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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만재능(Feat. 대한 TV)-8화 (8/331)

8화 <두 번째 재능>

줄을 서서 기다리는 내내 그는 같은 반 아이들의 시선 폭행에 시달렸다. 결코, 호의가 있거나 좋은 시선은 아니었다. 갑자기 듣보잡이 나타나 물을 흐려놨다고 원망을 하는 것 같은 분위기! 하지만 대한은 그런 시선마저도 관심으로 해석해 버렸다.

저벅저벅저벅!

음식이 가득 담긴 식판을 가지고 창가로 걸어갔다. 전에 앉던 구석 자리는 일부러 피했다. 왠지 이제 그 자리는 자신의 자리가 아닌 것만 같았다.

눈으로 빠르게 식판을 스캔했다.

흑미밥, 돼지등뼈 감자탕, 삼치무조림, 소시지와 떡꼬치, 석박지, 자두!

날카롭고 예리한 그의 시선!

오늘도 만족한 점심 식사가 될 것임을 확신시켜줬다.

대한은 수저를 들고 열심히 밥을 먹었다. 역시 먹는 것은 언제나 즐거웠다. 그러다 문뜩 정수리가 따가운 느낌이 들어 슬쩍 고개를 들었다.

그의 앞자리에는 어느새 뺀질이 박상태가 앉아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막말을 던지기 시작했다.

“너 이 새끼, 어떻게 된 거야?”

“뭐가?”

“갑자기 왜 그렇게 영어를 잘하냐고?”

“그거야 열심히 영어 공부를 했으니까.”

대한은 한마디로 딱 잡아뗐다.

결코, 절대로, Never…….

에바의 도움을 받았다는 사실은 밝힐 수 없었다.

“그게 말이냐, 방귀냐? 내가 너를 몰라! 어디서 영알못 주제에 갑자기 득도한 고승 흉내를 내고 있어. 설마 절세의 영약이라도 주워 먹고 환골탈태를 한 것은 아니겠지?”

“뭐래, 이 미친 새끼!”

대한은 질투로 눈이 먼 박상태를 더 이상 상대해 주지 않았다.

하지만 박상태는 대한이 식판을 깨끗이 비울 때까지 한 번도 입놀림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계속 주절거리며 하소연 비슷한 말을 쏟아냈다. 내가 이놈의 엄마나 여자 친구도 아닌데 왜 알고 싶지도 않은 그의 인생사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

“이제 네가 없으면 난 어떡하냐?”

“뭔 소리야?”

“네 영어 점수가 올라가면 앞으로 내가 꼴등이 될 수도 있잖아.”

“어휴!”

대한은 유치하기 짝이 없는 박상태의 걱정에 그만 고개를 팩 돌리고 말았다.

식판을 반납한 그는 축구부 사무실로 향했다.

신발에 붙은 껌딱지처럼 뒤에서 박상태가 계속 들러붙었다. 그래도 대한은 신경 쓰지 않고 꿋꿋하게 목적지를 향해 걸어갔다.

‘에바, 왠지 세상이 달라 보인다.’

―마스터께서 드디어 알을 깨고 세상으로 나오신 거예요.

에바는 꽤나 의미가 심장을 찌르는 말을 했다. 대한은 정말 그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숭신고등학교 축구부 사무실은 한산했다. 고교를 평정할 만한 실력을 갖춘 축구팀도 아니니 그럴 만도 했다.

대한은 늘 하던 대로 창고의 문을 열고 축구공과 콘을 들고 나왔다. 축구장 벤치에 축구공이 담긴 그물망을 내려놓았다. 한쪽으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콘을 길게 세워놓았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생수도 꺼내서 축구장 벤치로 옮겼다.

무더운 날씨에 홀로 힘을 쓰자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대한아! 오늘도 수고가 많다.”

“어서 오세요, 감독님.”

제일 먼저 축구부 감독 최정규가 나타났다. 그는 한결같이 대한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 지나갔다.

대한은 그의 뒤통수를 향해 꾸벅 인사를 했다.

뒤이어 축구부 3학년 형들이 우르르 몰려왔다.

“대한아! 고생했다.”

“오늘도 대한이가 제일 먼저 왔네!”

“대한이 안녕!”

몇 명이 대한을 향해 손을 흔들어줬다. 그러나 대부분은 그냥 무시하고 지나쳤다.

마지막으로 2학년과 1학년 팀원들이 축구장에 나타났다.

먼저 그에게 인사를 하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

평소에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오늘따라 기분이 나빴다.

이게 알을 깨고 나온 자의 비극일까?

“오늘도 즐겁게 훈련을 시작하자!”

“예, 감독님.”

최정규의 말을 듣자 대한은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는 전혀 뛰지 않고 입으로만 지시한다. 대신 축구부 팀원들은 죽어라고 뛰어다니며 훈련을 소화해 내야 했다. 그러니 저렇게 ‘즐겁게’라는 표현을 쉽게 쓰는 것이다.

‘에바, 나도 축구를 배워볼까?’

―축구 선수를 목표로 하지 않는다고 해도, 지금 마스터의 상황에서 축구만큼 좋은 운동은 없습니다. 기왕 배우실 생각이라면, 축구에 관련된 재능을 흡수하는 걸 적극 추천합니다.

에바는 아주 적극적으로 나왔다. 마음이 동했는지, 대한의 시선이 최정규 감독을 향했다. 이어 축구장을 달리고 있는 축구부 팀원들을 하나씩 바라보았다.

‘누가 축구 재능이 제일 높을까?’

―최정규 감독이 예전에는 꽤 주목받던 축구 선수였습니다. 비록 국가대표팀에 들어가지는 못했지만 기본기가 아주 뛰어난 선수였다고 합니다.

대한은 스마트폰으로 최정규 감독을 검색해 봤다. 에바의 말대로 한때 언론의 관심을 끌었던 축구 선수였다. 물론 체력과 개인기 등 한계가 분명해서 국가대표팀에 입성하지는 못했다. 무엇보다도 툭 치면 깨지는 유리 몸이라 은퇴 시기도 빠른 편이었다.

‘축구 기본기에 대해 알아봐야겠다.’

대한은 검색창을 통해 축구 기본기에 대해 살펴봤다. 다들 축구 기본기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대부분 공통적으로 꼽는 몇 가지가 있었다.

볼 컨트롤, 패스, 드리블, 프리킥, 슛…….

그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대한은 고개를 들어 최정규 감독의 뒷모습을 쳐다봤다.

‘에바! 그래도 저 중에서 축구 기본기의 등급이 제일 높은 사람은 최정규 감독님이겠지?’

―아무래도 나이가 있으니까 그렇겠지요.

그의 시선이 최정규 감독의 남산만 한 배로 향했다.

‘저렇게 배가 나올 정도면 재능도 좀 죽지 않았을까?’

―재능은 DNA에 새겨진 고유의 능력입니다. 현재의 몸 상태와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그리고 최정규가 가지고 있는 경험은 기억의 형태로 제공됩니다.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오케이! 그럼 최정규 감독의 재능을 흡수하도록 하자.’

―알겠습니다. 재능 흡수 대상자와 신체 접촉을 해주세요.

에바의 말에 대한은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그는 슬며시 최정규 감독 옆으로 다가갔다.

“감독님!”

“어! 대한아!”

“저 손목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왜? 다쳤냐?”

그는 오른손이 아픈 것처럼 연기하며 앞으로 쭉 내밀었다. 최정규는 코앞까지 다가온 대한의 통통한 손을 반사적으로 잡았다.

‘예스!’

대한은 속으로 환호성을 질렀다.

“손목이 어디가 어떻게 아픈데?”

“약간 찌릿찌릿해요.”

“그래?”

최정규는 대한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봤다. 그러나 아무리 봐도 특별히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했다. 아니, 그냥 무섭게 살이 올라있는 통통한 손 자체가 이상해 보였다.

“살짝 삔 게 아닐까?”

“그런가 봐요.”

“얼음찜질 좀 해봐! 그래도 아픔이 가시지 않으면 병원에 가는 게 좋겠다.”

“예, 감독님. 잘 알았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라!”

“네, 감사합니다.”

대한은 최정규에게 깍듯이 인사하고 뒤로 물러났다. 그의 입가에 회심의 미소가 감돌았다.

‘에바!’

―피코셀을 주입하는 데 성공했습니다. 현재 최정규의 DNA를 분석하고 있습니다.

‘최정규 감독님에게는 어떤 재능이 있어?’

―과거 축국 선수였던 만큼 축구 관련 재능이 상당히 많습니다. 그중 최대 재능은 역시 ‘축구 기본기(A)’입니다.

‘다른 재능은 또 뭐가 있지?’

―전술 이해도(B), 스프린트(B), 순간 돌파(C), 축구 재능(C) 등입니다.

에바의 말을 듣고 보니 딱히 고민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축구 기본기(A)’를 제외하고 최정규에게 얻을 만한 것은 사실 없었다.

B급은 프로선수, C급은 아마추어 축구 선수라면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재능이었다.

‘축구 기본기(A)로 하자.’

―예, 마스터.

대한은 결국 최정규 감독의 최대 재능인 ‘축구 기본기(A)’를 선택했다.

그는 일단 재능을 선택하자 좀이 쑤셔서 가만히 앉아있을 수가 없었다.

그물망에서 공을 하나 꺼내 발로 이리저리 굴려보았다.

여전히 공 따로 발 따로였다.

―마스터! 개인 방송은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것도 같이 시작하는 게 좋겠지?’

―아무것도 시도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습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한번 시도해 보세요.

대한은 에바의 말에 큰 용기를 얻었다.

그녀를 통해 재능 ‘영어(B)’를 얻고 얼마나 기뻐했던가!

당장 반에서 자신의 위상이 크게 올라가는 것을 느꼈다.

에바의 말대로 새로운 시도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실패가 두려워서 그냥 포기하는 것보단 역시 직접 부딪쳐서 경험이라도 쌓는 것이 낫다.

‘좋아. 개인 방송도 한번 해보자.’

―탁월한 결정이십니다.

‘그런데 카메라 없이도 가능할까?’

막상 개인 방송을 하려고 하니 여러 가지 장비들이 눈에 밟혔다.

―스마트폰이 있지 않습니까?

‘이거? S사(社)의 ‘G노트 5’야. 그것도 몇 년 전에 산 구닥다리라고.’

―새것이든 헌것이든 중요한 것은 동영상이 잘 찍히느냐입니다. 당장 최신형 스마트폰이나 영상 촬영용 카메라를 사지 않는 이상! 어떻게든 ‘G노트 5’를 잘 활용하여 동영상을 찍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알았어. 에바가 그렇게 말한다면 그게 맞는 것이겠지.’

에바의 말을 잘 들으면 왠지 자다가도 떡이, 아니 재능이 공짜로 막 떨어질 것만 같았다.

―최정규에 대한 DNA 분석이 끝났습니다. 축구 기본기(A)를 흡수합니다. 재능과 관련된 경험과 기억을 전송합니다.

대한은 최정규 감독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 재능을 흡수할 대상자와 멀어지면 재능 흡수가 중단된다.

재능과 관계된 경험과 기억 전송도 마찬가지다.

그는 발로 공을 꾹꾹 눌러보거나 툭툭 차봤다. 새로운 재능을 얻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지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을 느끼지 못했다.

우웅!

순간 갑자기 머릿속에서 묘한 공명음이 일어났다. 대한은 그때부터 이상하게 축구공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에바, 기시감이 느껴진다.’

―재능 ‘축구 기본기(A)’의 경험과 기억이 체화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쩐지 축구를 잘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

―스마트폰으로 동영상 촬영을 해보세요.

‘알겠어.’

대한은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 벤치에 세워놓았다.

동영상 촬영 버튼을 꾹 누른 후, 축구공을 가지고 그 앞에 섰다.

먼저 발로 축구공을 꾹꾹 눌러보았다. 묘하게 축구공의 탄력이 굉장히 익숙했다. 발로 툭툭 차보기도 했다. 뭔가 발에 착착 감기는 기분 좋은 느낌이 들었다.

‘한번 리프팅을 해볼까?’

―아마 잘해낼 수 있을 겁니다.

대한은 에바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는 지금까지 축구공을 다섯 번 이상 리프팅 해본 역사가 없었다. 몸이 둔해서 그런지 대한에게 리프팅은 쥐약이나 다름없었다. 그래도 용기를 내어 리프팅을 시도해 보았다.

통, 통, 통, 통, 통…….

놀랍게도 축구공이 그의 발 위에서 10번이나 튀어 올랐다.

신기했다.

다시 한번 리프팅에 도전했다.

통, 통, 통, 통, 통…….

이번에는 축구공을 20번이나 튕겼다.

재미있었다.

볼을 차는 게 아니라 발에 가볍게 맞춘다는 느낌!

완전한 발등이 아닌 발가락과 발등이 만나는 부분으로 볼을 찬다는 점!

발목이 좌우로 틀어지거나 앞뒤로 젖혀지면 안 된다는 것!

상체가 좌우로 틀어지지 않고, 허리를 펴고 몸에 힘을 뺀 상태에서 가볍게 차기 등, 리프팅의 기본과 요령이 저절로 머릿속에서 떠올랐다.

다시 리프팅을 시작했다. 이제는 축구공이 그의 발 위에서 아예 내려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남이 리프팅을 잘하는 모습을 볼 때는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그런데 막상 자신이 이 어려운 것을 해내자 전율이 일어날 정도로 기분이 짜릿해졌다.

오른발로 하다가 왼발로 바꿔봤다. 몇 번 실패하기는 했지만 금세 오른발처럼 익숙해질 수 있었다.

‘설마 나 양발잡이였어?’

―재능 흡수 대상자가 양발잡이겠지요.

에바가 그의 생각을 정정해 줬다. 그러거나 말거나 대한은 이미 리프팅의 재미에 푹 빠져버렸다. 체력만 허락했다면, 아마 종일 그렇게 리프팅만 하고 있었을 것이다.

“헤엑, 헤엑, 헤엑…….”

체력이 저질인 게 정말 천추의 한이다.

그때, 최정규 감독이 대한을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래도 대한이 리프팅을 하는 모습을 지켜본 모양이었다.

축구부 훈련이 끝나자 대한은 뒷정리를 시작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고 누구도 그가 하는 일에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언제나 뒷정리는 대한 혼자 해야 하는 일이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불만을 품지 않았다. 어차피 자신이 좋아서 들어온 축구부다. 마찬가지로 좋아서 하는 일이니 굳이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해도 기쁜 마음으로 일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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