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화 <유망주>
“와아아아!”
“골!”
“골이다.”
“역전이다.”
숭신고 벤치에서 괴성에 가까운 함성이 치솟았다. 그들은 일제히 벤치를 박차고 나와 대한에게 달려갔다.
대한은 두 손을 높이 치켜들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는 즉시 두 팔로 자신의 몸을 감쌌다.
거센 파도에 휩쓸린 대한! 팀원들에 둘러싸인 대한은 마치 바람에 나부끼는 나뭇잎처럼 이리저리 흔들리기에 바빴다. 누군가 뒤통수를 세게 쳐서 눈에 별이 반짝이기도 했다. 하지만 골을 넣은 뒤에 솟구친 행복 호르몬 때문인지 기분이 정말 끝내주게 좋았다.
서해고 축구부 선수들과 벤치 그리고 관중들은 하나같이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대한이 찬 슛은 야신이 와도 못 막는 골이었다. 어떻게 고등학생이 이런 높은 퀼리티의 프리킥을 찰 수 있는지 믿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스포츠는 결과로 말하는 게임이다. 눈앞에 일어난 사실을 아무리 부인해 봐야 스코어는 바뀌지 않는다.
삐익!
경기는 다시 속개됐다. 숭신고와 서해고는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하게 경기에 임했다.
어떻게든 한 골을 넣으려는 자와 어떻게든 막으려는 자!
상반된 목적을 가진 선수들의 치열한 몸싸움이 벌어졌다.
그 와중에도 대한만은 유일하게 평화를 만끽하고 있었다. 그는 상대 팀의 페널티 에어리어 근처를 배부른 사자처럼 어슬렁거렸다.
그렇다고 누구도 감히 대한을 무시하는 이는 없었다. 프리킥 두 방으로 두 골을 욱여넣은 선수가 바로 숭신고가 보유한 비밀병기, 대한이었기 때문이다.
삐이익!
이윽고 주심이 휘슬을 길게 불었다.
치열했던 3분의 시간이 지나고 마침내 경기가 종료되었다.
결과는 4대3으로 숭신고 축구부의 역전승이었다.
“와아아아!”
경기가 끝나자 숭신고 축구부원들이 일제히 축구장으로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모두 한 사람을 향해 달려갔다. 그 사람은 바로 대한이었다.
그는 땀에 찌든 사내놈들이 자신을 향해 달려오자 재빨리 도망쳤다. 잘못하면 땀으로 비벼지고 아까처럼 뒤통수를 맞을 것 같아서다.
그 모습에 관중들은 배를 잡고 웃었다. 대한은 있는 힘껏 달렸으나 달리기에 특화된 축구 선수들을 쉽게 따돌릴 수는 없었다. 아무리 도망쳐봐야 대한은 축구장이라는 거대한 그물 안에서 파닥거리는 물고기였다.
결국 도망친 괘씸죄까지 더해져 그의 뒤통수는 불이 났다. 나중에 만져보니 혹까지 생긴 것 같았다. 거기다 헹가래까지 쳐주는데 놀라서 뒈지는 줄 알았다.
물론 대한의 몸무게를 미처 생각하지 못한 바람에 축구부원들도 허리가 나갈 뻔했지만.
“오늘 모두 수고 많았다. 서해고 축구부에서 특별히 우리보고 먼저 탈의실을 쓰라고 양보했다.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모두 버스에 올라타도록 해라!”
“네, 감독님.”
숭신고 축구부원들은 최정규 감독의 말에 아주 힘차게 대답했다.
승리는 언제나 달콤하다. 만약 졌다면 이들의 목소리가 이렇게 밝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각자 가방을 싸들고 탈의실로 이동했다. 다들 땀에 찌든 몸에서 쉰내가 풀풀 났다. 대한도 예외일 수 없었다.
그는 땀으로 젖은 유니폼을 벗어 던지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뜨거운 물이 쏟아져 내렸다. 온몸의 피로가 단박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대한은 자신의 첫 경기에서 멀티 골을 넣었다는 생각을 하자 하늘을 날 것만 같았다.
하지만 패배한 서해고 축구부원들을 생각하니 오랫동안 샤워하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최정규 감독의 말대로 빠르게 샤워를 마치고 샤워실을 나왔다. 그 뒤 준비해 온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자 기분이 무척 상쾌했다.
대한은 책가방을 메고 버스를 타기 위해 걸어갔다.
“대한아! 넌 이 차를 타야지!”
“네, 감독님.”
올 때 최정규 감독의 차를 타고 왔는데 돌아갈 때도 마찬가지인 모양이었다.
숭신고 축구부원들이 모두 나오자 최정규 감독은 버스를 먼저 출발시켰다. 그리곤 자신의 승용차로 버스의 뒤를 쫓아갔다.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그때 최정규의 스마트폰이 진동했다.
“여보세요?”
전화를 받더니 그는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는 연신 고개를 숙이며 통화를 했다. 옆에서 들어보니 K리그 수원 구단의 코치인 듯했다.
“지금요? 아! 지금은 좀 곤란한데요. 네네, 알았습니다. 잠시만요.”
최정규는 귀에 댄 스마트폰을 내리고 슬쩍 대한을 쳐다보며 물었다.
“대한아! 내가 지금 급하게 수원 구단을 가야 하거든. 너 혼자 집에 갈 수 있겠지?”
“물론이죠. 그런데 수원 구단을 갈 거라면 저도 같이 가면 안 될까요?”
“너도?”
“네, K리그 구단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구경해 보고 싶어요.”
“흐음, 일단 한번 물어볼게.”
“네, 감사합니다.”
최정규는 누군가와 다시 통화를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맡고 있는 숭신고 축구부원 한 명과 같이 가도 되냐고 물어봤다. 다행히 저쪽에서 쾌히 승낙을 해줬다.
―마스터, 어쩌려고 그러세요?
‘오늘 직접 축구 경기를 뛰어보니까 내가 얼마나 부족한지 깨달았어.’
―그래서 그 부족한 면을 수원 구단에 가서 채우겠다는 말입니까?
‘맞아. 거기에 가면 분명히 재능이 뛰어난 축구 선수들이 있을 거야.’
대한의 생각에 에바는 조금 다른 의견을 내놨다.
―마스터에게 필요한 재능은 주전 선수들보다 오히려 축구 유망주들에게 있을 확률이 높습니다.
‘어떤 재능을 말하는 거야?’
―축구를 좀 더 잘하고 싶다면 당연히 ‘축구 재능’부터 얻어야지요.
‘축구 재능이라는 재능도 있어?’
―네, 거의 모든 축구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재능 중 하나입니다. S 등급 이상을 흡수할 수 있다면 마스터는 아마 A 등급까지 획득이 가능할 겁니다.
‘축구 재능이라…….’
그다지 나쁠 것 같진 않았다.
‘축구 기본기’처럼 ‘축구 재능’은 축구에 관해 광범위한 영향력을 미친다. 등급이 높으면 높을수록 새로운 재능이 개화되고 축구를 더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고 보정해 주는 역할을 한다.
한 시간 만에 최정규와 대한은 수원 구단 클럽 하우스에 도착했다. 클럽 하우스는 부지 1,136평에 지하 2층, 지상 3층 규모였다. 거기에다 천연 잔디 3면까지 갖추고 있었다.
클럽 하우스는 전체적으로 안락한 분위기였다. 선수들이 최적의 컨디션으로 훈련할 수 있도록 동선을 최소화한 게 돋보였다.
휴게실, 식당, 사우나실, 체력단련실, 물리치료실 등, 꼭 필요한 시설을 완비하고 있는 게 좀 부럽기도 했다.
시설을 둘러보던 대한은 이내 실망한 기색을 내보였다. 수원 구단의 유명한 프로 축구 선수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소한 한 명쯤은 만나서 사인을 받을 줄 알았는데 아예 사람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최정규는 대한을 홀로 둔 채 여기서 코치로 일하고 있는 선배를 만나러 가버렸다. 그사이 대한은 휴게실에서 앉아 시간이나 죽이고 있어야 했다.
‘에바, 감독님을 괜히 따라온 것 같아.’
―아닙니다. 아주 잘 오셨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입구를 보십시오. 대한민국 최고의 유망주 중 하나인 정세진입니다.
‘아! 그 초등학생 시절부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해서 중고등부 득점왕과 MVP를 싹쓸이했다는 그 선수?’
―네, 맞습니다.
대한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고개를 돌려 보니 파란 유니폼을 입은 젊은 선수 몇 명이 식당을 향해가고 있었다.
‘나도 밥이나 먹어야겠다.’
―좋은 생각입니다.
그는 얼른 식당을 향해 뛰어갔다. 안 그래도 시합을 뛰고 왔더니 배가 출출한 참이었다.
다행히 클럽하우스 식당은 모든 것이 무료였다. 대한은 넉넉히 음식을 담아 창가 쪽에 자리를 잡았다.
―마스터, 지금 밥이 문제입니까? 당장 가서 신체 접촉부터 하세요. 정세진 정도면 최소한 S 등급의 재능을 가지고 있을 겁니다.
‘알았어. 가면 되잖아.’
대한은 식판을 내려놓고 정세진이 있는 테이블로 갔다.
선수들이 뭔가하고 그를 쳐다봤다. 하지만 대한은 오직 정세진에게만 포커스를 맞췄다.
“안녕하세요. 저는 정세진 선수의 팬이에요.”
“아! 네.”
“사인 한 장 부탁드려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정세진은 뻘쭘한 표정이었다가 곧 대한이 자신의 팬이라고 밝히자 동료들을 향해 우쭐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동료들은 그런 정세진을 보며 고개를 살짝 흔들었다. 서로 친하지 않으면 보일 수 없는 태도이기도 했다.
대한은 정세진에게 사인을 받으며 살짝 손가락을 스쳤다.
‘에바!’
―재능 흡수 대상자 정세진에게 피코셀을 주입했습니다. 현재 DNA 분석 중입니다.
‘최대 재능이 뭐야?’
―예상했던 대로 ‘축구 재능(S)’입니다. 흡수할까요?
‘당연하지. 바로 진행해!’
―네, 마스터!
이 정도면 대한민국 축구 유망주 중에서도 독보적인 재능이었다. 만 20세의 정세진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펼쳐질지 가히 짐작이 갔다.
“감사합니다. 매일 해트 트릭이 터지기를 기원하겠습니다.”
“하하하! 네, 고맙습니다.”
대한의 과장된 말에 정세진은 웃음을 터트렸다. 매일 해트 트릭을 터트리라는 말을 싫어할 축구 선수는 아마 없을 것이다. 어차피 돈 한 푼 안 드는 립 서비스이기도 했지만 정세진은 기분이 아주 좋아졌다.
대한도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 얼굴이 환했다.
양쪽 다 좋아하니 이거야말로 서로 윈윈(Win-Win)인 상황이다.
물론 정세진의 재능을 흡수하려면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나 그 정도는 같은 식당에서 식사하는 거로 충분했다.
우웅!
정세진이 동료 선수들과 식사를 마치고 나갈 때쯤 대한의 머릿속에서 익숙한 공명음이 들려왔다.
―마스터, 정세진의 재능인 ‘축구 재능(S)’을 흡수했습니다.
‘수고했어.’
대한은 그제야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 * *
5층 창문으로 보이는 야경은 아름다웠다. 하지만 창문에 비친 대한의 모습은 편치 않아 보였다.
“네네! 알겠습니다. 앞으로 조심하겠습니다.”
그는 전화를 끊고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휴우우우!”
에바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마스터, 괜찮으세요?
‘에바, 내가 지금 괜찮아 보이니?’
―신체 반응을 살펴보니… 많이 화가 나신 것 같습니다.
‘맞아. 나 화났어. 아오! 열 받아.’
대한은 한 손을 들어 자신의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에바!’
―네, 마스터!
‘내가 정말 잘못한 거야?’
대한은 에바의 솔직한 대답을 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스터의 행동은 법적으로 아무런 잘못도 없습니다.
에바의 말이 맞다.
개인 방송에서 의도적이지 않은 가벼운 키스나 신체 접촉 따위는 법적으로 문제가 될 게 없었다.
‘그런데 왜 아메리카 TV에서 나한테 일차 경고를 주는 거지?’
―아무래도 마스터가 미성년자라서 그런 게 아닐까요?
‘미성년자! 제기랄! 입술을 부딪친 건 내가 아니라 모니카잖아. 그리고 의도적인 것도 아니었고, 다른 BJ들도 다 하는 거 난 그냥 따라 한 건데……. 이게 문제가 된다고 말하니 정말 이해가 가질 않아.’
대한은 울화통이 터지는지 빠르게 자신의 불만을 토로했다.
에바는 전적으로 대한의 편을 들었다.
물론 법적으로나 도의적으로나 크게 문제가 될 일은 아니었다.
모니카도 이런 일이 있을 줄 아예 상상조차 못 했을 것이다.
―확실히 마스터의 입장에서는 좀 억울할 겁니다.
‘내가 모니카의 몸을 의도적으로 만진 것도 아니고 아크로바틱 한 동작을 같이 따라 하다가 일어난 사고일 뿐인데 그걸 가지고 저렇게 난리를 쳐대네.’
―마스터! 우리 그냥 손절할까요?
에바의 극단적인 말에 대한이 오히려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손절? 지금 아메리카 TV를 손절하자고?’
―못할 건 또 뭐가 있습니까?
‘손절하면 우리만 손해 아냐?’
―그렇지 않습니다. 마스터께선 현재 자신의 위치에 대한 자각이 부족하십니다.
‘뭔 소린지 내가 이해할 수 있도록 쉽게 설명해 봐!’
―알겠습니다.
에바는 허공에 각종 도표와 자료들을 펼쳐놓았다.
―현재 아메리카 TV의 대한 TV 시청자 수는 평균 2만에서 6만 명, 구독자 수는 현재 8만5천 명입니다.
‘2만은 나고 6만은 모니카인 모양이군.’
―맞습니다. 마스터 혼자 방송하실 때는 2만에서 4만 명 정도의 시청자가 들어옵니다. 모니카와 합방을 하시면 4만에서 6만 명 이상으로 시청자가 급증합니다.
모니카와 합방하는 게 이 정도로 효과가 좋았다. 적게는 2배, 많게는 3배 이상의 시청자 수가 늘어나니 말이다.
에바는 그래프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중요한 것은 시청자 수가 아니라 달풍선을 얼마나 벌어들이느냐입니다.
‘그렇겠지.’
―마스터께서 혼자 방송하실 때 얻는 달풍선 개수가 평균 3만5천 개입니다. 그리고 모니카와 합방을 하시면 평균 7만 개 이상의 달풍선이 들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