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화 <역전승>
뻥!
한정우가 과감하게 중앙 돌파한 후, 날카롭게 슛을 때렸다. 하지만 크로스바를 살짝 벗어나는 아까운 볼이었다.
뻥!
이번에는 미드필더 심길도가 회심의 중거리포를 쐈다. 공은 기가 막힌 각도로 날아갔다. 그러나 현대고 골키퍼의 미친 선방에 막혀버렸다.
이제 남은 시간은 단 5분!
대한은 숨을 가다듬으며 열심히 생각했다.
‘이건 내가 만들어내야 한다.’
―마스터, 파이팅!
에바는 리나를 흉내 낸 치어리더 복장으로 열심히 응원했다.
‘에바! 정신 사나워! 뒤로 꺼져!’
―눼에에에!
그러나 오히려 대한에게 욕만 들어먹었다.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한정우에게 슬쩍 눈짓했다. 한정우는 개떡 같은 대한의 신호를 찰떡같이 잘도 알아먹었다.
한정우는 미드필더에게 볼을 받자마자 돌파를 시도했다. 곧 그를 향해 수비가 우르르 모여들었다. 그들은 대한을 의식한 듯, 반칙을 하지 않으려 상당히 노력했다. 그런데도 페널티 에어리어에 수비들이 워낙 촘촘하게 들어차 있어서 돌파하는 게 여간 어렵지 않았다.
툭!
그때 한정우가 느닷없이 대한에게 볼을 패스했다. 수비수들이 놀라서 급히 대한에게 달려들었다.
대한은 가만히 볼을 잡고 기다렸다. 그러다 한정우가 현대고 수비들 사이로 잽싸게 뛰어가자 대한은 발등으로 축구공 밑을 가볍게 툭 걷어찼다.
퉁!
볼은 허공으로 떠올라 우아한 곡선을 그리며 날아갔다.
한정우는 뒤를 돌아보다 흠칫 놀랐다. 자신이 달려가는 속도와 박자에 맞춰 정확하게 볼이 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볼을 받게 될 위치는 오른쪽 골대 바로 앞이었다. 정말 기가 막힌 패스였다. 한정우는 볼을 받아서 세우려다 급히 마음을 바꿨다. 대신 인사이드로 살짝 발을 가져다 댔다.
퉁!
골키퍼가 혼신의 힘을 다해 몸을 내던졌다. 그러나 워낙 골대 구석이라 골키퍼의 손이 전혀 닿지 않았다.
“우와아아아!”
숭신고 축구장에 함성, 아니 괴성이 일었다. 흥분할 대로 흥분한 학생들이 미친 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관중들도 덩달아 광분하며 날뛰었다.
리나도 발을 동동 구르며 마구 대한을 외쳤다. 그녀의 맑고 고운 고주파 고음은 관중들의 함성마저 뚫어냈다.
대한의 귀에 리나의 환호성이 선명하게 들려왔다.
‘에바! 쟤 혹시 돌고래 아니냐?’
―마스터! 확실히 리나의 고음은 맑고 깨끗하네요.
대한은 하늘로 치켜든 팔을 슬쩍 내렸다. 그는 동료들에게 둘러싸여 축하를 받고 있는 한정우를 향해 다가갔다. 그리곤 냅다 한정우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딱!
“아! 어떤 새끼야?”
한정우의 눈에서 별이 번쩍거렸다. 동료 선수들은 대한이 저지른 짓을 뻔히 보고서도 절대 한정우에게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
이건 모두 묵시적으로 동참한 완전 범죄였다.
“정우 형! 기가 막힌 골이었어요.”
“대한의 패스 정말 좋았다.”
“와! 드디어 우리 동점이에요.”
“내친김에 한 골 더 넣어요.”
“가자! 가자! 숭신고!”
숭신고 선수들은 다들 흥분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한정우만 자신의 뒤통수를 쓰다듬으며 인상을 팍 썼다.
“아직 경기는 끝나지 않았어. 3분 안에 한 골 더 넣어버리자.”
“한 골 더 넣자!”
그들은 대한과 한정우의 어깨를 감싸고 중앙선을 넘었다.
삐익!
다시 경기가 속개됐다.
이제는 현대고도 더 이상 뾰족한 수가 없었다. 무조건 골을 넣어야 했다. 현대고는 골키퍼를 빼고 전원 공격을 퍼부었다.
3분은 정말 길었다. 몇 번이나 아슬아슬한 위기 상황을 맞았다. 대한도 같이 수비를 해야 하나 고민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역시 별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았다. 그는 그냥 하던 대로 중앙선 근처를 어슬렁거렸다.
“악!”
그때 공격을 하던 현대고 선수가 한정우의 날카로운 태클에 걸렸다. 볼이 옆으로 튀어나왔다. 주심을 쳐다봤지만 주심은 휘슬을 불지 않았다. 미드필더 구양모가 잽싸게 볼을 낚아챘다.
“대한아!”
뻥!
구양모는 지체하지 않고 대한을 향해 볼을 뻥하고 찼다. 축구공은 하늘 높이 날아 중앙선을 넘어왔다.
―마스터! 잡을 수 있습니다.
‘안다고.’
대한은 에바가 보여주는 점선을 따라 빠르게 달려갔다. 전신의 살들이 지진이 난 듯 크게 출렁거렸다. 하지만 과거에 비하면 이 정도는 그저 애교살 수준이었다.
그는 온 힘을 다해 달려가 결국 날아오는 볼을 받아냈다.
툭!
그러자 현대고 골키퍼가 놀란 얼굴로 쏜살같이 달려왔다. 대한은 자신의 바로 앞에 볼을 가볍게 떨어뜨렸다. 현대고 골키퍼는 미친 황소처럼 그를 향해 돌진했다. 하지만 대한은 차분하게 에바가 보여주는 점선을 노려봤다.
그는 힘차게 볼을 향해 달려들었다. 골키퍼가 막으려고 옆으로 거칠게 슬라이딩을 했다.
데굴데굴!
대한은 슛을 하지 않았다. 그저 옆으로 축구공을 살짝 옮겨놓았을 뿐이었다.
골키퍼는 기겁하더니 다시 일어나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사이 대한은 25m 거리에 있는 골대를 향해 이미 시원하게 볼을 차버렸다.
뻥!
축구공은 하늘로 높이 날아올랐다.
아름다운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날아가는 볼!
숭신고 축구장 안의 모든 시선이 일제히 한 점으로 모여들었다.
대한이 찬 볼은 정확하게 골대 중앙에 떨어져 내렸다.
퉁, 퉁, 데굴데굴!
“와아아아!”
숭신고 벤치에서 최정규 감독을 비롯한 선수들이 일제히 밖으로 튀어 나갔다. 경기장 안에서는 주전 선수들이 개떼처럼 대한을 향해 우르르 몰려왔다.
“이겼다.”
“골이다.”
“미쳤다.”
“해트 트릭이다.”
“숭신고 만세!”
“대한 만세!”
대한은 두 손을 번쩍 치켜들었다. 그리곤 최정규 감독을 향해 빠르게 달려갔다. 그래도 역시 그가 제일 만만했던 것이다.
최정규 감독은 이미 한번 당해 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먼저 리나가 어디 있는지부터 확인했다. 아직 그녀는 벤치 옆에 서 있었다. 그걸 확인한 최정규의 얼굴에 회심의 미소가 그려졌다.
“감독님!”
“대한아!”
마침내 사제간의 아름다운 포옹이 이루어졌다.
선수들은 감히 최정규 감독의 품에 안긴 대한의 뒤통수를 때릴 생각을 하지 못했다. 대신 두 사람을 같이 끌어안고 기쁨을 함께 나눴다.
대한의 신속한 판단은 유용했다.
그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골을 넣은 기쁨을 모두와 함께 만끽했다.
주심이 다가오더니 빨리 경기를 재개하자며 그들을 떨어트려 놓았지만 막상 경기를 재개하자 주심은 휘슬을 길게 불더니 바로 경기를 종료시켰다.
삐이익!
현대고 김충식 감독은 멍한 표정으로 대한을 쳐다봤다. 어디서 살진 아기 돼지 같은 새끼가 나오더니 자신의 십 년 대계를 허무하게 무너뜨렸다.
화가 나기도 나고 어이가 없기도 했다. 확실한 것은 아무리 후회하고 원망해도 경기 결과는 달라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현대고는 결국 8강에서 무너졌다.
대신 8강에서 승리한 숭신고가 4강에 올라갔다.
“도대체 저 새끼 뭐야?”
김충식 감독은 짜증 섞인 말투로 물었다. 옆에서 서장후 코치가 그의 말을 받았다.
“숭신고의 비밀 병기인 이대한이라는 선수입니다. 현재 열한 골로 득점 선두입니다.”
“X발! 이게 말이 돼? 저 몸으로 어떻게 축구를 하는 거야?”
“그러게 말입니다. 처음에는 저것보다 훨씬 더 살이 쪘었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뭐야? 그럼 저 돼지 새끼가 지금 다이어트를 한다는 거야?”
“그것뿐만이 아닙니다. 키도 자라고 있답니다.”
“저 몸으로 득점왕을 노리는 새낀데……. 키가 크고 몸까지 만들어지면 정말 볼 만하겠네.”
“아마 괴물이 될지도 모릅니다.”
김충식은 서장후 코치를 보며 속으로 생각했다.
‘K리그 울산 현대 축구단에 빨리 저놈을 잡으라고 말해 줘야겠군.’
비록 경기는 졌지만, 스카우트전까지 지고 싶지는 않았다. 문제는 지금 김충식 감독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라는 것이다.
어쨌든 대한의 대활약에 힘입어 숭신고는 1대4에서 5대4로 극적인 역전승을 했다.
이게 얼마나 짜릿한 경기였는지 저녁 9시 뉴스에 스포츠 단신으로 보도됐다. 대한이 두 번째로 뉴스에 얼굴을 비추게 된 경기였다.
* * *
“아, 에, 이, 오, 우!”
“아, 에, 이, 오, 우!”
“도레미파솔라시도!”
“도레미파솔라시도!”
대한은 보컬 트레이너를 따라 정확하게 음을 내려고 노력했다. 그의 앞에는 리나의 인맥을 통해 만난 대한민국 최고의 보컬 트레이너 최선주가 서있었다.
그녀는 아까부터 전혀 집중하지 못하고 있었다. 대한이 켜놓은 카메라가 자꾸 눈에 거슬렸기 때문이다. 결국, 참다못한 최선주는 대한에게 다가와 조용히 말했다.
“대한 씨!”
“네?”
“저 카메라 좀 꺼주면 안 돼요?”
“뒷감당할 자신 있으시면 한번 꺼보세요.”
최선주는 대한의 말에 흠칫 몸을 떨었다. 아까 살짝 확인해 본 바에 의하면 대한 TV의 구독자 수가 무려 천만이나 됐다. 잘못하면 천만 명을 적으로 돌릴 수도 있다는 말이다. 그녀는 즉시 생각을 고쳐먹었다.
처음에 계약할 때 카메라로 찍어도 되냐는 말에 아무 생각 없이 동의했었다. 그게 실수였다. 하지만 최선주는 프로였다. 카메라가 없다고 생각하고 본격적으로 보컬 트레이닝에 몰입했다.
“허리 펴고 배에 힘을 주세요. 고개도 좀 드시고요. 자세가 중요합니다.”
“네.”
“자! 아까 가르쳐드린 발성 한번 가보겠어요.”
최선주는 대한을 친절하게 잘 가르쳤다. 리나가 괜히 그녀를 대한에게 소개해 준 것이 아니었다.
그녀는 그의 상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꼭 필요한 조언을 해줬다. 그러자 사흘 만에 대한의 실력은 눈에 띄게 쑥쑥 자라났다.
‘이놈 뭐지? 무슨 괴물인가? 어떻게 이렇게 빨리 배울 수가 있지?’
최선주는 깜짝 놀랐다. 그동안 수많은 연습생과 가수들을 가르쳐봤지만 대한처럼 이렇게 빠르게 성장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었다. 이건 마치 스펀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가르쳐주는 족족 다 흡수했다. 그러다 보니 보컬 트레이닝의 진도가 무섭게 나가고 있었다.
발성의 기초와 음정 연습은 이미 끝났다. 호흡의 경로와 성대의 개폐 및 진동의 원리도 넘어섰다. 턱 벌리기 메커니즘과 후두와 성대의 구조 및 기능과 역할도 가르쳤다. 복식 호흡 메커니즘과 호흡 훈련에 대한 설명도 마쳤다.
지금은 가성과 진성, 두성과 흉성의 발성법, 고음과 저음 및 성대 접촉 진동 테크닉을 배우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조만간 공명 공간의 조절, 아니면 내 몸의 악기화까지 진도를 빼야 할 것 같았다. 그만큼 대한의 이해도가 높고 발성법이 발전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고 마지막으로 노래 하나 불러보세요.”
“네, 어떤 노래를 할까요?”
“리나가 자신의 노래를 가르치라고 했어요.”
“그럼 리나의 노래를 부를게요.”
대한은 최선주가 MR을 틀어주자 곧바로 자세를 잡았다. 그는 그녀에게 배운 대로 몸에 힘을 빼고 편안히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 I saw your smile down from sunshine. I fell in love. I saw that dark when you showed me that kiss…….♩
리나는 맑고 고운 음성으로 애절하게 사랑 노래를 불렀었다. 하지만 대한은 탄탄한 저음과 굵은 목소리로 호소력 짙은 노래를 불렀다.
최선주는 가만히 그를 지켜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노래에 빠져들었다. 그녀는 자신의 눈앞에 환상처럼 펼쳐지는 두 연인의 애절한 사랑의 이야기를 눈으로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대한의 노래에 몰입해 들어간 것이다.
그러다 어느 순간 퍼뜩 놀라며 깨어났다. 지금 자신이 노래 감상이나 하자고 여기에 온 것이 아니었다. 어떻게든 대한의 부족한 점을 보완하고 약점을 고쳐주려고 온 것이다.
그렇지만 대한이 부르는 노래가 너무 듣기 좋았다. 최선주는 금세 다시 그의 노래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그런 그녀의 표정이 카메라를 통해 생생하게 잡혔다. 이 장면은 금세 전 세계로 퍼져나갔다.
대한 TV를 보는 시청자 중에는 세계적인 작곡가나 가수도 있었다.
[매트릭스: 정말 놀랍다. 이렇게 빨리 보컬을 완성하다니.]
[트윈액스: 목소리가 정말 매력적이야.]
[하드싱어: 내가 작사, 작곡한 곡을 주고 싶다.]
[넷플렉스그룹: 당장 가수라고 해도 믿겠어.]
[블랙파워: 대한! 가수를 하고 싶으면 언제든지 우릴 찾아와!]
[월드뮤직: 대한! 넌 이미 가수야! 같이 공연하자! 레츠기릿!]
[월드클래스: 이게 보컬 트레이닝 사흘 받는 사람의 클래스란 말인가!]
재능 ‘노래(SSS)’를 흡수한 대한의 성장은 한마디로 놀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