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화 <질투>
대한은 일부러 채팅 창을 쳐다보지 않았다. 대한은 오늘 모니카와 전화 통화를 하면서 다른 BJ와 합방을 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그 대상이 아메리카 TV에서 수위를 달리는 잘생긴 남캠이었다.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어쩐지 기분이 무척 우울했다. 그래서 신경 쓰지 않으려고 일부러 더 게임에 집중했다. 하지만 시간이 가면 갈수록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마스터, 맵핵을 감지했습니다.
‘어떤 새끼야?’
안 그래도 빡치는데 핵 유저까지 나타났다. 짜증이 폭발한 그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도 날카로워졌다.
―저택 건너편 6시 방향입니다. 숨어서 저격을 하고 있습니다.
‘놈의 맵핵을 막고 적의 위치를 표시해 줘!’
―네, 마스터.
대한은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으로 배그를 즐기고 있었다. 세상의 모든 핵을 능가하는 슈퍼 울트라 초강력 치트키, 에바를 쓰지 않고 말이다.
그런데 꼭 이렇게 반칙을 하는 놈들이 있었다. 다른 것은 몰라도 그는 핵을 쓰는 유저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았다.
그래서 매번 이렇게 핵 유저를 발견하면 에바에게 맵핵부터 막게 했다. 그런 다음, 핵 유저를 찾아가 제일 먼저 죽여 버렸다.
그는 창문 밖으로 훌쩍 뛰어내렸다. 그 뒤 주변을 조심스럽게 살피다가 잽싸게 거리를 가로질렀다.
순식간에 건너편 저택에 도착한 대한은 문으로 내부를 살펴봤다. 아무도 보이지 않자 살며시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건물 안으로 들어와서는 계단을 타고 올라가 복도를 걸었다. 곧 방 한쪽 구석에 숨어 웅크리고 있는 적을 발견했다. 대한은 망설이지 않고 바로 총을 쐈다.
타타탕! 타타탕!
갑자기 맵핵이 먹통이 되자 놀란 핵 유저! 그는 대한이 이렇게 가까이 온 줄도 몰랐다. 그러니 그저 무방비로 당할 수밖에…….
―마스터, 핵 유저를 어떻게 할까요?
‘그냥 하던 대로 해!’
―예, 맵핵을 쓴 증거를 게임 회사로 보내서 영구 정지를 먹이겠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에 굳이 대답하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빠르게 훑어봤다. 마침 저격하기 좋은 곳이 있어 그쪽으로 이동했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지정 사수 소총(DMR)과 저격 소총(SR)을 버렸다. 대신 돌격 소총을 파밍했다. 그런 후 밖으로 무작정 뛰쳐나갔다.
시청자들이 대한의 행동에 미쳤냐고 난리를 피웠다. 하지만 그도 믿는 게 있었다. 아직 에바가 그대로 켜둔 덕분에 적의 위치가 고스란히 지도에 다 드러나 있었던 것이다.
대한은 가까운 곳에 숨어있는 적을 향해 수류탄을 투척했다.
쾅!
붉은 글자가 떠오르며 킬 수가 올라갔다.
대한은 그쪽은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옆으로 이동했다. 그는 일부러 죽고 싶은 놈처럼 사방으로 싸돌아다니며 소총을 갈겨댔다.
그 모습에 시청자들도 확실히 깨달았다. 대한은 지금 무척 열이 받았다는 것을 말이다.
[여친이미쳤다: 대한의 멘탈이 깨졌어.]
[작업거절: 개잘하누! 그런데 왜 이렇게 짠해?]
[다구리짱: 여친이 바람을 피우는 기분일 거야.]
[개좋앙: 모니카가 나빴다.]
[마카오여자: 모니카도 여캠인데 남캠과 합방할 수도 있지.]
[치킨제니: 다 죽여 버려!]
[계곡이슬: 보는 놈들은 재미있겠다. 우리 대한이만 불쌍해!]
[빗장깨기: 모니카가 다른 놈과 합방하면 대한이도 다른 여캠과 합방하면 되잖아.]
[동해영토수호: 맞다. 그동안 대한이와 합방하고 싶다고 공개적으로 밝힌 여캠도 한둘이 아니잖아.]
[터프한: 너도 그냥 맞바람 펴라!]
[운명179: 대한아, 합방 가즈아!]
채팅 창은 뜨겁다 못해 폭발할 듯 타올랐다.
대한은 결국 이번 판도 치킨을 먹고 말았다. 그런데 승리의 참맛을 전혀 느낄 수가 없었다.
남몰래 한숨을 쉬던 대한의 시선이 문뜩 채팅 창에 고정됐다. 순간 그의 눈에서 불똥이 번쩍 튀었다.
‘나도 다른 여캠이랑 합방을 하라고?’
―합동 방송은 BJ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기 위해서 하는 콘텐츠의 하나입니다. 모니카도 아마 그런 의미로 다른 남자 BJ와 합동 방송을 하는 것일 겁니다.
‘그런 의미라면 나도 얼마든지 합방을 할 수 있잖아?’
―물론이죠.
대한의 얼굴이 일순 묘하게 변했다. 에바는 그의 표정을 보자 뭔가 불길한 기분이 들었다.
대한 자신도 왠지 판도라의 상자를 여는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그보다는 가슴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덩어리를 해소하는 게 먼저였다.
‘에바!’
―네, 마스터.
‘합방을 할 만한 BJ를 찾아줘!’
―여캠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당연하지. 그럼 내가 남자 BJ와 합방을 하겠어?’
―혹시 국내 한정입니까?
‘아니, 그런 건 상관없어. 대신 아주 예뻐야 돼!’
―모니카보다 더 예쁘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말씀이시죠?
‘응.’
에바는 노골적으로 모니카를 언급했다. 하지만 대한은 이미 작정을 한 상태라 조금도 흔들리지 않았다.
모니카가 합방을 한다는 소리에 울적했던 기분은 어느새 다 풀려있었다. 그녀가 합방을 한다면 자신도 합방을 하면 그만이다. 오히려 여캠들로부터 러브콜이 넘치는 대한의 입장에서는 굳이 모니카만 고집할 이유가 없었다.
―즉시 알아보겠습니다.
‘얼마나 걸릴까?’
―이르면 오늘 저녁에라도 합방을 진행하겠습니다.
‘에바, 잘 부탁한다.’
―저만 믿으십시오.
에바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의욕을 불태웠다.
대한은 다시 게임에 몰두했다. 조금 전과는 달리 멘트도 하고 재미있게 즐기는 모습을 보였다. 덕분에 시청자들도 같이 웃고 떠들면서 환호성을 질러댔다.
한편 에바는 신나게 모니카의 신상을 털기 시작했다. 대한이 비록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합방 때문에 그의 심기가 불편해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이번 작전의 핵심은 대한의 합방이 아니다. 모니카가 대한의 합방을 보고 질투심을 느끼는 게 하는 게 주목적이다.
에바의 입장에서는 대한이 많은 미녀를 거느릴수록 좋았다. 그게 모니카가 아닌 누구라도 상관없었다.
포르낙스 은하계를 지배하는 볼트 행성 스파이럴 제국은 일부일처제가 아니다. 제국이라는 명칭에서 알 수 있듯이 황실과 귀족이 세상을 다스리는 엄격한 신분 사회였다.
에바에게는 지금 대한이 황제이자 귀족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니 당연히 그와 그의 자손이 번성하는 게 최고의 선(善)인 것이다.
‘모니카의 집안이 보통이 아니었네. 하지만 당장 이게 중요한 것은 아니지. 숨겨놓은 일기의 암호를 풀고 사진을 분석해 보면 과거에 사귀었던 남자가 한 명 있었군. 오오! 귀여운 동양 여자와 금발의 벽안 미녀를 동경하는구나.’
에바는 모니카의 성향을 열심히 분석했다. 그런 후 현재 대한민국에서 섭외 가능한 최고로 귀여운 여자와 금발의 푸른 눈을 찾아보았다.
여캠이 좋긴 하지만 꼭 BJ일 필요는 없었다. 그래서 에바의 레이더망은 점차 엔터테인먼트 쪽으로 영역을 확대했다.
그때 그녀의 정보망에 한국을 방문 중인 중국의 왕홍 두 명이 잡혔다. 둘 다 올해 18살로 중국에서 무섭게 떠오르는 신예들이었다.
왕홍(网红)은 왕루어홍런(网络红人)을 일컫는 말이다. 주로 중국 SNS에서 활동하면서 많은 팬과 영향력을 거느린 온라인상의 유명 인사를 뜻한다.
에바는 곧바로 이들의 SNS를 통해 연락을 취했다. 혹시 몰라서 대한의 유티비 채널과 페이스노트 및 원스타그램 주소도 함께 보냈다.
잠시 기다리자 양측으로부터 차례로 답장이 왔다. 그런데 운이 좋은지 두 명 모두 대한과 합방하기를 희망했다.
에바는 신이 나서 당장 오늘 저녁에 합방하자고 제의했다. 그러자 한쪽은 좋다고 했고 다른 한쪽은 난색을 표했다.
그녀는 즉시 전화를 걸었다. 자신의 실체가 드러나는 것이 아니라면 얼마든지 전화와 화상 통화가 가능했다.
그녀는 양측과 스케줄을 면밀하게 조율했다. 다행히 한 명은 전격적으로 오늘 저녁에 합방을 하기로 했다. 나머지 한 명은 시간이 되는 사흘 뒤에 합방하기로 예약해 놓았다.
―마스터, 기쁜 소식입니다.
‘나 바쁜 거 안 보여?’
―죄송합니다. 잠시 뒤에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한은 치킨 각을 잡기 위해 막판 스퍼트를 올리는 중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오늘도 그는 치킨을 먹으면서 게임을 끝냈다.
잠시 시청자들과 소통을 하고 난 후 대한은 방송을 종료했다.
“휴우우우! 끝났다.”
그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고는 냉장고에서 차가운 물을 꺼내 마셨다. 얼마나 목이 말랐는지 생수 한 통이 바로 비워졌다.
‘에바!’
―네, 마스터!
‘아까 얘기하려던 거 지금 말해 봐.’
대한은 에바가 기쁜 소식이 있다고 했던 게 기억났다.
―예, 한국에 들어온 유명한 왕홍 둘을 30분 전에 섭외했습니다.
‘왕홍이라면 중국의 SNS에서 활동하는 온라인 유명 인사잖아?’
―맞습니다.
매스컴을 통해 중국에 왕홍 마케팅이 유행한다는 기사를 본 기억이 났다.
‘짧은 시간에 용케 섭외했네.’
―마스터의 명령에 최선을 다했을 뿐입니다.
‘그 점은 높이 평가할게.’
―고맙습니다, 마스터!
에바는 즐거운 목소리로 허공에 두 여자의 사진과 프로필을 띄웠다.
‘우와! 둘 다 엄청 미인이다.’
―중국을 대표하는 차세대 미녀들입니다.
대한은 에바의 설명을 들으며 사진과 프로필을 찬찬히 살펴봤다.
―왼쪽 사진의 주인공은 ‘고리나’로 나이는 만 18세, 출신은 신장이라고 부르는 위구르입니다. 보시다시피 금발이 섞인 연한 갈색의 머리카락과 푸른 눈을 가지고 있는 배우이자 모델 겸 가수입니다.
‘재능이 아주 뛰어난 모양이군.’
배우, 모델, 가수를 한꺼번에 하는 건 절대 쉽지 않다. 얼굴이 예뻐서 배우와 모델을 같이 하는 경우는 많다. 하지만 배우와 모델 일 외, 가수를 겸하는 건 목소리도 좋아야 했기에 보기 드문 케이스였다.
―그렇습니다. 최근 ‘강아지 송’이라고 불리는 ‘왕왕 송’을 불러서 사람들에게 인기 폭발 중입니다.
‘고양이 송과 병아리 송은 들어봤어도 강아지 송은 처음 들어본다.’
―한번 들어보시겠습니까?
에바가 은근히 권했지만, 대한은 일단 사양했다.
‘노래는 나중에 듣기로 하고 먼저 설명부터 듣는 게 좋겠어.’
―예, 마스터! 고리나는 한류에 푹 빠져 사는 것으로 아주 유명합니다. 그녀가 먹고 마시고 바르고 입고 보는 거의 모든 게 한국에서 넘어간 것입니다.
‘그 정도면 아주 대단한 한류 팬이네.’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고리나의 SNS 팔로워는 현재 188만 명으로 오늘 저녁 8시에 마스터의 스튜디오로 직접 찾아와 합방하게 될 것입니다.
‘잘했어.’
―감사합니다.
대한은 고리나가 마음에 들었다. 자신보다 한 살이 많지만, 아직 어린 여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욕적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아가는 게 보기 좋았다.
특히 금발을 연상케 하는 갈색 머리카락. 그리고 남태평양의 푸른 산호초를 떠올리게 하는 벽안이 아주 매력적이었다.
―오른쪽 사진은 SNS 팔로워 288만 명을 보유하고 있는 ‘류연’입니다. 북경 출신 무용수로 어렸을 적부터 한류라면 사족을 못 썼다고 합니다.
‘무용수?’
―실력이 뛰어난 무용수로 전도가 유망했는데 자라면서 급격히 미드가 커지는 바람에 16살 때 꿈을 포기하고 대신 뷰티 아나운서와 모델로 전향했습니다.
에바는 설명을 하면서 슬쩍 류연의 수영복 사진을 띄웠다. 굴곡이 완연한 글래머 미녀가 대한의 시선을 자극했다.
‘오우, 야!’
대한은 류연이 왜 무용수를 그만둘 수밖에 없었는지 이해가 갔다. 누구라도 저 정도의 질량을 품은 채 춤추고 점프하는 일을 하는 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뷰티 아나운서는 뭐지?’
―여성의 뷰티에 관련된 제품과 정보를 제공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아나운서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뭐, 프로필에 써놓은 것이니까 대충 알아듣고 넘기면 될 것 같습니다.
‘뷰티 크리에이터 같은 건가 보네.’
대한도 에바의 말에 대충 넘겨버렸다.
―자세히 알고 싶다면 따로 확인해 보겠습니다.
‘그건 에바가 알아서 하도록 하고… 합방은 하겠대?’
―물론입니다. 다만 오늘과 내일은 시간이 안 난다고 합니다. 그래서 사흘 뒤에 합방을 예약해 놓았습니다.
대한은 에바의 일 처리가 상당히 마음에 들었다. 대한은 요즘 방송을 도와줄 직원을 고용할까 생각 중이었다. 하지만 직원을 고용하려고 해도 에바처럼 일을 잘할지가 걱정이었다. 그래서 아직 결정을 못 하고 망설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섭외비와 출연료는 얼마나 주기로 했어?’
―양쪽 모두 무료로 출연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대신 자신들이 진행하는 개인 방송도 동시에 송출하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거야 당연히 그렇게 해줘야지. 고리나와 류연이 뭘 좋아하고 어떤 것에 관심이 있는지 파악해서 알려줘!’
―네, 마스터!
대한은 활짝 미소를 짓고 있는 두 왕홍의 사진을 쳐다봤다. 그의 입가에는 개구쟁이가 사고 치기 전에 짓는 웃음기가 서려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