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어느새 한 달>
[누구세요123: 오 마이 갓! 27킬!]
[똑똑한사랑: 이런 미친!]
[숲은숲이다: 이 정도면 배그 탑 클래스 아냐?]
[마이클잭스: 치킨이닭!]
[봉팔이봄팔이: 거 참 시원시원하게 게임하네.]
대한은 물을 한잔 마시면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동안 방송에서 매일 운동과 식사만 반복했더니 시청자들이 지루했었나 보다.
시청자 수가 빠지려는 조짐이 보이자 그는 칼을, 아니 총을 뽑아들었다. 바로 게임 방송이라는 콘텐츠였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오늘 아침, 아메리카 TV의 대한 TV 시청자 수는 1,468명, 구독자 수 2,587명이었다. 그런데 게임방송을 시작하자 시청자 수가 순식간에 4,385명으로 늘어났다. 더욱 놀라운 일은 달풍선이 만 개도 넘게 터졌다는 것이다. 달풍선 만 개면 100만 원이다. 아메리카 TV의 수수료를 빼고도 60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었다.
그동안 아메리카 TV만 시청자와 구독자가 늘어난 것이 아니다. 유티비의 구독자 수도 크게 늘어 26,878명이나 됐다. 페이스노트는 선전해서 22,123명의 팔로워를 보유하고 있었다. 트워치도 10,928명, 원스타그램은 그보다 조금 많은 16,864명의 팔로워가 있었다.
“약속대로 오늘도 20킬 이상 올리고 갑니다. 어학원 갔다가 저녁에 개인 방송 할게요. 안녕히 계세요!”
벌써 오후 3시였다. 대한은 시청자들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난 후, 곧바로 방송을 종료했다.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 옷을 갈아입었다. 가방을 챙기고 집을 나서는 대한의 발걸음은 오늘도 가볍고 경쾌했다.
* * *
“Ciao! Monica, Come stai oggi?”
“Bene grazie, e tu?”
“Anche io sto bene.”
파도 어학원 강의실에서 대한은 모니카와 이탈리아어로 인사를 나눴다.
그녀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대한! 정말 이탈리아 남자와 대화를 나누는 기분이에요.”
“제 발음이 그렇게 나쁘지는 않나 보군요.”
그도 모니카를 쳐다보며 부드럽게 웃었다.
“그 정도가 아니에요. 대한은 천재예요. 누구도 대한처럼 일주일 만에 이탈리아어를 이렇게 잘할 수는 없을 거예요.”
“그건 전적으로 모니카가 잘 가르쳐줬기 때문이죠.”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왜 다른 학생들은 대한처럼 이탈리아어를 빨리 배우고 잘하지 못하겠어요.”
대한은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하지만 모니카는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무서운 속도로 이탈리아어에 능숙해지는 그에게 그녀는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두 사람만 앉아있는 작은 강의실은 너무나도 오붓하고 화기애애했다.
“오늘부터는 이탈리아어 중급으로 들어가야겠어요.”
“초급을 시작한 지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중급으로 들어가요?”
“대한의 실력이면 사실 고급으로 넘어가도 괜찮을 것 같아요.”
“그건 좀…….”
대한은 머리를 긁적이며 곤란하단 표정을 지었다. 모니카는 그가 생각하는 것보다 대한을 훨씬 더 높이 평가하고 있었다.
의기투합한 두 사람의 열정! 이탈리아어 중급 코스를 무서운 속도로 마스터해 나갔다.
그녀는 연신 언어의 천재라며 그에게 엄지를 세웠다. 그만큼 대한의 이탈리아어는 남다른 성취를 이루고 있었다.
100분이 정말 순식간에 삭제되듯 지나갔다.
“하아! 벌써 마칠 시간이 다 됐네요.”
“오늘도 고마웠어요, 모니카!”
“아니에요. 저야말로 고마워요. 대한 같은 사람만 있다면 아마 가르치는 게 세상에서 제일 쉬울 거예요.”
모니카 특유의 과장된 칭찬에 대한은 좋아 죽을 것만 같았다. 그러나 겉으로는 그저 담담하게 미소만 지었다.
첫날에는 그녀의 얼굴만 봐도 가슴이 두근거리고 손이 떨렸다. 하지만 지금은 어느새 면역이라도 되어 버렸는지 웃고 떠들며 자연스러운 스킨십을 해도 정신을 온전하게 유지할 수 있었다.
―마스터! 정말 몰라보게 이탈리아어 실력이 늘었어요.
‘이탈리아어를 잘 가르쳐준 모니카와 재능을 얻게 해준 에바 덕분이지.’
―그렇게 말씀해 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그래도 마스터의 피나는 노력이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거예요.
에바도 모니카를 보면서 뭔가 느낀 점이 있었나 보다. 그녀와 비슷하게 이제는 칭찬도 참 자연스럽게 잘하고 있었다.
사실 에바는 무서운 속도로 지구의 문명과 문화를 흡수하고 있었다. 게다가 이제는 여동생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그녀와의 대화가 자연스러웠다.
‘에바! 이 정도 속도면 이탈리아어 재능을 얻는데 굳이 한 달까지 가진 않겠지?’
―아마 이 주일이면 충분히 이탈리아어 재능을 흡수할 수 있을 거예요.
이젠 굳이 이탈리아어 재능을 온전히 흡수하지 않아도 대한의 이탈리아어 실력은 이미 독보적이었다. 덕분에 그는 모니카에게 (학생의 입장으로) 듬뿍 사랑을 받을 수가 있었다.
“모니카도 요새 많이 바빠진 것 같아요.”
“맞아요. 이탈리아어만 가르쳤을 때는 한가했는데……. 영어를 시작하고 나니 너무 바빠서 정신이 없을 정도예요.”
“아무래도 한국 사람들은 이탈리아어보다는 영어를 배우고 싶어 하는 사람이 훨씬 많아서 그런가 봐요.”
물론 영어를 배우려는 사람이 훨씬 많은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꼭 그 이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모니카의 미모에 혹한 많은 남자들이 그녀에게 영어를 배워보겠다고 오는 경우도 아주 많았다. 덕분에 처음에 학생이 없어 난처했던 상황은 일주일 만에 180도로 달라져 있었다.
“한 달만 해보다가 너무 힘들면 스케줄을 조정할 거예요.”
“많이 힘든가 봐요?”
“아직은 괜찮아요. 최소한 한 달은 버틸 수 있어요.”
모니카는 한쪽 팔을 치켜들더니 자신의 알통을 보여주는 몸짓을 했다.
물론 알통은 튀어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뽀얀 살 속에 숨어있던 건강미가 돋보였다.
“모니카! 너무 무리하지 말고……. 컨디션 조절 잘하세요.”
“고마워요. 대한도 개인 방송 너무 늦게까지 하지 말고 푹 자요.”
“모니카가 그걸 어떻게 알죠?”
“제가 어떻게 모를 수가 있겠어요. 저는 대한 TV의 구독자이자 대한의 열렬한 팬이잖아요.”
모니카가 자신의 구독자이자 팬이라는 말에 그는 반색했다.
“정말 제 구독자가 되어주셨군요.”
“제가 응원한다고 했잖아요. 전 약속한 것은 꼭 지켜요.”
“이 은혜를 어떻게 갚죠?”
“은혜라니요. 내가 좋아서 구독자가 된 건데.”
그녀는 은혜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대한은 꼭 모니카에게 보답하고 싶었다.
“그럼 이렇게 해요. 나중에 모니카가 개인 방송을 하게 되면 제가 많이 도와줄게요.”
“제가 어떻게 개인 방송을 해요?”
“왜 못해요? 모니카라면 아마 한 달도 되지 않아 저보다 훨씬 더 유명해질 거예요.”
“에이, 설마!”
“설마라니요? 모니카처럼 예쁘고 아름다운 여자가 개인 방송을 한다면 나라도 당장 구독자가 되려고 할 거예요.”
말을 하다 보니 속마음을 너무 많이 드러냈다. 그러나 모니카는 자신이 개인 방송을 한다는 상상하느라 그의 말을 주의 깊게 듣지 못했다.
대한은 모니카와 헤어지고 파도 어학원을 나왔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모니카가 개인 방송을 하는 게 과연 좋은 일인지 생각해 봤다.
이미 충분히 예쁘고 아름다운 모니카다. 그녀가 유명해지면 유명해질수록 자신과 잘될 확률은 줄어들 것이다. 그런 사실이 대한의 마음을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했다.
* * *
펑! 퍼펑! 빰빠라밤!
팡파르가 울리고 폭죽이 터졌다. 방 안은 에바가 만들어내는 현란한 축포의 향연으로 가득했다.
―마스터, 축하합니다. 재능 ‘이탈리아어(A)’를 얻으셨습니다.
‘고마워, 에바!’
이 주일 만에 대한은 또다시 재능 하나를 추가했다. 모니카의 열정과 그의 노력이 더해져 최상의 결과를 얻을 수가 있었다.
이제 대한은 이탈리아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할 수 있게 됐다. 모니카의 싱크로율이 80%대인 것을 감안하면 준수한 성적이었다.
대한은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상태 창을 열었다.
이름: 이대한
등급: 루키
칭호: 없음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이탈리아어(A), 폭풍 성장(S), 축구 기본기(C), 영어(B)
스탯: 근력 56, 민첩 33, 체력 38, 지력 51, 마력 0
신장 163cm, 몸무게 93kg
재능 칸에 ‘이탈리아어(A)’가 추가됐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다른 곳에 가 있었다.
‘키가 1cm 더 컸어.’
―키 크는 게 그렇게 좋으세요?
‘응! 너무 좋아. 에바는 아마 내 심정을 이해하기 힘들 거야.’
대한의 말에 에바가 발끈했다.
―제가 이렇게 쪼끄매서 무시하는 거예요?
‘지금 바로 그런 생각이 1,000배쯤 증폭되면 내 마음을 이해할 수 있게 될 거야.’
―아! 죄송해요. 마스터! 제가 잠시 정신이 나갔었나 봐요.
그는 굳이 에바의 행동을 탓하지 않았다. 그 정도는 얼마든지 장난으로 봐줄 만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스탯을 보니 근력, 민첩, 체력이 모두 하나씩 올라가 있었다. 다만 재능 ‘이탈리아어(A)’때문인지, 아니면 그동안 대한이 열심히 언어 공부를 했기 때문인지, 지력이 5나 증가했다.
몸무게도 93kg으로 이 주 만에 1kg이 더 빠졌다. 이제는 굳이 다이어트를 하지 않고 영양소가 풍부한 음식을 먹었다. 꾸준히 운동을 하면서 적당량의 식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살을 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에바가 절대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식단을 관리해 주고 있었다. 덕분에 그의 몸도 하루가 다르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다음 재능은 어떻게 하실 거예요?
‘알렉산드로 델 삐에로가 이 주 뒤에 방한할 거야. 그때까지는 참아야지.’
―하긴 중간에 다른 재능을 흡수하다가 쿨타임에 걸려버리면 기회를 놓칠 수가 있지요.
현재 등급이 루키인 대한의 상황에서 재능 흡수는 최소 이 주에서 최대 한 달이다.
다음 재능을 흡수해서 이 주 안에 소화하면 좋겠지만 만에 하나 이 주를 넘겨버리면 델 삐에로가 눈앞에 있어도 그냥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한다.
‘나도 그래서 이 주 동안은 다른 재능을 배우지 않고 기다리려는 거야.’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나저나 히릭스(Hilix)인가 뭔가 하는 우주 탐사선은 찾았어?’
―아직 못 찾았습니다. 하지만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지구를 샅샅이 조사하고 있으니 아마 곧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에바는 희망 사항을 얘기하면서 별로 낙관적인 표정은 짓지 않았다. 대한도 그 모습에 더는 물어보지 않았다. 대신 개인 방송을 시작할 준비를 했다.
대한의 방은 어느새 많이 바뀌어 있었다. 그동안 번 돈을 투자해서 중고 카메라 한 대를 구입했다. 매물이 나온 것 중 가장 상태가 좋고 가격 대비 최고 효율의 물건임을 에바가 미리 확인한 것이다.
방은 벽지를 새로 발라 아주 깨끗해졌다. 컴퓨터도 업그레이드를 하고 32인치 LED 모니터도 두 대나 사서 설치했다. 영상을 찍는 방향도 바꿔서 문을 안보이게 했다. 방송용 마이크도 구입하고 조명도 여러 개 달아 훨씬 밝아졌다.
그동안 썼던 다 낡아빠진 침대와 매트리스도 갖다 버렸다. 매트리스를 새로 사고 한쪽 벽에 세울 수 있게 프레임을 짰다. 덕분에 방도 넓어지고 아주 깔끔해져서 보기가 좋았다.
변한 것은 그의 방만이 아니다. 대한 자체가 키가 커지고 살이 빠지며 피부가 뽀얗게 변했다. 거기에다 미용실에서 최신형 스타일로 헤어컷도 했다. 모니카의 도움을 받아 방송용으로 입을 깔끔한 옷도 몇 벌 구입했다. 그로 인해 수백만 원까지 올라갔던 그의 통장 잔고가 다시 바닥을 쳤다. 하지만 대한은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았다. 이 모든 게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약속된 방송 시간이 10분 남았습니다.
‘에바! 오늘도 잘 부탁해!’
―헤헤! 저도 잘 부탁해요.
에바가 귀엽게 인사를 하며 활짝 웃었다.
막간을 이용해 대한은 자신의 구독자 수와 팔로워 숫자를 확인했다. 아메리카 TV의 평균 시청자 수는 2,545명이었다. 게임 방송을 할 때는 숫자가 급격히 늘어나 8,717명까지 올라갔다.
구독자 수도 크게 늘어 5,196명이나 됐다. 무엇보다 풍력(달풍선)이 크게 늘어 하루에 1만 대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아예 처음부터 겜방을 할 것 그랬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유티비의 구독자 수도 빠르게 늘고 있었다. 현재 53,557명으로 개인 방송을 한 지 한 달 만의 성과치고는 대단했다.
페이스노트 팔로워도 꾸준히 늘어서 44,348명이나 됐다. 페이스노트 스타로 유명한 여자 BJ가 5만 대의 구독자 수를 가지고 있다고 했으니 나름 ‘페노 스타’라고 불릴 만했다. 물론 대한은 100만은 돼야 그런 소리를 할 수 있다고 믿고 있었지만 말이다.
트워치의 구독자 수도 빠르게 늘어 21,837명이 됐다. 원스타그램도 비약적으로 증가해 33,146명의 팔로워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