저를 응원해 주세요!”
대한의 말에 채팅 창에 온갖 뇌피셜이 뜨기 시작했다.
[제니치킨: 꺅! 설마 그거야!]
[코코밤바: 뭐? 뭔데? 뭐냐고?]
[미테랑: 키스네.]
[대폭주: 키스다.]
[만두좋아: 키스가 확실합니다.]
[자주국방: 키스를 지키자.]
[카리스마: 개부럽.]
[낼름: 대한 낼름하려는 모니카의 음모다!]
[말벌봉준: 둘은 절대 사귀지 않는다.]
[다섯공무원: 분위기 봐라! 이미 했다.]
[손톱이빨개: 뭘 주겠다는 거야? 설마 몸!]
시간이 지나자 점점 뇌피셜은 온갖 음모설로 불거졌다. 대한은 적당히 화제를 돌릴 겸 노래를 한 곡 부르기로 했다.
“나디아 랩소디!”
“네?”
“좋아하시는 분 손!”
대한의 말에 채팅 창에 일제히 손 이모티콘이 떠올랐다.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원하시면 그거 불러드릴게요.”
“야호!”
옆에서 모니카가 두 손을 번쩍 들면서 방방 떴다. 류연 만큼은 아니지만, 시청자들의 눈 운동을 위아래로 확실히 시켜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