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화 <운동과 훈련>
마이클 트루먼은 오늘도 어김없이 페이스노트를 열었다.
커다란 침대에 누워서 빈둥거리며 스마트폰으로 연신 ‘좋아요(Like)’를 눌러댔다.
그는 몸이 뚱뚱해서 움직이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다행히 페이스노트는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누워서 할 수 있는 취미 생활이었다.
“이건 뭐지?”
마이클은 갑자기 팝업되는 이미지에 눈을 크게 떴다. 웬 동양인 뚱보가 식스팩을 자랑하는 엽기적인 모습! 처음에는 스팸인가 했지만 알고 보니 친구 중 하나가 보내온 것이었다.
그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도톰한 손가락으로 스마트폰 화면을 터치했다. 그러자 곧 어이없는 동영상이 열렸다.
“뭐야? 1초 식스팩! 푸하하하! 식스팩을 이렇게도 만든다고?”
마이클은 동영상을 보자마자 배꼽을 잡고 웃어댔다. 그런데 동영상 끝에 나타난, 멋진 몸을 가진 사내와 동양인 뚱보 얼굴이 합성되는 순간 떠오른 마지막 문구가 그의 가슴을 찔렀다.
[Wanna be!]
동영상의 주인공이 얼마나 몸짱이 되고 싶어 하는지 이 한마디 말로 능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 제대로 감정이입이 되어 절절한 심정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
침을 꿀꺽 삼킨 마이클은 옆에 있는 동영상도 한번 틀어봤다.
화면이 페이스노트에서 벗어나 유티비로 넘어갔다.
이번에는 라면을 먹는 영상이 나왔다.
일명 먹방(Mukbang)!
한국에서 시작된 독특한 방송 콘텐츠 중 하나로 유명했다.
마이클도 먹방을 아주 좋아했다. 가끔 먹방을 보면서 대리만족을 느끼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 동양인 뚱보는 놀랍게도 라면을 무려 20봉지나 먹어치웠다.
몸이 뚱뚱하다고 무조건 많이 먹을 수 있는 것은 절대로 아니다. 일반인보다야 좀 더 많이 먹겠지만 그래도 엄연히 인간인 이상 한계라는 것이 존재했다. 그러나 이 녀석은 마치 그 한계라는 것을 비웃는 것처럼 아예 라면을 입안에 들이붓듯 순식간에 다 먹어버렸다.
“What the hell!”
마이클은 자신도 모르게 욕을 하며 벌떡 침대에서 일어났다.
동영상의 주인공이 먹방이 끝나자마자 바로 다이어트와 운동을 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이다.
동양인 뚱보의 나이와 신장이 자막으로 올라왔다. 이어 몸무게를 직접 재서 인증까지 해버렸다.
방금 봤던 먹방의 충격이 가시기 전이라 그의 놀라움은 더욱 컸다.
마이클은 침대를 벗어나 소파로 걸어갔다.
벽 전체가 하나로 된 통짜 유리창 너머 잘 정돈된 넓고 아름다운 정원이 펼쳐져 있었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오직 스마트폰에 집중되어 있었다.
마이클은 반사적으로 옆에 있는 동영상 섬네일을 눌렀다.
통, 통, 통, 통, 통, 통…….
이번에는 동양인 뚱보가 축구공으로 리프팅을 하는 영상이 나왔다. 보이지 않는 실로 축구공을 허공에 매달아 놓은 것처럼 신기하게도 축구공이 땅에 떨어지지 않고 계속 위로 튕겼다.
얼핏 봐도 오버 사이즈 몸매와는 전혀 매치가 되지 않는 모습이었다.
“흐음!”
마이클은 점점 이 동양인 뚱보에게 관심이 갔다. ‘대한 TV’라는 아이디를 보니 이름이 ‘대한’인 것 같았다. 그는 대한이 올린 다른 동영상을 다보고 난 후 고개를 끄덕였다.
“이런 동영상은 혼자 보면 안 되겠다.”
마이클은 페이스노트를 열어 자신의 팔로워들에게 전체 메시지로 동영상을 첨부해서 보냈다. 놀랍게도 그의 팔로워 숫자는 만 단위를 훨씬 넘기고 있었다.
특히 한 단체의 회원들이 아주 많았다.
‘전미 빅 사이즈 연합(All American Big size Union).’
마이클이 회장으로 있는 친목 단체의 이름이다. 모두 자신과 같은 오버 사이즈의 몸을 가지고 있는 회원들의 연합체였다.
그는 그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곧장 아버지 해리에게도 동영상을 보냈다. 당연히 채팅 창에 ‘추천 동영상’이라는 태그를 달았다.
마이클은 슬쩍 미간을 찌푸렸다. 바람둥이 아버지, 해리의 뺀질거리는 얼굴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그래도 동영상을 보낸 것에 대해서는 후회하지 않았다. 해리는 할리우드에 막강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영화 투자자다. 자칭 사교계를 주름잡는다고 자랑을 할 정도니 분명히 할리우드의 유명 셀럽들에게 동영상을 대신 뿌려줄 수 있을 것이다.
“대한! 한번 열심히 해봐라!”
마이클은 그 말을 끝으로 스마트폰을 침대 위로 던졌다.
그는 욕실을 향해 걸어갔다. 기왕 일어난 것 샤워라도 하려는 것이다.
쏴아아아!
샤워기에서 소나기처럼 물이 쏟아졌다. 덕분에 스마트폰에서 미친 듯이 울려대는 알림 소리를 그는 전혀 듣지 못했다.
―미션 성공!
에바의 귀엽고 작은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오는 듯했다.
* * *
학교 축구장.
수업이 끝나고 인적이 뜸한 시간!
축구장을 찾아온 대한은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부상을 예방하고 근육의 효과적인 작동과 유연성을 기를 수 있기에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필수적인 동작이다.
물론 처음에는 스트레칭을 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지난 일주일 동안 꾹 참고 열심히 해온 결과 이제는 누가 봐도 익숙한 동작을 선보일 수 있었다.
‘에바, 촬영은 잘하고 있지?’
―물론이죠. 지금 아메리카 TV로 생방송 되고 있습니다.
‘알았어.’
대한은 스트레칭을 마치자 ‘팔 벌려 높이뛰기’를 10번 했다. 이어 ‘계단 오르내리기’도 10번 했다. 그것만으로도 점차 숨이 가빠왔다. 잠시 쉬었다가 ‘팔 굽혀 펴기’를 했다.
첫날은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무릎을 꿇고 해야 했던 굴욕적인 기억이 떠올랐다. 다행히 이틀째부터는 무릎을 꿇지 않고도 하나씩 숫자를 늘려갈 수 있었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그는 팔 굽혀 펴기를 무려 10개나 할 수 있었다.
거친 호흡을 가다듬고 ‘턱걸이’를 시작했다. 사흘 동안은 그냥 매달리고 있는 것만으로도 힘에 부쳤다.
나흘째부터는 간신히 턱걸이 하나를 성공했다. 그때부터 하나씩 숫자를 늘려 오늘은 턱걸이를 5개나 해버렸다. 자신의 몸무게를 생각하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그래도 ‘크런치’는 쉽지 않았다. 넘쳐흐르는 살들이 마구 방해를 해대서 생각보다 효과가 훨씬 떨어졌다. 그래도 꾸준히 15개를 채우기 위해 안간힘을 써댔다.
역시 그것도 대한에게는 적은 횟수가 아니었다. 그나마 ‘스쿼트’는 좀 쉬웠다. 허벅지와 무릎이 좀 아프긴 했지만 그래도 이제 15개는 가뿐했다.
‘딥스’는 부상의 위험 때문에 아예 빼버렸다. 나중에 살이 많이 빠지면 시도해볼 생각이다.
맨몸 운동을 마치자 이제는 축구장 바깥의 400m 트랙을 달렸다. 빠르지는 않지만 천천히 꾸준하게 한 바퀴를 돌았다.
처음에는 죽을 것처럼 힘들었었다. 하지만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는 말이 맞았다. 일주일간의 피나는 노력 끝에 이제는 트랙을 한 바퀴 돌아도 견딜 만했다.
―마스터! 몸에 수분이 부족합니다. 물을 마셔주세요.
‘안 그래도 목이 말랐어.’
대한은 에바의 말에 반색하며 생수병을 집었다.
꿀꺽꿀꺽! 꿀꺽꿀꺽!
1리터짜리 페트병 안의 생수가 단번에 그의 몸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하아아!”
가뭄에 빠짝 마른 논에 물을 댄 것처럼 대한은 그렇게 소생했다.
물을 마시고 나니 좀 살 것 같았다.
이제는 축구 기본기를 다질 시간이다.
볼 컨트롤, 패스, 드리블, 프리킥, 헤딩, 슛!
그는 축구부 사무실로 가서 축구공을 빌려왔다.
공을 하나 꺼내 먼저 리프팅을 했다.
통, 통, 통, 통, 통, 통…….
말도 안 되는 소리지만, 대한에게 리프팅은 처음부터 전혀 어렵지 않았다. 일주일이 지난 지금 이미 그의 리프팅은 일정한 경지에 올라가 있었다. 어느새 리프팅은 대한이 제일 재미있어하는 놀이가 되어버렸다.
한동안 리프팅을 하고 난 후 볼 감각을 익히기 위한 훈련에 돌입했다. 유티비에 들어가면 혼자서 보고 할 수 있는 훈련 동영상이 수백 개나 된다. 덕분에 대한은 지금처럼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서도 쉽게 훈련을 이어갈 수 있었다.
발바닥으로 공 밟기.
발바닥으로 밀고 당기기.
발바닥으로 좌우로 밀고 당기기.
점프 뛰며 발바닥으로 공 밟기.
발바닥으로 당기고 반대 발로 인사이드 밀기.
발바닥으로 끌어당겨 인사이드로 밀기.
양발로 인사이드로 짧고 길게 좌우 밀기.
발바닥으로 끌어와 아웃사이드로 밀기.
뒤로 당겨 옆으로 밀기.
한 발 뒤로 당겨 밀기.
옆으로 인사이드 밀기.
발바닥으로 옆으로 당기기.
한 발 아웃사이드로 좌우 밀기.
양발 아웃사이드 좌우 밀기.
기초 체력을 늘리는 운동은 힘들었지만 오히려 이건 너무 쉬웠다.
재능 ‘축구 기본기’를 흡수하고 경험까지 전송받았다. 그래서 그런지 연습을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볼에 대한 감각이 예민해졌다.
다음은 패스 연습이다. 혼자서 하는 거라 축구장 벽에다 다양한 방식으로 볼을 찼다. 그리고 튀어나오는 공을 최대한 안정적으로 받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축구에서 ‘퍼스트 터치’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대한은 볼을 차는 속도와 거리를 조절해서 다양한 패스와 퍼스트 터치를 연습했다. 가끔 위로 튀어나오는 볼은 헤딩 연습을 했다.
드리블은 항상 속도가 빠르고 더 완성도가 높고 경기에서 효과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연구했다. 45도, 90도, 180도, 360 등 변화무쌍하게 방향을 바꾸는 훈련도 했다.
당연히 크루이프 턴이나 마르세유 턴, 사비 턴과 리벨리노 턴 등도 연습해 봤다. 생각보다 잘되지 않아 고전했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 그럭저럭 흉내를 낼 정도로 숙련도를 끌어올릴 수 있었다.
스피드에 변화를 줘서 빠르고 느리게 템포를 조절하기도 했다. 발 앞쪽으로만 움직이며, 가급적이면 공을 보지 않고 발끝으로 공을 밀고 다녔다. 당연히 양발로 자유롭게 드리블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물론 지금 상태로는 이미지 트레이닝 이상의 효과는 기대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젠가 살이 빠지고 몸이 만들어졌을 때 오늘의 수고가 단 열매로 과실을 맺을 수도 있을 것이다.
축구공을 가져다 골대를 향해 슛과 프리킥 연습을 했다. 먼저 머릿속으로 골대를 6등분 하고 인사이드킥과 아웃사이드킥을 찼다. 이어 인스텝킥과 인프런트킥 그리고 아웃프런트킥으로 코너를 노렸다. 무회전 킥과 칩샷도 빼놓지 않고 연습했다.
‘내가 프리킥만 잘 차도 벌써 경기에 나갔을 텐데…….’
대한의 말에 에바는 즉각 반응했다.
―그게 정말이에요?
‘물론이지.’
―그럼 프리킥을 잘 차는 세계 정상급 선수의 재능을 흡수해 보세요.
‘그렇게 하면 되겠다.’
현실적으로 대한이 축구경기에 나가기는 사실 쉽지 않다. 일단 몸이 둔해서 어느 포지션에 가져다 놔도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지만 만약 프리킥을 아주 잘 찬다면 얘기가 달라질 수도 있다.
결정적인 프리킥 찬스에서 조커로 기용되지 말라는 법도 없다. 아니, 당장은 그런 특별한 방법 외에는 축구 경기에 나갈 수 있는 기회 자체를 잡을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소화해 내야 할 운동과 축구 기본기 훈련을 모두 마쳤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은 대한은 스마트폰을 향해 다가갔다.
“오늘 운동은 여기까지입니다. 여러분! 저녁 식사 시간에 다시 뵙겠습니다.”
시청자들에게 정중하게 인사를 하고 그는 방송을 종료했다.
대한은 운동이나 훈련을 할 때는 시청자들과 소통하지 않기로 했다. 운동과 훈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악플 때문에 멘탈이 깨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함이었다.
그는 뒷정리를 하고 축구공을 축구부 사무실에 반납했다. 물에 빠진 솜처럼 무거운 몸과는 다르게 집으로 돌아오는 대한의 발걸음은 무척이나 가벼웠다.
오늘도 해냈다는 성취감에 그의 기분이 급격히 좋아졌다.
‘이제 삼 주 남았다.’
―재능 ‘축구 기본기’를 흡수할 수 있는 시간 말입니까?
‘응.’
―루키 등급이 재능을 흡수하는데 최대 한 달이 걸리긴 합니다. 하지만 마스터처럼 흡수한 재능을 이렇게 열심히 소화시키시면 이 주 안에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정말 에바 말대로 앞으로 일주일 안에 성공했으면 좋겠다.’
대한은 축구 기본기에 집중했지만 에바는 미래를 준비했다.
―다음 재능은 어떤 것으로 할 생각이십니까?
‘아직 생각해 보지 않았어.’
―미리 정해 놓지 않으면 중간에 텀이 생깁니다. 그렇게 되면 시간 낭비가 일어날 수 있어요.
에바의 말에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