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8화 <노래(S)>
대한에게 기습적인 일격을 당했지만 에탄고는 역시 에탄고였다. 그들은 조금도 흔들리지 않고 숭신고를 무섭게 몰아붙였다. 하지만 오늘 숭신고 골키퍼는 무슨 일인지 연신 미친 선방 쇼를 펼쳤다.
위기가 지나면 기회가 온다고 했다. 공격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있던 에탄고의 선수들이 순간 어이없이 볼을 빼앗기자 퇴각하는 타이밍을 놓쳤다. 숭신고 풀백 우희명은 즉시 대한을 향해 볼을 걷어찼다.
뻥!
영국이 좋아하는 바로 그 뻥 축구였다. 그런데 우희명은 오늘 산삼이라도 씹어먹고 나왔는지 그가 찬 축구공이 정확하게 대한을 향해 날아갔다.
―마스터! 골키퍼가 골대를 벗어나 앞으로 많이 나와 있습니다.
‘오케이.’
대한은 빠르게 날아오는 볼에 발등을 가져다 댔다. 축구공은 급격히 힘을 잃고 그의 앞에 툭 떨어졌다.
그는 슬쩍 골키퍼를 쳐다봤다. 에바의 말대로 골키퍼는 골대를 비워두고 앞으로 많이 나와 있는 상황이었다. 대한은 자신의 바로 앞에 놓인 볼을 프리킥을 차듯 그대로 갈겨버렸다.
뻥!
대한이 찬 볼은 대포알처럼 빠르게 쏘아졌다.
“안 돼!”
그걸 본 누군가가 안타까운 비명을 질렀다.
퉁! 촤악! 데굴데굴!
축구공은 골문 안으로 정확히 떨어져 내렸다.
“와아아아!”
숭신고 벤치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이건 정말 센스가 돋보이는 기가 막힌 골이었다.
“우와! 또 골을 넣었어!”
“해트트릭이다.”
“대한이 미쳤다.”
“굉장한 골이 터졌어.”
“에탄고도 충격받았네.”
최정규 감독은 좋아서 입이 함지박만큼 벌어졌다. 선수들도 좋다고 괴성을 질러댔다. 벤치 한쪽에서 류연도 고성을 질러댔다.
“대한! 해트트릭! 굉장해!”
그녀는 너무 흥분해서 덩실덩실 춤을 췄다. 류연의 아름다운 몸짓이 그녀의 폭발적인 자존심과 합쳐지며 엄청난 시각적 테러를 가져왔다.
채팅 창은 난리가 났다. 시청자들의 멘탈은 가볍게 초토화됐고, 대한이 해트트릭을 만들어낸 흥분과 류연의 시각 테러가 콤보로 터졌다. 당연히 방송도 뜨겁게 달아올랐다.
3대5.
이제는 숭신고 선수들도 해볼 만하다는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문제는 시간이 너무 없다는 것이다.
삐익!
경기가 속개됐다. 에탄고 선수들도 이젠 바짝 긴장했는지 신중하게 빌드업을 전개했다. 대한에겐 전담 마크를 붙여두고 극도의 경계심을 드러냈다.
에탄고의 작전은 시간을 끌어서 이대로 경기를 끝내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숭신고는 절대 호락호락 승리를 넘겨줄 마음이 없었다.
그들은 에탄고 선수에게 황소처럼 달려들어 압박하더니 기어코 볼을 빼앗아냈다. 이후 숭신고는 빠르게 공격에 들어갔다. 그러자 에탄고 수비수 두 명이 대한을 선제적으로 둘러쌌다.
그 모습에 한정우는 직접 돌파를 시도했다. 돌파하면 좋고 돌파를 하지 못하고 반칙을 얻어내도 좋다. 특히 페널티 에어리어 안에서의 중앙 돌파는 여러모로 치명적이다.
아무리 에탄고 선수들이 실력이 좋다고 해도 피가 끓는 고등학생이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한정우의 무모하다시피 한 돌파는 이내 그들의 혈기를 자극했다.
중앙이 뚫린다면 바로 골키퍼와 일대일 대결이다. 에탄고 수비수들이 그걸 용납할 리 없었다.
한정우의 눈가에 사악한 기운이 돌았다. 그는 돌파 후의 슛까지 빠르게 계산하고 진로를 설정했다. 그런 다음 거친 몸동작으로 짓쳐들어갔다.
결국, 에탄고 스위퍼가 한정우를 쓰러트렸다.
삐익!
주심은 바로 휘슬을 불었다. 기어코 한정우가 반칙을 얻어낸 것이다.
“대한아! 가서 차라!”
살짝 떨리는 한정우의 목소리!
“예.”
대한은 볼을 들고 신나게 달려갔다. 그는 잔디 위의 한 지점에 볼을 놓고는 뒤로 물러났다.
수많은 관중의 시선이 대한에게 쏟아졌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자 대한은 시간 끌지 않고 빠르게 달려갔다.
뻥!
골대와의 거리가 별로 멀지 않았다. 그래서 대한은 굳이 감아 차기를 하지 않았다. 대신 페널티킥을 차는 것처럼 코너에 정확히 볼을 날렸다.
“골!”
또 골이 터졌다.
벌써 대한 혼자 4점을 만들어낸 것이다.
“와아아아!”
숭신고 벤치는 후끈 달아올랐다. 이제는 하도 소리를 질러서 목소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류연조차 손뼉만 치면서 대한을 응원했다.
“프리킥의 마법사! 대한! 나이스 골!”
많은 시청자는 류연의 차분한 응원에 살짝 배신감을 느꼈다.
이번에도 뭔가 엄청난 것을 보여줄 줄 알았는데 얌전해도 너무 얌전한 반응이었다. 하지만 류연의 속은 완전히 반대였다. 지금 그녀의 가슴은 격정으로 활활 불타오르고 있었다.
‘나 어떻게 해! 대한이 너무 멋있고 좋아졌어. 내가 데이트하자고 하면 싫어하진 않겠지? 고리나와 모니카도 대한에게 마음이 있는 것 같던데 나만 좋아해 줄까?’
줄 사람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런데 그녀는 벌써 김칫국부터 마셔대고 있었다. 어쨌든 류연은 대한의 축구 실력에 완전히 매료됐다. 고리나가 왜 대한의 경기를 그렇게 보러왔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삐익!
경기가 다시 시작됐다. 현재 스코어는 4대5, 한 골만 더 넣으면 동점이다.
남은 시간은 겨우 5분. 이제는 에탄고도 결사적으로 나왔다. 숭신고 선수들은 숨이 턱에 차도록 지쳤지만 그래도 악착같이 따라붙었다. 대한만이 에탄고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다.
양측은 격렬하게 부딪쳤다. 한 치의 양보도 없는 진검 승부였다. 하지만 결국 에탄고는 힘으로 숭신고를 밀어냈다.
삐이익!
주심이 휘슬을 길게 불었다. 어느새 남은 5분이 다 지나간 것이다. 숭신고 선수들은 일제히 그라운드에 주저앉았다. 모든 힘을 소진하고 탈진해 버린 것이다.
비록 경기에서 지긴 했지만 숭신고 선수들의 얼굴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대한은 선수들의 눈치를 살피며 천천히 벤치를 향해 걸어갔다.
류연이 그를 향해 뽀르르 달려왔다. 그녀는 많은 사람이 지켜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대한을 꼭 끌어안았다.
그 모습에 채팅창이 또다시 부글부글 끓어댔다.
[대폭주: 야! 방송을 해라! 사심 채우지 말고.]
[코만도: 나라도 안아주겠다.]
[치킨효린: 4골 넣는 게 쉬운 일은 아니지.]
[고로쇠콜라: 그래 봤자 고등축구!]
[코란도일: 그럼 네가 넣어봐! 그게 쉽나.]
[어벤저스: 개달달.]
[낼름: 류연까지 낼름! 부럽누!]
[톰과제리: 개부럽.]
[꼬끼오: 우리 대한이 수고했다.]
[자주국방: 에탄고 질 뻔했어.]
[카리스마: 이걸로 (대)한류(연) 우결각 성립!]
[No재팬: 한류 파이팅!]
[남순이빠: 한류는 역시 좋은 것이야.]
숭신고의 연승 행진은 결국 4강에서 멈춰 섰다. 그런데 멘탈이 부서진 것은 오히려 에탄고였다. 별거 아니라고 무시했던 팀에게 하마터면 발목을 잡힐 뻔했다.
당연히 가볍게 이겨야 할 게임을 이전투구로 진을 다 빼고 겨우 이겼다. 더구나 경기의 MVP는 에탄고가 아닌 패배를 한 숭신고의 선수인 대한이 가져갔다.
에탄고의 손해는 이것만이 아니었다. K리그의 각 구단에서 나온 스카우터들과 스포츠기자들의 관심이 에탄고가 아닌 숭신고의 대한에게 전부 쏠려버렸다.
이젠 스카우터들도 숭신고 최정규 감독의 전략을 눈치챘다. 매번 같은 전략으로 승리를 가져왔으니 모를 수가 없었다. 그들은 최정규 감독처럼 대한을 한번 써먹어 보는 건 어떨까 생각했다.
아니, 처음으로 진지하게 대한의 활용 방법에 관해 연구하기 시작했다. 이 흐름은 비단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한편, 대한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 류연이 밖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은 최정규 감독에게 먼저 양해를 구했다. 최정규는 흔쾌히 대한이 따로 가는 것을 허락했다.
대한은 그녀가 타고 온 럭셔리 밴에 당당히 올라탔다. 류연은 마치 그가 자신의 남친이라도 되는 양, 옆에 찰싹 달라붙어서 애교를 떨었다.
예상외로 그녀의 매니저도 류연의 행동을 굳이 뭐라 하지 않았다. 오히려 대한의 팬이라도 된 것처럼 과도한 친절을 보여줬다.
“배고프죠? 우리 밥 먹으러 가요.”
“좋아요. 그런데 뭐 먹을 거예요?”
“한우가 그렇게 맛있다고 하니 그거 먹으러 가죠!”
“좋아요. 오늘 나 응원하느라 힘들었을 테니 제가 살게요.”
“아니에요. 이렇게 멋진 경기를 보게 해줬으니 식사는 꼭 제가 사고 싶어요.”
두 손을 앞으로 모으며 류연이 부탁을 해왔다. 대한의 동공이 지진이 난 것처럼 흔들렸다.
‘아이유! 그렇게 모아버리면 세상에 거절할 수 있는 남자가 어디 있겠냐? 제발 두 손 그렇게 앞으로 모으지 말라고…….’
대한은 마음 속으로 절규를 하고 말았다.
어쨌든 이날 대한은 류연의 극진한 보살핌 속에 한우 10인분을 작살 냈다. 오랜만에 살짝 과식을 하고 말았다. 하지만 해트트릭을 넘어 한 경기에서 4골이나 몰아넣었다. 스스로 이번만큼은 특별히 한번 봐주기로 했다.
오늘은 정말 기쁘고도 즐거운 날이다. 또한, 류연이 대한의 빠가 된 뜻깊은 날이기도 했다.
* * *
펑!
빰빠라밤!
현란한 축포가 거실을 가득 채웠다. 신나는 팡파르가 터지며 분위기를 잔뜩 띄웠다. 에바가 만들어낸 빛의 축제는 대한의 마음을 흡족하게 만들었다.
―마스터, 축하합니다. 재능 ‘노래(S)’를 얻으셨습니다.
‘에바! 고마워.’
그동안 꾸준히 보컬 트레이닝을 받은 게 주효했다. 하지만 재능 ‘노래(SSS)’를 흡수해서 재능 ‘노래(S)’를 획득한 것은 좀 아쉬웠다.
그는 살짝 입맛을 다셨다. 에바는 대한의 마음을 눈치채고 그를 위로했다.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재능 ‘노래(S)’도 결코 낮은 등급이 아니에요.
‘역시 재능 ‘노래(SS)’를 욕심낸 것은 무리였지?’
―꼭 그런 것도 아니에요. 현재 획득한 재능 ‘노래(S)’는 거의 재능 ‘노래(SS)’에 육박해 있어요. 조금만 더 노력하신다면 머지않아 SS 등급으로 올라갈 수도 있어요.
‘정말?’
―네,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에바의 위로가 먹혔는지 대한은 금세 기운을 차렸다.
‘에바! 상태 창 좀 열어줘!’
―예, 마스터.
그는 그동안 자신이 얼마나 성장했는지 상태 창을 확인했다.
이름: 이대한
등급: 루키
칭호: 없음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노래(S), 끈기(S), 인내(S), 미모(A), 폭풍 성장(S)
언어 ▶ 이탈리아어(A), 영어(A)
축구 ▶ 축구 재능(A), 프리킥(A), 축구 기본기(B), 드리블(B), 개인기(B), 패스(B), 골 결정력(B), 주력(C), 스프린트(C), 지구력(C), 수비(C)
스탯: 근력 77, 민첩 57, 체력 62, 지력 65, 마력 0
신장 174cm, 몸무게 83kg
언제봐도 기분 좋은 수치들의 변화가 눈에 띄었다. 재능 칸에 새로운 재능인 ‘노래(S)’가 자리한 게 보였다. S 등급의 노래가 독보적인 재능으로 안착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기본 스탯인 근력, 민첩, 체력과 지력이 모두 2개씩 올랐다. 키도 2cm가 더 커서 174cm가 됐고, 몸무게도 1kg이 더 빠져서 83kg이었다.
정말 보면 볼수록 놀라운 변화와 성장이었다.
‘에바! 앞으로 내 키가 얼마나 더 커지게 되는 거야?’
―일단 무조건 180cm 이상은 커집니다.
‘우와! 최소한 루저로 살지는 않겠군.’
―180cm 이하는 루저라는 생각은 일부 속물들과 기레기들이 만들어놓은 거짓 프레임에 불과합니다. 하루속히 벗어나길 조언 드립니다.
‘알았어. 앞으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게.’
생각해 보니 에바의 말이 맞았다. 키가 180cm가 넘든 넘지 않든 사람의 가치를 신장의 차이로 판단할 수 없는 것이다. 대한은 다시는 이런 프레임에 갇혀 살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180cm 이상 커진다면 도대체 얼마나 커지는 거야?’
―마스터께서 축구를 계속하시면 아마 신장이 185cm 정도까지는 무난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185cm면 너무 큰 거 아냐?’
―대한민국 병무청에서 밝힌 20대 남성 평균 신장이 173.5cm입니다. 이미 평균은 넘으셨으니 원하시면 키의 성장을 당장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안 돼!’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에바에게 소리쳤다.
―놀라실 것 없습니다. 오직 마스터께서 원하신다는 전제하에 키의 성장을 멈출 수도 있다는 점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어휴! 알고 있어. 그래도 깜짝 놀랐다. 우리 일단 180cm는 넘기고 생각해 보자.’
―네, 참고로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평균 신장은 184cm 정도입니다.
‘184cm?’
에바의 말에 그는 눈을 빛냈다.
―축구를 계속한다면 185cm도 아주 큰 키는 아닙니다. 오히려 적당하다고 봐야 합니다. 무엇보다 재능 ‘폭풍 성장(S)’으로 인해 절대 마스터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적절한 신장으로 자라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