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2화 <한중 합작사>
이제 그녀에겐 더 이상 소원권이 없었다. 대한에게 소원권 세 장이 모두 넘어간 것이다. 그는 앞으로 고리나에게 언제든지 소원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부르기만 하면 비행기를 타고 달려와야 한다든가, 아니면 자신이 원하는 날에 합방을 요구할 수도 있었다.
그들은 장난처럼 만든 소원권의 가치가 두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대단하다는 것을 아직 깨닫지 못했다.
소원권의 행사를 통해 앞으로 어떻게 둘의 인연을 이어갈지는 전적으로 대한에게 달려있었다.
“배 안 고파요?”
“배고파요.”
아직 둘 다 저녁 식사 전이다. 한창 식욕이 왕성할 때라 그들은 밥 먹고 돌아서면 또 배가 고프다. 그래서 영양가 있는 균형 있는 식사를 잘 챙겨 먹어야 한다.
대한은 고리나가 한식을 좋아한다는 것을 에바에게 들었다.
그래서 오늘 저녁은 정통 한정식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신호를 보내자 고리나의 매니저와 통역이 스튜디오의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왔다. 그들은 맛있는 요리로 가득 찬 이동용 책상을 카메라 앞으로 조심스럽게 옮겨놓았다.
“우와!”
고리나는 한정식을 보자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좋아서 방방 뛰었다.
“고리나! 한식 좋아해요?”
“물론이죠. 없어서 못 먹어요.”
“그럼 이거 다 드셔야 해요.”
대한의 말에 그녀는 동공에 지진이 나며 입맛을 다셨다.
“히잉! 다 먹고 싶은데 그러면 살쪄요.”
“내가 살 안 찌는 것만 골라서 줄게요.”
“정말요?”
“물론이죠. 그러니 많이 드세요.”
“예, 감사히 잘 먹겠습니다.”
대한과 고리나의 합방은 자연스럽게 먹방으로 넘어갔다. 그는 한정식에 관해 설명하며 느긋하게 식사를 했다.
미녀와 함께하는 디너는 언제나 즐겁다. 그녀는 먹는 모습까지 참 예뻤다. 둘은 맛있게 식사를 하면서 여러 가지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대한은 중국 여행에 관해 물어봤다. 그녀는 위구르에 꼭 한번 놀러 오라고 권했다.
고리나는 한국의 뷰티와 패션에 대해 관심이 많았다. 불행히도 대한은 뷰티와 패션에 관해서는 완전 먹통이었다. 그래서 은근슬쩍 쇼핑으로 넘어갔다.
마침 그녀도 쇼핑을 좋아했다. 대한은 고리나가 원하면 같이 쇼핑을 가주겠노라고 약속했다.
“참! 나 듣고 싶은 노래가 있어요.”
“뭔데요?”
“강아지 송이요.”
“왕왕 송이요?”
“네.”
“그럼 식사 후에 대한을 위해 왕왕 송을 불러줄게요.”
고리나는 노래에 관해서는 조금도 빼지 않았다. 그녀의 직업은 일단 배우와 모델이다. 하지만 가수도 겸하고 있어서 노래에 꽤 자신이 있는 것 같았다.
특히 그녀가 부른 왕왕 송은 지금 중국에서 아주 인기가 폭발하는 중이었다. 더 열심히 불러서 이 열기를 대한민국까지 퍼뜨리고 싶어 했다. 욕심인지 모르지만 어쩐지 대한 TV를 통해선 그게 가능해 보였다.
이동용 책상을 가득 채운 한정식 앞에서 고리나는 살이 찌는 것이 두려워 조금씩 맛보는 것으로 만족해야만 했다.
식사를 마친 후 대한은 잠시 광고를 틀어놓았다. 그사이 그들은 욕실 겸 화장실로 가서 나란히 이빨을 닦았다.
거울을 통해 서로를 바라보면서 치카치카를 했다. 왠지 웃음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둘은 나이도 한 살 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대한과 고리나는 금세 친해졌다.
같이 방송을 하는 사람으로 어느 정도 동질감도 느꼈다.
‘대한은 참 대단한 사람이야.’
그녀는 물로 입을 헹구면서 생각했다.
대한의 합방 제의를 받았을 때 고리나는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한TV 채널을 보기 시작한 후 생각이 달라졌다.
우선 구독자 수와 팔로워 수가 엄청난 것에 무척 놀랐다. 그리고 대한이 처음 찍어서 내보냈다는 ‘1초 식스팩’ 동영상을 보자 그만 빵 터지고 말았다.
고리나는 대한이 다이어트를 하며 운동하는 동영상도 보았다. 매일매일 자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멋있게 보였다.
고리나는 대한의 동영상을 보면 볼수록 왠지 가슴이 짠해졌다. 그러다가 프리킥을 차는 동영상을 틀었다. 그가 힘차게 볼을 차서 멋지게 프리킥을 성공시키는 것을 본 순간,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만 울컥해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두 손을 하늘로 힘차게 들어 올리는 대한의 모습! 그것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 같았다.
고리나는 그때 언뜻 대한에게서 후광이 비치는 걸 본 듯했다.
사실 그녀에겐 약간 금사빠 기질이 있었다. 금세 사랑에 빠졌다가 금세 헤어 나온다. 그렇다고 인기 절정의 고리나가 아무에게나 마음을 여는 것은 절대 아니었다.
“그 소원권 언제 쓸 거예요?”
수건으로 입가를 닦으면서 고리나가 물었다.
대한이 싱긋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이거 쓰면 약속대로 소원 들어줄 거예요?”
“물론이죠. 처음부터 그러기로 했잖아요.”
그녀는 당연하다는 듯 입술을 앙다물었다. 대한은 고리나의 그런 모습이 정말 예쁘고 귀여워서 꽉 깨물어주고 싶었다.
‘모니카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줄 알았는데……. 세상은 참 넓구나.’
대한은 그녀의 빠져버릴 것 같은 푸른 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한국에는 언제까지 있을 거예요?”
“모델 일과 화보 촬영을 위해 일주일 정도 더 있을 예정이에요.”
“그럼 일주일 안에 몇 번이나 시간을 낼 수 있어요?”
“설마 내 소원권을 일주일 안에 다 쓰려고요?”
“그럼 어떻게 해요? 고리나는 금방 중국으로 돌아가야 하잖아요.”
“앞으로 날 리나라고 불러줘요.”
“오케이!”
“딱 두 개만 쓰세요. 그리고 중국으로 놀러 와요. 내가 잘해 줄게요.”
뭘 어떻게 잘해 준다는 말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하지만 대한은 리나의 눈빛에 깃든 호감을 읽어낼 수 있었다.
“좋아요. 두 장만 쓸게요. 그리고 나머지 한 장은 신장으로 놀러 갈 때 가져갈게요.”
“위구르로 꼭 놀러 오세요.”
리나는 대한에게 ‘위구르’라는 말을 강조했다. 그걸 눈치챈 대한은 그때부터 그녀와 둘이 있을 땐 신장을 반드시 위구르라고 말했다.
방송이 다시 시작되자 리나는 자신의 노래인 ‘왕왕 송’을 불렀다.
♬ 소중한 친구를 지킬 거야 왕 왕 왕♩
♭ 사랑을 위해 달려가면서 왕 왕 왕♪
♪ 조금만 기다려줘 내가 갈게 왕 왕 왕♬
고양이 송과 병아리 송에 이은 강아지 송! 듣고 보니 정말 재밌는 노래였다.
중국에서는 개가 왕왕 짓는다고 한다. 그래서 노래의 제목이 ‘왕왕 송’이다. 포인트는 리나의 맑고 고운 목소리와 귀엽고 깜찍한 율동이었다.
대한은 그녀의 노래하는 모습에 절로 입이 딱 벌어졌다. 아니, 방송을 보고 있는 남자 시청자들이라면 아마 대한처럼 금방 무장 해제가 되고 말 것이다.
짝짝짝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박수가 쏟아졌다. 이어 달풍선과 비트도 폭포수처럼 떨어졌다. 그녀의 개인 방송에서도 후원이 물밀 듯이 들어왔다.
대한과 리나는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 슬쩍 현재 시청자 수를 확인해 보니 무려 15만에 육박하고 있었다. 리나의 풍력 버프도 상당해서 40만 개가 가뿐하게 넘어갔다.
이번에 아메리카 TV의 파트너 BJ가 되면서 정산율이 8대2로 바뀌었다. 덕분에 현재까지 달풍선으로만 3,200만 원을 벌고 있는 셈이었다.
대한은 시선을 돌려 동시 송출을 하고 있는 트워치를 살펴봤다. 이쪽도 현재 시청자 수가 50만이 넘어갔다. 비트 후원도 벌써 달풍선을 능가하는 1,200만 비트가 쌓여있었다.
영어로 진행을 해서 그런지 중화권을 비롯해서 세계 각지에서 방송을 지켜보고 있는 것 같았다.
“혹시 한국 노래도 부를 수 있어요?”
“요새 즐겨 부르는 노래가 하나 있어요.”
“그럼 한 곡만 더 불러줘요.”
“알겠어요.”
리나는 미리 준비라도 해왔는지 밖에서 기타를 가져와 즉석에서 노래를 했다.
최근 OST 맛집이라는 ‘Hotel De Luna’중 거미의 ‘기억해 줘요’였다.
♩아무 이유 없이 눈물 나는 날에는 그댈 찾아가고 있네요.♬
리나는 ‘왕왕 송’ 같은 귀여운 노래도 잘 불렀다. 하지만 이렇게 감성 가득한 애절한 노래도 너무 잘 어울렸다.
대한의 감동하는 표정이 카메라를 통해 여과 없이 그대로 방송됐다. 그 모습에 중화권의 시청자들은 큰 자부심을 느꼈다.
반대로 대한의 팬들은 서툰 한국말이지만 맑고 고운 음색으로 부르는 리나의 노래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주었다.
짝짝짝짝짝짝!
노래가 끝나자 대한은 벌떡 일어나 물개 박수를 쳤다. 리나는 살짝 부끄러워했다. 채팅 창에도 짝짝 소리가 거대한 물결을 이루었다.
시간을 보니 어느새 마무리할 때가 다되었다.
“여러분! 이제 그만 방송을 종료해야 할 것 같습니다. 아쉽죠? 이런 말을 하는 저도 무척 아쉽습니다. 오늘은 중국의 차세대 사대 여신인 고리나 양을 스튜디오로 모셨습니다. 앞으로 기회가 닿으면 반드시 이 자리에 다시 모실 것을 약속드리겠습니다.”
“저도 오늘 대한과 합방을 해서 너무나 즐겁고 재미있었어요. 꼭 시간을 내서 다시 여러분을 만나고 싶어요.”
“감사합니다. 저는 내일 다시 뵙겠습니다. Good bye!”
“다음에 또 봐요! Bye bye!”
대한은 아쉬워하는 티를 팍팍 내면서 빠르게 방송을 종료했다.
“리나! 수고했어요.”
“대한도 고생 많았어요.”
“고생은요. 오늘 방송은 리나가 다 했는데.”
“아니에요. 배그 방송할 때 제 개인 방송으로 수십만 명의 시청자들이 한꺼번에 유입됐어요.”
“그래요? 난 전혀 몰랐는데…….”
“저도 매니저가 얘기를 해줘서 알았어요.”
“그랬군요.”
“대한이 중국에서 방송하면 아마 대박 날 거예요.”
방송이 끝나고 리나와 재미있게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그녀의 매니저 웨이양이 다가와서 슬쩍 끼어들었다.
“대한, 혹시 중국에 진출할 생각 없어요?”
“나중에는 모르지만 당장은 불가능해요, 웨이양.”
“아! 너무 아깝네요. 지금 대한이 중국에서 방송하면 아마 엄청 인기를 끌 수 있을 텐데.”
“나중에 중국에 진출하게 되면 그때나 좀 도와주세요.”
대한의 말에 리나가 갑자기 박수를 치며 말했다.
“굳이 중국에 가서 방송할 필요가 뭐가 있어요? 이쪽에서 생방송으로 동시 송출하면 되잖아요.”
“그게 가능할까요? 난 한국 사람인데.”
그의 이견에 리나의 매니저 웨이양이 고개를 흔들었다.
“합작 회사라도 세우지 않는다면 아마 그건 불가능할 겁니다.”
“그럼 합작 회사를 세우면 되잖아요.”
“네?”
리나의 말에 오히려 웨이양이 깜짝 놀랐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것도 나쁜 방법은 아니었다. 먼저 회사에서 허락을 받기만 하면 말이다.
“이건 회사에서 허락해 주지 않을 수도 있어요.”
“왜 회사에서 허락을 받아요? 이건 엄연히 나와 대한의 문제인데.”
“아! 그럼 리나와 대한이 일대일로 합작 회사를 세우면 되겠군요.”
“내 말이 바로 그 말이에요.”
대한은 둘이 하는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었다.
잠시 리나와 웨이양은 치열하게 논쟁을 벌였다. 그러다가 결론을 내렸는지 최종적으로 제안을 해왔다.
“리나 51, 대한 49로 중국에 합작 회사를 세웁시다.”
“난 좋아요.”
“나도 괜찮아요.”
리나와 대한이 거의 동시에 찬성을 하자 웨이양이 다시 말을 이었다.
“먼저 리나의 이름으로 중국의 유명 인터넷 방송국에 개인 방송 계정을 열겠습니다. 그런 후 대한이 보내주는 동영상을 다시 보기로 전부 올릴게요.”
“생방송도 가능할까요?”
“아마 될 겁니다. 하지만 먼저 당국에 허락을 받아야 합니다.”
당장 생방송은 곤란할 수도 있다는 말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일단 기다려보죠.”
“먼저 수익이 생기면 스트리머인 대한이 50%를 가져갑니다. 그런 후 모든 제반 비용을 제외하고 남은 수익금에서 공평하게 대한과 리나가 반씩 가져가는 겁니다. 어때요?”
“전 어떻게든 좋아요.”
“나도 그게 공평한 것 같네요.”
조건이 너무 좋았다. 리나와 대한이 합작 회사를 세운 후 중국에서 일어나는 모든 법적 문제까지 리나가 책임지기로 했다.
대한은 스트리머로 수익을 얻고 다시 순수익에서 반을 가져갈 수 있게 됐다. 리나가 돈에 전혀 욕심을 부리지 않아서 가능한 계약이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사실 리나가 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그녀의 이름으로 계정을 하나 더 여는 것뿐이었다.
동영상을 올리는 것은 대한의 스튜디오에서도 얼마든지 가능했다. 그러니 에바만 바빠지게 생겼다.
리나는 대한 때문에 공짜로 돈을 벌게 됐다고 좋아했다. 초기 자금이 천만 원 정도 들어가지만 그건 리나가 알아서 해결한다고 했다.
그들은 계약서를 만들어 변호사 입회하에 정식으로 계약하기로 했다. 리나는 기왕 만나는 것 소원권 하나를 쓰라고 대한에게 졸라댔다. 어쨌든 이렇게 대한은 얼렁뚱땅 중국에 진출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