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버프>
“이렇게 한류를 좋아하면서 왜 한국어를 못해요?”
“우왕!”
자신도 모르게 튀어나온 말에 그녀는 그만 눈물을 터트리고 말았다. 사실 컬럼비아 대학교 언어학과를 다니면서 동시에 한국어를 배우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수업을 따라가고 리포트를 작성하는 시간도 부족한 명문대의 대학 생활이다. 그나마 어릴 적부터 한류를 좋아해서 틈틈이 듣고 연습을 한 게 이 정도였다.
그것도 모르고 대한이 돌직구를 날려버렸으니 얼마나 상처를 받았겠는가?
모니카가 눈물방울을 뚝뚝 흘리면서 우는 것도 사실 이해가 갔다.
“미, 미안해요. 모니카!”
대한은 갑작스러운 모니카의 눈물에 크게 당황했다. 그녀가 왜 우는지 이유를 몰랐던 그는 여자를 어떻게 달래야 하는지 전혀 몰랐다.
그는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모니카의 어깨를 잡았다. 그러자 그녀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냉큼 대한의 품에 안겨왔다. 그리고는 더욱 서럽게 울어댔다.
대한은 얼떨결에 그녀를 품에 안고 그대로 얼음이 되어 버렸다.
[코란도일: 아니, 이 미친 새끼가 왜 모니카를 울리고 지랄이야.]
[화가난다: 그깟 한국어 좀 못할 수도 있지! 가만있는 애를 왜 울려?]
[비도깨: 대한아! 너 죽을래?]
[대폭주: 이게 무슨 개지랄이야? 네가 왜 모니카를 안고 있어?]
[코만도: 이 새끼 처음부터 이걸 노리고 있었구나.]
[베링해: 진짜 사악한 뚱스야!]
[터프가이: 당장 떨어지지 못해!]
[작업멘트0: 진짜 빌드업 예술이다. 내가 그냥 두 손 들고 항복할게!]
[개좋앙: ㅇㅈ 좋아? 좋냐고 이 새끼야?]
[홍콩여자: 왜 모니카를 울렸어요? 빨리 눈물을 닦아주세요.]
[늑골뽑기: 진짜 천사의 눈물을 뽑고 있네. 이 새끼야! 등이라도 토닥거려줘라!]
세상에 태어나 단 한 번도 이렇게 다 큰 여자를 품에 안아본 적이 없었다. 대한은 긴장과 당황, 후회와 미안함 등, 온갖 감정이 한꺼번에 휘몰아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몸이 본능적으로 반응하는 것만큼 당혹스러운 것도 없었다.
‘에바! 이놈 좀 막아봐!’
―마스터! 그건 지극히 자연스러운 생리 현상입니다.
‘닥치고 막으라고.’
―네, 마스터!
에바는 즉시 대한의 신체 일부분으로 몰리는 혈류를 조절했다. 그것도 부족해 호르몬을 조절하여 냉정을 회복시켰다. 그러자 한껏 기지개를 켜던 녀석이 간신히 잠잠해졌다.
그사이 반사적으로 확인한 채팅 창의 댓글대로 대한은 그녀의 보드라운 등을 가만히 토닥거렸다. 다행히 이것은 모니카를 진정시키는 데 효과가 있었다.
그녀는 얼마 지나지 않아 정신을 차렸다. 그러고 나자 무지하게 부끄러워했다. 모니카는 그의 귀에 대고 살짝 귓속말을 했다.
“저 화장실 좀 다녀올게요.”
“네.”
모니카는 슬며시 그의 품에서 빠져나갔다. 대한은 그 순간이 그렇게 아쉬울 수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미친 척하고 꽉 안아주는 건데……. 하지만 이미 떠나간 기차였다.
대한은 폭주하는 시청자들의 항의성 댓글… 아니, 질투성 댓글을 상대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다행히 모니카가 화장을 고치고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고 나서야 간신히 숨을 돌릴 수가 있었다.
그는 이쯤 해서 방송을 종료하기로 했다.
“여러분! 오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며 말하자 모니카는 오히려 아쉬워했다.
서둘러 방종을 하는 것이 수상하다며 끝나고 둘이 어디 가냐며 시청자들이 물어왔다. 하지만 대한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대신 모니카의 어깨에 슬쩍 손을 올리고 승리의 V 자를 그렸다. 나중에 이게 짤이 되어 ‘전생에 나라를 구한 대한’이라는 제목으로 인터넷에 돌아다녔다.
방종하기 직전, 또다시 달풍선이 폭포수처럼 쏟아진 것은 이제 놀랄 만한 일도 아니었다.
대한과 모니카는 카메라가 꺼질 때까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열심히 손을 흔들었다. 그렇게 한동안 같은 행동을 반복하고 나서야 간신히 방송을 종료할 수 있었다.
“모니카! 오늘 고생 많았어요.”
“아니에요. 수고는 대한이 다했지요. 저는 그냥 대한이 이끄는 대로 따라갔을 뿐이에요.”
방송이 끝나자 모니카는 나름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첫 방송 어땠어요?”
“재미있었어요. 그런데 저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을까요?”
“이상하게 나오다니요? 제가 볼 때는 너무 예쁘게 나오지 않을까 걱정인데요.”
“에이.”
대한의 말에 그녀는 배시시 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어쩐지 그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눈빛이 아니었다.
“아까 저 막 울어서 시청자들이 흉보지 않을까요?”
“전혀요. 오히려 모니카를 울렸다고 제가 많이 혼났어요.”
“아니, 왜 대한을 혼내요? 운 건 전데…….”
모니카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너무나도 귀여운 그녀의 모습에 주먹을 꼭 쥐었다. 아까처럼 안아주고 싶은 욕망이 불끈 치솟았던 것이다.
“이유야 어떻든 나 때문에 모니카가 울었으니 내가 사과할게요. 미안해요!”
“아니에요. 괜히 옛날 생각이 나서 운 거예요.”
옛날 생각이 도대체 뭐였는지 꼭 물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모니카가 또 울어버릴까 봐 그만두기로 했다.
“이번 방송에서 달풍선이 30만 개나 나왔어요.”
“우와! 진짜 많이 나왔네요. 대한! 정말 대단해요.”
그녀는 대한을 향해 두 손을 들고 엄지를 위로 치켜세웠다. 사실 달풍선이 이렇게 많이 터진 이유는 전적으로 모니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런 사실을 전혀 깨닫지 못했다.
“제가 대단해서가 아니라 모니카가 대단한 거예요.”
“무슨 소리예요? 전 오늘 그저 게스트로 출현한 것뿐인데.”
“어쨌든 약속한 대로 달풍선을 정산해서 수익금의 반을 보내드릴게요. 까톡으로 계좌번호 좀 보내주세요.”
“대한과 약속한 것은 출연료뿐이에요. 달풍선을 반으로 나눈다고 한 적은 없었어요.”
대한은 모니카의 말에 감동을 받았다. 달풍선 30만 개면 3,000만 원이다. 아메리카 TV 수수료를 빼고도 1,800만 원이나 된다. 이걸 반으로 나누면 각각 900만 원씩 가져갈 수 있는 거금이다. 그런데 그녀는 전혀 돈에 욕심을 내지 않았다.
“제가 말한 출연료가 바로 달풍선이에요.”
“저도 여기 나오기 전에 아메리카 TV의 여러 채널을 구경했어요. 합방을 하면 담당 채널의 BJ가 출연료를 주거나 차비를 준다고 했어요. 달풍선을 반으로 나누는 것은 극히 드물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전 그렇게 할 수 없어요. 모니카 덕분에 이렇게 많은 달풍선을 벌었으니 당연히 수익을 공평하게 나눠야지요. 수수료를 빼면 1,800만 원이니까 900만 원씩 나눠 가지면 되겠네요.”
“그럼 만약 반대의 경우가 생기면 어떻게 할 거예요? 항상 손해를 볼 건가요?”
대한은 모니카의 질문에 그만 말문이 막혀버리고 말았다.
솔직히 아직 그런 경우는 생각해 보지 않았다. 정말 그녀의 말대로 합방을 했는데 달풍선이 전혀 터지지 않는다면 자신만 손해를 보는 느낌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거기까진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어요. 다만 오늘 달풍선 30만 개는 절대 제 능력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그게 제 능력인 것도 아니잖아요. 대한이 닦아놓은 고속도로에 내가 잠시 들어왔다 나간 것뿐이에요.”
“그럼 출연료로 900만 원을 드릴게요.”
대한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니카도 역시 만만치 않았다.
“세상에 한 시간 조금 넘게 합방했다고 출연료로 900만 원을 주는 사람이 어디 있어요? 그냥 10만 원만 주세요.”
“10만 원이요? 그건 말도 안 돼요.”
“여기 스튜디오 대관하고 촬영 준비도 전부 대한이 했잖아요. 난 아무것도 한 것 없이 그저 방송만 출연했어요. 그러니 전 10만 원만 주세요. 덕분에 좋은 경험했어요.”
“안 돼요. 900만 원 받으세요.”
대한과 모니카는 돈 때문에 한동안 승강이를 벌였다. 더 가져가려는 게 아니라 서로 더 가져가라고 다투는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주려고 해도 본인이 안 받겠다고 고사하니 대한도 방법이 없었다.
결국 둘은 50만 원에 합의를 봤다.
그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액수였다. 하지만 모니카는 아주 만족해했다. 대신 한번 출연할 때마다 그녀에게 ‘합방권’ 한 장씩을 주기로 했다.
모니카가 개인 방송을 하게 되면 언제든지 자신을 게스트로 부를 수 있는 권리였다. 결국 대한은 모니카에게 준 출연료 50만 원을 제외하고 1,750만 원이 넘는 돈을 하루 만에 벌어들였다. 중요한 것은 이게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한은 모니카에게 자신의 생각을 솔직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한국어를 가르치는 모습을 방송하고 싶다는 말이죠?”
“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네요?”
“네에?”
“대한이 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는데 왜 저보고 출연료를 받으라는 거죠?”
“출연을 하니 출연료를 줘야죠.”
“아닌데……. 제가 대한한테 돈을 줘야 하는 게 맞지 않을까요? 전 지금도 대한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치면서 돈을 벌고 있잖아요.”
“이거와 그건 다르죠. 모니카가 제 방송에 출연하는 거잖아요.”
모니카는 살짝 헷갈리는지 고개를 갸웃거렸다.
대한은 그녀의 모습에 웃음을 지었다. 입술을 살짝 깨물며 고민하던 그녀가 결론을 내렸다.
“저한테 한국어를 가르칠 때는 그냥 출연할게요. 아무리 생각해도 돈을 받는 것은 좀 아닌 것 같아요. 대신 합방할 때는 꼭 출연료 챙겨주세요. 오늘처럼 이렇게 많이 주지 않아도 괜찮아요.”
“알겠어요. 제가 잘 알아서 챙겨줄게요.”
둘은 악수를 하며 서로 굳게 약속했다.
“그런데 한국어 언제부터 가르쳐줄 거예요?”
“모니카의 스케줄을 살펴보니까 저녁밖에 시간이 없더라고요. 그러니 이탈리아어 배우는 시간을 저녁으로 옮기고 끝나고 나면 반대로 제가 모니카에게 한국어를 가르쳐줄게요.”
“그게 좋겠네요.”
개학을 하면 낮에 학교에 가야 한다. 하지만 저녁이라면 얼마든지 모니카를 볼 수 있다.
물론 그녀를 만나려면 종로까지 나와야 한다. 그래도 모니카를 따로 만날 수만 있다면 그 정도 시간을 투자하는 것은 전혀 아깝지 않다.
이날은 그렇게 을지로에서 깔끔하게 헤어졌다.
* * *
대한은 일주일 동안, 거의 매일 모니카를 만났다. 한국어와 합방을 핑계로 그녀의 저녁 시간은 늘 그의 차지였다.
물론 둘만 오붓하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저녁 식사 때를 제외하면, 언제나 대한 TV의 시청자 수만 명이 함께했다.
덕분에 그는 모니카의 엄청난 풍력을 고스란히 넘겨받을 수 있었다. 가히 풍력 발전소를 돌렸다고 해도 좋을 만큼 정말 달풍선을 쭉쭉 뽑아먹었다.
모니카와 첫 합방 이후, 두 번의 합방과 세 번의 한국어 교육이 있었다. 물론 아침과 점심도 빠지지 않고 운동과 축구 기본기 훈련을 병행했다.
모니카 버프를 받은 대한 TV는 그동안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아메리카 TV 시청자 수는 10,185명, 구독자 수는 20,788명이나 됐다. 유티비의 구독자 수도 빠르게 늘어 21.4만 명이 됐다. 페이스노트 팔로워 17.7만 명, 트워치 구독자 8.7만 명 그리고 원스타그램 팔로워 13만 명을 각각 찍었다. 대한이 방송을 시작한 지 정확히 6주 만에 일어난 일이었다.
―마스터! 늦겠어요. 빨리 나오세요.
‘응, 알았어.’
대한은 에바의 재촉에 서둘러 밖으로 뛰어나왔다. 그는 버스 정류장을 향해 빠르게 걸어갔다. 7212번 버스를 타고 디지털미디어시티역에서 내렸다. 그리곤 공항 전철로 갈아탔다.
오늘은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축구 판타지스타, 알렉산드로 델 삐에로가 방한하는 날이다. 또한 대한이 애타게 기다리던 재능 ‘프리킥’을 흡수하는 날이기도 했다.
그는 막간을 이용해 스마트폰으로 자신의 방송을 모니터링 했다. 모니카와 합방을 했던 방송은 몇 번을 돌려봐도 질리지 않았다.
한 시간쯤 지나자 인천국제공항에 도착했다.
‘에바! 어디로 가야 돼?’
―출국장 C로 가세요.
그는 에바의 안내를 따라 입국장 C로 걸어갔다. 주변은 벌써 축구 협회 관계자들과 기자들이 잔뜩 포진해 있었다. 팬들도 좀 있었지만 그렇게 많은 수는 아니었다. 그래서 대한은 델 삐에로를 만나는 것을 낙관했다.
대한은 문이 잘 보이는 의자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며 느긋하게 기다렸다.
“나왔다.”
“빨리 찍어!”
놀고 있던 기자들이 갑자기 다급하게 움직였다. 대한은 반사적으로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자들의 뒤를 쫓아 입국장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검은 정장을 입은 경호원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그들은 순식간에 입국장 한쪽을 봉쇄하고 사람들의 출입을 차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