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4화 <합성 사진>
류연의 기초화장 강의와 얼굴 마사지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부드러운 터치에 그는 그만 긴장이 풀려 살짝 잠이 들 뻔했다.
급히 정신을 차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어났다.
“이제 거울을 한번 보세요.”
“와우!”
대한은 깜짝 놀랐다. 자신의 얼굴에서 광채가 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게 얼굴 마사지와 기초화장의 힘이란 말이죠?”
“그렇습니다. 오직 진설 화장품만 썼습니다.”
“대단하네요. 나도 그거 하나 사서 써야겠다.”
대한은 기분이 좋아져 사전 약속에도 없는 립서비스를 했다. 품질이 뛰어나고 좋은 가격의 제품은 당연히 흥해야 한다. 또한 광고비만 퍼부어서 거품만 만드는 회사는 망해야 한다. 이 당연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아 소비자들이 고통을 당하고 있다.
류연은 간단히 진설의 색조 화장품에 관해서도 설명을 했다. 옆에서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그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었다. 특히 그녀가 화장품을 설명할 때 얼마나 열정이 있고 전문적인지 깨달았다. 대한은 어린 나이인 류연의 이런 전문가다운 모습이 참 멋있게 보였다.
이날 류연을 통해 대한은 뷰방(뷰티 방송)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다.
* * *
“대한이다!”
“대한아!”
“대한이, 안녕!”
“어서 와!”
“이제 오니? 대한아!”
“나 어제, 네 방송 봤어!”
“이따 밥 같이 먹자.”
교실로 들어가자 반 아이들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평소에는 투명 인간 취급을 하던 놈들이다. 그런데 이제는 마치 죽마고우라도 되는 양 친한 척을 했다. 자신이 유명해졌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는 모르지 않았다.
대한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의 책상에 앉았다.
“야! 어제 너 끝내주더라.”
“류연 진짜 예쁘더라.”
“실물은 어때? 정말 그렇게 예뻐?”
“너 방송 끝나고 류연이랑 뭐 했어?”
“오! 우리의 인터넷 스타!”
아싸가 인싸되는 것은 정말 한순간이었다. 어느새 그는 반에서, 아니 학교에서 가장 핫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하지만 대한은 별로 기쁘지 않았다. 이들이 정말 자신을 위해 주는 친구가 아니라고 생각하니 그들에게 전혀 흥미가 일지 않았다. 그는 적당히 아이들을 상대해 주다가 고개를 창밖으로 돌렸다.
“어?”
그때, 대한은 창틀에 사진 한 장이 놓여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무런 생각 없이 그는 한 손으로 사진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사진을 본 순간 대한의 눈이 찢어질 것처럼 부릅떠졌다.
“어떤 새끼야?”
그는 고함을 지르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한창 자기네들끼리 수다를 떨고 있던 반 아이들이 무슨 일인가 하고 일제히 대한을 돌아봤다.
“누가 이랬어?”
대한이 눈에 힘을 주며 그는 반 아이들을 한 명씩 노려봤다. 영문을 모르는 반 아이들은 흠칫 놀라며 어리둥절한 반응을 보였다.
다들 대한이 이렇게 화를 내는 것은 처음 봤다. 늘 위축되고 찌그러져 있어서 존재감이 1도 없던 그였다. 그래서 왜 저렇게 열이 받았는지 그들의 눈가에 호기심이 가득했다.
하지만 분노로 활활 타오르고 있는 대한은 더 이상 거칠 것이 없었다. 아니, 눈에 뵈는 것이 없다고 하는 게 맞는 말일 것이다.
그의 시선이 빠르게 교실 앞줄에서부터 중간을 거쳐 뒤쪽으로 넘어갔다. 그러다가 어느 한 지점에서 딱 멈춰 섰다.
“고동수! 너냐?”
“뭐, 이 새끼야?”
대한이 사진을 흔들며 일진 고동수를 노려봤다. 하지만 고동수는 비릿하게 웃으며 모르는 척했다.
“이거 네가 한 짓이냐고?”
“뭐래, 이 미친 새끼!”
아닌 척했지만, 정말 아닌 게 아니었다. 대한은 고동수를 노려보다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고동수와 같이 몰려다니는 주경원과 장문기의 얼굴이 보였다. 그런데 두 놈 모두 입꼬리가 살짝 올라간 게 분명히 대한을 비웃고 있었다.
‘에바! 이 사진 누가 합성했는지 찾아봐!’
―예, 마스터.
그는 다시 한번 슬쩍 사진을 쳐다봤다. 미국의 포르노 사이트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하드코어한 자세의 19금 사진이었다.
문제는 이들의 얼굴이 포르노 배우가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과 류연의 얼굴을 가져다가 교묘하게 합성해 놓았다.
“너희들이 한 짓이었냐?”
“뭔 개소리야!”
세 놈은 마치 입이라도 맞춘 것처럼 한목소리로 소리쳤다.
대한은 천천히 심호흡을 하고는 이내 싸늘한 목소리로 물었다.
“혹시 이거 인터넷에 올렸냐?”
“우리가 왜 그 딴짓을 하겠어!”
고동수가 일진 세 놈 중 대표로 대답했다. 대한은 고동수의 말을 듣자마자 확신했다. 이놈들은 이렇게 자신과 말을 주고받을 놈들이 아니다. 말보다 먼저 주먹부터 나가는 망종들이었다. 그런데 이렇게 자신과 대화를 하고 있다는 것은 자기들도 이게 불법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는 거다.
“그래? 그럼 잘됐네.”
“뭐가 잘 됐다는 거야, 이 또라이 새끼야.”
“누가 이런 짓을 했든 간에……. 그놈은 아주 큰 실수를 한 거야.”
“…….”
대한의 차가운 말에 고동수는 왠지 모르게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주경원과 장문기도 느낌이 싸했는지 살짝 몸을 떨었다.
―마스터! 알아냈습니다.
‘에바, 누구야?’
―지금 마스터와 대화를 하는 고동수, 주경원, 장문기입니다.
에바의 말에 대한의 얼굴에 비릿한 미소가 떠올랐다.
‘증거는?’
―일진 세 명의 스마트폰에 사진과 같은 합성 사진 파일이 있습니다. 또한, 이들의 컴퓨터에서 이미지를 합성한 흔적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이메일과 SNS에도 같은 합성 사진이 올라가 있습니다.
‘그럼 이미 퍼졌다는 거야?’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저녁에 퍼뜨리겠다는 문자를 이들의 단톡방에서 발견했습니다.
대한은 고동수, 주경원, 장문기를 차례로 노려봤다. 자신이 당하는 것은 별 상관없었다. 하지만 천사 같은 류연이 이런 식으로 모욕을 받는 것은 참을 수가 없었다.
‘에바! 당장 경찰 부르고 로펌과 계약을 맺어!’
―강경 대처하겠다는 말씀이시죠?
‘응, 이런 일은 초장에 본때를 보여줘야 해! 돈은 얼마가 들어가도 좋으니 당장 신속하게 움직일 수 있는 법무 법인을 알아봐!’
―경찰에 신고했습니다. 15분 내로 도착한다고 합니다. 법무 법인은 대한민국 로펌 순위 10위에 랭크된 ‘율율’과 온라인 계약을 맺었습니다. 계약금을 보냈고 담당 변호사 한 명을 경찰서로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에바의 일 처리는 역시 빠르고 정확했다.
대한은 속으로 이를 갈았지만 일단 조용히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그렇다고 그의 눈빛까지 가만히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대한의 눈동자는 마치 뜨거운 화염이 치솟는 것처럼 타오르고 있었다.
―마스터! 추가로 보고 드릴 게 있습니다.
‘뭔데?’
―합성 사진은 마스터와 류연의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말이야? 이 새끼들이 설마 모니카와 리나도 합성 사진을 만들었단 말이야?’
대한은 화가 나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러나 에바는 전혀 다른 차원의 얘기를 꺼냈다.
―일진 세 명은 마스터와 류연의 얼굴만 합성했습니다. 모니카와 고리나의 합성 사진은 국내를 비롯한 중국과 일본에서 합성되어 현재 전 세계로 광범위하게 뿌려지고 있습니다.
‘뭐야? 안 돼! 막아!’
―알겠습니다. 합성 사진을 가지고 있는 모든 컴퓨터를 파괴하겠습니다.
‘잠깐!’
대한은 급히 에바의 행동을 막았다. 그녀의 말대로 했다간 아마 전 세계가 큰 혼란에 빠질 것이다. 이건 빈대 잡으려고 아예 초가삼간을 활활 태우는 격이다.
‘사진을 합성한 놈들의 신상을 털고 범죄 사실 증거를 수집하고 합성 사진을 올리는 놈들의 명단을 작성해 줘! 그리고 합성 사진이 퍼져 나가지 않도록 합성 사진 자체에 전부 바이러스를 심어줘! 업로드를 하거나 다운로드를 하면 자연스럽게 해당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있는 데이터가 전부 날아가 버리도록 해줘.’
―아! 알겠습니다. 하드하게 하지 말고 소프트하게 대처하란 말씀이시군요.
‘맞아. 그렇다고 이들을 용서해 주겠다는 것은 아니야. 각국의 법무 법인을 통해서 합성 사진을 만들고 뿌리는 놈들을 전부 고소 및 고발해서 뿌리를 뽑아버릴 거야.’
―마스터께서 원하는 대로 실행하겠습니다.
에바는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다 갑자기 대한이 위축된 목소리로 에바를 불렀다.
‘에바…….’
―네, 마스터.
‘그런데 이거 돈 많이 들어가겠지?’
―돈은 좀 들어가겠지만, 아마 효과는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용서해 달라거나 합의를 보자고 하는 사람도 있을 테니 그리 큰 손해를 보지는 않을 것입니다.
‘얼마나 돈이 들어갈까?’
―일단 1억 안에서 해결해 보겠습니다. 나중에 합의금이나 배상금을 받으면 손해는 천만 원 단위로 줄일 수 있을 겁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진행할까요, 말까요?
대한은 잠시 생각해 봤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절대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었다. 남자인 그는 별 타격이 없겠지만 여자들에게는 평생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을 수도 있었다. 역시 연예인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다.
‘진행해! 확실히 뿌리를 뽑아버려!’
―네, 마스터.
대한이 용단을 내리자 에바는 본격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미 미국의 델라웨어 주를 비롯해 여러 조세 회피 지역에 수십 개의 페이퍼 컴퍼니를 세웠다.
그런 다음, 전 세계 은행에 잠자고 있는 휴면 계좌를 이용해 주인 없는 돈과 검은돈을 돌려(세탁해) 페이퍼 컴퍼니로 보냈다.
페이퍼 컴퍼니는 다시 이 돈을 각국의 투자 회사에 투자했다. 혹시라도 있을지 모를 추적을 피하고자 이런 복잡한 과정을 여러 번 반복했다.
사람이 했다면 아마 고되고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에바에겐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에바는 전 세계의 투자 회사를 통해 주식과 선물, 옵션과 파생 상품 등 각종 금융 상품에 투자했다. 이 과정에서 나온 수익금이 벌써 상당한 수준이었다.
에바는 은밀하게 개인과 법인의 이름을 빌려 전 세계에 산재한 데이터 센터의 서버 컴퓨터와 네트워크 회선을 빌렸다.
그녀는 이를 이용해 굳이 자신의 리소스를 낭비하지 않고도 필요한 연산과 여러 가지 작업을 동시에 수행할 수 있었다.
―마스터를 비롯한 모니카, 고리나, 류연의 합성 사진을 추적하는 봇을 만들어 뿌렸습니다.
‘봇? 로봇을 말하는 거야?’
―인터넷에서 작동하는 봇이니 그냥 실체가 없는 로봇이라고 생각하십시오.
‘아! 뭔지 알 것 같다.’
―현재 1억 개의 봇이 마스터와 모니카, 고리나, 류연의 합성 사진을 추적하는 중입니다. 이제 시간이 지나면 합성 사진을 만들고 뿌리는 자들의 리스트와 증거 자료가 저절로 수집될 것입니다.
‘잘했어. 이게 제대로만 되면 앞으로 보안 회사를 차려도 되겠다.’
―전 세계의 유명 인사들이 마스터께서 만든 보안 회사와 앞다투어 계약하려고 할 것입니다.
대한은 에바의 담대한 말투에 피식 웃음을 지었다.
“샘 온다.”
누군가 크게 소리를 질렀다. 반 아이들은 즉시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대한은 날카로운 눈으로 일진 세 놈을 쏘아봤다. 그러자 지지 않겠다는 듯 그들도 대한을 노려봤다.
교실의 문이 열리며 담임 선생님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교탁 위에 서서 힘찬 목소리로 말했다.
“안녕! 얘들아! 오늘도 보람찬 하루를 보내도록 하자.”
“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오늘따라 기분이 무척 좋아 보이는 선생님이다. 그래서인지 아이들도 힘차게 대답을 해줬다. 하지만 잠시 후…….
“실례하겠습니다.”
“어! 뭡니까?”
갑자기 교실의 문을 열고 정복을 입은 경찰 세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했습니다.”
“무슨 신고를 받으셨는데요?”
담임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경찰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이곳에 유명 연예인의 음란 합성 사진을 만들어 배포하는 학생이 있다는 신고를 받았습니다.”
“그게 누굽니까?”
“고동수, 주영원, 장문기 이상 세 명입니다.”
“네에?”
담임을 비롯한 반 아이들의 시선이 일제히 뒤로 돌아갔다. 그제야 고동수를 비롯한 일진 셋의 얼굴이 새파랗게 변했다.
“고동수, 주영원, 장문기! 앞으로 나와!”
“…….”
담임이 일진 세 놈을 쳐다보며 외쳤다. 그러자 그들은 도축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미적댔다. 경찰은 그 자리에서 일진 세 명의 스마트폰을 압수해 휴대폰을 확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