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7화 <기초 강화>
대한의 말은 학원 축구의 현실을 전혀 모르는 말이었다. 그는 최정규의 반응에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렇게 뜸 들이지 마시고 여권을 만들라는 이유가 뭔지 정확히 말씀해 주세요.”
대한이 딱 부러지게 말을 하자 최정규는 즉시 웃음을 거뒀다.
“너 17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에 차출됐다.”
“네에?”
대한은 최정규 감독의 말에 매우 놀랐다. 그는 단 한 번도 축구 국가 대표팀 선수가 될 거라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주제 파악을 잘하고 있었다는 말도 됐다.
“10월 26일에서 11월 17일까지, 브라질에서 개최되는 피파 U-17 월드컵에 참가하려면 당장 여권을 만들고 U-17 대표팀에 합류해야 해.”
최정규의 말에 그는 바로 대답을 하지 않았다. 대신 궁금한 점부터 물어봤다.
“U-17 월드컵이 왜 이렇게 늦게 열리는 거죠?”
대회가 열리는 시기가 겨울을 바라보는 10월 말이다.
보통 이렇게 늦게 열리는 국제 축구 대회는 거의 없다.
“원래는 페루가 개최국으로 확정됐는데 인프라 문제 등을 이유로 피파에서 직권으로 페루의 개최국 자격을 박탈했어.”
“그래서 브라질에서 대신 열리는 거군요.”
“맞아. 그런데 브라질에서 ‘코파 아메리카’가 개최되어 원래보다 1개월 연기된 거야.”
“하긴 브라질은 따뜻한 나라니 이렇게 늦게 대회가 열려도 추울 일은 없겠네요.”
대한은 그제야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야, 이대한! 너 대표팀에 차출된 게 기쁘지 않냐?”
최정규는 그의 반응이 무척 이상하게 느껴졌다.
“좋긴 한데, 굳이 거기에 제가 가야 할 이유가 있나요? 상금이 있는 것도 아니고 치안도 불안하고.”
“너 혹시 돈 때문에 그래? 네 돈 들어갈 일 전혀 없어. 아무리 17세 이하라고 해도 이건 엄연히 월드컵이야. 전부 무료라고.”
대한의 형편이 어려울 거라고 생각한 최정규는 모든 게 공짜라고 강조했다.
“그건 잘 알고 있어요. 국가를 대표하는 축구팀이니 당연히 나라에서 경비를 대주겠죠. 제 말은 상금이 전혀 없다는 말이에요.”
“확실히 U-17 월드컵은 성적에 따른 상금이 없지. 팀에 출전료라도 주는지 모르겠군. 어쨌든 그건 네가 걱정할 필요가 없어. 대한축구협회(KFA)에서 성적에 따라 포상금을 지급할 거야.”
“그게 얼마나 되는데요?”
대한에겐 참가보다 포상금의 액수가 더 중요했다.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한 대표팀 선수 중 A급 활약을 펼친 14명에 각각 1,000만 원, B등급 선수에게는 각각 600만 원씩 포상했어. 그리고 8강에 오른 남자 U-17, U-20 선수들에게는 각각 500만 원씩 지급했어.”
“아아! 네.”
대한의 얼굴은 당장 구겨졌다. U-17 여자 월드컵에서 우승한 선수에게 준 포상금이 겨우 1,000만 원이란다.
그는 전혀 달가워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최정규 감독은 이런 대한의 모습을 보자 괜히 애가 닳았다.
“너 축구 선수가 되려면 이런 좋은 기회를 절대 놓쳐선 안 돼! 네가 이번에 월드컵 나가서 좋은 활약을 펼치면 아마 몸값이 천정부지로 뛰어오를 거야.”
“알았어요. 생각 좀 해볼게요.”
“뭐? 생각 좀 해본다고. 당장 대표팀에 합류하는 게 아니고?”
“네, 저도 제 앞길을 고민하고 결정할 권리가 있잖아요.”
대한의 말에 최정규 감독은 그만 열폭해 버리고 말았다.
“야! 너 미쳤냐? 이런 기회가 흔한 줄 알아? 당장 여권 만들어서 대표팀 합류해! 서로 발맞춰보려면 지금도 시간이 결코 많은 게 아니라고.”
대한은 최정규가 거품을 물면서 소리를 치자 짜증이 확 일어났다.
최근에 축구가 참 재미있어졌다. 연습하는 게 힘이 들긴 해도 실력이 느는 게 눈에 보이니 신이 났다. 골을 넣는 것도 즐겁고 짜릿한 경험이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세상에 재능이 넘치는 천재 유망주들이 얼마나 많은가! K리그에서 뛰는 게 목표라면 모를까, 명문 구단의 유소년팀에 가면 훨훨 날아다니는 재능충들이 쌓이다 못해 흘러넘친다. 그들에 비하면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당장 그가 경기에 나간다고 해도 풀타임을 뛰는 것은 고사하고 후반전 40분조차 제대로 소화할 수 없었다. 결국, 경기 끝나기 20분 전쯤에 나가서 프리킥이나 노려야 한다.
“저 17세 이하 월드컵 대표팀에 가지 않겠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대한은 꾸벅 인사를 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야! 이대한!”
최정규가 화가 나서 다시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그는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대한은 잽싸게 축구부를 나와 교문을 향해 달려갔다. 나머지 수업을 과감히 째 버리려는 것이다.
에바가 슬며시 대한에게 말을 걸었다.
―마스터, 앞으로 축구 안 하실 거예요?
‘글쎄, 나도 잘 모르겠어. 하지만 한 가지는 확실히 알 것 같아. 세상에는 재능충들이 넘쳐난다는 거야.’
―마스터의 재능도 절대 그들에 못지않습니다.
‘에바의 능력이라면 아마 그들의 재능에 근접할 수도 있겠지. 그렇지만 재능을 카피하는 것만으로는 최고가 될 수 없어.’
에바는 대한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재능을 흡수해서 비슷해질 수는 있지만, 결코 뛰어넘을 수는 없다. 그렇기에 축구로 최고가 되지 못한다면 굳이 인생을 걸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러나 대한은 아직 자신이 얼마나 엄청난 가능성을 가졌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에바는 굳이 당장 그걸 말해 주려고 하지 않았다. 때가 되면 저절로 알 수 있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마스터, 오늘도 모니카를 만나실 겁니까?
‘아니. 그냥 집에 가서 쉬고 싶어.’
그날 이후, 모니카는 아주 적극적으로 변했다. 대한과 그녀는 하루가 멀다고 만났다. 덕분에 둘 사이는 꿀이 뚝뚝 떨어졌다.
아니, 꿀이 넘쳐 흐를 정도로 가까워졌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꿀꿀한 기분으로 그녀의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았다.
―잘 생각하셨습니다. 안 그래도 오늘은 집에 계시라고 말씀드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방송도 자제하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 오늘이야?’
―네, 곧 획득할 수 있을 겁니다.
에바의 말에 대한은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서둘렀다. 대한은 오피스텔에 도착하자 가방을 휙 던져놓고 화장실로 가서 손을 씻었다.
우웅!
그때 대한의 기분을 고조시키는 공명음이 뇌리를 울렸다.
―마스터! 재능 흡수 대상자 조광조의 재능 ‘격술(SS)’을 흡수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재능 ‘격술(A)’을 획득하셨습니다. 축하합니다.
그는 수건으로 손의 물기를 닦으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에바! 수고했어. 상태 창을 띄워줘!’
―네, 마스터.
거실의 소파에 편안히 앉아 그는 에바가 띄워준 상태 창을 쳐다봤다.
이름: 이대한
등급: 루키
칭호: 없음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A), 폭풍 성장(S)
언어 ▶ 이탈리아어(A), 영어(A)
축구 ▶ 축구 재능(A), 프리킥(A), 축구 기본기(B), 드리블(B), 개인기(B), 패스(B), 골 결정력(B), 주력(C), 스프린트(C), 지구력(C), 수비(C)
격투 ▶ 격술(A)
스탯: 근력 79, 민첩 59, 체력 64, 지력 67, 마력 0
신장 175cm, 몸무게 83kg
격투 칸이 새로 생기고 재능 ‘격술(A)’이 들어찼다. 대한은 주먹을 꼭 쥐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오광래! 이 새끼 두고 보자.’
그동안 격술을 가르친다는 핑계로 오광래 사범에게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격술은 살기가 아주 짙은 무술이다. 그래서 스치기만 해도 뼈가 부러질 듯 아팠다. 만약 에바가 적절히 상처를 치료해 주지 않았다면, 아마 이미 골병이 들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대한과 오광래 사범은 지독히도 싱크로율이 낮았다. 그렇게 노력을 했건만, ‘격술(SS)’을 흡수하고도 ‘격술(A)’밖에는 획득하지 못했다. 그래도 스탯을 보자 기분이 좀 좋아졌다.
근력, 민첩, 체력, 지력이 모두 2개씩 올라갔다. 신장은 1cm가 더 커서 175cm가 됐다. 이제 그의 키는 결코 모니카보다 작지 않다. 당장은 그 사실이 무엇보다도 기뻤다.
‘몸무게는 83kg 그대로네.’
―계속 키가 크고 있어서 현재의 체중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민첩 스탯이 59다. 이제 하나만 더 오르면 전부 60 이상이 되겠어.’
―그러게 말입니다.
에바는 활짝 웃는 얼굴로 그를 쳐다봤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이 참 묘했다. 뭔가 재미있는 일이라도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다.
대한이 슬며시 의심의 싹을 틔우려고 할 때…….
우웅!
뇌리에서 익숙한 공명음이 다시 느껴졌다. 순간 대한은 온몸에 전류가 흐르는 것 같은 짜릿한 기분을 맛볼 수 있었다.
‘에바, 뭐야 이거? 나 감전된 거야?’
―축하합니다. 재능 ‘태권도(A)’가 자연 발아했습니다.
‘뭐라고? 나한테 태권도 재능이 생겼어?’
―그렇습니다. 격술 자체가 태권에 기초를 두고 있으니 자연스럽게 태권도가 재능으로 발아한 것입니다.
‘나 이것 참!’
대한의 입에서 참을 수 없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으하하! 오광래 사범님, 아까 새끼라고 해서 미안합니다.”
그는 즉시 고개를 숙이며 있지도 않은 오광래를 향해 사과했다. 진짜 만나서는 절대 사과할 생각이 없다는 반증이기도 했다.
‘이거 오광래 사범에게 밥이라도 사줘야겠다.’
―확실히 오광래가 독하게 가르치긴 했습니다. 겨우 2주 만에 태권도를 재능으로 발아시키다니 말입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전혀 정이 안가. 그동안 체육관 바닥을 박박 구른 것을 생각하면 아주 이가 갈린다.’
―덕분에 스탯도 오르고 키도 좀 크지 않았습니까?
‘스탯이 오르고 키가 커졌다고?’
―네, 재능 태권도(A)가 자연 발아하면서 스탯과 키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상태 창을 다시 한번 확인해 보십시오.
에바가 허공에 다시 상태 창을 띄워줬다. 확실히 아까와는 다른 스탯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름: 이대한
등급: 루키
칭호: 없음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A), 폭풍 성장(S)
언어 ▶ 이탈리아어(A), 영어(A)
축구 ▶ 축구 재능(A), 프리킥(A), 축구 기본기(B), 드리블(B), 개인기(B), 패스(B), 골 결정력(B), 주력(C), 스프린트(C), 지구력(C), 수비(C)
격투 ▶ 태권도(A), 격술(A)
스탯: 근력 81, 민첩 61, 체력 66, 지력 69, 마력 0
신장 176cm, 몸무게 83kg
격투 칸에 태권도와 격술이 보였다. 둘 다 A 등급이었다.
스탯도 근력, 민첩, 체력, 지력이 다시 2개씩 올라있었다. 덕분에 이제 육체 등급이 건강한 ‘성인(C)’이 되었다. 기본 스탯 평균이 61부터 70까지는 건강한 성인, 아마추어 선수에 해당한다.
신장도 그새 1cm가 더 커져서 176cm가 됐다. 이건 언제 봐도 기분 좋은 일이다. 하지만 대한의 행운은 이게 전부가 아니었다.
―마스터, 드디어 등급을 올릴 시간이 됐습니다.
‘등급이라면 ‘루키’를 말하는 거지?’
―네, 스탯 평균 60을 넘겨야지만 스파이럴 제국 나이트 아카데미 프로그램의 기초 강화를 실행할 수 있습니다.
에바의 말에 대한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내 몸을 강화할 수 있다는 거야?’
―물론입니다. 앞으로 일정 수치의 스탯을 넘을 때마다 등급을 올리고 강화를 받게 될 겁니다.
‘우와! 대박!’
그는 너무나 기뻐서 자신도 모르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마스터! 기초 강화는 불량, 오류, 기형, 질병 DNA를 찾아 삭제 및 개조하고 병균과 독 등 유해 물질에 대한 면역력을 높이며 신체 밸런스를 잡아주어 육체의 근본 능력을 강화하는 작업입니다.
‘오오!’
―기초 강화가 끝나면 스탯과 칭호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스탯 증가에다 칭호까지…….’
에바의 연타에 대한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재능 흡수 시간도 대폭 줄어듭니다. 최소 2주에서 최대 4주였던 것이 기초 강화를 끝내고 등급이 올라가면 최소 1주에서 최대 2주가 될 것입니다.
‘그럼 재능을 흡수하는 시간이 반으로 줄어든다는 얘기잖아?’
―그렇습니다. 그러니 절대 쉽게 포기하지 마세요. 마스터의 재능은 얼마든지 기존의 재능을 뛰어넘을 수 있습니다.
‘아!’
대한은 에바의 말에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뿌리 깊게 박혀있는 패배의식과 낮은 자존감! 언제나 이것이 결정적인 순간에 그의 발목을 잡았다. 하지만 에바의 위로와 격려를 받게 되자 이제 더는 자기비하를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마스터! 이제 기초 강화를 위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이미 몇 번 같은 과정을 겪으셨으니 길게 말하진 않겠습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당장 기초 강화를 준비할게.’
대한은 에바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