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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재능(Feat. 대한 TV)-46화 (46/331)

46화 <패션쇼>

파파팟! 파파파팟! 팟팟팟!

폭발적인 카메라 세례와 머릿속이 하얗게 변할 정도로 터지는 미친 듯한 플래시!

셔터의 융단 폭격에도 늠름하게 잘 버티고 선 두 사람은 나름 잘 어울리는 한 쌍이었다.

대한은 자신이 무슨 생각으로 어떻게 레드 카펫을 빠져나왔는지 몰랐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그는 어느새 올림픽홀 안에 서 있었다.

“어휴! 끝났다.”

“대한! 괜찮아?”

“아니, 안 괜찮아. 나 죽는 줄 알았어.”

“호호호! 천하의 대한이 이런 일로 앓는 소리를 다 하네.”

“레드 카펫을 밟으면 밟는다고 미리 나한테 얘기를 했어야지!”

“내가 미리 말했으면 도망쳤을 거 아냐? 안 그래?”

“그, 그거야…….”

대한은 쉽게 대답을 하지 못했다.

모르긴 해도 아마 자신은 그녀의 말대로 줄행랑을 놓았을지도 모른다.

“이제 다 끝났어. 다시 포토 라인에 설 일은 없을 거야.”

“정말이지?”

“응, 내가 왜 대한에게 거짓말을 하겠어?”

“레드 카펫 얘기도 안 해줬잖아.”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았잖아. 물어보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말해!”

“하아!”

대한은 뻔뻔하게 나오는 리나의 말에 그만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더는 레드 카펫을 밟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어서 들어가자.”

“그래.”

그는 지나간 일을 잊고 리나와 사이좋게 걸어갔다. 대회 진행 관계자가 나와 그들을 VIP 좌석으로 인도했다. 의자에 착석하자 앞에 웨이양과 통역이 보였다.

리나가 미리 언급을 해뒀는지 두 사람은 리나와 대한의 앞에 삼각대 두 개를 설치해 놨다. 삼각대 위에는 카메라가 열심히 돌아가고 있었다.

‘에바! 지금 생방송 중이지?’

―네, 마스터! 아메리카 TV, 트워치, 유티비까지 전부 라이브로 나가고 있습니다.

‘아까 레드 카펫 걸을 때 나 어땠어? 바보 같지 않았어?’

―나름 훌륭하셨습니다. 도도한 척하는 게 재수 없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고 웃는 게 촐싹맞다고 하는 시청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전반적으로 무난하단 평이었습니다.

‘너 지금 나 놀리는 거지?’

―에이,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대한의 말에 에바는 시치미를 딱 잡아뗐다. 어쨌든 현재 생방송 중이니 표정 관리를 잘해야 한다.

그는 리나와 다정하게 대화를 하고 가끔 농담도 하면서 웃기도 했다. 처음에는 좀 긴장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이제는 그럭저럭 견딜만해 졌다.

무엇보다도 그녀가 현재 돌아가는 상황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줘서 이해하기가 쉬웠다.

잠시 후, 아시아 모델 피에스타의 화려한 막이 올랐다. 웨이양과 통역이 잽싸게 카메라를 무대를 향해 돌리고 뒤로 빠졌다. 그제야 대한은 좀 살만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리나는 옆자리에 앉은 패션모델과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대한도 누군지 모를 여자를 향해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그는 자신의 옆에 누가 앉았는지 궁금했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쳐다보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어! 가수 이상철?”

“안녕하세요!”

대한이 깜짝 놀라자 이상철이 웃으며 먼저 인사를 했다.

이상철은 한국이 낳은 최고의 팝 가수이자 록 가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가수가 누구냐고 물어보면 항상 수위에 꼽히는, 가창력 쩌는 실력파 가수가 바로 이상철이었다.

라이브 실력도 뛰어나서 2,000회 이상의 공연 동안 단 한 번도 팬들을 실망하게 한 적이 없다는 전설적인 가수였다.

“안녕하세요! 이대한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나게 돼서 반갑습니다.”

“네, 반가워요. 그런데 어디선가 본 것 같기도 한데, 이름을 잘 모르겠네요.”

솔직하게 난 너 모르겠다고 하기에는 민망했었나 보다. 대한은 싱긋 미소를 지으면서 그에게 자신의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액정을 몇 번 누르자 곧바로 대한 TV가 떠올랐다.

이상철이 대한의 스마트폰을 보는 사이, 그는 에바를 호출했다.

‘에바!’

―네, 마스터!

‘이상철 정도면 노래 재능은 최고겠지?’

―그의 실력과 명성이라면 노래 재능이 SS 등급 이상은 될 겁니다.

‘좋아! 결정했어. 이상철의 재능을 얻겠어.’

―예스, 마스터! 신체 접촉을 해주세요.

대한은 이상철에게 몸을 살짝 기울였다.

자신의 스마트폰을 터치하는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손가락이 이상철의 손에 닿게 했다.

“유명한 유티버셨군요. 구독자 수가 아주 많습니다!”

“네, 요새 좀 많이 늘었습니다. 아마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 초대된 것 같아요.”

“그렇군요. 그런데 이거 은근히 재미있네요. 나중에 집에 가서 꼭 봐야겠어요.”

“‘구독’과 ‘좋아요’를 잊지 말고 꼭 눌러주세요.”

“하하하! 예, 알겠습니다. 꼭 그렇게 할게요.”

대한과 이상철은 웃음을 지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에바!’

―피코셀을 주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재능 흡수 대상자 이상철의 DNA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의 최대 재능이 뭐지?’

―역시 ‘노래(SSS)’입니다.

‘우와! 대박! 트리플 S 등급이네.’

―보기 드문 재능의 소유자가 분명합니다. 재능 ‘노래(SSS)’를 흡수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재능 ‘노래(SSS)’를 흡수합니다.

대한은 이상철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이렇게 엄청난 재능을 아낌없이 전해 주다니, 이 정도면 싱크로율이 안 좋아도 최소 S 등급은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운이 좋다면 SS 등급도 가능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들지 않을 수가 없었다.

쿵, 쾅! 쿠쿠쿵! 쿵, 쾅! 쿠쿠쿵!

발랄 상큼한 음악과 함께 조명이 번쩍거렸다. 곧이어 K-POP 스타와 글로벌 스타들이 나와 축하 공연과 퍼포먼스를 펼쳤다.

대한과 이상철은 대화를 멈추고 이제 무대에 집중했다. 확실히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사람들이라서 그런지 보는 재미가 있었다.

그때 리나가 살며시 그의 손을 잡아 왔다. 대한은 슬쩍 그녀의 얼굴을 한번 쳐다보고는 깍지를 꼈다. 이렇게 했는데도 여자가 가만히 있다는 것은 최소한 키스까지는 허락한다는 의미라는 말을 얼핏 들은 기억이 났다.

그런데 리나는 그저 가만히 있는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깍지 낀 손에 힘을 꽉 줬다.

‘에바! 이건 뭐지?’

―마스터! 바보세요? 그건 좋다는 신호잖아요.

‘그, 그렇지? 그런데 왜 너 나한테 욕하냐?’

―제가 언제요? 마스터가 당연한 것을 물어보시고, 자꾸 바보같이 굴어서 바보 같다고 하는 건데요. 팩트를 말하는 것이 욕은 아니지 않습니까!

‘끄응.’

대한은 에바에게 본전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어야 했다. 여기서 더 따지면 괜히 쪼잔한 인간이라는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았다.

멋진 공연과 판타스틱한 퍼포먼스가 끝났다. 이어 아시아 스타와 스타 모델들의 시상식이 거행됐다.

리나와 대한은 누군가 상을 탈 때마다 열심히 손뼉을 쳤다.

하지만 손을 내릴 땐 둘은 어김없이 깍지를 끼고 다리 사이의 틈으로 숨겼다.

무대의 화려함이 객석의 어둠을 북돋워 주었다. 그래서 대한과 리나는 아무도 모르게 둘만의 소소한 애정 행각을 벌였다.

드디어 화려한 오프닝 패션쇼와 퍼포먼스가 시작됐다. 글로벌 디자이너 및 브랜드의 패션쇼와 스칼라 쇼가 연속으로 이어졌다. 단지 패션쇼만 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정말 볼거리가 많았다.

대한은 신세계를 발견한 것처럼 눈이 호강하는 기분이었다. 아마 자신의 구독자와 시청자들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이다.

거기에다 리나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시그널을 강하게 보내자 그는 기분이 좋다 못해 아주 짜릿해졌다.

안타를 노렸는데 만루 홈런을 쳐버린 기분이랄까? 대한은 리나를 따라 아시아 모델 피에스타에 오길 참 잘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대한의 생애 최초의 패션쇼 나들이는 긴장과 흥분, 기대와 피에스타로 서서히 마무리되어갔다.

* * *

“하나, 둘, 하나, 둘! 잘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팔 굽혀 펴기를 할 때는 똥꼬, 아니 엉덩이에 힘을 빡 주고 해야 한다는 거죠?”

“네, 그렇습니다. 또한, 어깨와 귀가 최대한 멀어진다는 느낌으로 직각으로 하셔야 부상의 위험이 줄어듭니다.”

피트니스 트레이너 김강한의 도움을 받아 대한은 팔 굽혀 펴기 자세를 아주 정밀하게 교정했다.

그는 열 번쯤 팔 굽혀 펴기를 하다가 고개를 치켜들었다.

“제 자세가 지금 어떻습니까?”

“아주 좋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주의 사항을 잘 지키고 계십니다.”

대한은 미소를 지으며 일어났다. 그는 수건으로 이마의 땀을 닦은 후 카메라를 보면서 자신 있게 말했다.

“오늘은 김강한 피트니스 트레이너를 모시고 집에서 누구나 할 수 있는 팔 굽혀 펴기의 올바른 자세에 대해 알아봤습니다. 여러분도 저와 같이 매일 운동으로 멋진 몸을 만들어 갑시다. 참고로 여긴 은평구 신사동에 새로 오픈한 스트롱 피트니스 센터입니다. 그럼 저는 저녁에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여러분! 건강하세요!”

대한이 인사를 하자 채팅 창에서도 인사하는 이모티콘이 도배되었다. 에바는 곧바로 엔딩 동영상을 연결하고 카메라를 껐다.

방송이 종료되자 대한은 김강한 트레이너이자 피트니스 센터 오너에게 고개를 숙였다.

“수고하셨습니다.”

“아이고! 대한 씨야말로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카메라가 꺼지자 김강한은 조금 전의 근엄한 자세를 풀었다. 그리고 본래의 싹싹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대한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음료수를 꺼내왔다. 둘은 사이좋게 음료수를 나눠 마시며 의자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런데 그걸로 되겠어요?”

“뭐요? 저 여기 1년 무료 사용권이요?”

“아이, 왜 이러실까? 다 아시면서.”

“무슨 말씀이세요?”

김강한은 웃으면서 대한의 어깨를 한번 툭 쳤다.

“그거 말고 대한 씨 채널을 통해 오시는 분들 5% 할인해 드리는 거 있잖아요.”

“아, 그거요? 저도 5% 커미션 따로 받잖아요.”

“너무 적은 것 같아서 그러죠.”

“이제 막 신장개업했는데 초반에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사업하기 힘들지 않아요? 전 그 정도가 딱 적당하다고 생각합니다.”

대한의 말에 김강한의 눈이 뜨거워졌다.

김강한은 그의 손을 덥석 붙잡았다.

“고마워요. 앞으로 피트니스 센터 잘되면 제가 커미션 팍팍 올려드릴게요.”

“네, 꼭 그렇게 해주세요.”

김강한이 대한의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 하지만 대한은 가슴에 털이 복슬복슬 난 남자와 계속 손잡고 있을 생각이 없었다. 그래서 살짝 손을 빼면서 일어나 샤워실로 도망쳤다.

오후 운동은 그렇게 끝이 났고 대한은 시원하게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었다. 그의 몸은 리나 덕분에 거저 얻은 명품으로 이미 도배가 되어있었다.

집으로 걸어가는 길, 명품을 알아보는 몇몇 젊은 여자들의 눈이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모니카와 리나의 범접할 수 없는 레벨의 아름다움에 익숙해진 대한은 아무런 감정도 드러내지 않았다.

아시아 모델 피에스타를 다녀온 다음 날 아침, 명품으로 꽉 채워진 상자들이 집으로 배달됐다. 그중에는 리나와 대한이 본적도 없는 신상품까지 껴있었다. 마를린이 잘 봐달라는 의미에서 특별히 신경을 써준 것 같았다.

순간 이렇게 막 퍼줘도 비즈니스가 잘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신이 명품 회사를 걱정하는 것은 누가 봐도 우스운 일이었다.

어쨌든 리나 덕분에 대한은 이제 ‘패알못’에서 벗어났다. 그래서인지 나름 꾸미는 것에도 조금씩 관심을 두게 됐다.

‘에바! 노래 재능을 흡수했으니 어떻게든 높은 등급을 획득해야겠어.’

―노래방이라도 가실 생각입니까?

‘아니. 그동안 내가 생각해 봤는데……. 이런 건 전문가에게 도움을 받는 게 높은 등급을 받는 데 훨씬 유리할 것 같아.’

배워도 제대로 배워야 한다. 어설프게 배워봤자 등급만 깎이는 수가 있다.

―그럼 보컬 학원에 다니시려고요?

‘응. 하지만 내가 아는 곳이 없어서 살짝 망설여져.’

―그럼 오늘 저녁 리나와 합방을 할 때 한번 물어보세요.

‘리나가 한국에 사는 것도 아닌데 보컬 트레이너를 어떻게 알겠어?’

―인맥이라는 게 있잖아요.

‘아! 그렇지.’

인맥이라는 에바의 말에 대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당장 자신도 그 인맥이라는 것의 큰 수혜자였다. 전화 한 통에 패션쇼의 VIP 좌석을 얻질 않나, 콧대 높기가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명품 회사 꾸치에서 기꺼이 협찬해 준다고 명품을 상자째 집으로 배달까지 하질 않나. 거기다 특별 상품권과 더불어 신상품까지 잘 챙겨주는 것을 보면 과연 인맥의 힘은 대단했다.

참고로 꾸치 특별 상품권은 어머니에게 바로 선물해 드렸다. 대한은 그 일을 통해 어머니도 여자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엄청나게 좋아하시는 모습에 무척 가슴이 뿌듯한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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