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화 <따라 하기>
[만수르SUH: 아무리 내 입술을 빨아봐도 느낌이 없다. 젠장!]
[우리두리: 우리 대한이 많이 컸네. 사람 열 받게 할 줄도 알고.]
[어벤저스: 네가 진정한 어벤저스다!]
[꼬끼오: ㅗㅜㅑ, 키스한 게 분명해.]
[일본방사능NO: 그래서 무의식적으로 저렇게 자꾸 빤다??]
[대한국인: 설명충 등장!]
[자주국방: 저게 무의식적? 아무리 봐도 고의적!]
[카리스마: 맞다. 다들 열 받아서 뒈지라는 거임.]
[치킨효린: 효린아! 잠깐 이리 와서 입술 박치기 한 만! 커억!]
[고로쇠콜라: 난 고로쇠, 아니 콜라나 마실란다. 쪽쪽!]
[코란도일: 더러운 혀로 어딜 빨아!]
대한은 가뿐히 채팅 창을 무시했다. 이런 말에 일일이 대답을 다 해주면 끝이 없다. 오히려 안 먹을 욕도 더 먹게 된다. 차라리 이럴 때는 그냥 모른 척 넘어가는 것이 좋다. 아니면 다음 게임을 진행하거나.
“이건 어때요?”
“색종이 옮기기?”
“예.”
“모니카가 원한다면 한번 해봐요.”
오늘 모니카가 좀 이상하다.
무슨 날인가?
그래도 긍정적인 방향이라고 생각했다.
색종이 옮기기는 필연적으로 입을 써야 한다. 합방한 BJ들은 색종이에 입을 대고 흡입하듯 빨아들였다. 그런 후 상대방의 입에 대고 반대로 숨을 불어넣었다. 그 상태에서 상대 BJ가 색종이를 입에 대고 공기를 마시듯 흡입한다.
이렇게 서로 숨을 내쉬고 내뱉는 동작을 딱 맞춰서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그사이 색종이가 중간에 떨어지기라도 하면 둘이 키스를 하게 되는 대참사가 일어난다. 물론 시청자들은 이런 참사를 보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색종이 있어요?”
“아니요.”
“그럼 종이를 잘라서 쓰죠.”
“오케이!”
의기투합한 그들은 종이를 적당한 크기로 잘랐다. 접시에 담자 어느새 수십 장이나 됐다.
비록 알록달록한 색종이는 아니었지만 게임을 하는 데는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빈 접시 한 개를 가져와 모니카 앞에 놓았다.
“시간 제한을 30초로 할까요, 1분으로 할까요?”
“일단 30초로 해보죠.”
“네.”
대한은 화면에 30초를 띄우고 카운트 다운 버튼을 눌렀다.
숫자가 하나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동시에 대한은 종이에 입을 대고 공기를 흡입하듯 빨아들였다.
하얀 종이가 그의 입에 딱 달라붙었다. 그는 고개를 들어서 모니카를 쳐다봤다. 그러자 그녀가 다가와 그의 입에 입술을 댔다. 그리곤 숨을 들이켰다.
동시에 대한도 반대로 숨을 내쉬었다. 종이는 성공적으로 모니카의 입술에 달라붙었다. 그녀는 빈 접시에 입을 대고는 종이를 떨어뜨렸다.
“성공!”
모니카가 좋다고 소리를 질렀다.
대한은 그 모습을 보더니 싱긋 미소를 지었다.
둘 다 처음 해보는 것치고는 빠르게 종이를 옮기기 시작했다.
30초는 순식간에 지나갔다.
“끝났어요.”
“몇 장이죠?”
모니카는 자신의 앞에 놓인 접시 위의 종이를 세어봤다.
전부 열두 장이었다.
이게 잘한 건지, 아니면 못한 건지, 두 사람은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시청자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참사를 일으키기 위해 대동단결해서 모니카에게 뻥을 쳤다.
[뮤리수: 개못하누!]
[화가난다: 뭐야 그게……. 12장? ㅅㅂ 푸하하!]
[비도깨: 장난하냐?]
[토닥이: 진성 못해!]
[대폭주: 다시 좀 잘해 봐!]
[코만도: 모니카! 너무 못해!]
대한은 친절하게도(?) 모니카에게 일일이 댓글의 의미를 해석해 줬다.
“모니카! 다들 우리보고 너무 못한데요.”
“정말요?”
“그렇게밖에 못하냐고 채팅 창에서 난리에요.”
“히잉.”
그녀는 시청자들의 장난에 홀라당 넘어가 버리고 말았다. 물론 동조하는 누군가(?)가 없었으면 모르고 넘어갈 수도 있었을 문제였다.
아니, 애초에 30초에 열두 장이면 그렇게 못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것도 생전 처음 하는 게임이 아닌가!
하지만 방송은 일단 재미가 있어야 한다.
주최 측까지 동조하는 구라의 거미줄에 모니카는 그저 힘없이 팔랑대는 한 마리에 나비 불과했다.
“다시 해보죠. 이번에는 더 빨리해요.”
“으음, 나는 더 이상 빨리 못하겠던데…….”
“그럼 우리 자리를 바꿔 봐요.”
“아니요. 이번에는 그냥 모니카가 먼저 해보세요.”
“오케이. 대신 1분으로 해봐요. 30초는 너무 짧은 것 같아요.”
“그렇게 하죠.”
대한과 모니카는 빠르게 합의를 했다.
“60초 카운트 다운합니다. 시작!”
그녀는 재빨리 고개를 숙여 종이 한 장을 집었다. 그리곤 그에게 서둘러 넘겨줬다. 처음에는 모두가 놀랄 정도로 잘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자 점차 호흡이 딸리는지 실수를 하기 시작했다.
대한의 입술이 닿기 직전, 종이가 밑으로 툭 떨어졌다.
방송사고(?)를 직감한 그는 얼른 한손을 들어 카메라를 막았다.
놀란 모니카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응?”
모니카는 자신의 실수를 즉각 깨달았다.
하지만 그녀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다시 고개를 숙여 진공청소기처럼 종이 한 장을 빨아들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대한에게 넘기기 직전에 어이없이 아래로 흘려버리고 말았다.
“흡!”
그녀는 바람을 불다가 뭔가 이상한 것에 입술이 막힌 것을 느끼고는 눈을 크게 떴다.
고개를 뒤로 빼고 살펴보니 소품으로 놓아둔 부채였다. 어느새 그가 부채를 들어 철벽방어를 해버린 것이다.
대한의 표정은 담담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새빨개졌다.
지금 카메라를 통해 무려 5만 명이 이 방송을 시청하고 있었다.
그것도 녹화가 아닌 생방송이었다. 하지만 시청자들은 그녀의 실수, 아니 참사를 너무나 좋아했다.
[찹찹찹: 이거 너무 웃긴다.]
[빛샤이닝: 개이득!]
[대전HERO: ㅈㄴ못해.]
[파리연인: ㅋㅋㅋㅋㅋㅋ]
[무전드: 달달하다!]
[얼굴만김우빈: 너에게 입덕!]
[국내산: 아, 배 아파.]
[과몰입충: 모니카 졸귀]
[벌써일년: 어차피 우승은 대한!]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는 다시 게임에 집중했다. 쉬지 않고 입으로 색종이를 집어 대한에게 날랐다. 하지만 처음처럼 빠르게 옮기지는 못했다.
숨도 찼지만 다시 실수를 안 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속도가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아예 실수를 안 하는 것도 아니었다. 조심하려고 너무 신경을 썼다. 그러자 오히려 아까보다 더 잦은 실수를 해버렸다.
종이를 똑바로 들지 않고 일부만 빨아들여 옮겼다. 종이는 넘어가지 않고 자꾸만 아래로 툭 떨어졌다.
그럴 때마다 대한은 재빠르게 고개를 옆으로 돌리거나 부채로 카메라를 막았다.
모니카의 열정과 대한의 철벽방어!
그 사이에 흐르는 묘한 분위기가 카메라의 렌즈를 타고 흘렀다.
“끝!”
“벌써?”
“60초 지났어요.”
“우리 몇 개나 옮겼죠?”
“20장이요.”
“우잉!”
모니카는 입술을 내밀며 실망한 표정을 지었다.
아까는 30초에 12장이었다. 그럼 최소한 60초에 24장은 옮겨야 했는데 겨우 20장밖에 옮기지 못했다.
사실 모니카는 색종이 옮기기 게임의 숨겨진 의도를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래서 이 게임을 그냥 단순한 게임으로만 봤다. 그로 인해 개이득을 취하는 것은 대한과 시청자들뿐이었다.
원래 누군가는 속고 누군가는 속이는 게임이 참 재미있는 법이다.
“더 하실 거예요?”
“아뇨. 아무래도 이건 좀 연습이 필요한 것 같아요.”
채팅 창은 그녀의 말에 또다시 들끓었다.
[만수르SUH: 이걸 누구와 연습?]
[우리두리: 당연히 대한이지.]
[으쌰으쌰: ㅋㅋㅋ좋겠다.]
[어벤저스: 설마 딴 놈과? ㄴㄴㄴ 아니겠지?]
[다섯공무원: 안 돼! 차라리 대한이와 연습해라!]
[손톱이빨개: ‘모니카는 여자 친구랑 연습한다.’에 만 원 건다.]
[여친찾았다: 야! 그게 더 야하잖아.]
[베스트싸나이: 여자끼리 하면 더 이상함. 아님?]
[작업멘트0: 올! 그 콘텐츠도 재밌겠네.]
[부부젤라: 일단 취향은 존중해 줄게!]
대한과 모니카는 이만 다음 탐방으로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명 BJ가 즐겨 하는 ‘아크로바틱 동작 따라 하기’였다.
“이건 어때요?”
“내가 할 수 있을까요?”
그는 한 발짝 뒤로 물러났다. 아크로바틱한 동작을 따라서 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모니카는 어떻게든 전 게임의 참사를 만회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걸 꼭 한번 해보고 싶었다.
“고등학교 때 잠깐 치어리더를 해본 경험이 있어요.”
“치어리더요?”
대한은 깜짝 놀랐다. 모니카가 한때 남자들의 로망 중 하나라는 치어리더였단다. 당연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이어지는 말에 살짝 실망했다.
“오래 하지는 않았어요. 딱 열흘 해봤어요.”
모니카가 언급한 대로 정말 며칠 안 되는 짧은 체험이었다. 그렇지만 경험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아주 명백했다. 그녀도 그걸 믿고 한번 해보자고 조르고 있는 것이다.
“좋아요. 그럼 딱 세 가지 동작만 따라서 해보기로 해요.”
“예스. 대신 종목은 내가 고를게요. 딜(deal)?”
“딜!”
둘은 주먹을 꼭 쥐더니 서로의 주먹에 살짝 맞부딪쳤다.
대한과 모니카는 첫 번째 동작에 도전했다. 모니카가 물구나무를 서서 대한에게 기대는 간단해 보이는 동작이었다. 그러나 시작부터 난항이었다. 처음에 보여줬던 자신감과는 달리 모니카는 아크로바틱에 전혀 재능이 없었다. 그저 몸이 부드럽고 유연할 뿐이었다.
대한은 그제야 모니카가 왜 치어리더를 열흘 밖에 못했는지 이해가 갔다. 거기에다 대한은 누가 봐도 아크로바틱과는 친해 보이지 않았다.
꽈당!
“어이쿠!”
“악!”
서로의 몸이 부딪치고 쓰러졌다. 그들은 용감하게 다시 일어나 재도전을 했다. 하지만 쉽게 성공하지 못했다.
또다시 와르르 무너져 내리며 우스꽝스러운 모습이 됐다. 시청자들은 그 모습에 모두 킥킥대고 웃었다.
[망치요리: 모니카 ㅂㅏㅂㅗ]
[술끊었다: 넘 웃긴다. ㅋㅋㅋ]
[세계가만났다: 개못해! ㅋㅋㅋ]
[솔로30년차: 대한이 죽는다.]
[몽실몽실: 야무지게 좀 해봐!]
대한의 얼굴은 당혹한 표정으로 도배됐다. 모니카는 열이 받았는지 꼭 성공하고 말리라는 의욕에 불탔다.
몇 번을 이렇게 반복하다 보니 당연히 사고가 났다. 자세를 유지하지 못한 대한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옆으로 넘어갔고, 모니카도 그의 위로 떨어져 내렸다.
“아악!”
“어멋!”
대한은 새우처럼 몸을 구부리며 바들바들 떨었다. 그녀의 무릎에 대한의 사타구니 사이가 찍혀버린 것이다.
시청자들은 아주 좋아 죽겠다며 박수를 쳤다. 모니카를 좋아하는 팬들은 아예 커다란 환호성을 질러댔다. 하지만 대한을 걱정하는 팬들이 훨씬 더 많았다.
[톰과제리: 그만해라! 대한이 고자 된다.]
[꼬끼오: 저게 그렇게 어려운 자세인가?]
[자주국방: 대한이도 참 열심이다.]
[카리스마: 모니카 댄스는 유연! 아크로바틱은 개뻣뻣!]
[No재팬: ㅋㅋㅋ 재밌다.]
[핵인싸: 아이고 아프겠다.]
[낼름: ㅅㅂ 쌤통 ㅋㅋㅋ]
[닥공: ㅋㅋㅋ 일부러 그런 거 아니냐?]
[말벌봉준: 어딜 만져!]
[개좋앙: 모니카가 뭘 만졌는데…….]
[홍콩여자: 달달하네.]
[늑골뽑기: 저게 달달? 내가 보기엔 아파서 죽어가는구먼.]
[베링해: 끝나고 병원 가봐! ㅋㅋ]
대한은 몇 분 만에 간신히 몸을 추슬렀다. 반은 진짜고 반은 엄살이었다.
―마스터, 괜찮으십니까?
‘응, 괜찮아. 다행히 볼(ball)이 찍히진 않았어.’
―스틱이 부러질 수도 있지 않았습니까?
‘에바! 닥쳐!’
―우잉! 나만 가지고 그래.
에바의 철없는 말에 그는 단호하게 대처했다.
모니카가 다가와 그의 등에 손을 댔다.
“대한! 괜찮아요?”
“네, 이제 좀 나아졌어요.”
“우리 그만할까요?”
“아니에요. 이게 세 번째 동작이니까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시도해 봐요.”
“좋아요. 이번에는 내가 위로 올라가서 중심을 잘 잡을게요.”
둘 다 의욕은 참 좋았다. 이번에는 대한이 아래에서 모니카의 몸을 받쳐 드는 자세가 중요한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뭔가 손발이 잘 맞지 않았다.
모니카가 순간 중심을 잃어버리자 대한까지 크게 흔들려버렸다. 거의 동시에 자세가 무너졌고, 그 결과는 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