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화 <화상 통화>
‘에바! 이 정도면 나 성공한 거지?’
―물론이죠. 한 달 동안 600만 원을 버셨으니 성공하신 게 틀림없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은 이보다 훨씬 많은 돈을 벌게 되실 거예요.
에바의 말에 대한은 만족한 웃음을 지었다. 일진에게 돈을 빼앗겨 지갑이 텅 비었던 것을 보며 부들부들 떨던 때가 엊그제 같았다. 그런데 이제는 미래를 위해 몇백만 원이나 되는 돈을 과감히 투자했다. 가히 상전벽해라 할 만큼 상황이 변해있었다.
‘아 참! 일진 새끼들이 있었지. 빨리 격투기를 배워서 이놈들도 손을 좀 봐줘야 하는데…….’
당장은 헛된 망상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가 격투기 하나만 제대로 마스터한다면… 아마 그들에게는 악몽이 시작될지도 모른다.
―마스터! 방송 시작 10초 전입니다.
‘오케이! 준비됐어.’
대한은 벽에 걸린 거울을 보면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마우스를 클릭하자 2개의 모니터에 자신의 채널인 ‘대한 TV’가 떠올랐다. 그때부터 에바가 모든 장비를 컨트롤하기 시작했다.
G노트 10 스마트폰을 메인으로 두고, G노트 5는 보조로 사용했다. 에바는 피코셀을 조금 투자해 G노트 10 스마트폰의 카메라 성능을 최대한으로 뽑았다. 방송용 마이크와 조명도 최적의 상태와 각도로 잘 맞췄다.
또한 실시간으로 송출하는 동영상 화면에 재밌는 자막과 그림, 동영상 등을 넣어 콘텐츠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안녕하세요! 대한입니다. 오늘도 대한 TV를 찾아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대한은 미소 띤 얼굴로 인사를 했다. 단 한 달 만에, 그는 이미 방송인이 다 된 것 같은 모습을 보여줬다.
대한은 편하고 자연스럽게 말했다. 목소리 톤은 낮고 일정하게 유지했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대한! 그의 발전해 가는 모습에 구독자와 시청자 모두 즐거워했다.
“오늘은 저도 소통 방송이라는 것을 한번 해보려고 합니다.”
대한의 말에 채팅 창이 비처럼 주르륵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말벌봉준: 대한아! 너도 ‘보라 BJ’ 되려고 그러니?]
[다섯공무원: 왜 갑자기 보이는 라디오를 하려고 그럴까?]
[손톱이빨개: 소통 방송하겠다잖아요. 한번 지켜봅시다.]
[여친찾았다: 여캠 섭외도 안 했을 텐데 차라리 그냥 소개팅이나 해라!]
[작업멘트0: 고2가 무슨 소개팅? 저 몸에 여자나 만나 봤겠냐!]
[부부젤라: 고삐리 인맥이야 뻔하지. 그냥 겜방이나 해라!]
[개좋앙: 방송한 지 한 달도 안 됐는데 여캠은 무슨…….]
그는 채팅 창을 보자 절로 힘이 쭉 빠졌다. 제 딴에는 나름 이런저런 재밌는 얘기를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보라 BJ는 아무나 하는 게 아닌 모양이었다.
요새 한창 뜨고 있는 보라 BJ ‘대박이’처럼 ‘여캠 합방’을 잘한다든가, 아니면 참신한 콘텐츠가 있어야 했다.
대한은 겉으로 멀쩡한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애가 탔다.
‘에바! 어째 돌아가는 분위기가 이상하다.’
―콘텐츠 방송도 아무나 하는 게 아닙니다. 시나리오도 써야 하고 준비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내가 여캠을 섭외할 수는 없잖아.’
―아는 여캠이 없으시니 그건 당장 불가능합니다.
‘차라리 유티비를 돌아다니며 재미있는 영상을 볼까?’
―그것도 나쁘지 않겠네요.
대한은 유티비 투어를 하기로 결정했다. 에바는 대한을 위해 유티비에서 가장 빠르게 조회 수가 올라가는 재미있는 동영상을 준비했다.
“먼저 유티비 투어를 하겠습니다. 요새 올라오는 동영상 중 웃기고 재미있는 것을 엄선해서 보여드리겠습니다.”
대한의 말에 다들 무슨 소리인가 하고 궁금해했다.
지이이잉!
그때 대한의 스마트폰이 울리기 시작했다. 방송 중이라서 그냥 무시하려고 했다. 그런데 스마트폰 액정을 보니 전화를 걸어온 사람이 모니카였다.
―마스터! 모니카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어떻게 할까요?
‘받을게.’
―이어폰이나 이어피스를 귀에 꽂아주세요. 소리를 그쪽으로 돌리겠습니다.
‘고마워!’
대한은 모니카와 통화하기 전에 시청자에게 미리 양해를 구했다.
“친구한테 전화가 왔네요. 이건 꼭 받아야 할 것 같아요. 잠시만요.”
그는 귀에 이어폰을 끼고 전화를 받았다.
“Pronto!”
―Pronto, c’e Daehan?
“Sì, sono Daehan.”
―Sono Monica. Ho bisogno di un favore.
“Dimmi pure!”
갑자기 대한이 유창한 이탈리아어로 전화를 받자 채팅 창이 폭발하기 시작했다.
[우리두리: 어! 뭐지? 이 외계어는?]
[어벤저스: 영어는 아니고 프랑스어인가?]
[톰과제리: 아닙니다. 이탈리아어입니다.]
[꼬끼오: 대한이가 외국어를 아주 유창하게 하네요.]
[자주국방: 이건 무슨 콘셉트지? 뚱스에서 외국어 잘하는 엄친아 되기?]
[카리스마: 이건 백퍼 주작이다. 대한이가 드디어 새로운 콘텐츠를 개발한 거야.]
[우주소녀: 고2짜리가 영어도 잘하기 힘든데, 이탈리아어를 유창하게 할 리가 있나요?]
[No재팬: 주작이라니요? 우리 대한이는 그런 거 안 해요. 딱 봐도 외국어를 기가 막히게 잘하는구먼.]
[핵인싸: ㅇㅈ]
[낼름: 대한아! 스피커 좀 틀어봐! 우리도 같이 듣자.]
[홍콩여자: 진짜 외국인과 말하고 있는지 인증 좀 해줘!]
대한은 모니카와 통화를 하다가 눈을 휘둥그레 떴다. 채팅 창에 올라오는 댓글들이 하나같이 그의 이탈리아어 실력을 못 믿겠다는 분위기였다. 급기야 인증 드립에다 스피커로 통화를 들려달라는 말까지 나왔다.
대한은 순식간에 달궈진 반응을 보다 뭔가 뇌리를 강하게 스치는 게 있었다.
“모니카! 저 지금 방송 중이에요.”
―아! 그래요? 제가 괜히 전화를 해서 방해를 했군요.
“그렇진 않아요. 다만 지금 모니카와 이탈리아어로 통화를 하는 게 다들 진짜가 아니고 연기라고 하네요.”
―그게 무슨 말이에요? 대한이 얼마나 이탈리아어를 잘하는데요.
대한의 말을 듣자 모니카가 버럭 화를 냈다. 그에게 이탈리아어를 가르치고 있는 사람이 바로 그녀였기 때문이다.
“못 믿겠으니 인증을 하라고 합니다. 스피커 통화로 돌려서 직접 들려 달래요.”
―그럼 당장 그렇게 해요.
“정말 괜찮겠어요?”
―전혀 문제없어요.
모니카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듯 당당하게 말했다.
대한은 속으로 환호성을 지르며 에바에게 말했다.
‘에바! 소리를 스피커로 바꿔줘!’
―네, 마스터!
에바는 이어폰으로 연결된 소리를 즉시 스피커로 보냈다. 그러자 모니카의 청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것도 경쾌하고 낭랑한 이탈리아어였다.
“안녕하세요? 저는 대한의 친구 모니카입니다. 저희는 지금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나누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대한의 이탈리아어 실력을 믿지 못하겠다고 하셔서 이렇게 목소리로 인사를 드리게 됐습니다.”
그녀는 조금도 떨지 않고 빠르게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을 다했다.
“모니카! 고마워요. 아마 이제 시청자들도 우리가 이탈리아어로 대화하는 것을 듣고 믿지 않을 수가 없을 거예요.”
모니카에 이어 대한도 이탈리아어로 빠르게 말했다. 그러자 채팅 창에서 아까보다 더 난리가 났다.
[비도깨: 미쳤다. 진짜 이탈리아어로 대화를 하네.]
[늑골뽑기: 그런데 이 여자 누구냐, 대한아?]
[베링해: 이름이 모니카라는 것 같던데…….]
[터프가이: 뭐야? 대한이에게 여자 친구가 있었어?]
[치킨효린: 우결각이다.]
[고로쇠콜라: 모니카가 누군지 즉시 밝혀라!]
[코란도일: 얼굴을 공개하라!]
[화가난다: 누군지 궁금하다. 빨리 밝혀라!]
[닥공: 사진 올리면 달풍선 만 개 쏜다.]
대한은 달풍선 만 개를 쏜다는 말에 그만 혹하고 말았다.
“모니카! 지금 모니카 얼굴을 보고 싶다고 난리 났어요!”
―날 왜요?
“친구라고 하니까 못 믿겠다고 하네요.”
―오 마이 갓!
모니카는 잠시 어떻게 할지 고민했다. 하지만 그의 다음 말에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처음 만났을 때 카페에서 찍은 사진 올리면 어떨까요? 인증 사진으로는 그만한 게 없는데…….”
―좋아요. 올리세요.
“네, 고마워요.”
모니카가 좋다고 하자 에바는 즉시 사진을 올렸다. 대한은 모니터에 출력되는 에바의 메모에 바로 멘트를 날렸다.
“모니카에게 허락을 받아서 인증 사진 한 장을 올리겠습니다. 이걸로 주작이니 사기 친다는 소리는 그만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화면 한쪽에 모니카와 대한이 다정하게 옆에 붙어서 찍은 사진 하나가 올라왔다. 그러자 약속대로 달풍선 만 개가 빵 터졌다.
[닥공 님이 달풍선 10,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대한은 그걸 보자마자 즉시 고개를 숙이고 감사 인사를 했다.
“닥공 님 달풍선 만 개 감사합니다.”
하지만 달풍선은 그걸로 끝이 아니었다.
[비도깨 님이 달풍선 111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늑골뽑기 님이 달풍선 222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베링해 님이 달풍선 337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터프가이 님이 달풍선 1,00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치킨효린 님이 달풍선 1,00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고로쇠콜라 님이 달풍선 1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코란도일 님이 달풍선 2,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화가난다 님이 달풍선 1,00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갑자기 너도나도 달풍선을 쏘기 시작했다. 모니카의 사진 한 장이 파란을 일으키기 시작한 것이다.
[늑골뽑기: 모니카라는 여자 모델이냐?]
[비도깨: 뭐야? 왜 이렇게 이뻐?]
[터프가이: 여자 친구가 무슨 미스 유니버스 같다.]
[베링해: 대한아! 너도 능력자였구나.]
[화가난다: 너 누구냐? 정체를 밝혀라! 혹시 날개 잃은 천사?]
[치킨효린: 대한아! 그냥 둘이 결혼해라.]
[고로쇠콜라: 우결하자! 이건 무조건 살려야 한다.]
[코란도일: 졸라 예쁘다. 백의, 아니 천상계의 백마 천사다.]
[닥공: 얼굴 너무 보고 싶다. 화상 통화하면 달풍선 만 개 쏜다.]
모니카의 아름다움을 증명하는 것은 사진 한 장으로도 충분했다. 채팅 창은 불난 곳에 기름을 부어버린 결과가 됐다.
‘아싸! 달풍선 만 개다.’
―마스터! 화상통화에 달풍선 만 개가 또 걸렸습니다.
‘헐! 이건 무조건 받아야겠다.’
달풍선 만 개면 100만 원이다. 한번 받아보니 알 것 같았다. 왜 BJ들이 달풍선을 쏘는 큰손들에게 그렇게 굽실거리는지를 말이다.
“모니카! 지금 반응이 대단해요.”
―무슨 반응이요?
“모니카의 사진을 보더니 화상 통화로 직접 얼굴을 보여 달래요.”
―네에?
모니카의 목소리는 살짝 놀란 듯했다. 갑작스럽게 강의 스케줄이 꼬여서 대한에게 어쩔 수 없이 전화를 걸게 됐다.
수업 시간 변경을 부탁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묘하게 그의 방송에 끼어들어 사진을 공개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화상 통화까지 하자고 한다.
“모니카! 원하지 않으면 안 해도 돼요. 절대 무리하지 마세요.”
―아니에요, 할게요. 잠깐만 기다려줘요. 내가 다시 전화할게요.
“네.”
모니카는 사실 안 하려고 했다. 그런데 대한이 안 해도 된다고 말을 하자 왠지 꼭 하고 싶어졌다.
어차피 페이스노트나 원스타그램에 친구들과 같이 찍은 사진과 동영상이 올라가 있었다.
굳이 대한에게만 안 된다고 하는 것은 형평성의 원칙에도 어긋나는 일이다.
―모니카로부터 전화가 왔습니다. 이번 통화는 화상 통화입니다.
‘연결해 줘! 예쁘게 잘 나가게 보정도 좀 해주고.’
―예, 마스터.
에바가 부드럽게 화상 통화를 연결했다. 모니카의 생생한 얼굴이 화면에 나오자 채팅 창은 주르륵 비가 되어 흘러내렸다.
[우리두리: 와아! 얼굴 실화냐!]
[어벤저스: 미친 미모다.]
[톰과제리: 이탈리아 여자는 원래 이렇게 예쁜 거야? 응? 그런 거야?]
[꼬끼오: 참 아름다우시네요. 부러워요.]
[자주국방: 결혼은 안 돼! 하지만 연애는 당장 시작해도 되겠다.]
[카리스마: 도대체 이 여자 누구냐? 당장 우결하자.]
[No재팬: 대한아! 난 일본 여자만 아니라면 모니카도 괜찮아.]
[핵인싸: 왜캐 예뻐?]
[낼름: 할리우드 스타냐?]
그의 시청자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했다. 특히 남자들은 모니카의 미모에 완전히 매료된 분위기였다. 덕분에 이득을 본 것은 대한이었다.
[닥공 님이 달풍선 10,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만수르SUH 님이 달풍선 10,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닥공 님, 달풍선 만 개 감사합니다. 만수르SHU 님, 달풍선 만 개 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는 너무나 감격한 표정으로 열심히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한번 숙인 고개는 쉽게 다시 올라오지 못했다.
[No재팬 님이 달풍선 1,00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어벤저스 님이 달풍선 1,00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톰과제리 님이 달풍선 1,00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터프걸 님이 달풍선 1,00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피자리아 님이 달풍선 1,00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고로쇠판타 님이 달풍선 1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코만도 님이 달풍선 2,000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대폭주 님이 달풍선 1,004개를 선물하셨습니다.]
달풍선이 미친 듯이 터졌다.
대한은 정신없이 고개를 숙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