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화 <폭풍 성장(S)>
‘아기에게 성장 말고 다른 재능도 있을까?’
―마스터에게는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 재능입니다. 잘 먹고 잘 싸는 것도 재능이 될 수 있으니까요.
‘잘 먹고 잘 싸는 게 재능이라면 굳이 얻을 필요가 없겠다. 난 지금도 잘 먹고 잘 싸니까.’
대한이 아기의 발가락을 잡자 아기 엄마는 혹시 아기가 불편해하지 않을까 아이를 쳐다봤다. 그러나 아기가 손을 내밀어 그의 얼굴을 잡고 꺄르르 웃으며 좋아하자 다시 대한의 스마트폰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기가 건강하고 잘생겨서 동영상으로 찍어서 유티비에 올리면 참 인기가 많을 것 같아요.”
“정말요?”
“그렇지 않을까요? 저는 그럴 것 같은데…….”
“한번 올려볼까…….”
대한의 말에 아기 엄마가 혹했다.
사실 요즘은 개나 소나 다 개인 방송을 하는 ‘일인 방송’ 시대였다. 초고도 비만인 대한도 유티비 방송을 하는데 누군들 개인 방송을 하지 못하겠는가! 다만 올리는 것은 자유지만 보는 것도 자유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마스터! 아기의 최대 재능은 ‘성장’입니다. 그런데 등급이 어마무시합니다.
‘성장 등급이 얼마나 높기에 그런 말을 하는 거야?’
―일반적인 재능 ‘성장’이 아니라 무려 ‘폭풍 성장(SS)’입니다.
‘오 마이 갓! 더블 S등급이다.’
대한은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재능 ‘성장’을 기대했는데 ‘폭풍 성장’이라니……. 그것도 등급이 더블 S급이다. 이건 가히 잭팟이라 할 만했다.
―재능 ‘폭풍 성장(SS)’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당연하지. 이건 정말 무조건 고(Go)다.’
아기 엄마는 대한을 바라보다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의 아기를 너무나 좋아해 주는 그의 모습 때문이었다.
살이 좀, 아니 많이 찌긴 했지만 그 점만 빼면 아주 멀쩡한 학생이었다. 그것도 유티비에 구독자를 만 명도 훨씬 넘긴 공인. 게다가 아랫집에 사는 이웃이기까지 했다.
그녀는 더 이상 대한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지 않았다. 유티비 스타라는 생각을 하니 오히려 뭔가 특별한 게 있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얼굴도 참 깨끗하다. 초고도 비만이면 얼굴이나 등 같은 곳에 여드름이 장난이 아니다. 그런데 대한에게는 그런 게 전혀 보이지 않았다. 자세히 보면 자신의 아들처럼 피부가 참 뽀얗고 하얗다.
“동영상 촬영은 주로 어디서 해요?”
“주로 제 방에서 하고, 운동할 때는 축구장이나 놀이터에서 찍습니다.”
“따로 쓰는 카메라가 있나요?”
“아니요. 전 그냥 제 스마트폰인 G노트 10으로 해요.”
대한은 그동안 번 돈을 과감하게 투자해 새 스마트폰을 구입했다. 그렇다고 예전에 쓰던 G노트 5를 버리지는 않았다. 보조 카메라로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기 때문이었다. 아마 박살이 나서 부서지기까지 충분히 뽕을 뽑아먹을 수 있을 것이다.
“오오! 그러고 보니 스마트폰이 최신형이었네요. 혹시 카메라는 안 샀어요?”
“싼 것은 70만 원 정도하고 비싼 것은 200만 원도 훨씬 넘어가더라고요. 그래서 당분간은 그냥 이걸로 버티려고요.”
“그렇군요. 그럼 나도 이참에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올려야겠네요.”
입술을 꼭 깨물면서 말하는 모습이 나름 큰 결정을 한 모양이었다.
“아하! 개인 방송을 하기로 결정하셨군요?”
“네, 이제 선배님이 많이 좀 도와주세요.”
그녀는 대뜸 대한을 선배님이라고 불렀다. 개인 방송을 보름 먼저 했다고 선배라면 선배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아기 엄마의 말을 그냥 장난으로 받아들였다.
“하하하! 선배라니요. 어쨌든 제가 도와드릴 수 있는 게 있으면 말씀하세요. 최선을 다해 도와드릴게요.”
“말만으로 너무 고마워요.”
“진짠데…….”
그녀는 대한의 호의에 진심으로 고마운 마음이 생겼다.
“그런데 우리 서로 이름도 모르네요.”
“아! 죄송합니다. 전 숭신고등학교 2학년 이대한입니다.”
“전세아에요.”
“세아 누님이셨군요.”
누님이라는 말에 전세아는 순간 당황했다. 시집을 간 이후, 이렇게 어린 남자와 말을 섞어보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거기다 누님이라니…….
그녀는 기분이 살짝 묘해졌다.
“호호호! 누님이라고 하니까 기분이 좀 그러네요.”
“그럼 뭐라고 부를까요?”
“아니에요. 그냥 그렇게 부르세요.”
“알겠습니다. 세아 누님. 그런데 말 편하게 하세요. 제가 한참 어리잖아요.”
“그럼 그럴까?”
대한의 센스 있는 말에 전세아는 기분이 좋아졌다. 대한은 얼떨결에 윗집 아기 엄마와 누나 동생을 먹고 말았다.
“아기 이름이 뭐예요?”
“김아람이야.”
“참 아기와 잘 어울리는 이름이네요.”
전세아는 보기와는 달리 시원시원하고 화통했다.
그녀는 처음에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막상 친해지고 나자 수다도 잘 떨고 말도 참 재미있게 잘했다.
우웅!
그때, 머릿속에서 익숙한 공명음이 들려왔다.
―대상자 김아람(아기)에 대한 DNA 분석이 끝났습니다. 재능 폭풍 성장(SS)을 흡수합니다.
‘드디어 재능 폭풍 성장을 가질 수 있게 됐구나!’
―성장판이 열린 마스터께서는 이제부터 폭풍 성장을 시작하게 될 것입니다.
‘얼마나 키가 클 수 있을지 정말 기대가 된다.’
―그건 아직 알 수 없습니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스터께서 원하지 않으시면 언제든지 성장은 멈출 수 있습니다.
에바는 대한을 위해 얼마든지 재능의 흡수를 멈출 수 있음을 시사했다. 하지만 그는 손톱만큼도 그럴 생각이 없었다.
159.5cm! 이건 당사자가 직접 겪어보지 않고는 모르는 비애다. 특히 180cm 이하는 루저라고 망언을 해대는 대한민국의 일부 정신 나간 여자들에게 받는 멸시와 천대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였다.
그런데 대한은 이렇게 인생 역전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그것도 일반 재능이 아닌 더블 S급 재능 폭풍 성장(SS)을 통해서 말이다.
―등급이 등급인 만큼, 오늘 밤부터 좀 극심한 몸의 변화가 시작될 것입니다. 일찍 들어가서 편히 쉬고 잘 먹고 잠자리에 드실 것을 조언합니다.
‘무슨 뜻인지 알았어.’
대한은 전세아와 잠시 더 얘기를 나누다가 전화번호를 교환했다.
“대한아! 안녕!”
“그럼 나중에 연락 주세요.”
“그래.”
“아람이도 빠이빠이!”
“빠아!”
마지막에 아기가 그를 보고 ‘빠아’ 하고 소리를 냈다. 그 모습이 사람을 심쿵하게 만들었다.
확실히 아기는 다 귀여운가 보다. 생각 같아선 아기의 볼에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혹시라도 전세아가 싫어할까 봐 소심하게 눈빛으로만 고마움을 표현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대한의 발걸음이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 * *
쏴아아아!
시원하게 샤워를 했다. 온몸을 덮고 있는 끈적끈적한 불쾌감과 고약한 냄새는 몇 번이나 씻어도 잘 없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은 포기하지 않는다.
“어휴! 이제야 좀 살겠네!”
대한은 어쩐지 샤워를 한 게 아니라 운동을 하고 나온 기분이었다. 다행히 더 이상 몸에서 냄새가 나지 않아 좋았다.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닦던 대한의 눈이 갑자기 휘둥그레졌다.
‘어! 얘가 언제 이렇게 커졌지?’
어제만 해도 성장이 중간에 딱 멈춘 것처럼 여물지 않았던 녀석이다. 그런데 밤사이에 잘 익다 못해 커다란 오이, 아니 가지가 되어있었다.
사실 이건 어디 가서 하소연도 못 하는 혼자만의 고민이었다. 하지만 단 하루 만에 사타구니 사이에서 천지개벽이 일어났다.
‘에바!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초고도 비만으로 인해 비정상적으로 성장판이 닫히면서 발육이 멈췄던 육체가 다시 정상적인 (폭풍) 성장을 하고 있는 겁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하루 만에 이놈이 이렇게 달라질 수가 있어?’
―달라진 것은 비단 마스터의 신체 기관 일부만이 아닙니다.
그제야 대한은 어제 자신이 새로운 재능을 흡수했다는 것을 기억해 냈다.
‘아! 재능, 폭풍 성장 때문이구나.’
―원하시면 상태 창을 열어드리겠습니다.
‘오케이! 상태 창 좀 열어봐!’
―네, 마스터!
에바는 그를 위해 간만에 상태 창을 열었다.
허공에 투명한 상태 창이 떠올랐다.
이름: 이대한
등급: 루키
칭호: 없음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폭풍 성장(S), 축구 기본기(C), 영어(B)
스탯: 근력 55, 민첩 32, 체력 37, 지력 46, 마력 0
신장 162cm, 몸무게 94kg
“우와!”
대한은 너무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터트렸다.
‘이게 실화냐!’
―재능 ‘폭풍 성장(S)’을 얻으신 것을 축하드립니다.
‘폭풍 성장이 S등급이야!’
―재능 흡수 대상자, 김아람(아기)과 마스터의 싱크로율이 무척 높았습니다.
대한이 S급 재능을 얻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런데 그의 놀라움은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시선이 내려가자 대한의 얼굴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세상에 내 키가 162cm라니…….’
―몸무게도 2kg이나 빠져서 현재 94kg이 됐습니다.
에바가 하는 몸무게 얘기는 아예 귀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대한이 눈에 뿌옇게 습막이 생기기 시작했다. 자신의 키가 무려 2.5cm가 자란 현실에 감동해 버린 것이다.
그는 결국 눈물을 뚝뚝 흘리며 에바의 설명을 들어야했다.
―스탯도 많이 증가했습니다. 근력, 민첩, 체력, 지력이 모두 5씩 올라갔습니다. 무엇보다 이제 성장판이 활짝 열려서 키가 더 자랄 것입니다.
‘우리 반 애들이 알아보지 않을까?’
―2.5cm 정도 큰 것으로는 아마 알아보지 못할 겁니다. 그리고 오늘 방학식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지. 방학 한 달 동안 갑자기 키가 컸다고 하면 되겠구나.’
대한은 에바의 이유 있는 핑계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냥 오늘 하루 째버릴까?’
―학교를 가지 않겠다는 뜻이라면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어차피 오늘은 수업을 하는 것도 아니니 말입니다.
에바는 확실히 다른 사람들과 생각하는 게 달랐다. 그녀는 오히려 그에게 학교에 가지 말라고 충동질을 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대한은 학교에 가지 않기로 마음을 먹었다. 오늘만 넘기면 한 달 동안 방학이라는 유혹에 홀라당 넘어간 것이다.
―마스터! 계속 이렇게 욕실에 서 있으실 겁니까?
‘왜?’
―마스터의 어머니께서 지금 욕실 밖에 서 계십니다.
‘그래?’
대한은 어머니가 화장실이 급해서 그런가 보다 생각하고 서둘러 샤워 가운을 입고 욕실 밖으로 나왔다.
“죄송해요. 너무 오래 썼죠?”
“그건 괜찮은데……. 너무 자주는 하지 마라! 뼈 삭는다.”
“예에?”
후다닥!
김혜영은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하고는 얼른 욕실 겸 화장실로 쏙 들어갔다.
그는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자신의 방으로 들어왔다.
‘에바! 지금 우리 어머니가 하신 말이 무슨 뜻이야?’
―‘자위를 너무 자주 하지 마라. 뼈 삭는다’라는 말을 하신 게 아닐까요?
‘자위? 나 요새 자위한 적 없는데…….’
대한은 아무리 생각해도 어머니가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젯밤 마스터께서 재능 ‘폭풍 성장(SS)’을 흡수하느라 끙끙 앓은 소리를 듣고 오해하신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내가 어제 끙끙 앓았어?’
그는 어젯밤 잠에 든 후 한 번도 중간에 깨지 않았다. 일어나보니 밝은 아침이라서 전혀 몰랐었다.
―처음 겪는 높은 등급의 재능을 흡수하느라 좀 무리를 하신 부분도 없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옆에서 통증을 완화시키고 깊은 잠을 유도했기 때문에, 마스터께서는 편히 주무시고 일어나실 수 있었던 겁니다.
‘아, 그래? 일단 그건 고마워! 하지만 어머니가 오해하시는 부분은 좀 억울하다.’
대한은 자위가 죄라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다만 부모님이 그 사실을 아는 게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어찌 됐든 이미 오해하고 계신 부분을 일부러 다시 꺼내 대화의 주제로 삼고 싶진 않았다.
아직 대한민국의 부모들은 서양처럼 개방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어디 보자.”
대한은 문 옆에 몸을 세웠다. 거울을 들고 문 옆에 새겨진 눈금을 확인했다. 자신의 신장을 재기 위해 그가 예전에 만들어놓았던 흔적들이었다.
‘162cm가 맞구나.’
―정확히 말씀드리면 162.137865cm입니다.
‘됐어. 앞으로 소수점 이하는 무시하자.’
―네, 마스터.
에바가 살짝 오버를 하기에 냉정하게 말했다. 하지만 그의 입가에는 숨길 수 없는 즐거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150대와 160대의 높이와 공기가 이렇게 다르게 느껴지기는 난생처음이었다.
―방학식 끝나고 내일 가기로 했던 어학원을 오늘 가시는 것은 어떻습니까?
‘그래도 될까?’
―아니면 지금 학교로 가시겠습니까?
‘아니.’
이미 째자고 마음먹은 학교다. 그는 굳이 자신의 생각을 바꿀 필요성을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