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등급 솔저>
그는 먼저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서 집에 오지 말라고 했다.
모니카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모니카는 대한에게서 언제 연락이 오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나 보다. 대한은 해야 할 일이 있다며 그녀를 잘 달랬다.
유아영 대리와 조동혁 매니저에게도 전화를 걸었다. 그들에게는 오늘 하루 집에서 쉬겠다고 얘기했다. 덕분에 예상치도 못한 휴가를 얻은 두 사람은 아주 좋아했다.
대한은 스마트폰을 껐다. 아무도 열고 들어올 수 없도록 현관문의 비밀번호도 바꿨다.
그런 후, 두꺼운 비닐을 꺼내 화장실 바닥에 잘 깔았다. 마지막으로 화장실 문을 닫고 화장실 창문을 활짝 열었다.
시원한 바람이 들어오자 그는 옷을 전부 벗고 비닐 위에 누웠다. 바닥의 찬 기운이 몸에 올라오자 절로 닭살이 일어났다.
―마스터! 준비되셨습니까?
‘응, 준비됐어.’
―그럼 시작합니다.
‘오케이!’
―10부터 초읽기를 시작하세요.
‘알았어. 10, 9, 8…….’
대한은 초읽기를 시작하자마자 금세 의식을 잃었다. 에바가 깊은 잠에 빠뜨려버린 것이다.
쿠울! 쿠울!
가는 코 고는 소리가 화장실에 울려 퍼졌다.
―마스터! 편히 주무십시오. 스파이럴 제국 나이트 아카데미 프로그램의 기초 강화를 실행합니다.
에바는 즉시 기초 강화를 시작했다.
서서히 대한의 몸에서 변화가 시작됐다. 온몸이 펄펄 끓듯 열이 나고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피부는 스팀에 찐 랍스터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이내 몸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는 걸쭉한 진액이 흘러나왔다. 이 과정은 약 한 시간에 걸쳐서 이뤄졌다.
―스파이럴 제국 나이트 아카데미 프로그램의 기초 강화를 종료합니다.
시간이 지나자 에바는 칼같이 기초 강화를 끝냈다.
―마스터! 일어나세요.
에바가 대한을 깨웠다. 대한은 잠에 취해 쉽게 일어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서서히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다.
―마스터! 이제 일어나세요.
‘으음, 에바! 다 끝난 거야?’
―네, 기초 강화는 성공적으로 이뤄졌어요.
에바의 말에 그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지만 뭔가 미묘하게 중심이 어긋나 쓰러질 뻔했다. 물론 비닐 위에 깔린 고약한 냄새의 진액 때문이기도 했다.
“아오! 냄새!”
언제 맡아도 이 냄새는 적응이 되지 않았다.
그는 즉시 샤워를 시작했다.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콸콸 쏟아졌다. 샴푸로 머리를 감고 린스를 했고 바디워시로 거품을 내어 온몸을 골고루 닦아냈다. 그렇지만 아무리 씻고 또 씻어도 쉽게 냄새가 가시지 않았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결국, 이 과정을 다섯 번이나 반복한 후에야 간신히 냄새를 지울 수 있었다.
“정말 이것도 큰일이다.”
대한은 투덜거리면서 몸에 물기를 닦아냈다. 화장실 바닥에 깔아둔 비닐도 차곡차곡 갰다. 진액이 옆으로 새지 않도록 조심하며 최대한 부피를 줄였다. 그리곤 커다란 지퍼백에 비닐을 잘 담았다. 지퍼를 닫자 냄새가 한결 가시는 기분이었다.
대한은 화장실 입구에 서서 탈취제 한 통을 다 뿌려버렸다. 화장실 창문을 활짝 열어 놓았으니 아마 곧 냄새가 가실 것이다.
―마스터, 수고하셨습니다.
‘에고, 내 몸에서 나온 거니 당연히 내가 치워야지.’
―상태 창을 보시고 변화를 확인하세요.
‘알았어. 그렇게 할게.’
에바는 허공에 상태 창을 띄워줬다. 상태 창을 연 게 벌써 오늘만 세 번째였다.
이름: 이대한
등급: 솔저
칭호: 투지의 신병(재능 부스터↑10%)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S), 폭풍 성장(S)
언어 ▶ 이탈리아어(S), 영어(S)
축구 ▶ 축구 재능(S), 프리킥(S), 축구 기본기(A), 드리블(A), 개인기(A), 패스(A), 골 결정력(A), 주력(B), 스프린트(B), 지구력(B), 수비(B)
격투 ▶ 태권도(S), 격술(S)
스탯: 근력 86, 민첩 66, 체력 71, 지력 74, 마력 0
신장 181cm, 몸무게 83kg
대한은 상태 창을 보자마자 경악했다. 이건 한마디로 미쳤다고밖에는 표현할 수가 없었다.
“대박!”
먼저 등급이 ‘루키’에서 ‘솔저’로 바뀌었다. ‘투지의 신병’이라는 칭호도 생겼다. 칭호의 효과는 놀랍게도 보유한 재능을 10분간 10% 증폭할 수 있었다. 앞으로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좋을지 아직은 감이 잘 오지 않았다.
에바가 미리 말해준 대로, 스탯도 대폭 증가했다. 근력, 민첩, 체력, 지력이 모두 5개씩 늘어났다. 이미 민첩을 제외하면 육체 등급이 B등급에 들어섰다. 평균 스탯이 71에서 80 사이는 특수 부대원이나 프로 선수들의 스탯이었다.
거기에다 신장이 크게 자라 176cm였던 키가 180cm를 넘어 무려 181cm가 되어 있었다. 어쩐지 아까부터 시야가 좀 높아진 기분이 들었다.
놀라운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등급이 변하고, 칭호가 생기고, 스탯이 오르고, 키가 자라자 보유한 재능의 등급까지 변해 버렸다.
미모(A), 이탈리아어(A), 영어(A), 축구 재능(A), 프리킥(A), 태권도(A), 격술(S)이 전부 S등급으로 올라갔다.
축구 기본기(B), 드리블(B), 개인기(B), 패스(B), 골 결정력(B)이 A등급으로 진일보했고 주력(C), 스프린트(C), 지구력(C), 수비(C)가 B등급으로 등급이 한 단계 올랐다. 신체가 변하자 당연히 능력이 올라가 재능의 등급도 오른 것이다.
대한은 한동안 상태 창의 변화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러다 문뜩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나신이었다. 그런데 온몸이 크고 작은 근육으로 불끈거리고 있었다. 얼굴은 살이 빠져서 이제 계란형의 미남자가 되어 있었다.
뭉실했던 코도 좀 오뚝해진 것 같고, 턱선은 베일 것처럼 날렵해졌다. 가슴에는 대흉근이 불룩했고, 복부에는 선명한 왕(王) 자가 새겨져 있었다. 튼실한 허벅지에 사이에는 탈아시아급 주니어가 흔들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환골탈태라도 한 기분이었다. 아니, 실제로 에바가 기초 강화를 통해 그의 몸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에바!’
―네, 마스터.
‘나 이제 후반전 40분 정도는 뛸 수 있겠지?’
―그럼요. 전후반 80분 동안 풀타임으로 뛸 수 있습니다. 민첩만 보강하시면 스탯은 이미 프로 선수 같은 능력을 갖추고 계십니다.
‘고맙다.’
―천만에요. 마스터께서 그동안 열심히 그리고 잘 따라와 줬기 때문에 얻은 성과입니다.
에바의 말에 대한은 절로 가슴이 뿌듯해졌다. 이제 어디 가서 못생겼다거나 뚱뚱하다고 놀림당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니, 이 정도면 미남 소리를 듣는 게 당연했다.
‘이거 당분간 방송은 못 하겠는데.’
―하긴 얼굴과 몸이 너무 많이 변해버렸습니다.
‘일주일 동안 아프다고 휴방해야겠다. 학교도 쉬어야겠어.’
―네, 알겠습니다. 그렇게 조치하겠습니다.
에바는 대한의 말대로 일단 각 플랫폼에 오늘 하루 휴방 공지를 올렸다. 학교에도 전화해 아파서 내일 등교하기 힘들 거라고 전했다.
‘모니카가 찾아오면 어떡하지?’
―전화해서 집에 문제가 좀 생겼다고 말해 두세요.
‘그게 좋겠군.’
대한은 즉시 에바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빌렸다. 전화를 받는 모니카의 목소리에 걱정이 가득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었지만 그래도 냉정함을 잃지 않았다.
‘아무리 몸이 변해도 재능을 흡수하는 건 한시도 늦출 수 없어.’
―맞습니다.
에바는 대한의 말에 감동했다. 이제야 마스터가 제대로 각성한 것 같았다. 정말 기특하고 대견했다.
지이이잉!
그때,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누군가 보니 최정규 감독이었다. 대한은 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결국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대한아! 나 최정규 감독이다.
“네, 알고 있어요. 무슨 일이시죠?”
―아까 소리쳐서 미안했다. 내 딴에는 널 위한다고 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네 의사를 존중해 주지 못했어.
최정규 감독의 말에 대한은 속을 피식 웃음을 지었다. 그래도 이렇게 사과를 해오니 기분이 많이 풀렸다.
“전 괜찮습니다.”
―아프다고 하던데 얼마나 아프길래 학교를 못 오는 거니?
“그동안 무리한 게 이번에 한꺼번에 다 터지나 봅니다.”
―아직도 17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에 들어갈 생각이 없는 거니?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만… 제가 가서 뭘 할 게 있을까 싶습니다.”
사실 속으로는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다시 마음을 바꿔서 브라질에 가겠다고 말하기가 참 부끄러웠다. 그런데 이렇게 먼저 전화를 걸어서 사과도 하고 물어주니 감사할 뿐이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여전히 갈등하는 뉘앙스를 풍겼다.
―조금 전에 17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의 김수정 감독한테 연락이 왔다. 이번에 널 꼭 좀 참가시켜달라고 신신당부를 하더구나.
“아시다시피 제가 개인 방송을 해서 돈을 벌잖아요.”
―그렇지.
“브라질에 가서도 개인 방송을 할 수 있을까요? 이걸 허락해 주시지 않으면 좀 곤란할 것 같아요. 집안 사정도 좀 있고요.”
대한은 개인 방송을 핑계로 브라질에 가겠다는 의사를 간접적으로 표현했다.
―으음, 그건 나도 뭐라고 확실히 말할 수가 없구나. 내가 김수정 감독한테 전화해서 한번 물어볼게.
“네, 꼭 좀 부탁드립니다. 제 채널명이 ‘대한 TV’라는 거 아시죠?”
―응, 나도 듣긴 들었다. 일단 전화해서 물어보고 다시 전화해 줄게.
“네, 감독님.”
최정규 감독은 아까보다 많이 차분해졌다. 그는 어떻게 하든 대한을 브라질로 보내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았다.
뒤에서 그들 사이에 무슨 거래가 오가는지는 모르지만 일단 17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에서 자신이 필요하다고 하니 기분이 뿌듯해졌다.
잠시 소파에 앉아 멍하니 창문 밖을 바라봤다.
지이이잉!
최정규 감독에게 금세 다시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대한아! 나다.
“네 감독님!”
―설마 훈련도 빠지고 방송 찍으러 돌아다니는 것은 아니겠지?
“에이, 그건 절대 아니죠. 휴식 시간이나 개인 시간에 찍을 겁니다.”
―김수정 감독이 훈련과 경기에 지장을 주지 않고, 밖으로 돌아다니면서 찍는 게 아니라면 개인 방송 하는 거 괜찮다고 하셨다.
“그거 잘됐군요.”
대한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럼 이제 브라질 가는 거니?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여권 준비해 놓을게요.”
―늦어도 일주일 안에는 모든 준비를 끝내야 한다. 몸이 아프다고 했으니 몸조리 잘하고.
“알겠습니다, 감독님.”
―푹 쉬어라. 내가 김수정 감독님께 연락해서 네 말은 전해 줄게.
“예, 감사합니다.”
대한은 고맙다고 정중히 인사를 했다. 최정규도 대한이 마음을 돌려서 그런지 기분 좋게 전화를 끊었다.
―마스터, 브라질에 가기로 하신 겁니까?
‘응, 공짜로 보내준다니 한번 가보려고.’
―그럼 포르투갈어를 배워야겠군요.
‘포르투갈어?’
―네, 브라질에서는 포르투갈어를 사용하니 그걸 배워야 합니다.
‘흠, 어떻게 하지?’
대한은 고민이 됐다. 될 수 있으면 밖으로 나가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포르투갈어를 배우려면 역시 어학원을 가야 한다.
―왜 고민을 하시는지 이유를 모르겠군요.
‘뭐 좋은 생각이라도 있어?’
―어학원에 연락해서 포르투갈어 선생을 보내 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집으로 보내 달라고 하면 보내줄까?’
―집에서 개인 강습으로 배우겠다고 돈 더 준다고 하면 안 올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 나라도 가겠다.’
대한은 줏대 없이 금세 자기 생각을 바꿨다. 순간 그의 머릿속에 한 생각이 팍 하며 스치고 지나갔다.
‘에바! 지금 우리 너무 쓸데없이 조심하는 거 아니야?’
―무슨 말씀이세요?
‘그렇잖아. 그냥 감기 걸렸다고 하고 좀 두꺼운 옷 입고 마스크 쓰면 되잖아!’
―아! 그렇게 위장해도 되겠네요.
생각해 보니 너무 오버하고 있었다. 몸은 옷으로 가리고 얼굴은 마스크를 쓰면 그만이다. 카메라 각도만 조절해도 굳이 뭘 숨기려고 애를 쓸 필요도 없었다.
‘몸이 안 좋아서 당분간 게임 방송만 한다고 하면 될 거야. 모니카는 포르투갈어도 할 줄 아니까 굳이 모르는 사람 부를 필요도 없어. 아니면 그냥 집에 잠깐 들러 달라고 하고 포르투갈어 재능만 흡수한 뒤 보내면 돼. 포르투갈어를 연습하는 것은 페이스톡이나 영상 통화를 통해서 배워도 될 거야.’
―마스터! 정말 놀랍습니다. 이렇게 빠르게 진일보하시다니 말입니다.
에바는 잔뜩 흥분한 목소리로 대한을 띄워줬다. 확실히 전보다 사고력과 판단력이 올라가 있었다.
그는 에바의 칭찬에 대수롭지 않은 척했다. 하지만 입꼬리가 올라가는 것까진 막지 못했다.
‘크흠, 어쨌든 당장 나가서 여권부터 만들어야겠어.’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여권 직접 신청할 때 법정대리인의 여권발급동의서 및 인감증명서(본인서명사실확인서)가 필요합니다.
‘그럼 아버지한테 먼저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