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화 <게임 방송>
“이 영상 정말 웃겨요. 어떻게 이런 걸 찍을 생각을 다 했어요?”
“사실 부끄러워서 올리지 않으려고 했다가 구독자 수를 늘리고 싶은 마음에 결국 올리게 된 거예요.”
모니카는 대한의 말을 흥미진진하게 들었다.
“시작한 지 보름 정도밖에 안 됐는데… 벌써 이정도 구독자 수면 대단한 거 아닌가요?”
“글쎄요. 저도 시작한 지 보름밖에 되지 않는 유티버라서 잘 모르겠어요.”
“푸훗! 그거 저 지금 웃기려고 지어낸 말이죠?”
“아뇨. 전 지금 있는 사실 그대로 말한 것뿐인데요?”
“어쩐지 그 말은 믿음이 가지 않네요.”
모니카는 이제 장난까지 치면서 친근하게 굴었다. 대한에겐 이런 사실이 정말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그녀는 한참 동안 그의 스마트폰을 쳐다보며 놀라다 웃기를 반복했다. 대한은 모니카의 이런 모습을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쳐다봤다.
어느덧 동영상을 다 봤는지 그녀는 스마트폰을 돌려줬다.
“어땠어요?”
“좋았어요. 특히 다이어트를 하면서 운동을 하는 모습이 아주 멋졌어요.”
쿵!
모니카가 대한에게 멋졌다고 하는 순간!
그는 심장이 바닥으로 내려앉은 충격을 받았다. 세상에 태어나서 자신을 보고 멋지다고 말한 여자는 그녀가 처음이자 유일했다.
대한은 얼굴이 봉숭아 빛으로 달아올랐다.
“그렇게 말해 주니 정말 고마워요.”
“진심으로 말한 거예요. 전 선천적으로 살이 잘 찌는 체질이 아니라서 대한의 고통을 아마 1%도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하지만 동영상을 보니 대한이 지금 얼마나 열심히 노력하고 있는지 충분히 알 수 있었어요. 이건 누구라도 잘했다고 칭찬을 할 만한, 스스로도 자랑스러워할 일이에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Yes! 100% True.”
모니카의 달달한 말에 그는 심장이 쫄깃해졌다.
가슴이 벅차오르고 눈이 뜨뜻해졌다.
‘내 노력을 사람들이 알아줄까? 과연 순수하게 나의 아픔과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해 줄 사람이 있을까?’
대한은 이런 생각을 혼자 무수하게 해봤다. 그는 그런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을 것이라고, 회의적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예쁘고 아름다운 천사 같은 미녀가 처음으로 자신의 아픔과 노력을 진심으로 이해해 줬다.
대한은 그 사실에 감동하고 말았다.
“…….”
“…….”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가만히 서로의 눈을 바라봤다. 모니카는 결코 그의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당당하게 자신 있게 대한의 눈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 박력에 결국 그녀의 말이 진심이라는 것을 그는 깨달았다.
“고마워요. 덕분에 더욱 열심히 다이어트와 운동을 해야 할 이유가 생겼어요.”
“천만에요. 대한이 꼭 성공할 수 있도록 저도 옆에서 응원할게요.”
두 사람은 오늘 처음 만났지만 왠지 오랫동안 알고 지낸 느낌을 받았다. 수십 년을 만나도 속을 알 수 없는 사람이 있다. 반면 단 하루를 만났어도 서로의 영혼이 통하고 그냥 모든 게 이해가 되는 소울메이트도 있는 법이다.
대한과 모니카는 나이와 국적, 인종과 피부 색깔이 전혀 달랐다. 하지만 둘 사이의 대화는 조금도 막힘없이, 물 흐르듯 잘 통했다.
그는 이런 사실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어떻게 자신 같은 뚱보가 이런 미녀와 이렇게 오랫동안 한자리에 앉아서 얘기를 나눌 수가 있는 걸까! 대한에게는 이 시간이 정말 뜻깊고 의미 있는 순간이었다.
그와 모니카는 남은 커피가 다 식을 때까지, 그렇게 오순도순 재미있게 대화를 나눴다. 헤어지기 전에 둘은 서로의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다정하게 첫 만남을 기념하는 인증 샷도 찍었다.
“오늘 즐거웠어요. 그럼 내일 봐요.”
“네, 안녕히 가세요.”
대한과 모니카는 서로의 손을 꼭 잡고 흔들었다. 둘의 입가에는 부드럽고 포근한 미소가 감돌았다.
그들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한 블록을 지나자 벌써 그녀의 모습이 보고 싶어졌다.
그는 용기를 내서 몸을 돌렸다. 마침 모니카도 대한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둘은 거의 동시에 환하게 웃으며 서로를 향해 마구 손을 흔들었다.
잠시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기류가 둘 사이에 흘렀다. 하지만 그들은 이미 서로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조금만 더 가까웠더라면, 아니 잠시 서로에게 몇 발짝만 다가갔다면 아마 둘 모두 이상 기류를 충분히 감지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은 때가 아니었는지 대한과 모니카는 담담히 몸을 돌려 각자의 길을 향해 걸어갔다.
쏴아아아아!
하늘도 무심하게, 느닷없이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 * *
즐거운 방학이다.
지난 일주일 동안 학교에 가지 않는 것만으로도 이렇게 행복할 수가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그렇다고 대한이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서 빈둥거리고 논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방학이 되자 그는 더욱 바빠졌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개인 방송을 시작했다. 꼼꼼히 스트레칭을 하고 맨손 운동을 했다. 밥을 먹고 난 후에는 학교로 가서 트랙을 몇 바퀴 뛰었다.
적당히 몸이 데워지자 그때부터 축구 기본기를 다졌다.
볼 컨트롤, 패스, 드리블, 프리킥, 헤딩, 슛!
6대 축구 기본기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 오전의 시간이 다 지나갔다.
집으로 돌아와 샤워를 하고, 점심을 먹으면서 시청자들과 소통 방송을 했다.
잠시 휴식을 취한 뒤, 컴퓨터를 켜고 이번에는 게임 방송을 시작했다.
대한이 그동안 유일하게 좋아하고 즐기던 게임들 중에서도 특히 배틀 가디언(Battle Guardian). 일명 ‘배그’로 게임 방송을 했다.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게임 방송은 기본적으로 보는 사람이 많았다. 하지만 워낙 겜방을 하는 사람이 많아서 경쟁도 아주 치열했다.
무엇보다 이미 막강한 팬을 보유하고 있는 스타 BJ들의 아성을 뚫기는 절대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어려운 일을 대한은 지금 아주 쉽게 해내고 있었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총을 쏘는 순간, 언덕 너머를 달리던 적이 바닥으로 풀썩 쓰러졌다.
대한은 기절한 놈을 내버려두고 같이 온 적을 향해 저격을 시도했다.
탕탕탕!
단 세 발에 즉사하고 말았다. 그제야 그는 먼저 기절했던 놈을 향해 총구를 돌려 확인 사살을 했다.
타타탕! 타타탕!
단 5초 만에 2킬을 올린 대한!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언덕 위를 향해 일직선으로 달려갔다.
왼쪽에 연막을 던지고, 오른쪽엔 수류탄을 하나 던졌다. 우연인지 얻어걸린 것인지 수류탄에 맞은 적 한 명이 그대로 즉사했다.
다시 1킬을 추가한 대한은 집과 집 사이를 달려갔다. 그의 발밑으로 총알이 쏟아져 흙이 팍팍 위로 튀는 것이 보였다.
―마스터, 2시 방향과 4시 방향에 각각 적이 한 명씩 숨어있습니다.
‘오케이!’
대한은 에바로 인해 적의 위치를 훤히 알게 됐다.
그는 원래부터 배그를 꽤 잘하는 편이었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에바라는 치트키를 달자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슬쩍 킬 수를 확인해 보니 벌써 10킬이었다. 건물로 들어간 그는 차분히 아이템을 파밍하며 기다렸다.
―2시 방향의 적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봤어!’
대한은 창문 틈 사이로 적이 이동하는 것을 보자마자 저격을 했다.
탕탕탕!
붉은 피가 뿌려지며 기절을 하자 느긋하게 총을 바꿔 확인 사살을 했다.
―마스터, 4시!
‘롸저댓!’
그는 곧바로 일어나 옆 창문으로 다가갔다.
건물 사이를 달려 다가오는 적 하나가 보였다. 대한은 즉시 돌격 소총으로 인정사정없이 갈겨댔다.
타타타탕! 타타타탕!
상대방이 붉은 피를 뿜으며 쓰러졌고 킬 수가 하나씩 늘어 12킬을 찍었다.
[뒹굴뒹굴: 미쳤다.]
[몰라몰랑: 얘 왜 이렇게 배그 잘하냐?]
[주글래: 혹시 무슨 약이라도 빤 거 아니야?]
[캐리어7: 주옥같이 소리! 주옥같이 잘하네!]
[mini곤충: 이것 보면 방구석 코난들 열 좀 받겠다.]
[Mr.중독남: 아니 요새 뚱스들 왜 이래?]
[천의Face: 몰랐어? 지금은 뚱스 전성시대야!]
[707특공대: ㅇㅈ! 요새 포동이들 인기도 졸라 많고, 여캠들도 다 홀리고 다니잖아.]
[내사랑고릴라: 우리 대한이는 겜을 참 잘하네. ㅋㅋ]
대한은 채팅 창을 슬쩍 확인하고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 모습이 강한 자신감으로 비쳤는지 또다시 채팅 창이 비가 오는 것처럼 주르륵 흘러내렸다.
[누구세요123: 자신감 개쩌네! 우리 대한이도 멸망전 나가서 월클 한번 찍어보자.]
[똑똑똑접니다: 너도 여캠이랑 합방 한번 해보자.]
[숲속안에서흥: 재미있는 콘텐츠도 한번 만들어봐라!]
[마이클잭스: 난 먹방 보고 싶다.]
[루돌프: 제발 개소리 좀 하지 마라! 우리 대한이 다이어트 하고 있는 거 몰라서 그래?]
[스팔0: 부지런한 거북이가 좋은 거야. 대한이는 나태한 토끼가 아니야.]
[트와이스만세: 겜방은 콘텐츠 아니에요? 대한이는 겜방 하나로도 BJ계의 신성이 될 재목입니다.]
[구리고리: 진짜 미치겠다. ㅋㅋㅋㅋㅋ]
그 사이, 대한이 있는 건물 주위로 적들이 와글와글 몰려들기 시작했다.
―12시에 자동차 한 대가 옵니다.
‘오케이!’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총에 맞은 자동차가 옆으로 확 돌더니 연기가 폴폴 일어났다. 적은 이미 차에서 빠져나가 숨은 상태였다. 그러나 대한의 예리한 시선을 벗어나지는 못했다. 그는 드럼통과 건물 사이에 난 미세한 틈으로 저격을 했다.
탕탕탕탕탕!
즉시 킬 수가 올라왔다.
대한은 곧바로 몸을 돌려 건물 2층으로 올라갔다. 창문으로 두 명의 적이 들어왔다.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그는 계단 끝에 자리를 잡고 신나게 소총을 갈겼다. 붉은 피 분수가 솟구치며 적들은 바닥을 박박 기었다.
대한은 적에게 용서가 없었다. 기절한 적에게 확인 사살을 가하자 결국 킬 수가 올라오며 움직임을 멈췄다.
―마스터! 뒤에서 적이 접근 중입니다.
대한은 대답도 하지 못하고 급히 몸을 옆으로 굴렸다. 총구를 세우고 눈앞에 나타난 그림자를 향해 소총을 쐈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몰래 건물 안으로 들어오려던 적들이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킬 수가 뜨지 않은 것을 보면 죽지 않고 기절한 모양이었다.
그는 확인 사살을 할 겨를이 없었다. 곧장 옆방으로 몸을 피했다.
팟팟팟팟팟!
문 입구로 총탄의 파편이 파바박 튀었다. 대한은 옆문으로 빠져나가 뒤로 우회했다. 가다가 창문 밖으로 보이는 눈먼 적의 뒤통수를 향해 가볍게 총알을 날려줬다.
킬 수가 뜨자 다시 달려서 옆문을 통해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얼핏 적의 모습이 보인 듯해 무작정 소총을 갈겼다.
타타타타탕!
대한의 피가 쭉쭉 빠져나갔다. 총알 몇 개를 맞은 것이다. 그는 즉시 몸을 엄폐한 후 수류탄을 던졌다. 그리곤 바로 건물을 빠져나갔다.
모퉁이에 몸을 숨긴 대한은 구급 상자로 회복하고 진통제로 도핑을 했다. 피를 채우자 그는 벌떡 일어나 다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타타탕! 타타탕! 타타탕!
좌측에 한 명, 정면에 한 명, 우측에 한 명!
그는 차례로 총알을 먹여주며 방과 방 사이를 들락거렸다.
그 사이 킬 수는 쭉쭉 올라갔다.
―문 앞에 적 한 명이 숨어 있어요.
‘땡큐!’
타타타타탕!
문이 열리자마자 반사적으로 총을 쏘자 바로 킬 수가 떴다. 어느새 킬 수는 22.
―옆 건물에서 적이 몰려옵니다. 아무래도 한 팀인 것 같아요.
‘몇 명이야?’
―다섯 명이요.
‘흐음.’
―위치를 표시해 드릴까요?
‘그래.’
그동안은 굳이 적의 위치까지 전부 보려고 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대한은 혼자고 적은 다섯 명이나 된다. 이 정도면 가벼운(?) 페널티, 아니 혜택은 부여해줘야 마땅했다.
[피망: 마지막 결전이다.]
[알로하크림: 치킨각이다.]
[붐박스007: 포위각이다.]
끝이 다가오자 시청자들도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대한은 적이 문을 열고 들어오자 소총을 마구 갈겨버렸다.
타타탕!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킬 수가 뜨자 바로 옆으로 수류탄을 던졌다.
쾅!
죽은 놈의 몸에서 파밍을 하고 슬며시 창문으로 빠져나갔다. 건물을 타고 우회하자 뒷문으로 살금살금 다가가는 놈이 하나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서 뒤통수에 여지없이 총알을 박아줬다.
타타타타탕!
킬 수가 뜨자 뒷문으로 들어가 계단을 타고 올라갔다. 2층을 열심히 수색하고 있는 놈들이 보이기에 소총을 마구 난사했다.
타타타타탕! 타타타타탕!
몸에서 붉은 피가 터지며 쓰러지더니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뒤로 물러나며 수류탄을 까서 던졌다.
쾅!
결국 적의 마지막 남은 피가 바닥을 보이자 매치가 종료되었다.
‘이겼닭! 오늘 저녁은 치킨이닭!’
누가 만들었는지 참 어이없는 치킨 드립이 뜨고 킬 수와 보상이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