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9화 <소집>
대한은 아버지 이태산에게 전화를 했다. 아버지는 대한이 17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에 뽑혔다고 하자 크게 기뻐하셨다. 당연히 여권발급동의서 및 인감증명서를 준비해 주셨다. 그사이 대한은 사진관에 가서 여권 사진을 찍은 뒤 사진을 8장이나 받아왔다.
몸이 변하고 얼굴이 변하니 사진발도 잘 받았다. 그는 자신의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며 격세지감을 느껴야 했다.
“존잘!”
아버지가 준비해 주신 서류를 가지고 그는 택시를 탔다. 목적지는 여권 발급의 성지 서대문구청이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옷을 좀 두툼하게 입고 마스크도 썼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아무도 그를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아예 신경조차 쓰지 않았다.
거리가 멀지 않아 목적지에 10분 만에 도착했다. 빠르고 친절하기로 소문난 서대문구청 민원여권과로 들어갔다.
여권발급신청서를 쓰고 일반, 여권 면수 48, 여권 기간 10년에 표시했다.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긴급 연락처, 영문명을 쓰고 서명했다.
접수를 마치고 기다리려 하는데 대기 인수가 1명이었다. 과연 초고속 여권 발급의 성지다웠다.
여권 접수를 하면서 바로 지문 입력을 하고 패드에 서명했다. 발급수수료를 결제하니 모든 절차가 끝나버렸다. 여권 수령은 당연히 본인 수령으로 해놓고 나왔다.
민원여권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시간이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다시 택시를 잡아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 모니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다행히 모든 일이 잘 풀렸다고 말했다. 그녀는 대한의 말에 크게 기뻐했다. 슬쩍 보고 싶다고 말하자 모니카는 당장이라도 달려올 기세였다.
대한은 자신의 목적을 위해 그녀를 이용하는 게 살짝 양심에 찔렸다. 하지만 신체 접촉을 하지 않으면 재능을 흡수할 수가 없었다.
그는 모니카에게 잠시 집에 와달라고 부탁했다. 모니카는 대한이 아프다는 말에 정말 쌩하고 날아왔다.
“대한!”
“모니카!”
두 사람은 서로를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렇다고 감기와 몸살이 걸렸다는 핑계를 대서 오래 안고 있을 수는 없었다.
당연히 스킨십도 할 수 없었다. 대한은 일부러 몸을 좀 구부정하게 만들고 잔기침을 해댔다. 연기력이 늘었는지 모니카는 깜빡 넘어가고 말았다.
‘에바! 포르투갈어 흡수해!’
―네, 마스터! 모니카의 재능 ‘포르투갈어(S)’를 흡수하겠습니다.
‘오! S등급! 역시 모니카네.’
과연 모니카였다.
포르투갈어 S등급이면 독보적인 언어 능력이다. 대한과 모니카의 싱크로율이 좋은 편이니 A등급까지는 무난하게 획득하지 않을까 기대가 됐다.
포르투갈어 A등급이면 아주 뛰어난 언어 능력이다. 대한이 브라질에서 살 거라면 모를까, 17세 이하 월드컵에 참가하는 정도면 사실 의사소통만 가능해도 충분했다.
“밥은 먹었어요?”
“아니요, 아직 안 먹었어요.”
“그럼 같이 먹어요.”
“입맛이 없어서 그냥 한숨 자고 나중에 먹을게요. 미안해요!”
“얼굴이 왜 이렇게 야위었어요? 어제와는 아주 딴판이네요.”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그런데도 그녀의 눈에는 대한의 볼이 홀쭉해진 게 다 보이는 모양이었다.
“난 괜찮아요. 그냥 며칠 동안 집에서 푹 쉬면 나을 거예요.”
“그래요. 그동안 너무 방송과 축구를 열심히 했어요. 이젠 좀 쉬어도 될 것 같아요.”
모니카는 그를 위로하며 손을 꼭 잡아줬다.
대한은 순간 그녀를 확 덮쳐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은 좀 위험했다. 며칠 아팠다고 하면 모를까, 단 하루 만에 이렇게 키가 크고 얼굴 살이 빠졌다고 하면 누구든 이상하게 생각할 것이다.
잠시 소파에 앉아 둘은 도란도란 얘기를 나눴다.
우웅!
시간이 지나자 뇌리에 기다리던 공명음이 울렸다.
―모니카의 재능 ‘포르투갈어(S)’를 흡수했습니다.
‘이제 모니카에게 포르투갈어를 배우면 되겠군.’
대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곧바로 브라질 얘기를 꺼냈다.
“나 사실은 17세 이하 축구 대표팀에 차출됐어요.”
“브라질에서 한다는 U-17 월드컵 때문인가요?”
“네, 맞아요.”
모니카는 그의 말에 진심으로 기뻐했다.
“대한이 U-17 축구 대표팀에 들어가다니, 정말 대단해요.”
“고마워요. 그런데 혹시 모니카 포르투갈어 할 줄 알아요?”
“물론이죠. 난 언어에 천재거든요. 호호호!”
그녀는 이제 겸손한 척도 하지 않았다. 그냥 마구 자신감을 남발했다. 놀라운 것은 그녀가 하는 말이 전부 사실이라는 점이다.
“그런 나 포르투갈어 가르쳐주면 안 돼요?”
“안 될 리가 있나요! 당연히 가르쳐줘야지요.”
“그럼 우리 매일 페이스톡해요. 영상 통화도 괜찮고요.”
“페이스톡이 좋겠네요.”
얼마나 오랫동안 대화를 할 생각인지 모니카는 바로 페이스톡으로 결정했다.
“얼굴 봤으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요. 감기 옮아요.”
“히잉, 더 있고 싶은데.”
“그러다 모니카까지 아프면 어쩌려고 그래요. 나 몸 나을 때까지만 봐줘요.”
“알겠어요. 그럼 오늘은 이만 가볼게요. 대신 자고 일어나서 밥 먹고 약 꼭 챙겨 먹어요.”
“오케이.”
모니카는 그냥 가기 섭섭했는지 대한을 품에 꼭 안았다. 그러다가 한참 만에 아쉬운 얼굴을 하고 일어났다.
모니카는 섭섭함을 떡고물처럼 잔뜩 남기고 대한의 오피스텔을 떠났다.
“잘 가요!”
“푹 자요.”
그녀는 아쉬움에 겨우 발걸음을 뗐다.
대한은 모니카가 돌아가자 즉시 작전을 변경했다.
‘에바, 공지 폭파해!’
―네, 마스터.
‘오늘부터 일주일 동안은 게임 방송만 한다.’
대한은 그렇게 결정을 내리고 부엌으로 갔다. 점심도 먹지 않았기에 무척 배가 고팠다.
그는 냉장고에서 먹다 남은 김치찌개를 꺼냈다. 안에다 돼지고기를 숭숭 썰어 넣고 참치 통조림을 따서 살코기를 투하했다. 그런 다음 물을 조금 넣고 팔팔 끓였다. 그사이 어머니가 채워주신 온갖 반찬을 꺼내고 밥을 펐다.
대한은 김치찌개를 가져다 밥에 비비고 국물까지 싹 말아먹었다. 맛있게 먹기는 했는데 뭔가 살짝 2%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기회가 되면 요리 재능도 배워야겠다.’
배가 차자 슬슬 졸음이 왔다. 하지만 억지로 참고 인터넷에서 포르투갈어를 검색했다. 생각보다 포르투갈어 무료 강좌가 많았다.
잠깐 살펴봤지만, 모니카를 통해 재능 ‘포르투갈어(S)’를 흡수해서 그런지 전혀 어렵지 않았다. 영어와 이탈리아어가 S등급이라서 시너지 효과도 조금 있는 것 같았다.
대한은 잠시 쉬었다가 트워치에서 게임 방송을 했다. 당연히 아메리카 TV와 유티비 라이브에도 동시 송출을 했다.
아프다는 핑계로 마스크를 하고 딱 2시간만 게임을 하고 방종을 했다. 그런데도 달풍선과 비트 그리고 후원이 팡팡 터져주었다. 최근 급상승하는 자신의 인기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었다.
대한은 스튜디오를 나와 부엌으로 갔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 마시고 소파로 가서 앉았다. 자리에 앉아서는 스마트폰으로 모니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녀는 반가운 목소리로 그를 반겼다. 그러다가 얼굴이 보고 싶다며 페이스톡으로 바꿨다.
―대한! 확실히 얼굴에 살이 많이 빠졌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잘생겨졌어요.
“카메라 보정 때문에 그런가? 내가 봐도 좀 잘생겨 보이네요.”
―풋! 그게 뭐예요?
“모니카는 내가 못생겼다고 생각하는군요.”
―네에? 아니에요. 대한은 미남이에요. 살이 빠지니까 본래의 멋짐이 폭발하는 거 같아요.
모니카는 대한이 조금만 실망한 표정을 지어도 깜짝깜짝 놀랐다. 반응도 톡톡 튀어서 놀려먹는 맛이 있었다.
―참! 포르투갈어 배운다면서요.
“네.”
―그럼 슬슬 시작해 볼까요?
“네, 선생님.”
안 그래도 포르투갈어를 배우려고 했는데 이렇게 먼저 얘기해 줘서 고마웠다.
―에이, 선생님은 좀 너무 했다.
“그럼 뭐라고 불러요? Darling?”
―히익! 손발이 조금 오그라드네요.
“Honey?”
―아잉! 그건 나쁘지 않아요.
“Sweetheart?”
―후후! 그건 좀 느끼해요.
시작은 가볍게 농담으로 했다. 모니카는 분위기에 맞춰서 간단한 회화 위주의 포르투갈어를 가르쳐줬다.
―Bom dia. Como estas?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세요?)
“Bom dia Vou bem, obrigado. (안녕하세요. 잘 지내고 있어요.)”
―Tu falas portugues? (포르투갈어를 할 줄 아세요?)
“So um pouco. (아주 조금만요.)”
―Vens de que pais? (어느 나라에서 오셨어요.)
“En sou coreano. (저는 한국 사람입니다.)”
모니카는 대한이 쉽게 포르투갈어를 따라오자 속으로 감탄했다. 하지만 이미 이탈리아어를 가르쳐본 경험이 있어서 놀라지는 않았다. 대신 좀 더 진도를 빠르게 하고 진지하게 포르투갈어를 가르쳐줬다.
이렇게 대한은 매일 모니카와 페이스톡을 했다. 두 사람의 언어는 사흘이 지나지 않아 포르투갈어로 바뀌었다.
모니카는 그 사실에 매우 놀랐다. 하지만 한편으론 그와 매일 이렇게 얼굴을 보며 대화를 나눌 수 있어서 좋았다.
그녀는 매일 보라 방송을 했다. 이제는 남캠과 합방을 하지 않았다. 남녀를 막론하고 합방 제의는 줄기차게 들어왔지만, 모니카는 모두 정중히 거절했다.
대한이 뭐라고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렇지만 모니카는 본능적으로 그가 남캠과의 합방을 싫어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녀도 굳이 다른 사람과 합방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혼자 해도 충분히 먹고 살 만큼 달풍선과 비트, 후원이 쏟아졌다. 모니카는 괜히 대한의 비위를 건드려 화를 자초하려고 하지 않았다.
대한도 모니카처럼 매일 방송을 했다. 다만 장르가 게임 방송이라는 게 달랐을 뿐이었다. 모니카를 비롯한 여캠들과의 합방, 다이어트와 운동, 축구와 노래 등 다른 장르를 기대했던 시청자들은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반대로 트워치를 비롯한 게임 방송 플랫폼들은 대한의 겜방에 환호했다. 매일 매출이 급속도로 증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한은 중간에 서대문구청 민원여권과에 가서 여권을 챙겨왔다. 여권을 받아들고 나서 최정규 감독에게 제일 먼저 여권이 나왔다고 전화를 했다.
최정규는 여권을 당장 학교로 가져오라고 했다. 하지만 그는 아직 학교에 갈 수 없었다. 지금은 급속히 키가 크고 살이 빠지는 상태였다. 더 이상의 급격한 변화는 될 수 있으면 자제하는 게 좋았다. 그래서 그는 조동혁 매니저를 시켜 여권을 배달했다.
잠시 후, 여권을 받았는지 최정규 감독에게 바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대한아! 최정규 감독이다.
“네, 안녕하세요.”
―보내준 여권은 잘 받았다.
“네.”
―김수정 감독이 경기도 파주NFC(국가대표 트레이닝센터)로 17세 이하 축구 대표팀 26명을 소집했다.
“브라질로 바로 가는 게 아니었나요?”
―브라질로 출국하는 것은 3주 뒤라는구나.
“알겠습니다. 그럼 나흘 뒤에 파주NFC로 갈게요.”
대한의 말에 최정규 감독이 잠깐 뜸을 들였다.
―혹시 너 소집 명단 확인했냐?
“아니요.”
―소집 명단에는 네 이름이 빠져있다.
“네에?”
최정규의 말에 그는 뒤통수를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이번 소집의 목적은 2019 국제축구연맹(FIFA) 브라질 U-17 월드컵 대비 국내 최종 훈련에 참여할 26명을 불러 최종명단 21명을 확정 지으려는 거야.
“그럼 전 뭡니까?”
―넌 그냥 플러스 하나다.
“플러스 하나라뇨?”
대한은 속으로 ‘이게 뭔 개소리야!’라고 소리쳤다.
―26+1이라고. 공식적이 아니라 비공식적으로 널 따로 부른 거란 말이야.
“그럼 아직 제가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말이네요.”
―맞아. 처음과 얘기가 좀 달라졌어. 하지만 네가 이번 소집을 통해 프리킥 실력을 보여주면 아마 사정이 달라질 거야.
“무슨 말인지 잘 알았습니다. 일단 나흘 뒤에 파주로 가겠습니다.”
―미안하다. 일이 이렇게 돼서.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하겠습니다.”
대한은 오히려 최정규 감독을 위로했다.
처음부터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너무 쉽게 가는 것도 기분이 좀 찜찜했었다. 오히려 이렇게 되자 대한은 앓던 이가 빠진 것처럼 시원했다.
전화를 끊고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했다. 2019 FIFA U-17 월드컵 대비 최종 소집 명단. 그곳에 이름을 올린 26명이 공식 발표되어 있었다.
그러나 역시 최정규 감독의 말처럼 그 어디에도 대한의 이름은 보이지 않았다.
‘하아! 이 새끼들 봐라! 아주 완벽히 나를 엿을 먹이네.’
―마스터! 열 내지 마십시오.
‘에바! 어떻게 된 일이야?’
―김수정 감독은 확실하게 마스터를 선택했습니다. 다만 축협에서 압력이 들어왔습니다. 제대로 검증이 되지 않은 선수를 선발할 수 없다는 이유입니다.
‘대통령배 전국 고등학교 축구 대회에서 15골을 넣고 득점상을 탔는데도 다른 검증이 필요하다는 거야?’
―아무래도 마스터의 뚱뚱한 몸 상태를 이유로 쳐내려는 계략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