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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재능(Feat. 대한 TV)-29화 (29/331)

29화 <예선전>

근력은 이제 일반인의 범주에 들어섰다. 지력도 거의 일반인에 가까워졌다. 다만 민첩과 체력은 아직도 많이 부족했다.

시선을 내리자 입가에 미소가 지어졌다. 키가 1cm 더 커져서 이제 166cm가 됐다. 몸무게도 91kg에서 90kg이다. 방송에서 이걸 인증한다면 미션을 완수했다고 달풍선이 꽤나 쏟아질 것이다.

흐뭇한 마음으로 대한은 책가방을 들었다.

오늘은 개학식이 있는 날이다. 방학식을 쨌으니 오늘 학교에 가지 않는다면 아마 담임 선생님이 화를 내실지도 모른다.

지이이잉!

그때, 대한의 스마트폰이 격렬히 진동했다. 누군가 확인해 보니 최정규 감독이었다.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아침부터 이렇게 전화를 한 것을 보면 뭔가 급한 일이라도 생긴 모양이었다.

“여보세요?”

―대한아! 나 최정규 감독이다.

“네, 안녕하세요?”

―응, 그런데 오늘 오전에 갑자기 예선 시합이 잡혔다.

“예에? 예선은 내일 있다고 하지 않으셨나요?”

대한은 최정규에게 급히 되물었다.

―맞아. 원래는 내일인데 협회에 사정이 있어서 오늘로 옮기게 됐어. 학교와 담임 선생님에게는 내가 미리 전화를 걸어서 양해를 구해 놓았다. 그러니 학교에 도착하면 인사만 하고 곧바로 축구부로 와라!

“네, 알겠습니다. 그런데 저 유니폼하고 축구화 없는데요.”

―아! 그렇구나. 알았다. 하나 사지, 뭐!

“예, 감사합니다.”

최정규는 미처 거기까지는 생각하지 못한 듯했다. 하지만 그의 말대로 필요하면 하나 사면 그만이다. 요새는 시간이 없지 돈이 없진 않다.

대한은 책가방에 수건과 갈아입을 옷을 챙겼다. 그리고는 설레는 마음으로 학교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이야! 이거 세상이 달라 보이네.’

―학교에 가는 게 그렇게 즐거우세요?

‘그냥 뭔가 옛날 같지 않아서 좋네.’

―마스터께서 많이 성장해서 그런 걸 거예요.

‘그렇지. 내가 키가 좀 많이 자랐지.’

에바는 대한의 정신적인 성장을 언급했지만 대한은 자신의 키를 말하고 있었다. 그녀는 굳이 정정하려고 들지 않았다. 어느 쪽이든 과히 틀린 말은 아니기 때문이다.

숭신고 교문을 지나 본관으로 들어갔다.

2학년 1반 교실을 향해 걸어가자 성장기의 힘이 넘치는 녀석들로 인해 벌써 복도부터 아주 시끌벅적했다.

그는 조심스럽게 교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대한이 교실로 들어서자 갑자기 쥐죽은 듯 교실이 조용해졌다.

“…….”

“…….”

모든 시선이 그에게 확 쏠렸다. 그러나 대한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곧 자신은 투명인간이 될 것임을 알기에 묵묵히 자신의 자리로 가서 앉았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다시 왁자지껄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한 생각이든 그는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모든 아이들이 자신의 얼굴과 스마트폰을 번갈아 바라보고 있었다.

그제야 대한은 아이들이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았다.

“아! 대한 TV! 그건 내가 운영하는 거야.”

그는 당당하게 자신이 대한 TV를 운영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대한이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이 나왔다.

“지랄하네.”

“개구라!”

“뻥까고 있네!”

순간 아이들은 일제히 피식 대며 다시 떠들기 시작했다. 그의 말을 전혀 믿지 않고, 오히려 거짓말을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대한은 정말 어이가 없었다. 솔직하게 사실대로 말을 했을 뿐인데 애들이 왜 이렇게 비딱하게 나오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야! 너 살 좀 빠졌다?”

뒷자리에 앉은 간신 서진평이 그의 등을 손가락으로 쿡 찌르며 말했다.

대한은 서진평이 말을 걸자 키 자랑을 했다.

“나 방학 동안 키도 좀 컸거든.”

“하하하! 그래 봐야 난쟁이 똥자루지.”

언제부터 166cm가 난쟁이 똥자루가 됐는지는 알 수가 없다.

그때, 뺀질이 박상태가 다가와 빈자리에 앉았다.

“진짜 넌 줄 알고 개놀랐잖아.”

“나 맞다니까.”

“아오! 이 새끼 꼭 주접을 떨어요. 네가 대한 TV의 대한이면 난 BTS의 정국이다.”

“헐!”

대한은 결국 깨끗이 포기하기로 했다.

몇 번이나 사실을 말하는데도 아무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는 더 이상 대한 TV에 관한 언급을 하지 않기로 했다. 어차피 2학년 1반에 친한 친구는 없었다. 아니, 이 학교에 자신의 친구는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대한에게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모니카가 유일했다.

‘쉣!(Shit!) 나한테 친구가 이렇게 없었나?’

―모니카가 있잖아요.

‘그렇지. 모니카야말로 나의 유일한 친구이자 보물이지.’

―화수분이라는 말로 정정하길 조언 드립니다.

‘닥쳐라!’

―눼에에에!

간신 서진평과 뺀질이 박상태!

대한은 두 놈이 자신을 신나게 놀리고 있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화가 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이러는 두 녀석이 참 우습게 보였다. 왠지 이들과 자신은 사는 세상이 전혀 다른 느낌이었다.

“야! 쌤 온다.”

누군가 크게 소리쳤다. 반 아이들은 잽싸게 자신의 자리로 돌아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담임 선생님이 교실 안으로 들어왔다. 그런데 대뜸 대한을 보더니 손짓을 했다.

“대한아! 축구부에서 너 찾는다. 빨리 가봐!”

“예.”

안 그래도 불편한 자리였다.

그는 지체 없이 책가방을 들고 교실을 빠져나갔다. 어쩐지 다시는 학교에 돌아오지 못하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확실히 깨달은 것이 있었다. 자신은 학교생활에 전혀 맞지 않는 아싸라는 것을 말이다.

대한은 축구부 사무실에 도착했다. 최정규 감독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한은 꾸벅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감독님!”

“그래. 대한이 왔구나. 바로 가자.”

“네.”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였다.

아직 고등학생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학교를 빠져나가는 것은 언제나 즐거운 일이었다.

대한은 최정규를 따라 주차장으로 갔다. 최정규는 꽤 연식이 오래된 승용차 앞에 섰다. 그는 트렁크를 열어 안에서 파란 유니폼 하나를 꺼내 대한에게 건네며 말했다.

“이거 맞는지 한번 입어봐라!”

“예.”

대한은 두말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티셔츠를 벗었다. 살이 출렁이긴 했지만 예전처럼 부담스러울 정도는 아니었다.

그는 곧바로 파란 유니폼으로 갈아입었다.

“어때?”

“몸에 좀 끼는데요.”

“그것보다 더 큰 건 없어. 어떻게 안 되겠냐?”

최정규는 대한을 보며 봐달라는 눈빛을 보냈다. 마음이 약해진 대한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입고 있다 보면 좀 늘어나겠지요.”

유니폼이 몸이 딱 달라붙어서 그렇지 아예 못 입을 정도는 아니었다.

최정규는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미안하다. 내가 미리 알고 준비했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어차피 전 주전도 아닌데요, 뭘!”

“글쎄다. 그건 아무도 모르는 일이지. 주전이 후보 되고 후보가 주전 되는 건 축구에서 흔한 일이니까.”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주 용기가 납니다.”

“하하하! 그래, 가자.”

“네.”

최정규가 트렁크를 닫고 차에 올라탔다. 대한이 눈치껏 조수석을 열고 앉았다.

“축구화는 직접 매장에 가서 고르자.”

“예.”

대한은 최정규의 말에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부우웅!

그는 시동을 켠 후 차를 몰고 학교를 빠져나갔다.

구닥다리 승용차는 보기와 달리 아주 잘 달렸다.

30분쯤 가자 축구 용품 전문점이 보였다.

최정규 감독의 친구가 운용하는 곳이라고 했다.

시간이 없는 관계로 대한은 매장에 들어가자마자 축구화부터 골라야 했다.

“이거로 하자. 지금 세일 중이란다.”

“예.”

대한은 순순히 뉴밸런스 프로 축구화를 받았다. 가격은 32,400원밖에 하지 않았다. 원래 가격은 159,000원이라고 했다.

축구화 가격이 얼마가 되든 대한과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자신의 돈으로 사는 것도 아니니 대한에게는 딱히 선택권이 없었다.

‘에바! 이거 괜찮겠어?’

―네, 발 사이즈에 딱 맞는 것으로 사십시오. 어차피 오래 못 신습니다.

‘왜?’

―성장판이 다시 열리지 않았습니까!

‘아! 그러니까 키처럼 발도 커지고 있다는 말이구나.’

―맞습니다. 굳이 비싼 축구화를 사봐야 발이 커지면 신을 수도 없습니다.

에바의 조언에 그는 자신의 발에 딱 맞는 사이즈를 골랐다. 서비스로 양말까지 한 켤레 얻었다. 최정규는 축구화를 싸게 사서 기분이 좋았다. 대한도 공짜로 축구화를 얻어서 즐거웠다.

다시 차에 탄 그들은 서부간선도로를 신나게 달려갔다.

“감독님, 지금 우리 어디로 가요?”

“아 참! 너는 아직 모르고 있겠구나. 오늘 우리와 예선전을 치를 팀은 경기도 시흥시 정왕동에 있는 서해고등학교다.”

“거기 축구부와 경기를 하는 모양이군요.”

“맞아.”

최정규는 정체가 심한 서부간선도로를 벗어나 서해안고속도로를 탔다. 이쪽도 차가 많이 밀렸지만 서부간선도로만큼은 아니었다.

한참을 달리자 제3경인고속화도로가 나타났다.

이제는 좀 속도를 내서 씽씽 달려갔다.

출발한 지 1시간 30여 분. 그들은 드디어 서해고등학교 주차장에 도착했다.

그림 같은 인조 잔디 구장이 펼쳐진 서해고!

대한은 학교 구경부터 하고 싶었지만 곧바로 숭신고 축구부가 있는 곳으로 끌려갔다.

“대한아! 여기서 같이 몸 풀고 있어.”

“예.”

최정규 감독은 대한을 축구장 한쪽에 떨궈 놓고 본관으로 걸어갔다.

주장 이강희가 대한을 보더니 손짓을 했다.

“대한아! 이쪽으로 와!”

“예.”

대한은 얼른 이강희에게로 걸어갔다.

숭신고 축구부 팀원들이 대한을 보더니 싱숭생숭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러려니 하고 그냥 넘어갔다.

축구장은 벌써부터 신경전이 대단했다.

숭신고와 서해고가 축구장을 반으로 나눠서 각각 몸을 풀고 있었는데 간간이 서로를 노려보는 눈빛이 무척 날카로웠다.

서해고 축구부 팀원들이 대한을 보더니 뭐라고 쑥덕거리는 게 보였다.

―마스터, 저놈들이 뭐라고 하는지 들어볼까요?

‘됐어. 어디서 웬 돼지가 하나 왔다고 하겠지.’

―헐! 어떻게 아셨어요?

‘에바! 너 일부러 그런 거지?’

―저얼대 아닙니다.

에바는 시치미를 뚝 뗐다.

대한은 이제 하도 많이 겪어봐서 대충 그녀의 패턴과 레퍼토리를 꿰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니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무리하지 말고 가볍게 몸을 풀어! 예열한다는 생각으로 알았지?”

“네.”

이강희의 친절한 설명에 대한은 싱긋 미소를 지었다.

솔직히 주장을 비롯한 축구부 팀원들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는 게 아니었다. 다만 백날 말로 해봐야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을 뿐이었다.

스포츠는 결국 실력이다. 말이 아니라 실력으로 증명해 보이면 입 닥치게 되어 있다. 그래서 대한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는 축구부 팀원들을 보면서도 냉정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사실 이 정도만으로도 예전의 대한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을 한 것이다.

15분쯤 스트레칭을 하고 본격적으로 몸을 풀었다.

축구 선수가 몸을 푸는 방법은 뛰는 것과 공을 가지고 노는 것이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대한은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대한은 늘 하던 대로 축구공을 가지고 놀았다. 여기서 프리킥 연습이나 연계 플레이 훈련을 할 수 없으니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축구 기본기 연습뿐이었다.

그중에서도 리프팅은 기본 중의 기본이었다.

통, 통, 통, 통, 통…….

대한이 리프팅을 시작하자 사방에서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양쪽 축구부 팀원들이나 시합을 보러온 관중이나 모두 대한의 리프팅을 구경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한은 전혀 그들을 신경 쓰지 않았다. 어차피 인생은 홀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다. 자주와 독립이 없으면 그건 자신의 인생이 아니라 종속된 삶일 뿐이다.

대한은 에바 때문이라도 일찍 철이 들어버렸다. 그래서 더 이상 사람들의 시선에 떨지 않았다. 아니, 이제는 생방송 경험으로 인해 오히려 관중의 시선을 즐기는 경지까지 도달해 있었다.

이런 인간을 아마 ‘관종’이라고 부른다지?

“야아! 저 돼지새끼 누구야?”

“리프팅 하나는 끝내주네.”

“설마 저 몸으로 축구를 하겠다는 건 아니겠지?”

“유니폼을 입고 있는 것을 보니 일단 선수가 맞는 것 같아.”

웅성대는 관중의 시선에도 대한은 묵묵히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했다.

리프팅이 끝난 후 공을 몰고 드리블 연습을 했다. 축구장 한쪽 끝에서 다른 쪽 끝까지 슬슬 몰고 다녔다.

이제는 관중이 아니라 그가 사람들을 구경했다.

처음에는 경계하던 서해고 축구부원들도 그의 몸을 보더니 슬며시 눈에 힘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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