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대한 TV>
대한은 교실로 돌아와 책가방을 챙겨 집으로 갔다. 리프팅을 한 게 조금은 무리가 됐는지 온몸이 욱신거리고 아팠다. 그는 간신히 샤워하고 저녁밥을 먹었다. 예전처럼 폭식하지는 않았지만, 여전히 먹는 양이 적지 않았다.
―마스터!
‘응?’
―제게 마스터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사용할 수 있게 허락해 주세요.
‘인터넷 검색만으로는 부족해?’
―그게 아니라 동영상 편집을 하려면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사용 권한이 꼭 필요합니다.
‘아! 그런 거라면 얼마든지 허락해 줄게.’
―감사합니다.
에바는 두 손으로 치마를 잡고 다리를 굽히며 귀엽게 인사를 했다.
대한은 그 모습에 흐뭇한 아빠 미소를 지었다.
사실 에바는 대한의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꼭 동영상 편집만을 위해서만 쓸 생각은 없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가지 다양한 도구를 쓸 생각이었다.
대한은 식사를 마치고 바로 이빨을 닦았다. 오늘은 왠지 너무 피곤해서 일찍 잠을 자려는 것이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그의 눈치를 살살 보는 것이 느껴졌다. 대한은 이상하다고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툭 던지듯이 물어봤다.
“왜요? 나한테 무슨 할 말 있어요?”
그가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자 이태산과 김혜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할 말은 무슨…….”
“너 요새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더라.”
이태산은 얼버무렸지만, 김혜영은 슬쩍 본심을 털어놓았다.
“영어에 취미를 붙여서 나름대로 열심히 하고 있어요. 생각보다 제가 영어에 재능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으래?”
대한의 당당한 말에 이태산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둥글게 공같이 토실토실하게 생긴 것을 보면 자기 아들이 맞는데 뭔가 살짝 달라진 기분이 들었다.
“혹시 용돈 필요하지 않니?”
“아직은 괜찮아요.”
두 분이 얼마나 힘들게 일을 하고 계시는지 뻔히 아는데 거기다 대고 용돈이나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대신 생각나는 것이 있어 부모님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봤다.
“왜? 뭐 필요한 게 생각났니?
“한 가지 꼭 들어주셨으면 하는 부탁이 있어요.”
부탁이란 말에 둘은 동시에 침을 꿀떡 삼켰다. 혹시라도 무슨 대형 사고라도 칠까 봐 겁을 먹은 것이다.
“저 개인 방송을 한번 해보고 싶어요.”
“개인 방송?”
전혀 예상치 못한 말에 두 사람의 눈에 의혹이 가득했다.
“혹시 그거 BJ 방송이라고 부르는 거 아니냐?”
“예, 맞아요.”
이태산은 BJ 방송을 하는 사람들이 연예인만큼 돈을 많이 번다는 뉴스를 본 기억이 있었다.
“개인 방송을 하려면 얼굴도 잘생겨야 하고 몸매도 좋아야 한다고 그러던데?”
“꼭 그렇지만도 않아요. 양질의 콘텐츠를 만들어서 성공하는 사람 있어요.”
대한은 아버지의 말에 기다렸다는 듯 받아쳤다.
“동영상을 찍으려면 카메라가 있어야 하잖아. 그거 비싸지 않니?”
“비싸죠. 하지만 당장은 제 스마트폰으로 찍어서 올리려고요.”
“그래도 돼?”
“물론이죠.”
“그럼 우리가 어떻게 도와줘야 하는데?”
돈이 들어가는 것도 아닌데 아들이 하고 싶다고 하니 이태산과 김혜영은 굳이 반대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아메리카 TV와 유티비에 채널을 열게 부모 동의를 해주시면 돼요.”
“정말 그것만 해주면 돼?”
“물론이죠.”
“혹시 미리 생각해 둔 콘텐츠라도 있어?”
“네, 일단은 다이어트와 운동을 병행해 보려고요.”
“살을 빼겠다고?”
이태산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그동안 아들이 수십 차례 다이어트를 시도했지만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또 다이어트를 하겠다고 하니 성공은 둘째치고 걱정부터 앞섰다.
“아버지가 무슨 염려를 하는지 잘 알아요. 사실 다이어트가 쉽진 않죠. 특히 저에게는 너무 힘들어요. 그래서 기왕 다이어트를 하는 김에 동영상으로 찍어서 올리려고요. 그래야 제 의지가 조금이라도 더 강해지지 않겠어요?”
“어휴! 장하다, 우리 아들!”
김혜영은 대한에게 다가와 아들의 도톰한 손을 꼭 부여잡고는 눈물을 글썽였다.
이태산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계속 물어봤다.
“운동은 또 뭐냐?”
“요새 공부를 하는데 체력이 너무 달려서 힘들어요. 그래서 기초 체력을 늘릴 겸 운동을 시작하려고요. 물론 이것도 전부 동영상으로 찍어서 방송에 올릴 거예요.”
두 사람은 아들이 다이어트와 운동을 하겠다는데 전혀 말리고 싶지 않았다. 다만 개인 방송을 하다가 사람들에게 쓸데없이 욕을 먹고 상처를 받지나 않을까 그게 걱정이었다.
“그런데 네 방송을 사람들이 좋아, 아니 많이 볼까?”
“그거야 모르죠. 일단 한번 부딪쳐보려고요. 정 안되면 그때 그만두면 되잖아요.”
이태산과 김혜영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이미 답은 정해져 있었다. 두 사람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한목소리로 대답했다.
“좋아. 그렇게 하자.”
“고맙습니다.”
대한은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이태산은 화끈하게 그 자리에서 부모 동의를 해주었다. 덕분에 대한은 아메리카 TV와 유티비에 쉽게 자신의 채널을 개설할 수 있었다.
물론 유료 광고 동의를 하고 자신의 코코아뱅크 계좌와 연동시키는 것도 잊지 않았다.
원하는 것을 모두 얻은 대한은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곧바로 침대 위로 올라가 잠을 청했다.
놀랍게도 몇 번 숨을 쉬기도 전에 그는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호르몬을 조절합니다. 통각을 조절합니다. 재능, 축구 기본기(A)를 체화합니다.
에바는 피코셀을 이용해 대한의 신체를 조절했다. 그러자 곧 그의 몸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 대한의 몸이 빵빵하게 부풀어 오르며 불덩이처럼 달아올랐다.
근육과 뼈 그리고 신경 세포에 재능이 화인처럼 각인됐다.
그는 찜통에 들어가 벌겋게 익은 랍스터처럼… 그렇게 밤새도록 이상한 열기에 시달려야만 했다.
* * *
아메리카 TV에 신규 채널이 생겼다.
아메리카 TV에서는 하루에도 수십 개의 채널이 생기고 또 사라져 간다. 그래서 어지간히 자극적이지 않으면 묻히기 십상이다.
양질의 콘텐츠는 그나마 성공할 확률이 높았다.
‘대한 TV.’
아메리카 TV에 새로 생긴 채널의 이름이다. 이름만 봐서는 무슨 흑백 TV 시절에나 통용됐을 만한 촌티가 줄줄 흘렀다.
“오늘은 어디로 갈까?”
퇴근하고 집에 돌아온 서경진은 아메리카 TV를 열었다.
스타 BJ를 중심으로 빠르게 라이브 채널을 살펴봤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확 당기는 채널이 없었다. 이럴 때는 그냥 신인 BJ를 살펴보는 것이 좋다. 매일은 아니지만, 가끔 배꼽을 잡게 만드는 방송이 뜨기도 한다.
그는 요즘 달풍선을 쏘는 재미에 흠뻑 빠져있었다. 그래서 오늘도 만 개나 충전시켜놓았다.
“어라! 이건 또 뭐야?”
탄산음료를 마시던 서경진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신인 BJ를 살펴보다 제목이 특이한 채널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초고도 비만, 폭풍 먹방을 선보이다! 반전에 주의!’
어그로를 끌고 싶은 마음이 절절히 느껴지는 제목이었다. 다만 ‘초고도 비만’이라던가 ‘반전에 주의’하라는 말에 뭔가 촉이 왔다.
“대한 TV? 이 새끼 채널 이름이 왜 이렇게 구려!”
서경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영상을 클릭했다. 새로 채널을 연 신인 BJ답게 뭔가 많이 허접해 보이는 화면이었다.
어두운 벽지가 보이고 오른쪽에 방문이 보였다. 그냥 자기 방 책상 앞에서 방송을 하는 게 분명했다. 그런데 화면 중앙을 꽉 채운 얼굴 하나가 모든 생각을 멈추게 했다.
“뭐야, 이 새끼? 진짜 초고도 비만이었네.”
호빵같이 둥그런 얼굴, 살로 접혀있는 목살, 부스스한 머리 등……. 정말 아메리카 TV에서는 보기 힘든 안습한 외모였다.
그는 바로 화면을 닫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아메리카 TV에는 얼굴이 예쁘고 몸매도 착한 BJ들이 부지기수다. 그녀들은 보기만 해도 불끈한 포즈와 야한 춤을 춰대며 자신의 달풍선을 유혹해 댔다. 그런데 이놈은 달풍선은커녕 그냥 이유 없이 욕부터 하고 싶어졌다.
[만수르SUH: 너 뭐냐?]
―어서 오십시오. 만수르 형님! 지금부터 먹방을 시작하겠습니다.
[만수르SUH: 헐! 바로 시작이네.]
서경진은 머리를 숙여 꾸벅 인사를 하는 앳된 얼굴의 BJ를 노려보며 의자에 몸을 기댔다. 일단 한번 지켜보겠다는 의미였다.
현재 시청자 수를 살펴보니 5명이었다.
―제 이름은 ‘대한’입니다. 고등학교 2학년입니다.
서경진은 콧방귀를 끼며 남은 탄산음료를 원샷했다.
“네가 누군지 전혀 알고 싶지 않거든……. 그냥 빨리 폭풍 먹방이나 해봐!”
그는 혼잣말하면서 마우스를 들었다 놨다 했다. 당장에라도 채널을 닫고 다른 BJ 방송을 볼까 고민하는 것이다. 그러나 신인 BJ는 꾸역꾸역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제가 학생이다 보니 돈이 없어서 먹방은 라면으로 하겠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라면이란 말에 서경진은 인상을 잔뜩 썼다. 기왕이면 좀 맛있는 것을 먹는 모습이 보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학생이라 돈이 없어서 라면으로 먹방을 한다는 말에는 또 짠한 감정이 생겼다.
책상 위로 휴대용 가스버너가 올라왔다. 그 위에 커다란 냄비가 놓이고 미리 준비한 뜨거운 물이 부어졌다.
탁! 화르륵!
버너에 불을 붙이자 파란 화염이 냄비를 달구기 시작했다. 그 사이 라면을 꺼내 하나씩 봉지를 뜯고 라면 수프를 꺼냈다. 그런데 숫자가 무려 20개나 됐다.
[만수르SUH: 설마 라면을 20개나 먹겠다는 것은 아니겠지?]
―맞습니다. 라면 20봉지 다 먹을 겁니다.
서경진은 입을 딱 벌렸다. 성인 남성이라면 라면 2개에서 3개쯤은 좀 무리를 해서 먹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게 5개가 넘어가면 도저히 들어가지가 않는다.
유명한 먹방 BJ도 라면 10봉지 이상을 먹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 라면을 무려 20봉지를 먹겠다고 한다.
정말이라면 이건 괴물이나 마찬가지다.
[우리두리: 라면을 20개나 먹어도 위가 안 터지나요?]
[핵인싸: 터지지는 않겠지만 위가 엄청 늘어나겠죠.]
[어벤저스: 너무 무리하는 거 아닌지 모르겠네요. 저거 먹다가 토하면 방송 폭발하겠네요.]
신인 BJ가 라면 20봉지를 먹겠다는 말에 그동안 가만히 지켜보고만 있던 사람들이 채팅 창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다. 그래도 현재 시청자 수가 5명을 넘지 못했다.
물은 금세 팔팔 끓었다. 라면 10개가 투하됐다. 수프도 뜯어서 골고루 잘 뿌렸다. 국자로 휘휘 젓자 금세 맛있는 라면이 완성됐다.
―라면 10개가 다 끓었습니다. 먹방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남은 라면 10개를 미리 끓여놓겠습니다.
대한은 냄비를 통째로 들어 책상 한쪽으로 옮겼다. 그리곤 다른 커다란 냄비를 가스버너 위에 올려놓았다. 같은 방식으로 미리 준비한 뜨거운 물을 냄비에 부었다.
―물이 팔팔 끓으면 남은 라면 봉지를 전부 넣겠습니다. 그사이 준비된 라면을 먹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서경진을 포함한 시청자 5명은 날카롭게 눈을 빛냈다. 정말 라면 10개를 다 먹는지 눈을 부릅뜨고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대한은 국자로 라면을 잔뜩 퍼서 넓적한 사발에 담았다.
하얀 김이 화면 가득 차올랐다. 그는 후후 바람을 불어 라면을 식혔다. 그러다가 오동통한 손으로 젓가락을 잡고 라면을 집었다.
―이제 먹겠습니다.
대한은 살짝 미소를 지은 후, 곧바로 젓가락을 입으로 가져갔다.
후루루룩!
물기에 젖은 라면 면발이 그의 입 안으로 쏜살같이 빨려 들어갔다.
단 한입에 젓가락에 잡혀 있던 라면이 사라졌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대한은 사발에 담긴 라면에 입을 가까이 대고 젓가락질을 시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몇 번 흡입하지도 않았는데 사발이 금세 텅 비어버렸다. 그는 국자를 들고 냄비에 담긴 라면을 퍼서 사발에 담았다. 라면이 식기를 기다리는 사이, 물이 팔팔 끓고 있는 냄비에 생라면 10개를 투하했다.
라면 수프도 골고루 뿌리고 잘 저어주었다.
냄비 뚜껑을 닫고 국자를 내려놓은 대한은 다시 젓가락을 집었다. 그리고 사발 안의 라면을 먹기 시작했다.
후루룩, 후루룩!
한두 번 흡입하면 사발 안의 라면이 여지없이 동이 났다. 그렇게 몇 번을 반복하자 냄비 안의 라면이 모두 사라져버렸다.
―라면 10개를 다 먹었습니다.
[수르SUH: 너 사람 맞냐?]
[우리두리: 정말 다 먹었어!]
[어벤저스: 먹는 속도가 예술이네. 라면 10봉지가 순식간에 입으로 들어갔어.]
[톰과제리: 아직 우리 대한이에게는 라면 10봉지가 남았습니다.]
[꼬끼오: 이순신 드립 그만하자. 식상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