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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재능(Feat. 대한 TV)-49화 (49/331)

49화 <보이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집으로 들어오는 적을 리나가 단박에 잡아 죽였다.

“오! 나이스!”

“헤헤, 나 잘하죠?”

리나가 대한의 얼굴을 쳐다보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실력이 상당하네요. 하루 이틀 해본 솜씨가 아니에요.”

“제가 좀 눈썰미가 있어요.”

대한의 칭찬에도 그녀는 겸손을 몰랐다. 대한민국에서는 이게 욕을 먹을지 모르지만, 영어권에서는 절대 나쁜 멘트가 아니었다. 오히려 자신감이 쩌는 게이머가 더 인기가 많았다.

이제는 대한의 차례였다. 2층으로 올라간 대한은 미리 봐둔 저격 포인트에 가서 자리를 잡았다. 그리곤 느긋하게 다리를 건너는 적들을 저격으로 해치웠다.

탕! 탕! 탕! 탕! 탕!

대한이 쏜 총에 적들은 대부분 한방에 즉사하던가 기절해서 바닥을 박박 기어 다녔다.

“와! 저격 잘하네요.”

“저격은 많이 쏘는 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정확히 쏘는 게 중요합니다.”

“그래도 대한처럼 잘 맞추는 사람은 처음 봤어요.”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은 법입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는 카메라를 한번 쳐다보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살에 파묻혀있던 얼굴이 점점 살아나고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예전 같으면 욕이 나왔을 타이밍에 패기 지린다며 달풍선과 비트가 쏟아졌다. 그러나 이제는 달풍선과 비트에 연연하던 예전의 그가 아니었다.

물론 크게 터트려주는 시청자에게는 고맙다고 꼭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게임 안에서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처음에 리나에게 집중하던 시청자들도 게임이 진행되자 점차 대한의 플레이에 매료됐다.

대한은 못 하는 게 없었다. 돌격, 저격, 파밍, 미션, 쇼맨십 등, 배그를 무기 삼아 온갖 쇼를 다 펼쳐댔다. 리나도 그의 플레이만큼은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고 핵을 쓰는 것 같진 않았다. 대한에게 핵보다 더한 치트키 에바가 있다는 사실은 아마 영원히 밝혀지지 않을 것이다.

적당히 게임 방송을 하고 난 후 대한과 리나는 먹방으로 종목을 바꿨다.

“오늘 저녁은 뭐예요?”

“바로 이겁니다.”

대한이 이동용 탁자 위를 덮은 하얀 천을 걷어냈다.

“우와! 봉골레 스파게티다.”

리나가 조개로 예쁘게 세팅된 스파게티를 보더니 좋아서 방방 뛰었다. 덕분에 시청자들의 눈도 덩달아 위아래로 널뛰기를 했다.

대한은 말릴까 하다가 그냥 내버려 뒀다. 사실 방송으로만 따지자면 리나가 그보다 한참 선배였다. 그런 그녀가 자신의 모습이 카메라에 어떻게 비칠지 모를 리가 없었다. 아마 지금도 리나가 일부러 의도한 것일 수도 있다.

“좀 부족할 것 같아서 이렇게 피자도 준비했어요.”

대한은 은색으로 빛나는 커다란 뚜껑을 열었다. 페퍼로니와 각종 토핑이 가득한 고구마 피자가 지글거리는 속살을 내보이며 뜨거운 김을 모락모락 피워대고 있었다.

“피자다!”

리나는 그의 어깨를 잡고는 좋다고 마구 점프를 해댔다.

시청자들의 눈동자가 지진이라도 난 듯 흔들렸다. 덕분에 달풍선과 비트가 또다시 와르르 쏟아져버렸다. 대한은 흥분한 그녀의 어깨를 지그시 잡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배고파요.”

“아! 나도요.”

리나는 그의 말을 듣자 곧바로 의자에 얌전히 앉았다.

대한은 손수 피자를 잘라서 그녀의 접시에 놓았다. 그러자 리나는 커다란 숟가락과 포크로 봉골레 스파게티를 돌돌 말았다.

“아! 해봐요!”

“아!”

그녀는 대한의 입 안에 돌돌 만 스파게티를 쏙 넣어줬다. 그는 입을 오물거리면서 맛있게 스파게티를 먹었다. 리나는 그 모습이 좋았는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대한도 가만있지 않았다. 피자 한 조각을 집어 그녀의 입으로 가져갔다. 리나는 좋다고 냉큼 한입 베어 물었다.

“포도주가 있으면 완벽하겠네요.”

“포도주는 없지만, 포도 주스는 있어요.”

“그럼 우리 그걸로 포도주를 마시는 기분을 좀 내봐요.”

“좋아요.”

방송을 시청하고 있던 웨이양이 재빨리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손에는 어느새 포도주 잔과 포도 주스가 들려있었다.

챙!

대한과 리나는 허공에 살짝 잔을 부딪쳤다. 포도주 잔에 담긴 포도 주스가 크게 찰랑거렸다.

두 사람은 슬쩍 팔을 교차하더니 대놓고 러브샷을 했다. 그녀는 포도 주스를 마시며 살짝 부끄러운 표정을 지었다. 팬들을 의식한 100% 레알 연기였다.

채팅창이 바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말벌봉준: 이거 뭐지? 귀척?]

[다섯공무원: 달달하다.]

[손톱이빨개: 그린라이트!]

[여친찾았다: 올! 이건 우결각!]

[작업멘트0: 개달달! 혹시 찐탠?]

[부부젤라: 둘이 사귄다는 것에 만 원 건다.]

[개좋앙: 리나가 대한을 노리고 있습니다.]

[홍콩여자: 대한의 잘생김 폭발!]

[늑골뽑기: 장래희망 대한이!]

[동해바다귀신: 개부럽다.]

리나의 여우 짓은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카메라에서 안 보이는 아래쪽으로 그녀는 대한의 손을 잡고 깍지를 꼈다. 나중엔 발로 그의 종아리를 툭툭 치며 장난도 쳤다.

덕분에 대한은 재미와 긴장감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그래서 더욱 즐겁게 방송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다.

“아아! 배불러요.”

“나도 배불러요.”

둘은 몸을 의자에 기댄 채 서로 자신의 배를 쓰다듬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대한이 리나에게 물었다.

“질문이 있어요.”

“뭔데요?”

“어떻게 하면 리나처럼 노래를 잘 부를 수 있죠?”

“노래를 즐겨 부르면 돼요.”

“그렇게만 하면 나도 노래를 잘할 수 있는 걸까요?”

“물론이죠.”

리나는 자신의 전공 분야가 나오자 자신만만했다.

“그러지 말고 나 노래 좀 가르쳐줘요.”

“오케이!”

그녀는 대한의 제안을 흔쾌히 승낙했다.

“일단 같이 노래를 몇 곡 불러봐요.”

“어떤 노래를 부르실 거예요?”

“제 음반에 수록된 ‘Fell in love’를 불러야죠.”

“아하!”

대한은 순간 자신의 멍청함을 탓해야 했다.

리나는 당연하다는 듯 자신의 노래를 불렀다.

♬ I saw your smile down from sunshine. I fell in love…….♭

그녀는 맑고 고운 음성으로 애절하게 사랑 노래를 불렀다. 대한은 처음에 이게 어떻게 가능한지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는 이상철의 재능 ‘노래(SSS)’를 흡수한 상태였다. 시간이 지나자 저절로 하나둘씩 이해가 가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리나의 노래가 끝나자 대한은 물개 박수를 쳤다. 채팅 창도 그녀의 노래에 감동한 듯 박수 이모티콘이 도배됐다.

“멋진 노래였어요.”

“이제 대한이 한번 불러봐요.”

“네.”

리나가 기타를 치자 대한은 그녀의 가이드를 따라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I saw that dark when you showed me that kiss…….♩

투박한 목소리였다. 그래도 대한은 열심히 리나의 노래를 따라 불렀다. 그녀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 지금 나오는 목소리가 본래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것 같아요.”

“그게 무슨 소리예요?”

“발성이 잘못됐다는 말이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리나는 잠시 생각을 하더니 곧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일단 목에 힘을 빼세요.”

“목에 힘을 어떻게 빼요?”

“하품할 때 입 모양을 만들어 보세요. 물론 과도하게 하지 말고.”

“이렇게요?”

“맞아요. 잘했어요. 이제 호흡으로만 가성을 한번 내보세요.”

대한은 그녀가 시키는 대로 소리를 냈다.

“아!”

당연히 처음부터 잘할 수는 없었다. 리나는 고개를 흔들더니 먼저 그의 자세를 교정해 줬다.

먼저 어깨를 살짝 마사지해 주면서 힘을 빼게 했다. 그 뒤 손으로 대한의 목을 곧게 세우고 입을 적당히 벌리게 했다. 그러면서 그의 배에 손을 대고 살짝 눌렀다.

“가수들의 바람 빠진 가성을 한번 흉내 내보세요.”

“예.”

대한은 그녀의 가르침을 잘 따랐다. 그러자 놀랍게도 조금씩 그의 목소리가 변하기 시작했다. 10분쯤 지나자 대한의 목소리가 몰라보게 좋아졌다.

시청자들은 변화를 눈치채고는 깜짝 놀랐다. 채팅 창은 곧 뜨겁게 달아올랐다.

[터프가이: 이건 또 뭐야?]

[치킨효린: 나가수 가즈아!]

[No재팬: 대한의 또 다른 재능 발견?]

[고로쇠콜라: 목소리 괜찮네.]

[코란도일: 잘 가르치누!]

[화가난다: 뭐야, 이 새끼! 이제는 노래까지 잘하겠다고?]

[비도깨: 개좋아.]

[대폭주: ‘대모’ 버리고 ‘한라’ 간다.]

[코만도: 역시 가수라서 그런지 가르치는 게 차원이 다르네.]

놀란 것은 시청자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놀란 것은 리나 자신이었다.

‘목소리가 참 좋다. 진하고, 굵고, 호소력이 있어.’

그녀는 신이 났다. 가르치는 족족 흡수를 잘하니 가르치는 맛이 났다.

“이제 다시 한번 불러봐요.”

“네.”

대한은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그러고는 어깨에 힘을 뺀 상태에서 천천히 노래를 불렀다.

♬ We fell in love. I’m playing this song for you…….♪

이번에는 대한도 깜짝 놀랐다. 마치 자신이 부른 것 같지 않은, 전혀 다른 사내의 목소리가 스튜디오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에바! 내 목소리가 원래 이렇게 좋았어?’

―마스터! 살이 빠지면서 성대가 온전한 기능을 회복했습니다. 앞으로 제대로 노래를 배운다면 대성할 수도 있겠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에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자신에게도 남모르는 재능이 있었다. 거기에다 트리플 S 등급의 재능인 노래(SSS)를 흡수했으니 이건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 격이 됐다.

짝짝짝짝!

리나는 입을 딱 벌리며 두 손으로 손뼉을 쳤다. 채팅 창에서도 박수 이모티콘이 도배되기 시작됐다.

대한이 정말 노래를 잘 불러서가 아니다. 처음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아진 그의 매력적인 목소리에 감탄했기 때문이었다.

“대한! 정말 목소리가 좋아요.”

“진짜죠? 장난 아니죠?”

“절대 농담 아니에요. 제대로 발성을 배우고 전문가에게 보컬 트레이닝을 받는다면 아마 훨씬 더 좋아질 거예요. 대한에게는 정말 재능이 있어요.”

대한은 리나의 말에 만족한 미소를 지었다. 현직 가수가 하는 말이라 더욱 믿음이 갔다. 시청자들도 그녀의 말에 대부분 동의했다. 덕분에 채팅창은 오늘도 비가 주룩주룩 흘러내렸다.

“리나! 혹시 아는 보컬 트레이너 있어요? 난 그쪽에 문외한이라서 잘 몰라요.”

“으음, 한번 알아볼게요. 보컬 트레이너는 모르지만 좋은 보컬 트레이너를 소개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알고 있으니까요.”

역시 인맥이 최고였다. 꽌시라했던가? 리나에겐 그 비슷한 게 국내에서도 발휘되는 모양이었다.

“이제 저는 됐으니까 리나의 노래를 들려줘요.”

“좋아요.”

그녀는 절대로 빼지 않았다. 리나는 기타를 치며 자신의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시청자들은 박수와 함께 달풍선과 비트를 쏴줬다.

대한도 옆에서 아낌없이 박수를 보냈다. 리나의 개인 방송 시청자들도 절대 가만히 있지 않았다. 쪽수의 나라답게 후원도 황사처럼 마구 뿌려댔다.

대한과 리나는 그렇게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그들만의 환상적인 캐미를 드러내며 수익도 참 알찬 방송을 했다.

“아!”

물론 모든 시청자가 대한과 리나의 합방에 환호하는 것은 아니었다.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최고급 아파트, 펜트하우스. 그곳의 거실 한쪽 벽에 걸려있는 초대형 LED TV에서 대한과 함께 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리나의 모습이 보였다.

짧은 잠옷만 입고 편하게 소파에 앉아있는 미녀는 방송이 시작되자 연신 손톱을 깨물며 안절부절못했다.

“왜 전화를 안 하지? 이번 주는 나와 합방을 하지 않으려는 건가?”

모니카의 눈동자가 전에 없이 불안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 * *

“악! 골이다.”

“으악!”

“제길!”

“또 먹었네.”

숭신고 축구장은 비명과 한숨으로 물들어갔다.

현재 스코어는 1대4, 숭신고가 한 골을 넣었고 울산 현대고가 네 골을 넣었다. 후반전을 시작한 지 채 10분도 지나지 않았다는 것을 생각하면 실로 참담한 수준이었다.

“대한을 투입해라!”

“대한은 왜 안 나오냐!”

“감독 뭐 하냐? 빨리 대한을 넣어라!”

사람들은 이제 대한만 찾았다.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나와서 시원하게 골을 넣어주니 숭신고를 응원하는 학생들과 관중은 대한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제길 할 수만 있다면 나도 당장 대한을 넣고 싶다고.’

숭신고 축구부 감독 최정규는 속으로 절규했다. 그러나 겉으로는 담담한 얼굴을 유지했다.

그는 무너진 선수들의 사기를 북돋는 데 전념했다.

“괜찮아! 다들 잘하고 있어. 10분만 더 버티면 대한이 나갈 거야. 그때까지 수비에 전념하자!”

“네, 감독님.”

그들은 힐끗 고개를 돌려 열심히 몸을 풀고 있는 대한을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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