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프리킥>
아무리 사람으로 벽을 쌓지 않은 상태의 아크 서클이라고 해도 이 정도 거리에서 프리킥을 차 정확히 원하는 곳으로 골을 넣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잘했다. 한 번 더 차볼래?”
“물론이죠. 이번엔 어디로 찰까요?”
“오른쪽 상단으로 차봐!”
“네.”
대한은 최정규 감독의 칭찬에 크게 고무됐다.
그는 신나게 달려가 골대 바깥쪽을 향해 볼을 찼다. 축구공은 오른쪽 포스트 바깥으로 나갔다가 크게 휘어져 안으로 들어왔다. 그러더니 여지없이 골대의 오른쪽 상단에 팍 꽂혔다.
최정규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대한이 찬 볼의 궤적이 너무나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좌상단!”
뻥! 촤악!
“우하단!”
뻥! 촤악!
“중앙 상단!”
뻥! 촤악!
그때부터 대한은 최정규의 요구대로 마음껏 프리킥을 찼다. 혼자 연습할 때보다 누군가와 같이하는 게 역시 더 재미있었다.
“혹시 감아 차기 말고 다른 종류의 프리킥도 찰 줄 알아?”
“네.”
“한번 차봐라!”
대한은 최정규 감독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달려갔다.
뻥!
그는 축구공의 한가운데에서 약간 아래를 발등으로 강하게 찼다. 공의 움직임이 불안정해져 골키퍼가 공의 방향을 예측하기 힘든, 최대한 회전력을 줄인 무회전 슛이었다.
회전 없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간 축구공이 갑자기 옆으로 확 꺾이더니 골대의 좌측 상단으로 꽂혀 들어갔다.
“…….”
최정규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무회전 슛은 축구를 배웠다고 개나 소나 다 찰 수 있는 게 아니다. 강한 발목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절대로 지금 같은 무회전 슛이 나올 수 없다.
최정규는 축구부 감독답게, 단번에 대한의 무회전 프리킥의 완성도를 알아봤다.
대한은 최정규 감독이 말없이 가만히 서있자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른 것도 해볼까요?”
“어? 어! 그래, 해봐!”
“네.”
그는 감독의 허락을 얻어내자 이번에는 왼발로 아웃 프런트 슛을 찼다.
뻥!
마치 전설의 카를로스 UFO 킥을 재현한 것처럼 대한이 찬 공은 오른쪽으로 크게 돌아 그대로 골대를 벗어날 듯 보였다. 하지만 기괴한 궤적을 그리며 다시 곡선으로 휘어져 골대로 빨려 들어갔다. 현대 물리학으로는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다는 바로 그 UFO 킥이었다.
“대한아! 방금 왼발로 찼니?”
“예, 왼발로 찼어요.”
“너 원래 양발잡이였어?”
“네.”
최정규는 다시 눈만 깜빡거렸다.
그사이 대한은 마치 최정규 감독에게 자랑이라도 하는 것처럼 양발을 번갈아 사용해 가며 바나나킥, 무회전킥, UFO킥을 차댔다.
최정규는 지금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새끼 뭐지? 언제부터 이렇게 슛을 잘했지? 지금까지 찬 프리킥이 전부 골대 안으로 들어갔잖아. 이게 가능한 일인가…….’
최정규는 눈으로 직접 보고도 쉽게 믿어지지가 않았다.
대한 혼자 리프팅을 하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그저 남다른 볼 감각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무리 볼 감각이 좋아도 실제로 그라운드를 뛸 체력이 없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 대한은 지금도 뚱뚱하지만 그때는 이보다 더 뚱뚱했었다. 아니, 그냥 동그란 공 그 자체였다.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최정규 감독은 대한이 슛을 하는 것을 보자 뭔가 머릿속이 파삭하고 깨지는 느낌이 들었다.
‘미친 척하고 조커로 한번 써볼까?’
최정규는 자신도 모르게 대한을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발 출전은 무리다. 하지만 결정적인 순간, 조커로 기용해 프리킥을 차게 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결국 최정규 감독은 모종의 결심을 하고 말았다.
“대한아! 너 시합 나가서 프리킥만 찰 수 있냐?”
“제가요?”
“응.”
대한은 갑작스러운 최정규 감독의 말에 깜짝 놀랐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는 춤을 추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그가 지금 누구 때문에 이 시간에 학교 축구장에 나와서 프리킥 연습을 하고 있었겠는가? 바로 최정규 감독이 보라고 혼자 생쇼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낚시에 걸린 물고기처럼 최정규 감독이 팔딱대며 그가 뿌린 미끼를 덥석 물어버렸다.
“당연하죠. 전 숭신고등학교 축구부 팀원이잖아요.”
“맞다, 그랬지. 하하하하!”
대한의 말에 최정규는 파안대소를 했다. 뭔가 마음에 드는 말이었던 모양이다.
“너도 전국 고등학교 축구 대회가 열리는 거 알고 있지?”
“9월에 열리는 대통령배 말이죠?”
“응, 그거 예선이 곧 시작될 거야.”
“아아!”
“후반전에 조커로 한번 기용해 볼 테니까 체력 좀 길러놓아라.”
최정규의 말에 대한은 흠칫 놀랐다. 이렇게 깜빡이도 켜지 않고 훅 치고 들어올지는 몰랐던 것이다. 하지만 그가 바라고 원하던 일이기도 했다.
“예! 알겠습니다. 안 그래도 요새 열심히 운동하고 있어요.”
“나도 네가 요새 열심히 한다는 얘기는 들었다. 10분, 아니 최대 15분만 뛸 수 있을 정도로 체력을 기르면 될 거야. 할 수 있겠지?”
“물론이죠. 걱정 마세요. 2주 안에 확실하게 체력을 갖춰 놓겠습니다.”
“그래, 부탁한다.”
최정규는 그의 어깨를 한번 두드리고 멀어져갔다. 대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
‘에바! 2주 안에 15분간 뛸 수 있는 체력을 기르라는 말 들었지?’
―예, 들었습니다.
‘앞으로 프리킥 연습과 체력 훈련에 집중할 수 있도록 준비해 줘!
―그렇게 하겠습니다. 마스터께서도 최종 공격수 역할을 잘할 수 있도록 슛을 더 연습하세요.
최종 공격수라는 말에 그가 미간에 힘을 주었다.
‘내가 최종 공격수라고?’
―최정규 감독의 생각은 뻔합니다. 마스터의 재능을 이용해 프리킥으로 골을 얻은 다음 그냥 잠가버리겠다는 겁니다.
‘그건 이미 나도 충분히 예상했어.’
―철벽 수비를 펼치게 되면 최종 공격수가 해야 할 일이 과연 뭐가 있겠습니까?
‘하프라인에서 어슬렁거리다가 혼자 역습이나 하겠지.’
―역습할 수 있는 빠른 발과 체력은 있으시고요?
‘없네.’
에바의 뼈를 때리는 팩폭에 대한은 그냥 순순히 인정했다.
―그러니까 슛, 특히 중거리 슛을 연습해야 합니다.
‘기회가 오면 조금 몰고 가다가 기습적으로 중거리 슛을 갈기라는 말이구나.’
―정답입니다.
대한은 그제야 에바의 말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그는 드리블 연습을 마지막으로 축구 기본기 훈련을 마쳤다. 끝으로 스트레칭으로 꼼꼼히 해서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했다.
축구공을 그물에 담아 축구부 사무실로 가져갔다. 뒤처리를 다 하고 나자 어느새 석양이 지고 있었다.
대한은 오늘도 해냈다는 뿌듯한 마음으로 집을 향했다.
* * *
“뭐야? 이사를 가자고?”
“네.”
“무슨 돈으로?”
“제가 개인 방송으로 번 돈이 좀 있습니다.”
“하아! 네가 벌면 얼마나 번다고 우리가 이사를 가?”
“충분히 번다고 말씀드렸습니다만.”
아버지 이태산과 어머니 김혜영의 얼굴은 그 어느 때보다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흥, 그래 얼마나 벌었는지 좀 보자.”
“예, 여기 있습니다.”
이태산의 비꼬는 말투에도 대한은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코코아뱅크 계좌를 열어 잔액을 보여줬다.
“일, 십, 백, 천, 만, 십만, 백만, 천만! 으응! 이게 다 얼마야?”
“여보! 왜 그래요?”
“직접 한번 봐봐!”
“어머나! 이게 웬 돈이래요?”
이태산과 김혜영은 아들의 계좌에 찍혀있는 수천만 원을 보고는 크게 놀랐다. 그제야 이들은 아들이 이사를 가자는 말을 하는 게 이해가 됐다. 하지만 대한은 아직 고등학교도 졸업하지 않은 미성년자다. 괜히 그의 말만 믿고 섣불리 움직이기에는 설득력이 부족했다.
“이건 그동안 제가 열심히 개인 방송을 해서 모은 돈입니다. 앞으로 매달 비슷한 금액이 들어올 거예요.”
“개인 방송 잘된다고 하더니 정말 잘되는가 보구나. 난 네가 이 정도까지 해낼 줄은 정말 몰랐다.”
“여보! 이제 이거 어떻게 할 거예요?”
김혜영이 이태산에 대책을 세우라고 눈치를 주었다. 대한은 굳이 부모님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고 싶지 않았다. 차라리 두 분을 설득하는 게 더 빠르겠다고 생각했다.
“제가 일주일에 두 번에서 세 번 정도 합동 방송을 하는데 그럴 때마다 스튜디오를 빌립니다. 그거 한번 빌리는데 들어가는 돈이 자그마치 35만 원이에요.”
“뭐가 그렇게 비싸냐?”
처음에는 뭣도 모르고 비싸게 빌렸다. 하지만 지금은 워낙 자주 빌려서 20만 원 이하로 충분히 대관이 가능했다. 그렇다고 굳이 그런 사실을 부모님에게 당장 말씀드릴 필요는 없었다.
“합방을 위해 제가 매번 여캠을 집으로 데려올 수도 없잖아요.”
“여캠이면 여자 BJ를 말하는 거지?”
“네, 맞아요.”
“그것도 참 곤란하겠구나.”
집이 누추하다는 것은 누구보다도 이태산과 김혜영이 잘 알았다. 아들의 방을 어찌어찌 꾸며놓기는 했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했다.
“이것 좀 보세요. 화질의 차이가 얼마나 나는지.”
대한은 적극적으로 부모님께 사정을 알리기로 했다.
“얘 누구냐?”
“어라! 외국 여자네.”
그런데 두 사람은 모니카를 보더니 대한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모니카라고 저와 합방하는 BJ예요. 제 이탈리아어 선생님이기도 해요.”
“이탈리아어? 네가 이탈리아어를 배운다는 말이야?”
“네, 저번에 한번 말씀드렸는데…….”
“아! 그게 그 소리였구나.”
갑자기 이탈리아어를 배우러 학원에 다닌다고 해서 무슨 소린가 했었다. 그런데 아들은 진짜 이탈리아어를 배우러 다닌 모양이다. 그동안 아들의 말을 너무 무시한 것은 아닌지 이태산은 스스로 반성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럼 이 여자가 이탈리아 여자냐?”
“네, 정확히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에요.”
“참 예쁘네. 여자인 내가 봐도 이렇게 예쁘니 남자들의 눈에는 얼마나 예쁘게 보일까!”
“허 참! 별일이네. 내 아들이 이런 미녀와 같이 방송을 하는 날이 오다니 말이야.”
어째 아버지와 어머니의 어깨에 힘이 좀 들어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둘은 알 수 없는 오묘한 미소를 지으며 대한이 보여주는 동영상을 재밌게 시청했다.
“그러니까 네 방에서 합동 방송인가 뭔가 하는 것은 곤란해서 스튜디오를 빌렸단 말이지?”
“네, 그렇습니다.”
“그리고 넌 그 돈이 아까워서 차라리 이사를 가자는 말이고.”
“정확합니다.”
이태산은 아들의 말에 곤혹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아직 이 집의 전세 대출금도 다 갚지 못했다. 만약 더 좋은 곳으로 이사를 간다면 전세는 불가능했다. 월세라면 가능하지만 아마 한두 푼이 들어가는 게 아닐 것이다.
더구나 대한이 하는 일이 어떤 일인지 정확히 알고 나자 대충 아무 곳이나 이사를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아들이 힘들게 번 돈을 내 돈처럼 막 써댈 수는 없었다.
“당신은 어떻게 하고 싶어?”
결국 이태산은 아내 김혜영의 의견을 구했다.
“계약이 남아있어서 당장 이사 가는 것은 힘들지 않겠어요?”
“그렇다고 계속 스튜디오를 빌리는 것도 돈이 아깝잖아.”
“차라리 스튜디오를 꾸며주는 것은 어때요?”
“대한이를 분가시키자는 얘기야?”
“우리가 무슨 돈이 있어서 대한이를 분가시켜요. 대한이가 알아서 독립해 나가는 거지.”
“고2가 무슨 독립이야?”
“고2가 벌어들인 돈이 우리 둘이 일 년 동안 번 돈보다 많은 거 못 봤어요?”
“끄응.”
김혜영의 뼈를 바스러뜨리는 팩폭에 이태산은 그저 신음 소리만 냈다.
“너 대학 갈 생각은 없니?”
“갑자기 대학 얘기는 왜 꺼내세요! 어차피 명문 대학 나와도 지금 대한이 버는 것만큼 못 벌 것 같은데. 얘가 개인 방송 시작한 지 이제 겨우 6주 지났대요, 6주!”
“허어! 이것 참!”
이태산은 가장의 권위가 와르르 무너지는 소리가 들려오는 듯했다. 하지만 그동안 대한이 벌어들인 돈이 많아도 너무 많았다. 이건 뭐 비슷하기라도 해야 얘기를 해볼 텐데 도무지 이빨이 들어갈 틈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 좋다. 가까운 곳으로 너 혼자 이사해 나가라!”
“네에? 왜 저 혼자 이사해요? 가려면 같이 가야죠.”
대한은 크게 반발했다. 하지만 이태산은 단호했다.
“이 집 전세 계약이 묶여있어서 안 돼.”
“그럼 전세금은 나중에 돌려달라고 하세요.”
“멀쩡한 집 놔두고 왜 우리까지 이사를 해?”
“제가 번 돈으로 월세 얻으면 되잖아요.”
“그러니까 더 못 가는 거야. 너 혼자 쓸 만한 곳과 우리 셋이 살만한 곳이 같겠냐?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내일부터 스튜디오 꾸밀 만한 곳 좀 알아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