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40화 (40/331)

40화 <고리나>

BJ 말론은 아메리카 TV에서 잘나가는 대표적인 남캠이다. 얼굴도 잘생겼지만 입담도 대단해서 시청자와 구독자가 꽤 많았다.

무엇보다 미국에서 잠깐 산 적이 있어서 어느 정도 영어가 됐다. 그래서 그런지 이번 모니카와의 합방은 큰 인기를 끌었다.

“대한과 할 때는 참 즐겁고 편해 보였는데……. BJ 말론과 합방할 때는 뭔가 어색하고 긴장감이 느껴진다.”

“그래서 더 좋은 거 아니야?”

“좋긴 뭐가 좋아?”

“남녀가 만나면 서로 긴장해야지. 너무 편하면 안 좋아.”

“그거야 썸을 탈 때나 그렇지.”

헬렌은 제니퍼의 볼을 잡아당기며 윽박질렀다.

“이렇게 처음 만나는데 어색하면 제대로 그림이 나오겠니?”

“아우, 아우! 그만! 네 말이 맞아. 그럴 수도 있겠다.”

헬렌의 강공에 제니퍼는 결국 설득당해 버리고 말았다. 모니카는 한국에 놀러온 친구들인 제니퍼와 헬렌을 바라보며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방송을 하는 건 난데 왜 너희가 난리니?”

“모니카! 딱 봐도 BJ 말론이 달달하게 보이려고 온갖 쇼를 다 하고 있잖아.”

“그건 헬렌의 말이 맞는 것 같아.”

제니퍼는 금세 헬렌에게 붙어버렸다.

“모니카! 대한과 합방 잘하다가 갑자기 왜 BJ 말론과 합방을 한 거야?”

“대한이야, 말론이야? 하나만 해!”

“그게 무슨 말이야? 난 그냥 BJ 말론에게 합방 제의가 와서 한번 해본 것뿐이야.”

모니카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항변했다. 제니퍼와 헬렌이 너무 심하게 감정 이입을 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

“그거야 네 생각이고. 대한은 지금 얼마나 가슴이 아프겠어?”

“가슴이 아프다니? 대한이 왜?”

“너 정말 몰라서 묻는 거야?”

“내가 뭘 모른다는 거야?”

제니퍼와 헬렌이 동시에 눈을 가늘게 뜨고 모니카를 쳐다봤다.

“앙큼한 계집애 같으니라고, 좋으면 좋다고 그러지.”

“그러게 말이야. 괜히 대한에게 상처만 주고 있어.”

“너희들 설마… 대한이가 날 좋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녀는 결국 하고 싶지 않은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아니, 말을 하면서도 모니카는 자꾸 대한이 생각났다.

“대한이만 너를 좋아하는 게 아니라 너도 대한이를 좋아하는 거 아니었어?”

“맞아. 내가 볼 때는 둘 다 서로에게 호감이 있고, 관심도 있다고.”

“얘들이 정말! 대한의 나이가 몇 살인 줄 알아? 이제 겨우 17살이야. 아직 법적으로 미성년자란 말이야.”

모니카의 호통에 제니퍼가 깜짝 놀랐다.

“어머! 그게 정말이야?”

“그래서 뭐? 너도 21살밖에 안 먹었잖아. 4살 차이는 얼마든지 사랑으로 극복할 수 있어.”

헬렌은 모니카의 말에도 불구하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헬렌! 너 미쳤어? 나 은팔찌 차는 거 보고 싶어서 그래?”

“그게 뭐가 어때서! 청춘 남녀가 만나서 사랑도 하고, 때론 사고도 칠 수 있는 거지.”

과격한 헬렌의 말에 그녀는 입을 딱 벌렸다.

“기집애! 자기 일 아니라고 말 막 하는 것 좀 봐!”

“난 무조건 대한 모니카 존버야.”

“그런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대한 TV에서 가르쳐줬잖아.”

모니카는 대한과 합방할 때가 생각이 났다.

그는 자신이 직접 이탈리아를 가르친 학생이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대한과 영어나 이탈리아어로 대화하는 게 너무 편했다.

거기에다 실시간으로 자막을 내보내 주는 에바라는 동시통역사의 존재도 그리웠다.

“어머! 이 미친 자식 좀 봐! 모니카에게 키스하려고 막무가내로 들이대네.”

“그거 전부 상황 설정이야.”

“그딴 헛소리를 누가 믿어? 자꾸 네가 싫다고 하는데도 이상한 게임을 해서 스킨십을 하려고 하잖아.”

헬렌의 말에 제니퍼가 눈을 깜빡거리면서 말했다.

“뭐, 키스 정도야 대수로운 게 아니잖아?”

“안 돼! 모니카는 대한이 거야!”

제니퍼는 헬렌이 예민한 반응을 보이자 의심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키스 정도야 얼마든지 인사로 받아줄 수도 있는 것이 아닌가!

“헬렌, 너무 대한 편만 드는 거 아니야? 아무리 생각해도 네가 그렇게까지 두둔할 상대는 아니잖아.”

“대한이가 뭐가 어때서?”

“걔 몸도 뚱뚱하고 얼굴도 좀 그렇지 않니?”

“제니퍼! 너 언제 적 얘기하고 있는 거야? 요새 대한이 얼굴 물오른 것 못 봤어? 거기에다 다이어트와 꾸준한 운동으로 점점 몸짱이 되어가고 있다고.”

제니퍼가 헬렌의 말을 듣더니 잽싸게 틈을 파고들었다.

“에이, 그건 좀 오버다. 많이 봐줘야 너드(nerd)지.”

“아오! 나 정말 미치겠네. 너 요새 대한이 프리킥 차서 골 넣는 거 못 봤지? 그렇게 존재감 쩌는 범생이 봤어?”

기본적으로 제니퍼는 헬렌의 전투력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헬렌이 강하게 나오자 제니퍼는 또 금세 마음이 바뀌어서 모니카를 타박했다.

“모니카! 네가 잘못했어. 대한이에게 전화해서 미안하다고 해! 어서!”

“내가 정말 너희 때문에 못 살겠다.”

모니카는 결국 이들과의 대화를 포기하고 소파에 널브러졌다.

넓은 거실 너머 환하게 뚫린 창가로 석양이 물들고 있었다. 시선을 아래로 내리자 도도하게 흐르는 한강의 강물이 보였다.

‘내가 괜한 짓을 했나? 설마 대한이 화난 것은 아니겠지? 아침에 전화했을 때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았는데…….’

모니카는 살짝 마음이 심란해졌다.

BJ 말론과 합방을 해서 얻은 것이 별로 없었다. 인지도가 조금 올라가고, 출연료로 50만 원을 받았다. 하지만 그 정도는 모니카에게 별 의미가 없었다.

“꺄악!”

그때 헬렌이 자지러지게 비명을 질렀다. 모니카는 놀라서 벌떡 소파에서 일어났다.

“헬렌! 왜 그래?”

“뭐야?”

모니카와 제니퍼는 급히 헬렌에게 다가갔다. 사색이 된 헬렌의 입에서 나오는 말에 순간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았다.

“대한이 다른 여자와 합방을 한대.”

“그게 무슨 소리야?”

“대한이 중국의 떠오르는 차세대 미녀 스타인 고리나와 합동 방송을 하고 있어.”

“그게 정말이야?”

헬렌의 말에 모니카보다 제니퍼가 더 흥분했다.

모니카는 입술을 꼭 깨물더니 얼른 리모컨을 들었다. 한쪽 벽을 꽉 채우다시피 한 커다란 LED 벽걸이 TV가 켜졌다. 그녀가 자신의 스마트폰을 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자 채널이 바뀌면서 곧 대한 TV가 떠올랐다.

―안녕하세요? 대한 TV의 대한입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고리나입니다.

미소를 짓는 대한 옆에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자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

“예쁘다.”

제니퍼는 무심결에 말을 했다가 급히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헬렌이 모니카를 슬쩍 쳐다봤다. 그런 후, 제니퍼의 옆구리를 손가락으로 푹 쑤셨다.

“아야! 아파!”

“아프라고 찌른 거야.”

제니퍼는 헬렌을 원망스런 눈으로 쳐다봤다. 하지만 곧 표정을 굳히고 얌전히 입을 다물었다. 어쩐지 TV 화면을 보는 모니카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던 것이다.

모니카는 주먹을 꼭 쥐고 화면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헬렌은 고개를 살짝 흔들더니 급히 인터넷을 검색했다.

“고리나! 위구르 출신으로 중국의 차세대 사대 여신 중 하나로 꼽힌다. 한류를 좋아하고 배우이자 모델이며 가수를 겸하고 있다. 왕왕 송을 불러서 인기 폭발 중이다.”

모니카는 헬렌의 목소리에 자신도 모르게 반응했다.

“위구르인이라서 금발과 푸른 눈을 가지고 있었구나.”

그녀의 독백에 제니퍼와 헬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둘 다 푸른 눈에 금발이었다. 그래서인지 제니퍼와 헬렌은 모니카의 말을 가슴 깊이 이해하지 못했다. 그건 아직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녀만의 남모를 동경심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금발이 섞인 갈색 머리에다 푸른 눈을 가지고 있는 동양의 미녀! 그래서 아주 신비롭고 아름다운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진짜 걱정스러운 것은 대한과 고리나의 케미가 너무 잘 맞는다는 것이다.

그녀는 상냥하고 목소리도 참 듣기 좋았다. 게다가 영어 실력도 보통이 아니었다. 대한과 고리나는 통역이 전혀 필요 없었다. 조금의 어색함도 없이, 마치 물이 흐르듯 자연스럽게 소통하고 있었다.

파직!

모니카의 평정심에 점차 금이 가기 시작했다.

* * *

“돌리세요.”

팽그르르!

고리나는 손바닥만 한 원형의 판을 돌렸다. 원반은 한참을 돌아가다 천천히 멈춰 섰다.

그녀의 시선이 화살표 방향을 향했다. 거기에는 춤추는 여자의 애니메이션이 그려져 있었다.

“대한, 이게 뭐죠?”

“섹시 댄스네요.”

“어머! 그럼 나 야하게 춤을 춰야 하는 건가요?”

“네, 맞아요.”

고리나는 살짝 당황했다. 그녀가 제일 자신 없어 하는 것이 댄스다. 그중에서 섹시 댄스는 정말 쥐약이었다.

그래도 게임은 게임이고, 벌칙은 벌칙이다.

“섹시 댄스를 추기 싫으시면 소원권 한 장 주세요.”

대한이 개구쟁이 같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리나는 그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무슨 말이에요. 소원권이라뇨! 당연히 섹시 댄스 출 거예요.”

“음악 들어갑니다.”

그는 기다렸다는 듯이 음악을 틀었다. 그녀는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들어오는 댄스 음악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다잡고 춤을 추기 시작했다.

“풋!”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나 고리나를 생각해서 급히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고장 난 로봇같이 뻣뻣한 그녀의 춤! 아무리 봐도 섹시 댄스와는 거리가 먼 동작이었다. 하지만 채팅 창은 이런 고리나가 귀엽다고 난리가 났다.

[닥공: 귀엽다.]

[만수르SUH: ㅇㅈ 그래도 저건 섹시 댄스가 아니다.]

[우리두리: 예쁘니까 저렇게 막춤 춰도 그림이 된다.]

[어벤저스: 귀엽누!]

[톰과제리: 대한이 배꼽 빠진다.]

[꼬끼오: 개못춤]

[자주국방: 졸귀!]

[카리스마: 둘이 잘 어울린다.]

[No재팬: 대한 모니카 존버!]

[핵인싸: 졸귀 ㅇㅈ]

이런 반응은 국내뿐만이 아니었다. 고리나가 켠 그녀의 개인 방송에서도 분위기는 비슷했다.

생방송으로 송출된 화면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중국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인구 대국답게 고리나의 개인방송 시청자는 이미 백만을 넘어가고 있었다. 대한의 이름이 중국에 알려진 최초의 방송이기도 했다.

한편 아메리카 TV의 대한 TV 채널 시청자 수도 10만을 돌파했다. 트워치의 대한 TV 채널의 시청자 수는 33만을 사뿐히 넘겼다.

그러나 양쪽 플랫폼의 시청자 수를 전부 합쳐도 고리나의 개인 방송 시청자 수에는 미치지 못했다. 역시 쪽수로는 인도를 빼놓고는 대적 불가의 국가인 중국다웠다.

“괜찮아요?”

“네.”

댄스 음악이 꺼지자 고리나는 살짝 숨을 헐떡거렸다. 대한은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를 꺼내 줬다. 그녀는 고맙다고 깍듯이 인사를 하고는 생수를 받았다.

고리나는 생수의 뚜껑을 따고는 그대로 입에 대고 벌컥벌컥 마셔버렸다. 중국의 차세대 사대 여신이라는 이름은 신경도 쓰지 않는 시원스러운 행동이었다.

“저 어땠어요?”

“무슨 말이에요?”

“제 섹시 댄스 어땠냐고요?”

“아! 그게 섹시 댄스였습니까? 다들 막춤인 줄 알고 있는데…….”

“에에?”

고리나는 눈을 크게 뜨고 대한을 쳐다봤다. 그는 고개를 마구 흔들더니 손가락으로 채팅 창을 가리켰다.

“제 말이 아닙니다. 시청자분들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직접 한번 읽어보세요.”

“히잉! 나 진짜 열심히 췄는데…….”

그녀는 볼을 부풀리며 입술을 내밀었다. 그 표정이 너무나 귀여웠다.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채팅 창 보니까 제 말 맞죠?”

“이상하다. 왜 내 댄스를 막춤이라고 그러지?”

고리나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

원래 몸치는 자신이 몸치인 줄 모른다. 그리고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는지도 절대 깨달을 수 없다. 그걸 알면 벌써 몸치가 아니다.

대한은 그녀의 옆으로 슬쩍 다가오더니 한 손을 내밀었다.

“주세요.”

“뭘요?”

“소원권 주세요.”

“왜요?”

고리나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겠다는 듯 순진무구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대한은 가차 없었다.

“섹시 댄스가 나왔는데 막춤을 추셨잖아요.”

“그런 게 어디 있어요?”

“게임은 게임입니다.”

“우잉! 알겠어요. 벌칙은 벌칙이다.”

고리나는 할 수 없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소원권 한 장을 대한에게 넘겼다. 처음에는 장난삼아 시작한 게임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다 보니 그만 뜨겁게 불타오르고 말았다. 그래서 어떻게든 상대방의 소원권을 빼앗아오기 위해 노력했다.

게임이 어느새 진심이 되자 시청자들도 덩달아 감정이입이 되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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