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61화 (330/331)

61화 <자작곡>

“격술을 배우겠습니다.”

“그럼 태권도는요?”

“그것도 배우고 싶습니다. 안 됩니까?”

“돈만 내면 둘 다 가르쳐줍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등록하겠습니다.”

역시 돈이 최고였다. 대한은 은평 종합 격투기 체육관에 등록하고 한 달 강습비를 냈다.

그가 도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오광래는 두말하지 않고 격술을 가르쳐줬다. 오광래는 우선 격술의 시범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사람에게 기술을 쓸 수가 없다는 문제점이 있었다. 그래서 오광래는 인형을 동원했다.

“격술이 어떤 것인지 먼저 한번 보십시오.”

“네.”

오광래는 인형을 상대로 격술의 진수를 선보였다.

“헉!”

대한은 격술 시범을 보는 것만으로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아무리 봐도 이건 무술이 아니었다. 그냥 사람을 잔인하게 죽이는 기술의 집합체였다. 그런데 가만히 살펴보면 이게 또 무척 효과적이었다.

퍽퍽! 파바박! 팟!

오광래는 인형을 상대로 낭심을 차고 팔꿈치로 턱을 쳤다. 그런 후 무릎 공격을 하고 손날로 목젖을 쳤다. 마지막으로 손가락으로 눈알을 후벼 팠다. 그런데 이 모든 동작이 거의 한순간에 이뤄졌다.

“한번 따라 해보세요.”

“네.”

대한은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그대로 따라 했다.

퍽! 퍽! 팍! 파박! 팟!

속도는 느렸지만 오광래가 한 바로 그 동작이었다.

“눈썰미가 좋네요. 자세를 좀 바꾸겠습니다.”

오광래는 어색하게 대한을 칭찬했다. 물론 진심은 1도 담겨있지 않은 영혼 없는 소리였다. 그래도 가르쳐주는 것은 진짜배기였다.

퍽퍽! 파바박! 팟!

같은 동작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그러면서 오광래는 격술의 중요한 핵심 기술을 꼼꼼하게 전수해 줬다.

대한은 생각보다 빠르게 적응했다. 인형이 일진이라고 생각하자 감정 이입이 아주 쉬웠다. 그래서인지 의외로 속이 시원해지고 재미가 있었다.

“생각보다 무술에 소질이 있는 것 같습니다.”

“다행이네요.”

오광래의 말에 대한도 건성으로 대답했다.

우웅!

그때, 머릿속에서 익숙한 공명음이 들려왔다.

―재능 흡수 대상자 조광조의 DNA 분석이 끝났습니다. 재능 ‘격술(SS)’을 흡수합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격술을 배울 수 있겠군.’

대한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예상대로 그는 이때부터 무서운 속도로 격술의 진수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옆에서 대한을 가르치는 오광래가 놀랄 정도로 무시무시한 속도였다.

“혹시 전에 격술을 배워본 적이 있습니까?”

“아니요. 태어나서 무술은 처음 배워보는 겁니다.”

“그렇군요.”

오광래는 잠시 자신의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더니 이내 뭔가 결심을 한 듯 태권도를 가르쳐주기 시작했다. 대한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일단 가르쳐주는 것을 다 배웠다.

“확실히 재능을 타고났군요.”

“사범님! 그게 무슨 소리예요?”

“아닙니다.”

그의 질문에 오광래는 간단히 고개를 흔들었다. 대신 눈에 힘을 주며 근엄하게 말했다.

“격술은 태권도에 유도, 킥복싱 등 각종 무술과 격투기를 접목한 것입니다. 그러니 태권도와 유도 및 킥복싱 등을 배우면 더욱 효과적입니다.”

“설마 그걸 다 배워야 한다는 말은 아니겠죠?”

“물론 아닙니다.”

대한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그렇다고 했다면 격술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려고 했다.

“다만 각 무술이 가지고 있는 기본기는 꼭 배워둬야 합니다. 예를 들어 태권도의 정권 지르기와 발차기, 유도의 잡기와 관절기, 복싱의 타격과 가드 및 스텝, 킥복싱의 다양한 입식 타격법 등은 격술을 완성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격술에서는 그런 것 안 가르쳐주나 보죠?”

“당연히 가르칩니다. 다만 여러 가지 무술과 격투기의 기본 원리와 이론을 알고 있다면 훨씬 빠르게 격술을 배울 수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런 것은 나중에 따로 배우기로 하고, 일단 격술이나 가르쳐주세요.”

“네.”

오광래도 당장 대한이 각종 무술과 격투기를 배우라는 말이 아니었다. 그는 최대한 격술의 진수와 요체를 뽑아서 가르쳐줬다. 놀랍게도 대한은 그걸 모조리 다 따라 해냈다. 깊이는 없지만, 흉내만큼은 거의 완벽한 모양새였다.

오광래는 자꾸 고개를 옆으로 갸웃거렸다. 자신이 격술을 처음 배웠을 때와 비교해 보면 대한이 격술을 배우는 속도는 빨라도 너무 빨랐다.

‘에바! 이거 굉장히 재미있다.’

―조광조 관장의 재능이 흡수되고 있고 경험이 기억의 형태로 전이되고 있어서 그렇습니다.

‘조광조 관장은 격술을 누구한테 배웠을까? 오광래 사범에게 배웠나?’

―그건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알았어. 나중에 내가 직접 한번 물어볼게.’

그의 눈은 흥미와 호기심으로 잘 버무려져 있었다.

이날부터 대한은 오광래의 지도로 격술의 핵심을 배웠다. 매일 강훈련을 하면서 오광래가 가진 격술의 엑기스를 쪽쪽 뽑아먹었다.

일격필살! 적을 반드시 죽여버리겠다는 의지! 이게 없다면 격술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한은 격술을 배우면서 자연스럽게 태권도의 진가도 확인했다. 정권 지르기와 발차기가 절로 익혀졌다. 인형과 씨름을 하면서 유도의 잡기와 관절기가 체화되었다.

오광래가 미트를 들고 훈련을 시키자 복싱의 타격법과 가드 및 스텝이 배워졌다. 입식 샌드백을 칠 때는 킥복싱의 다양한 타격법이 점차 몸에 익어갔다.

대한은 그렇게 잔인한 살인 태권도! 격술의 무시무시한 위력에 푹 빠져들었다.

* * *

“이것으로 모니카의 영어 교실을 마칩니다.”

모니카는 자신의 짧은 미니스커트 끝자락을 손가락으로 잡았다. 그리곤 카메라를 보며 살짝 무릎을 구부려 인사했다.

짝짝짝짝!

대한이 옆에서 열심히 물개 박수를 쳤다. 그의 행동에 그녀의 얼굴이 발갛게 물들어갔다.

“대한! 고마워요.”

“우리가 더 고맙죠.”

사실 그의 말이 맞았다. 어디를 가서 이렇게 쉬운 실전 영어를 배울 수 있겠는가? 대한은 고맙다는 말이 도배되어가는 채팅 창을 보며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모니카의 영어 교실의 반응이 아주 좋다.’

―새로 만든 코너가 시청자들의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이러다가 나중에 책까지 내는 거 아냐?’

―가능성을 한번 타진해 보겠습니다.

에바의 말을 귓전으로 흘리며 대한은 물을 마시는 모니카의 모습을 바라봤다. 언제 보아도 귀티가 흐르는 매력적인 여자였다.

그녀도 마침 고개를 돌려 그를 쳐다봤다.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의 한점에서 뜨겁게 부딪쳤다. 모니카는 뭐가 그리 좋은지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대한도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손발이 오그라들며 몸이 꽈배기처럼 꼬이는 분위기. 채팅 창만 보고도 이 분위기를 읽을 수 있었다.

[대해적: 달달하다.]

[원피스찢어버려: 이 새끼야, 이제 좀 그만해라!]

[기우뚱: 고리나와 류연은 출국하니까 바로 손절이네.]

[개좋앙: ㅋㅋ 잘 놀았으면 조강지처에게 돌아가야지.]

[다시보기: 대(한)모(니카) 존버!]

[화가난다: 개달달]

[망치2부인: ㅇㅈ 부럽누!]

[나는스시녀다: 진결 가즈아!]

[방사능일본: 비 온 뒤에 땅이 굳는 법이지.]

[오형제: 장래희망 대한 선수(?)]

채팅창을 읽는 사이, 모니카가 대한의 옆으로 다가와 앉았다.

카메라에서 보이지 않는 각도로 그녀가 손을 내밀었다.

대한은 부드러운 모니카의 손을 잡고 자연스럽게 깍지를 꼈다. 둘은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둘의 행동에 당연히 채팅 창은 난리가 났다. 하지만 둘은 채팅들을 깔끔하게 무시해 버렸다.

“눈싸움하는 거예요?”

“내가 이길 거예요.”

대한의 물음에 모니카는 대뜸 이걸 눈싸움으로 몰아갔다. 이제는 그녀도 내공이 좀 쌓였다. 그래서인지 뭔가 능수능란한 대처를 보였다.

“내가 졌어요.”

“에이, 치사하다.”

“뭐가 치사해요?”

“아니에요.”

대한이 너무 빠르게 포기하자 모니카가 살짝 아쉬워했다. 방송 중임에도 불구하고 계속 서로의 눈을 바라보고 싶었나 보다. 하지만 그는 카메라 앞에서 이러는 게 조금 부담스러웠다.

“대한!”

“네?”

“요새 발성 훈련받고 있다면서요?”

“맞아요.”

“그럼 얼마나 실력이 늘었는지 테스트 좀 해봐요.”

“무슨 테스트요?”

“노래 불러달라고요.”

“아!”

대한은 그제야 모니카가 원하는 게 뭔지 깨달았다.

“노래는 저작권 때문에 조심해야 하는데…….”

“그럼 자작곡이라도 불러줘요.”

“자작곡이요?”

머릿속에 있는 전등에서 팍하고 불이 켜지는 느낌이었다.

“알겠어요. 잠시 준비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여러분! 광고 방송 후에 다시 만나요!”

대한의 말에 모니카는 순발력 있게 대처했다.

에바가 광고를 틀어주자 대한은 기타를 만지작거렸다. 그가 뭔가 준비를 하는 것으로 보이자 그녀는 스튜디오를 나갔다.

그 사이, 대한은 에바를 불렀다.

‘에바!’

―네, 마스터.

‘내가 지금 작사 작곡을 하는 것은 무리겠지?’

―당연히 무리죠.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다. 하지만 대한이 원하는 것은 이것이 아니었다.

‘에바, 스파이럴 제국에도 노래를 부르는 가수가 있겠지?’

―물론이죠. 지구보다 훨씬 더 발달한 음악 시스템을 가지고 있습니다.

‘혹시 그쪽에서 크게 히트한 노래 같은 거 알고 있어?’

―많지는 않지만, 히트곡 모음으로 백만 개 정도는 가지고 있습니다.

‘백만 개?’

많지 않다고 해놓고 백만 개란다.

‘생각보다 많네. 그중에서 지구에서도 먹힐 만한 곡이 있을까?’

―당연히 있습니다. 스파이럴 제국과 지구의 음악은 취향이 매우 다르지만 대략 10%, 약 십만 개는 지구인이 들어도 좋아할 것입니다.

‘십만 개도 너무 많다. 선택의 폭을 좀 줄여야겠다.’

―어떻게 분류할까요?

‘밀리언셀러나 불후의 명곡 같은 게 있으면 뽑아줘!’

―만 개의 곡을 추렸습니다.

밀리언셀러나 불후의 명곡이 만 개나 있단다.

‘지금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팝가수나 그룹, 아이돌의 음악과 비슷한 분위기의 곡이었으면 좋겠어.’

―분류했습니다. 천 개의 곡이 선택되었습니다.

줄이고 줄였는데도 아직 천 개나 남았다.

‘현재 최고 인기를 끌고 있는 한류 가수, 아이돌 그룹, 걸 그룹의 최신 트렌드를 반영해 줘!’

―백 개가 나왔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크게 히트한 3곡만 뽑아서 틀어줘!’

―네, 마스터. 잠시 눈을 감아 주세요.

에바의 요청에 그는 의자에 앉아 잠시 눈을 감았다. 대한의 머릿속으로 악보 세 장이 떠올랐다. 첫 번째 악보가 펼쳐지면서 그의 뇌리로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좋다. 이거 제목이 뭐지?’

―‘이번만 부탁해’입니다.

과연 스파이럴 대제국에서 최고의 히트를 한 노래다웠다. 통통 튀는 박자와 중독성 짙은 가사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했다.

‘다음 곡 들어보자.’

―네, 마스터 이번 곡은 ‘나디아 랩소디’입니다.

‘곡명도 좋네.’

대한은 에바가 튼 곡을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곱씹었다.

‘이건 정말 대작이네. 좋은 곡이긴 하지만 당장 내가 부르기에는 맞지 않구나.’

―다음 곡을 틀어드릴까요?

‘응, 부탁해!’

―마지막 곡은 ‘더 빠르게’입니다.

이번에는 리듬이 아주 익숙했다. 마치 라틴 음악처럼 신나는 멜로디와 박자가 일품이었다.

‘이야! 이건 정말 제대로 먹힐 것 같다.’

―이 곡이 마음에 드시는 모양이군요.

‘응. 하지만 역시 지금 당장 내가 부르는 것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아. 연습을 좀 해야겠어.’

―그럼 오늘은 첫 번째 곡을 부르시겠습니까?

‘그래야겠어. MR을 만들어줘!’

―준비 완료됐습니다. 현재 대기 중입니다.

에바의 빠른 대처에 만족하며 대한이 눈을 떴다.

시계를 보니 1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3곡이나 들었다. 어떻게 된 것인지는 모르지만 에바가 뭔가 힘을 쓴 모양이었다.

모니카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아까 입었던 오피스룩이 아니었다. 몸에 착 달라붙는 검은색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어때요?”

“와우! 아주 멋있어요.”

그새 의첸을 하고 들어온 그녀에게 대한은 아낌없이 엄지 척을 선물했다.

두 사람이 의자에 앉자 다시 방송이 시작됐다.

“대한! 광고 나가는 시간에 뭔가 열심히 준비하시던데…….”

“모니카를 위해 부를 노래를 준비했어요.”

“어떤 노래에요?”

“부끄럽지만 자작곡이에요.”

“어머! 정말 대한이 작사 작곡을 한 거예요?”

모니카는 깜짝 놀랐는지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그녀의 토끼 같은 귀여운 모습에 대한은 흐뭇한 표정을 지었다.

“네, 세상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제 첫 번째 자작곡입니다.”

“어서 불러봐요. 너무 궁금해요.”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그러니 여러분도 너무 못한다고 구박하진 말아 주세요.”

“에이, 우리 시청자들은 그렇게 예의 없는 분들 아니에요. 그렇죠?”

모니카의 선동에 채팅 창은 모두 한 손을 거수하는 이모티콘 행렬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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