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50화 (50/331)

50화 <자연 발아>

오늘따라 대한은 아주 의욕적이었다. 전에 없는 적극적인 그의 모습에 다들 미약하나마 일말의 희망를 잃지 않았다.

주장 이강희는 선수들을 보면서 이를 갈았다.

“더는 골을 먹어선 안 돼! 우리도 수비하는 것을 도울 테니까 대한이 나올 때까지 무조건 버티자!”

“세 골 차인데 괜찮을까요?”

2학년 미드필더 최영웅이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이강희는 주먹을 불끈 쥐고 흔들었다.

“10분만 더 버티면 대한이 나올 거야. 그때부터는 무조건 돌파를 강행해서 반칙을 유도하면 돼! 프리킥을 얻으면 무조건 골이 되는 것을 보면 현대고의 수비도 위축될 거야. 기회는 아직 남아 있다. 파이팅!”

“파이팅!”

원래라면 그들은 모두 대한을 무시했다. 하지만 상황이 이렇게까지 몰리자 이젠 대한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생각했다. 다른 것은 몰라도 대한의 프리킥 능력만큼은 아무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세 골을 더 넣으면 이기진 못해도 비길 수 있다. 일단 그들은 경기를 연장전까지 끌고 가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에바!’

―네, 마스터.

‘분위기 어때?’

―최악입니다. 1대4로 지고 있으니 당연한 겁니다.

‘내가 한두 골을 넣는다고 해도 이기긴 힘들겠어.’

―축구공은 둥근 것이니 아직 승패를 논하기엔 이른 감이 있습니다.

‘그렇겠지?’

대한은 열심히 몸을 풀면서 울산 현대고 축구 선수들을 쳐다봤다. 특히 자신을 방어하게 될 수비수, 풀백과 센터백을 보면서 눈을 빛냈다.

“대한! 파이팅!”

그때 모든 사람의 귀에 팍팍 꽂히는 맑고 고운 목소리가 축구장에 울려 퍼졌다.

대한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돌렸다. 벤치 옆에서 혼자 신나게 응원을 하는 리나. 그녀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윈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오늘도 리나는 대한의 축구 경기를 직관하러 나왔다. 바쁘면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지만 그녀는 꼭 자기가 와서 응원을 해야만 한다고 고집을 부렸다.

거기에다 리나는 치어리더 복장까지 준비했다. 덕분에 주변의 시선을 전부 씹어먹고 있었다.

경기를 취재하러 온 기자와 카메라맨들만 신이 나서 연신 셔터를 눌러대고 있었다.

대책이 안 서는 그녀의 좌충우돌! 하나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무척 귀엽고 사랑스러운 행동이었다.

사실 대한은 전혀 몰랐다. 리나가 이곳에 오기 위해 무엇을 희생했는지 말이다. 어쨌든 그녀는 대한을 향해 하트를 뿅뿅 쏘아댔다.

그의 일거수일투족에 반응하며 그가 쳐다보면 어김없이 두 손을 흔들었다.

그로 인해 숭신고 축구장에 온 관중의 시선이 분산되는 부작용도 있었다. 일부는 아예 시합은 뒷전이고 그녀를 직관(?)하러 몰리기도 했다.

―마스터, 아무래도 5분 먼저 나가게 될 것 같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설마 후반 종료 15분 전이 아니라 20분 전에 나가는 거야?’

―지금 분위기가 그렇게 가고 있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에 의욕을 불태웠다.

‘에바! 나 20분 정도는 풀로 뛸 수 있지?’

―물론입니다. 그동안 꾸준한 다이어트와 운동으로 체력이 많이 올라왔습니다. 다만 너무 무리는 하지 마시고 적당히 체력 안배를 하셔야 합니다.

‘무슨 말인지 잘 알았어.’

그는 마음속으로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묘한 공명음이 울렸다.

우웅!

대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공명음이 울릴 타이밍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에바! 이거 뭐야?’

―마스터! ‘축구 재능(A)’과 ‘축구 기본기(B)’로 인해 새로운 축구 재능들이 발아되었습니다.

‘정말?’

―네, 상태 창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직접 확인해 보세요.

그는 에바가 열어주는 상태 창을 살폈다.

이름: 이대한

등급: 루키

칭호: 없음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 끈기(S), 인내(S), 미모(A), 폭풍성장(S)

언어 ▶ 이탈리아어(A), 영어(A)

축구 ▶ 축구 재능(A), 프리킥(A), 축구 기본기(B), 드리블(B), 개인기(B), 패스(B), 골 결정력(B), 주력(C), 스프린트(C), 지구력(C), 수비(C)

스탯: 근력 75, 민첩 55, 체력 60, 지력 63, 마력 0

신장 172cm, 몸무게 84kg

“와우!”

에바의 말대로 새로운 축구 재능이 발아됐다. 드리블, 개인기, 패스, 골 결정력, 주력, 스프린트, 지구력, 수비. 이렇게 여덟 가지였다.

사실 프리킥, 드리블, 패스는 축구 기본기에도 있는 재능이다. 하지만 이렇게 따로 재능이 나왔다는 것은 고도로 심화한 기술로 발전할 수 있게 된다는 의미였다.

스탯 민첩과 체력이 각각 5개씩 올랐다. 근력과 지력도 각각 2개씩 올라갔다. 이제 민첩을 제외하면 자신의 스탯은 일반인의 범주에 들어서게 됐다.

키도 2cm 더 커져서 172cm가 됐고, 몸무게도 2kg이 줄어서 84kg이었다.

‘이거 에바가 한 거야?’

―아닙니다. 때가 되어서 자연 발아된 것입니다.

‘후훗! 이거 정말 간절히 바라니 우주가, 아니 재능이 나를 도와주네. 이러면 절대 질 수가 없잖아.’

―이제 20분을 풀로 뛰어도 큰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에바의 진단은 MRI나 전문의보다 훨씬 정확하다. 그녀가 그렇다면 아마 그럴 것이다.

대한의 의욕은 이제 머리끝까지 뻗쳤다. 그는 이제 출격할 시간만 손꼽아 기다렸다.

삐익!

“우와아아!”

마침 숭신고의 공격수가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에서 넘어졌다. 주심은 반칙을 선언했고 최정규 감독은 즉시 대한을 불렀다.

“대한아! 나가서 프리킥 차라!”

“네, 감독님.”

즉각적으로 숭신고의 선수 교체가 이뤄졌다. 주장 이강희가 나오고 대한이 들어갔다. 이강희가 스쳐 지나가면서 대한에게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의 눈에서 승리에 대한 강한 열망을 느낄 수 있었다.

대한은 이강희에게 전염된 열정을 가슴에 품고 경기장을 밟았다.

“이거 넣을 수 있겠어?”

“으음.”

프리킥 위치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 치우쳐 있었다. 일반적으로 직접 노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로 각이 없었다.

―마스터, 오른쪽 골대를 보고 감아 차는 수밖에 없습니다.

‘내 눈에도 그렇게 보이는군.’

대한은 급히 한정우를 불렀다.

“형! 저 좀 도와주세요.”

“왜? 자신 없어?”

“골대 오른쪽을 직접 노릴 거예요. 그런데 골키퍼가 눈치채면 확률이 떨어져요.”

“아! 그래서 나보고 신경을 분산시켜 달라는 말이구나.”

“네.”

“알았어. 그 정도야 당연히 도와줘야지.”

한정우도 승리에 대한 갈망이 무서울 정도였다. 평소 대한과 말도 잘 안 하면서 지금은 그를 도와 어떻게든 골을 넣으려고 했다.

한정우는 미드필더진을 불러 작전을 짰다. 그들은 대한이 프리킥을 차는 동시에 페널티 에어리어 안으로 돌진할 것처럼 아주 부산하게 움직였다.

그러자 현대고 수비진과 골키퍼의 시선도 이들을 따라 부지런히 움직였다. 자연히 숭신고 선수들의 움직임을 살피느라 어쩔 수 없이 신경이 분산됐다.

삐익!

주심이 휘슬을 불자 대한은 천천히 달려갔다. 이건 빠른 속도보다는 정확하게 차넣어야 한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는 정확하게 차는 것에 자신이 있었다.

뻥!

대한은 가볍게 볼을 찼다. 허공으로 떠오른 볼은 누가 봐도 골대로 들어갈 것 같지 않았다. 하지만 밖으로 나가리라 생각했던 축구공은 골대 근처로 다가가자 무섭게 각도를 꺾으며 휘어들어 갔다.

“어!”

그제야 골키퍼가 허공으로 몸을 날렸다. 하지만 볼은 골키퍼를 비웃기라도 하듯 오른쪽 골대 상단 모퉁이로 쏙 들어가 버렸다. 이건 알고 있어도 못 막는다는 절묘한 코스였다.

“와아아아!”

숭신고 축구장이 함성으로 폭발했다. 수백 명의 학생과 관중들이 일제히 소리를 질렀다. 그 박력에 마치 대지가 진동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숭신고 학생과 관중들은 미칠 듯이 좋아했다. 그런데 관중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미쳐 날뛰는 여자 한 명이 있었다. 바로 리나였다.

그녀는 특유의 맑은 고음으로 대한을 향해 환호성을 내질렀다.

“야호! 대한, 나이스! 프리킥 마스터! 대한 넘버 원!”

대한은 그 소리를 듣자 한 손을 들더니 리나를 향해 흔들었다.

그때, 골대 안에서 한정우가 볼을 들고 뛰어나왔다. 그는 대한을 스쳐 지나가며 크게 소리를 질렀다.

“시간 없다. 골 세레모니는 생략한다.”

“나이스 샷! 한 골 더 넣자!”

“할 수 있다.”

한 골을 넣자 숭신고 축구부 선수들의 사기가 올랐다. 반대로 현대고 벤치는 아주 당혹스러워했다. 현대고 감독 김충식의 얼굴도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래도 아직은 현대고가 두 골 더 앞선 상황이다.

삐익!

경기가 재개됐다. 현대고는 수비보다는 골을 더 넣을 생각이었다. 막강한 공격 자원을 바탕으로 연신 숭신고의 골문을 위협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누구도 대한을 신경 쓰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현대고 선수들도 프리킥 말고 그에게 딱히 뛰어난 게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 하지만 대한은 누가 보든 말든 부지런히 몸을 움직였다.

숭신고의 공격이 시작되면 페널티 에어리어를 좌우로 왔다 갔다 했다. 수비를 교란하려는 움직임이었다. 문제는 현대고 수비들이 그를 별로 신경 쓰지 않아 효과가 미미하다는 것이다.

이에 상관없이 바쁘게 뛰어다니는 대한의 모습은 숭신고 축구선수들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키고 있었다.

뻥!

미드필더 양지면이 한정우에게 길게 패스했다. 현대고 수비 세 명이 즉시 한정우를 둘러쌌다. 한정우는 자신을 도와주는 공격수가 없음을 깨닫고 골대를 쳐다봤다. 하지만 거리가 너무 멀었다.

무엇보다 현대고 수비들이 쌓은 인의 장막으로 인해

골을 넣을 가능성이 너무 낮았다. 그때 대한이 기다렸다는 듯이 상대의 빈 곳으로 침투해 들어갔다.

툭!

한정우는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빠르게 패스를 했다.

“대한아!”

패스하고 나서 대한의 이름을 불렀다.

‘아차!’

한정우는 내심 자신이 실수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한은 마치 당연히 올 줄 알았다는 듯 쉽게 볼을 잡았다. 그리고는 거칠게 중앙으로 돌파를 시도했다.

스위퍼가 빠르게 다가와 그를 가로막았다. 대한이 슛 모션을 취했다. 최종 수비수는 반사적으로 자신의 한쪽 발을 앞으로 쭉 내뻗었다. 하지만 대한은 슛을 하지 않았다.

슛 모션을 취하면서 반대로 볼을 툭 밀어놓았다. 그러자 골대를 향한 길이 훤히 열렸다.

프리킥의 마법사 대한!

그는 골키퍼를 신경 쓰지 않고 왼발 인사이드로 정확히 볼을 찼다.

퉁!

축구공은 바닥으로 쫙 깔려 미끄러졌다. 골키퍼는 몸을 날리다 말고 그대로 땅에 주저앉았다. 오른쪽으로 찰 줄 알았는데 대한이 왼쪽으로 차버린 것이다. 화가 났는지 골키퍼는 주먹으로 땅을 치며 분통을 터트렸다.

“와아아아!”

또다시 축구장이 뜨거운 함성으로 들끓었다. 숭신고 학생들은 제자리에서 방방 뛰며 대한을 연호했다.

“대한! 대한! 대한! 대한! 대한…….”

리나도 그 물결에 동참해 목이 터져라 대한을 외쳐댔다. 웨이양과 통역 서주연도 카메라 옆에서 방방 뛰며 좋아했다.

숭신고 축구장은 ‘대한’이란 이름 하나로 대동단결했다.

그가 골을 넣는 장면은 아메리카 TV, 트워치, 유티비로 동시에 송출됐다. 대한의 엄청난 활약에 고무된 시청자들은 당연히 달풍선과 비트 그리고 후원금을 쾌척했다.

그는 골도 넣고, 돈도 벌고, 축구 선수로 이름도 알리는 일거양득, 아니 일거삼득의 효과를 누렸다.

리나 역시 대한 때문에 지금 한몫 단단히 챙기고 있었다. 그녀가 응원하는 모습은 인기를 많이 끌었다. 거기에 더해 대한이 경기에서 멋지게 골을 넣어버리자 리나의 시청자들도 덩달아 열광해 마지않았다.

그들은 아낌없이 지갑을 열어 후원하기 시작했고 일부는 대한에게 전해 달라며 거액을 투척하기도 했다.

현재 스코어 3대4, 이제는 현대고의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그들은 전원 수비로 돌아섰다. 10분만 버티면 무조건 이기는 경기다. 굳이 공격하다가 역습의 기회를 헌납할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현대고 김충식 감독은 자신도 모르게 최악의 자충수를 두고 말았다. 그는 깜빡하고 대한의 프리킥 능력을 고려하지 않았다.

차라리 공을 돌리면서 시간을 끌었다면 어땠을까? 아마 현대고는 경기에서 승리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전원 수비로 돌아선 순간 경기의 주도권은 숭신고로 넘어갔다.

숭신고는 한정우라는 걸출한 공격수와 대한이라는 비장의 수를 동시에 사용할 수 있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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