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52화 (52/331)

52화 <류연>

처음에는 음정과 박자도 제대로 맞지 않았다. 그러나 며칠 만에 지금은 제법 그럴듯한 가수처럼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많은 시청자는 마치 자기 일이라도 되는 양 대한의 놀라운 재능에 환호했다. 그들은 그가 앞으로 얼마나 발전하게 될지 궁금해했다.

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대한은 오직 노래에만 집중했다. 끝까지 음정과 박자를 놓치지 않고 감정선을 잘 살려 노래를 불렀다.

짝짝짝짝!

최선주는 그렁그렁한 눈으로 힘차게 손뼉을 쳤다.

아직 보컬이 완벽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구보다도 자신만의 색깔과 특색이 분명한 목소리였다.

이 정도면 이미 대한의 개성은 만들어졌다고 봐야 했다.

아무리 노래를 잘 불러도 히트곡을 내지 못하는 가수도 부지기수다. 그런 사람들 대부분은 흠잡을 데가 없는 보컬을 가지고 있었다. 대신 자신만의 색깔이 없거나 목소리가 밋밋한 경우가 많았다.

그런 것에 비하면, 대한의 독특하고 호소력 짙은 보이스는 상당히 매력적이었다.

‘내가 이 사람을 더 가르쳐도 될까?’

최선주는 처음으로 대한을 가르치는 것이 두려워졌다. 괜히 자신 때문에 그의 보컬에 영향을 미칠까 걱정이 됐다. 하지만 그건 그녀의 기우에 불과했다.

대한에게는 치트키인 에바가 있었다. 에바가 중간에서 조율을 잘해 주는 이상 그의 보이스가 평범해지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대한은 이날부터 방송 중에 리나의 노래를 하나씩 불렀다. 그녀의 노래가 점차 세계로 퍼져나가는 시발점이 됐다. 더불어 리나의 음원도 서서히 전설의 역주행을 시작했다.

* * *

“대한! 미안해요. 이렇게 늦어져서…….”

“아니에요. 갑자기 합동 방송을 제안한 저의 잘못도 있어요.”

대한의 친절한 말에 류연은 상큼한 미소를 지었다. 리나 정도는 아니지만 그녀도 대화를 나눌 수 있을 정도로 영어가 유창했다.

“과연 천만 구독자를 가지고 있는 대한다운 배포네요. 고마워요.”

“천만에요.”

천만 구독자와 배포가 무슨 상관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대한은 류연이 그렇다니 그냥 칭찬으로 알아들었다.

그녀는 리나와 같은 만 18세로 전형적인 북경 미녀였다. 뷰티 아나운서로 유명한데 모델도 겸하고 있었다. 또한, 팔로워가 288만 명이나 되는 왕홍이었다.

“계약은 어떻게 됐어요?”

“류연이 진설 화장품을 광고할 때 같이 노출하기로 했어요. 광고비는 조회 수와 진설 화장품 홈페이지로 연결된 링크 클릭 수에 맞춰 받기로 했어요.”

“잘됐네요. 앞으로도 이런 광고 요청이 많이 들어올 거예요.”

대한은 대답 대신 가볍게 미소를 지었다. 합리적인 계약이라 화장품 회사도 아마 큰 부담을 느끼지는 않을 것이다.

‘에바! 이 화장품 확실히 좋은 거 맞지?’

―그렇다니까요. 중소기업이라 아직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제조 방식이나 들어간 화장품 성분을 분석해 보면 세계적인 화장품 회사가 만든 제품과 비교해도 전혀 떨어지지 않습니다. 아니, 어떤 면은 훨씬 월등합니다.

‘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큰 회사라는 말이네.’

―그거야 좀 더 지켜봐야죠. 아무리 좋은 제품도 제대로 알려지지 않으면 그냥 묻혀버립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을 듣고 더는 걱정하지 않기로 했다. 류연과 합동 방송을 하면서 그녀의 개인 방송도 동시 송출 하기로 합의를 봤다. 그런데 류연의 직업상 화장품 소개가 반드시 들어가야 했다.

그녀는 직접 화장품을 써보고 사용 후기를 알려주는 것으로 유명했다. 대한은 별 고민 없이 그녀가 원하는 대로 해주기로 했다. 그래서 이렇게 대한민국의 중소기업이자 화장품회사인 ‘진설(眞雪)’과 광고 계약을 맺게 된 것이다.

“고리나와 합방한 것을 봤어요.”

“아! 네.”

대한은 류연의 말에 속으로 뜨끔했다. 무슨 뜻으로 그녀가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런데 류연은 금세 자신의 속을 드러냈다.

“너무 다정하고 재미있게 방송을 하시더라고요.”

“좋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저도 고리나처럼 친근하게 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으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달라는 말이죠?”

“그냥 편한 친구라고 생각하시면 될 거예요.”

“네? 아! 네. 뭐, 그렇게 하죠.”

대한은 상냥한 류연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어색한 게 문제지 친한 척 방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류연의 말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잠시 후, 계획보다 나흘이나 더 미뤄졌던 류연과의 합동 방송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그런데 대한은 지금 눈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그녀가 방송용으로 준비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을 때 자신도 모르게 입을 딱 벌렸다.

류연이 엄청난 글래머였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도무지 시선을 떼기가 힘들 지경이었다.

‘오우야!’

―마스터! 정신 차리세요.

‘그러려고 노력하고 있어. 이럴 거라고 예상은 했는데 생각보다 아주 치명적이네.’

―제가 좀 도와 드릴까요?

‘아니야. 이 정도는 나 혼자 조절해야지. 정 위험하다 싶으면 그때 도와줘!’

―알겠습니다, 마스터!

대한은 남몰래 심호흡하며 흥분을 가라앉혔다.

한창 피가 뜨거울 나이였다. 저런 시각적인, 아니 폭발적인 자극에 진정하기가 쉽지만은 않았다. 그래도 의지를 굳건히 세웠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과 몸매가 눈에 익숙해지길 기다렸다.

“준비됐어요?”

“네, 언제든지 시작하셔도 좋아요.”

“그럼 갑니다. 5, 4, 3, 2, 1, 스타트!”

대한이 신호를 보내자 에바가 동시 송출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 대한 TV의 대한입니다. 오늘은 특별한 출연자를 한 분 모셔봤습니다.”

그의 손짓에 류연이 옆으로 다가와 바짝 붙어섰다. 대한은 한쪽 팔을 살짝 눌러오는 감촉에 속으로 흠칫했다.

“반갑습니다, 류연입니다.”

“류연은 중국의 왕홍으로 아시아 전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섭외했는데 오늘 이렇게 간신히 시간을 내주셨습니다.”

“대한 TV에 출연하게 된 것을 무척 기쁘게 생각합니다. 저는 오늘 게스트가 아닌 대한의 팬으로 나왔습니다. 지금 제 개인 방송도 동시 송출을 하고 있는데 오늘의 주인공은 제가 아니라 대한이라는 점을 분명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류연은 참 말도 예쁘게 했다. 얼굴도 곱고, 몸매도 착하고, 눈빛도 선했다. 남자들이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 없는 모든 조건을 이미 다 갖추고 있었다.

그녀의 매력은 몇 분 지나지 않아 많은 시청자의 멘탈을 초토화했다.

‘확실히 류연에게 시선이 가지 않을 수가 없군.’

―그녀도 자신의 장점을 분명하게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저런 옷을 방송에서 입을 까닭이 없죠.

에바는 류연을 냉정하게 분석 중이었다. 대한은 혹시 에바가 질투하는 게 아닐까 의심했다.

대한과 류연은 이런저런 얘기를 아주 재미있게 했다. 서서히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는 사전에 약속한 대로 그녀의 전직에 대해서 물어봤다.

“듣기로는 북경에서 전도가 유망한 무용수였다고 하던데… 맞나요?”

“네, 맞아요. 제 꿈은 한때 세계 최고의 무용수가 되는 거였어요.”

정말로 최고의 무용수가 되길 간절히 원했었는지, 그녀는 차분했던 눈동자가 흔들릴 정도로 감정의 변화를 보였다.

“그런데 왜 그만두셨어요?”

“보시다시피 제 몸이 너무 급격히 변화돼서 할 수 없이 꿈을 포기해야 했어요.”

“류연은 제가 본 미녀 가운데에서도 단연 최상위권입니다. 그런데 그게 무용수가 되는 일에는 약점이 될 수도 있는 거군요.”

대한은 류연이 상처를 받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확히 보셨습니다. 처음에는 부모님 원망도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모님께 이런 건강한 몸을 주셔서 감사하고 있어요.”

“저도 이렇게 아름다운 류연을 볼 수 있게 해주신 류연의 부모님께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대한은 개구쟁이 같은 웃음을 지으며 류연에게 농담을 건넸다. 대한이 던진 농담에 그녀는 그의 팔을 살짝 잡고는 몸을 마구 흔들며 애교를 부렸다.

“아이! 그럼 오해하신단 말이에요.”

“그, 그런가요?”

수많은 시청자의 동공에 지진이 일어났다. 모르긴 해도 지금 류연 때문에 초점이 많이 흔들리고 있을 것이다.

대한은 갑자기 갈증이 났다. 그는 생수를 따서 조금 마셨다. 그리곤 다시 류연의 얼굴을 쳐다봤다.

“류연의 춤 솜씨를 조금만 구경해 볼 수 없을까요?”

“부끄럽지만 원하신다면 살짝 맛만 보여드릴게요.”

“네, 감사합니다.”

에바가 준비된 음악을 틀었다. 스튜디오 안은 일순 중국의 전통 음악으로 가득 찼다.

대한의 눈에 서서히 이채가 흘렀다. 류연의 춤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사람의 움직임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하지만 대한은 이내 류연이 왜 무용수가 되기를 포기했는지 알 것 같았다. 너무 출중한 몸 때문에 오히려 아름다운 춤이 보이지 않았다. 주객이 전도되어 춤은 사라지고 무용수의 몸만 남게 된 것이다.

짝짝짝짝!

류연의 아름다운 춤이 끝나자 대한은 힘차게 물개 박수를 쳤다. 그 모습에 그녀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순간 대한은 심쿵했다. 모니카와 리나의 아름다운 미모에 익숙해졌나 싶었는데 류연을 보니 그것도 아닌 듯싶었다.

‘참 예쁘면서도 매력 있는 여자네.’

그녀의 얼굴과 눈빛은 정말 천사처럼 아름다웠다. 선한 인상과 대비되는 반전의 매력은 아마도 류연만이 가지고 있는 장점일 것이다.

“대한도 춤을 출 수 있어요?”

“아니요. 전 춤을 배워본 적이 없어요. 대신 노래는 조금 할 줄 알아요.”

“그럼 저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세요.”

대한은 류연의 말에 리나의 노래를 불렀다.

♬ I saw your smile down from sunshine. I fell in love. I saw that dark when you showed me that kiss…….♩

대한은 점점 목소리가 더 좋아지고 있었다. 더불어 노래의 완성도도 많이 올라갔다. 그래서 이제는 누가 들어도 감탄할 만큼 듣기가 좋았다.

류연은 답례로 대한에게 ‘사랑의 세레나데’를 불러줬다.

♩Why is my heart so light? Why are the stars so bright? Why is the sky so blue…….♬

그녀는 노래를 부르며 가늘고 하얀 손가락으로 그의 얼굴을 쓰다듬고는 대한의 어깨에 자신의 턱을 살짝 걸쳤다. 클라이맥스 부분에서는 뒤에서 가볍게 포옹을 했다. 류연의 노래는 마치 한편의 뮤지컬 같았다.

당연히 채팅 창은 난리가 났다.

[낼름: 헐! 벌써 류연을 낼름!]

[말벌봉준: 이제 여캠 합방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군.]

[다섯공무원: 장래희망 대한이!]

[손톱이빨개: 졸귀!]

[여친찾았다: 예쁘다.]

[작업멘트0: 차암 흐믓하다.]

[부부젤라: 노래 너무 좋다.]

[개좋앙: 빠져든다.]

[미쿡여자: 우리 대한이 작작 좀 더듬어라!]

[늑골뽑기: 이 새끼 아주 좋아 죽네.]

[동해바다: 이렇게 예쁜 여캠은 또 어디서 데려온 거야!]

[터프가이: 중국. 대한이 네가 진정한 능력자다.]

대한은 그녀의 노래가 끝나자 살포시 고개를 숙였다.

다른 것은 다 괜찮았는데 뒤에서 껴안아 버리니 도저히 부동심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 결국 에바가 개입하고 나서야 좀 진정이 됐다.

“류연, 저녁 드셨어요?”

“아뇨.”

“그럼 배고프시겠네요?”

“네, 조금요.”

“그럼 제가 준비한 저녁 식사를 같이 먹도록 해요.”

“좋아요.”

대한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튜디오의 문이 활짝 열렸다. 류연의 매니저와 코디가 이동용 책상을 같이 밀고 들어왔다.

한 상 가득한 음식을 보며 류연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채팅 창에선 그 모습이 또 예쁘다고 뜨거운 냄비처럼 달아올랐다.

두 사람은 책상 앞에 나란히 앉았다. 특별히 주문한 각종 한식 요리가 그들의 식욕을 돋웠다.

대한과 류연은 사이좋게 요리를 먹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도적인건지 그녀는 자꾸 대한에게 이것저것 먹여주기 시작했다. 그도 어쩔 수 없이 받아먹어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대한의 얼굴을 만지게 됐다. 몸도 자주 부딪쳤다.

좋은 것도 잠시, 시간이 갈수록 곤혹스러웠다. 대한은 혹시 그녀가 이런 상황을 즐기는 것은 아닌지 쳐다봤다.

천사처럼 아름답고 선한 류연의 모습을 보니 아무리 생각해도 그건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