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화 <축구 기본기(C)>
[낼름: 새 카메라를 사는 대신 중고 카메라를 사면되잖아요.]
대한은 채팅 창을 보고 있다가 얼른 끼어들었다.
“저도 굳이 일제 카메라를 사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G노트 10이나 중고 카메라를 사려고 생각 중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게 좋은지 잘 모르겠더라고요. 혹시 이 분야에 전문가가 계시면 좀 가르쳐주세요.”
그는 자연스럽게 대화를 유도하며 시청자들과 친밀한 소통을 유지해 나갔다. 그러다 적당히 시간이 지나자 대한은 팔굽혀펴기, 크런치, 스쿼트 등 맨손 운동을 시작했다.
점차 운동하는 개수와 시간이 늘어날 때마다 시청자들은 아주 좋아했다. 일부는 대한이 운동을 할 때 같이 하면 좋다고 권하기까지 했다.
[만수르SUH: 우리 대한이 살이 좀 빠진 것 같다.]
[우리두리: 그러게 말이에요. 얼굴도 몰라보게 좋아졌어요.]
[어벤저스: 여드름도 다 없어지고……. 좀 잘생겨진 것 같아.]
[톰과제리: 혹시 벌써 미션 성공한 것은 아니겠지?]
대한은 미소를 지으며 살짝 고개를 흔들었다.
“확실히 살이 좀 빠지긴 했습니다. 운동을 꾸준히 하다 보니 근육도 좀 생긴 것 같아요. 하지만 아직 목표에 미치지는 못했습니다.”
달풍선이 걸려있는 거라서 그도 빨리 미션을 성공하고 싶었다. 하지만 에바는 절대 무리한 다이어트는 시키지 않았다.
음식도 점차 줄이고 식단도 아주 꼼꼼히 챙기고 있었다. 혹시라도 중간에 영양소가 부족하면 오히려 식사를 더하라고 부추기기까지 했다. 덕분에 대한은 지난 일주일 동안 큰 어려움 없이 살을 뺄 수 있었다.
“운동을 마쳤습니다. 여러분! 오늘은 여기까지입니다. 내일 다시 뵐게요. 안녕히 주무세요!”
[만수르SUH: 바위^^]
[우리두리: 대한이도 잘 자!]
[어벤저스: 오늘 수고했다. 내일 보자!]
[톰과제리: 미션 성공 파이팅!]
[꼬끼오: 내 꿈 꿔!]
[낼름: 꿈에서 닭 보면 깨어날 수 있어. 시끄럽지 않게 귀마개하고 자라.]
[꼬끼오: 아직도 안 가고 여기 있었네. 날름거리지 말고 꺼지라니까.]
[자주국방: 체력은 국력이다. 내일도 파이팅해라!]
채팅 창이 빠른 속도로 내려가며 작별인사가 도배되기 시작했다. 대한은 손을 흔들면서 잠시 그대로 기다렸다. 거의 작별인사가 사라지자 그제야 그는 방송을 종료했다.
“휴우! 끝났다.”
대한은 긴장을 쫙 풀고 의자에 몸을 기댔다.
‘에바! 오늘 방송 어땠어?’
―좋았습니다. 마스터께서는 점점 생방송에 익숙해지고 계십니다.
그는 에바의 말에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오늘도 꾸준히 터져준 달풍선을 생각하자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대한은 뒷정리를 하고 욕실로 들어갔다. 이후 깨끗이 샤워를 하고 나와 침대에 누웠다. 하루를 깔끔하고 보람차게 마친 것을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하며 그는 살포시 눈을 감았다.
* * *
펑! 퍼퍼펑! 펑펑펑!
빰빠라밤! 빰, 빰, 빰, 빰빠라밤!
현란한 축포가 터지고 신나는 팡파르가 울렸다. 허공에는 에바가 만들어낸 불꽃 축제가 한창이었다. 당연히 대한의 눈에만 보이는 환상이기도 했다.
―마스터, 축하드립니다. 재능 ‘축구 기본기’를 획득하셨습니다.
‘고마워, 에바!’
―천만에요. 이번에도 최대 한 달인 재능 흡수 시간을 이 주 만에 끝내셨습니다.
‘이게 다 에바 덕분이야.’
―아닙니다. 전적으로 마스터의 노력으로 만들어낸 쾌거입니다.
대한은 에바에게 공(功)을 돌렸다. 에바는 대한의 노력이라고 강조했다. 한동안 둘은 서로에게 공치사를 주거니 받거니 했다.
‘에바! 일단 상태 창 좀 확인하자.’
―네, 마스터.
에바는 허공에 투명한 상태 창 하나를 띄워줬다.
이름: 이대한
등급: 루키
칭호: 없음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축구기본기(C), 영어(B)
스탯: 근력 50, 민첩 27, 체력 32, 지력 41, 마력 0
신장 159.5cm, 몸무게 96kg
상태 창은 큰 변화가 있었다.
몸무게가 101kg에서 96kg로 5kg이나 빠졌다. 스탯도 근력 50, 민첩 27, 체력 32, 지력 41로 크게 올랐다. 근력, 민첩 체력이 각각 전보다 5씩 올라갔고 지력도 3이나 상승했다.
대한은 미소를 지으며 시선을 위로 올렸다. 재능 칸에 두 개의 재능이 자리 잡고 있었다.
‘축구 기본기(C)’와 ‘영어(B)’였다.
‘에바, 그런데 왜 축구 기본기의 등급이 C등급이지? 숭신고등학교 축구부 최정규 감독으로부터 흡수한 축구기본기 등급이 A등급 아니었어? 그럼 내가 B등급을 얻어야 정상이잖아.’
―이번에는 좀 상황이 다릅니다.
‘어떻게 상황이 다르다는 거야?’
대한의 까칠한 말투에 에바의 목소리가 더욱 조심스러워졌다.
―현재 마스터의 신체 상태로는 재능 ‘축구 기본기(C)’를 획득하는 것까지가 최상이었습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내 신체에 문제가 있어서 B등급을 얻을 수 있는 것을 C등급밖에 못 얻었다는 거야?’
―네, 맞습니다.
‘제기랄!’
그는 욕이 터져 나오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축구 기본기(C)는 아마추어 선수 레벨이었다.
최소한 축구 기본기 등급이 B는 돼야 프로 선수의 레벨이라 할 수 있었다. 단 한 등급 차이에 불과했지만 그 수준 차이는 명백했다.
―죄송합니다. 현재의 제 능력으로는 이게 최선입니다.
에바는 두 손을 배꼽에 가지런히 모으고 고개를 푹 숙이며 정중하게 사과를 했다.
대한은 그런 모습을 봐도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의 몸 상태가 후져서 이렇게 된 것을 누굴 원망하겠는가? 그래도 이유는 확실히 알아야 했기에 그녀에게 따지듯이 물었다.
‘전에 에바가 재능은 몸 상태와 관계없이 얻을 수 있다고 하지 않았어?’
―맞습니다. 재능을 얻는 것은 몸 상태와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아무리 몸에 각인을 하고 기술을 체화시켜주고 경험을 기억 형태로 남겨줘도 신체능력이 그 기술을 따라 하거나 구사할 수 없다면 아무 소용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아!’
대한은 그제야 에바의 말을 100% 이해했다.
‘그러니까 내가 만약 일반인의 몸만 가졌어도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거란 말이네?’
―그렇습니다. 그러니 다음 재능도 신중하게 선택하셔야 합니다.
둘의 대화는 자연스럽게 차기 재능 흡수에 관한 얘기로 넘어갔다.
―마스터, 다음 재능은 어떤 것으로 할 생각이십니까?
‘프리킥 재능을 얻을까 생각해 봤어.’
―그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래도 계획을 좀 미뤄야겠어.’
대한의 말에 에바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귀엽게 물었다.
―무슨 특별한 이유라도 있으신가요?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축구 판타지스타 알렉산드로 델 삐에로가 한 달 뒤에 방한한다는 기사를 봤어.’
―아! 그러니까 그 프리킥의 대가로부터 높은 등급의 프리킥 재능을 흡수하려는 생각이시군요.
에바는 단박에 그의 의도를 파악했다.
‘맞아. 에바는 역시 내 말을 바로 알아들을 줄 알았어.’
―그럼 델 삐에로가 내한할 때까지 아무런 재능도 흡수하지 않을 생각이십니까?
‘일단 이탈리아어부터 배울 생각이야. 그래야 델 삐에로에게 쉽게 접근할 수 있을 테니까.’
대한은 나름 합리적인 생각으로 계획을 짜놓았다.
―무슨 뜻인지 충분히 이해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먼저 재능 ‘성장’을 흡수하실 것을 강력히 추천합니다.
‘재능 ‘성장’을 얻으면 재능 ‘이탈리아어’를 얻을 수 없잖아.’
그는 에바에게 지극히 타당한 이유를 댔다. 하지만 에바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마스터께서 오해를 하고 계십니다. 재능 ‘성장’은 패시브입니다. 대상의 성장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꾸준하게 몸에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말입니다.
‘패시브 재능은 쿨타임이 없는 거야?’
―쿨타임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아예 카운트를 하지 않는 겁니다. 그러니 재능 ‘성장’을 먼저 흡수하시고 바로 재능 ‘이탈리아어’를 흡수하시면 됩니다.
패시브 재능을 흡수한 후에 바로 다른 재능을 흡수할 수 있다면… 대한에게는 전혀 손해가 아니었다. 오히려 동시에 두 개의 재능을 흡수하는 개이득을 볼 수 있었다.
기대했던 것보다 낮은 등급의 재능을 얻어 생긴 짜증! 이 한마디 말에 단박에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우와! 그런 수도 있구나. 좋아. 재능 ‘성장’을 먼저 흡수할게.’
―잘 생각하셨습니다.
‘그런데 재능 ‘성장’은 어디 가서 흡수하지?’
―당연히 아기와 접촉을 하셔야 합니다.
‘혹시 아기에게 무슨 피해를 주는 것은 아니겠지?’
―당연히 아닙니다. 지난번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재능 흡수는 재능 약탈과는 전혀 다릅니다.
대한은 에바의 딱 부러지는 듯한 말투에 안심할 수 있었다. 만에 하나라도 어린 아기에게 피해가 가는 일은 절대로 있어선 안 된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에바에게 다시 확인했던 것이다.
새로운 재능을 얻을 생각을 하니 그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빨리 아기를 만나러 밖으로 나가야겠다.’
―마스터! 굳이 멀리 갈 필요 없으십니다. 이번에 분유 회사에서 ‘추억의 우량아 선발 대회’라는 이벤트를 열었습니다. 마침 거기서 우승한 아기가 윗집에 살고 있습니다.
‘그래? 그럼 윗집으로 가봐야 하나?’
―아기와 엄마는 지금 현재 집에 없습니다. 신사 선린 공원으로 산책 나갔습니다.
신사 선린 공원이란 말에 대한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거긴 우리 아버지가 일하시는 곳인데…….’
―맞습니다. 바로 거기로 산책을 갔습니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신사 선린 공원. 집에서 공원 동쪽 출입구까지 거리가 약 1,200m 정도였다. 걸어서 20분이면 도달할 수 있는 거리다.
‘윗집 아기는 지금 어디에 있어?’
―신사 선린 공원 안에 있는 도서관에 있습니다. 제가 내비게이션 역할을 해드릴 테니 바로 따라가시면 됩니다.
‘알았어.’
대한은 급히 집을 나와 ‘은평터널로7길’을 걸어갔다. 사거리를 지나 ‘증산로17길’을 따라 동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우거진 수풀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옆에 세워진 ‘내를 건너 숲으로 도서관’이 보였다.
이름이 참 근사한 도서관은 나름 멋있게 잘 지어져 있었다. 하지만 대한은 그런 것을 보기보다는 빨리 아기나 찾고 싶었다.
다행히 윗집에 사는 아기와 엄마는 도서관 옆 놀이터에 있었다. 평범한 외모에 젊은 아기 엄마는 벤치에 편하게 앉아있었다. 그 옆에는 토실토실한 아기가 유모차에서 엄마를 향해 두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는 슬금슬금 유모차를 향해 다가갔다.
“안녕!”
대한은 일부로 환하게 웃으며 아기와 눈을 마주쳤다. 다행히 아기는 울지 않고 그를 쳐다봤다. 호기심이 생긴 것이다. 그러나 아기 엄마는 날카로운 눈으로 대한을 쳐다봤다.
하긴 갑자기 어디서 뚱뚱한 놈이 다가와 자신의 귀한 아기에게 접근을 하면 누구든지 먼저 경계를 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나마 일주일 동안 다이어트와 운동을 하고, 얼굴에 여드름이 싹 없어져서 다행이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당장 아기 엄마의 눈총부터 샀을 것이다.
“와아! 이 녀석 진짜 잘 생겼네.”
대한은 일부로 아기를 칭찬하며 엄마의 경계심을 낮추려고 노력했다.
그는 유모차 앞에 쪼그려 앉아 가만히 아기를 바라봤다. 일회용 이벤트성이긴 하지만 과연 ‘추억의 우량아 선발 대회’에서 우승을 할 만큼 건강한 아기였다.
“어! 이제 보니 우리 집 아래층에 사는 학생이잖아?”
“혹시 윗집에 사시는 분이에요?”
“맞아요.”
다행히 아기 엄마는 대한의 독특한 외모를 기억하고 있었다.
“외모가 좀 바뀌어서 몰라봤어요.”
“아아! 제가 요새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고 있거든요.”
아기 엄마의 말에 그는 얼른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러고는 자신의 유티비 채널을 열어 그녀에게 보여줬다.
“어머! 구독자가 만 명도 넘네요?”
“하하하! 제가 어쩌다 보니 좀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손이 오그라지는 것 같은 잘난 척이었다. 하지만 얻어야 할 것이 있기에 그는 뻔뻔스럽게 이런 말도 해야만 했다. 그런데 아기 엄마는 오히려 대한의 그런 자신감을 좋게 받아들였다.
“역시 유티비 스타는 다르네요. 자신감이 아주 하늘을 찌르고 있어요.”
“에이, 아직 스타까지는 아니죠. 그냥 좀 인기가 있다뿐이지.”
“그래도 이 정도 구독 자수면 조회 수도 장난 아니게 나오겠네요?”
“좀 나오긴 하죠.”
일단 같은 연립 주택에 사는 이웃이라는 것이 밝혀지자 둘은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대한은 아기 엄마와 대화를 나누면서 틈틈이 기회를 노렸다.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아기의 발가락을 잡을 수 있었다.
‘에바! 발가락도 괜찮지?’
―물론이죠. 피코셀의 주입이 끝났습니다. 현재 재능 흡수 대상자인 아기의 DNA를 분석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