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7화 (7/331)

7화 <영어(B)>

―영국의 프리미어리그 선수들이 버는 돈이 아주 어마어마하던데요.

‘프리미어리그는 아무나 들어가는 줄 알아?’

에바의 말에 그는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럼 K리그로 가세요. 거기만 들어가도 먹고 사는 데 전혀 지장 없잖아요.

‘에바! 말이 좀 되는 소리를 해라.’

―정 그렇게 자신이 없으시면 그냥 축구부에서라도 존재감을 살려보세요.

‘존재감을 살려보라고?’

대한은 그 말을 듣자 움직임을 딱 멈추고야 말았다. 정말 자신은 학교 안에서 전혀 존재감이 없었다. 아무리 초고도 비만의 돼지 같은 몸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그도 엄연히 뜨거운 피가 흐르고 심장이 뛰는 사람이다.

아마 누구도 이처럼 공기화가 되어, 무시당하고 사는 것을 좋아하진 않을 것이다.

결국, 대한은 에바에게 아무런 대답도 해줄 수 없었다. 그저 열심히 공을 주어서 그물망에 담았다.

축구부 사무실 보관함에 공과 콘을 넣고 쓰레기를 마저 치웠다. 뒤처리를 다 하고 나자 어느새 한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대한은 교실로 돌아와 자신의 가방을 챙겼다. 그가 보충 수업과 야자를 째고 가도 아무도 붙잡으려 하지 않았다.

누구도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이미 학교에서 내놓은 자식인 ‘수능 포기자’였다.

“다녀왔습니다.”

집에 도착한 대한이 힘차게 외쳤다. 하지만 아무도 대답해 주는 이가 없었다.

대한은 쓸쓸히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

책상 위에 책가방을 올려놓고 욕실로 향했다.

오늘도 땀을 많이 흘려서 그런지 쉰내와 악취가 진동했다. 그는 옷을 홀딱 벗어 던지고 시원하게 샤워를 했다.

수건으로 몸의 물기를 깨끗이 닦고 방으로 돌아왔다. 새 옷처럼 깨끗이 빨래가 된 옷을 챙겨 입은 대한은 지쳤는지 그만 의자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휴우우!”

오늘은 참 긴 하루였다.

에바가 옆에 있어서 그런지 참 많은 일이 일어났다.

그는 책가방에서 영어 교과서를 꺼내봤다. 신기하게도 영알못인 자신이 영어 교과서를 읽고 있었다.

대한은 잠시 생각을 하다 그대로 책을 덮어버렸다. 대신 책장에서 중학교 영어 교과서와 참고서를 찾아 모두 꺼냈다.

먼저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펼쳤다.

‘쉽다.’

그의 뇌리를 스치는 첫 번째 문장이었다.

쉬워도 너무 쉬웠다.

그는 한 장씩 정독했다.

눈으로 보자 바로 뜻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입으로 소리를 내어 문장을 읽어봤다.

정말 미치도록 쉬웠다.

점점 페이지를 넘기는 속도가 빨라져 갔다.

‘대박!’

―고등학교 영어 교사에다 재능 ‘영어(A)’를 가진 한영국의 재능을 흡수하고 경험을 전송받았습니다. 그러니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읽고 이해하는 정도는 껌이지요.

에바의 말에 대한은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영어 교과서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처음에는 몰랐는데 뜻이 이해가 되고 나름대로 발음도 그럴듯해지자 영어가 재미있었다. 어떻게 영어가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을 몰랐는지 좀 억울하기까지 했다.

한 시간 만에 중학교 1학년 영어 교과서를 몽땅 읽어버렸다. 아니, 읽은 정도가 아니라 완벽하게 이해하고 외우다시피 했다.

탁!

이번에는 중학교 2학년 영어 교과서를 꺼냈다. 이것도 너무 쉬워서 절로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는 전보다 훨씬 정확한 발음으로 문장을 읽어나갔다. 소리 내어 읽으면 읽을수록 점점 더 발음이 좋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한영국 선생님으로부터 흡수한 영어 재능과 경험이 자연스럽게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대한은 2시간 만에 중학교 2학년 영어 교과서를 마스터했다.

타악!

용감하게 중학교 3학년 영어 교과서를 꺼냈다. 확실히 중학교 1학년, 2학년 영어 교과서보다는 어려웠다. 그러나 대한의 학구열이 방해받을 정도는 아니었다. 그렇게 그는 영어의 매력에 푹 빠져들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자 김혜영이 집에 돌아왔다. 신발을 보니 아들이 귀가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녀는 즐거운 마음으로 저녁 식사를 준비했다. 식탁에 풍성하다 못해 거한 저녁밥을 차려놓고 아들의 방문을 노크했다.

똑똑똑!

하지만 대한은 노크 소리도 듣지 못했다. 그 정도로 초집중을 하고 있었다.

김혜영은 살며시 아들의 방문을 열어봤다.

그녀의 눈이 동그랗게 변해 갔다.

문틈으로 보이는 아들이 열심히 공부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세상에서 그보다 아름다운 광경은 없을 것만 같았다.

그녀의 눈이 붉게 충혈되기 시작했다. 급기야 이슬 같은 눈물 한 방울이 또르르 흘러내렸다.

김혜영은 소리가 나지 않도록 주의하며 조용히 방문을 닫았다.

배가 고프면 절대 참지 못하는 아들이다. 그런데 저녁때가 훨씬 지났음에도 저렇게 집중해서 공부하고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것도 수학 다음으로 싫어하는 영어 교과서를 소리 내어 읽으면서 말이다.

대한은 그렇게 본의 아니게 어머니 김혜영에게 작은 효도를 하고 말았다.

보이지 않는 어머니의 응원에 힘입은 건지 그의 영어 실력은 쑥쑥 자라났다. 또한, 대한의 영어에 대한 열정도 하루가 다르게 거세어져만 갔다.

* * *

펑! 빰빠라밤!

눈을 현란케 하는 축포가 터졌다.

귀를 즐겁게 하는 팡파르도 이어졌다.

교실 안은 온통 에바가 만들어내는 축제의 향연으로 가득했다. 물론 대한의 눈에만 보이는 환영일 뿐이다.

―마스터, 축하합니다. 재능 ‘영어(B)’를 얻으셨습니다.

‘고마워! 에바!’

단 이 주 만에 대한은 재능을 얻었다. 그것도 ‘영어(C)’가 아니라 ‘영어(B)’였다. 이제 대한은 영어로 자유롭게 소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췄다.

한영국 선생님과의 싱크로율은 60%대 초반. 그것을 고려하면 놀랄만한 성과였다.

기어코 ‘영알못’에서 탈출한 대한!

그는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상태 창을 열었다.

이름: 이대한

등급: 루키

칭호: 없음

나이: 만 17세

직업: 학생(숭신고등학교 2학년)

재능: 영어(B)

스탯: 근력 45, 민첩 22, 체력 27, 지력 38, 마력 0

신장 159.5cm, 몸무게 101kg

재능 칸에 ‘영어(B)’가 들어가 있는 걸 보자 가슴이 뿌듯했다. 하지만 그의 이런 좋은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바로 한 칸 아래의 스탯을 보자 절로 어깨가 아래로 축 처졌다. 그의 이런 신체 반응은 곧바로 에바에게 전해졌다.

―마스터!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있잖아요.

‘알고 있어.’

―오늘은 좋은 것만 보세요. 어제는 재능이 단 하나도 없었잖아요.

‘그래도 기분이 좀 우울해진다.’

―지력이 33에서 38로 올라간 것은 확인하셨어요?

‘어! 정말이네. 언제 그렇게 올라갔지?’

땅바닥을 박박 긁던 기분이 금세 바닥을 치고 올라와 고개를 치켜들었다. 아직은 성인 평균에도 미치지 못하는 스탯, 지력이었다. 하지만 이 주 만에 지력이 5나 상승한 것은 크게 기뻐할 만한 일이었다.

딩, 동, 댕!

4교시를 알리는 차임벨이 울렸다.

대한의 눈에 잔뜩 힘이 들어갔다.

이번 수업은 자신이 두 번째로 싫어하는 영어 시간이다. 아니, 이제는 최애 수업이 될지도 모르겠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한영국 선생님이 들어왔다. 학생들과 인사를 나눈 그는 곧바로 수업에 들어갔다.

프로젝터로 칠판에 긴 영어 지문을 띄웠다. 모의고사에 나왔던 문장들을 해석해 주려는 것이다.

“누가 한번 읽어볼까?”

“저요!”

한영국은 깜짝 놀랐다.

대한이가 번쩍 손을 들었기 때문이다.

“오오!”

대번에 아이들이 야유 섞인 감탄사를 터트렸다.

영어 수업 중에 단 한 번도 적극적으로 나선 적이 없던 학생! 한영국은 의욕이 넘치는 대한을 향해 손을 들었다.

“대한이 읽어봐라!”

“예, 선생님.”

대한은 큰 목소리로 대답하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주먹을 불끈 쥔 그의 두 손이 급격히 떨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크게 심호흡을 한 번 한 대한은 자신 있게 칠판에 뜬 영어 지문을 읽기 시작했다.

“Dear Manager, I have been using your coffee machine for several year. Since your products had never let me down before, I bought your brand-new coffee…….”

“…….”

대한은 혀에 기름칠이라도 한 듯 원어민에 가까운 발음으로 매끄럽게 읽어 내려갔다.

한영국은 그의 유창한 영어 실력을 대번에 알아봤다. 그리고 대한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면 퍼질수록 아이들의 눈은 경악으로 물들었다.

아무리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라도 이 정도로 능숙하게 영어 지문을 읽어버리면 모를 수가 없다.

대한이 마지막 문장을 읽고 자리에 앉았다.

한영국은 즉시 두 손을 번쩍 들고 힘차게 손뼉을 치기 시작했다.

짝짝짝짝……!

그러자 곧 반 아이들도 어쩔 수 없이 선생님을 따라 손뼉을 쳤다.

짝짝짝짝! 짝짝짝짝……!

일순 모두가 대한을 바라보며 손뼉을 쳐댔다. 대한은 밀려오는 부끄러움에 그만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동시에 기어코 해내고 말았다는 뿌듯한 성취감이 짜릿하게 그의 가슴을 달궜다.

박수 소리가 잦아지자 한영국은 놀란 심정을 숨기지 않았다.

“정말 대단하다. 나는 대한이가 이렇게 발전할지 몰랐어. 영어를 열심히 해보겠다기에 마음속으로 응원을 했는데……. 정말 기대 이상이다.”

선생님의 과도한 칭찬에 대한은 몸 둘 바를 몰랐다. 너무 기쁘고 너무도 감격스러운 순간이라 그저 손만 달달 떨었다. 이 상태로 가다간 심장이 너무 쫄깃해져서 응급실에 실려 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우리 대한이가 얼마나 해석을 잘하는지 한번 들어볼까?”

“예.”

한영국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대한에게 독해까지 시켰다. 대한이 일어나 능숙하게 영어 지문을 통째로 해석해 버렸다. 그러자 2학년 1반의 모든 아이가 입을 딱 벌렸다.

“대박! 이게 실화냐?”

“어이가 없네!”

“X발… 어떻게 된 거야? 왜 이렇게 영어를 잘해?”

“저 새끼 약 처먹은 거 아냐? 갑자기 왜 저 지랄이야!”

“분명히 영알못이었는데…….”

“대한이 언제 저렇게 열심히 공부했지?”

“으악! 이제 내 뒤로 아무도 남지 않았어!”

대한의 변신은 반 아이들에게 메가톤급 충격으로 다가왔다.

짜리 몽땅한 키에 초고도 비만, 공부도 못하고 운동도 못하는 대한이었다. 이런 따라지 인생을 바라보며 다들 나름대로 위안과 안도감을 느꼈다.

그런데 (우리) 대한이가 변했다. 그것도 수학과 막상막하로 중요하고 힘든 과목인 영어! 독해는 깔끔했고 읽는 것은 청산유수였다.

세상에 무슨 천지개벽한 일이 있었다고 애가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

반 아이들은 기가 막히고 코가 막혔다. 어이가 없어서 입에서 한숨만 새어 나왔다.

“아주 잘했다. 그동안 정말 열심히 공부한 모양이구나. 앞으로도 기대하마.”

“네, 선생님.”

대한은 힘차게 대답을 하고 자리에 앉았다. 대한은 자리에 앉으며 곁눈으로 슬쩍 주변을 살폈다. 하나같이 놀란 눈빛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뒷자리의 간신 같은 서진평이 투실한 등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야! 너 누구야? 외계인이냐? 너는 절대 대한이가 아니야.”

대한은 자신도 모르게 ‘븅신!’이라고 말할 뻔했다. 그는 깜짝 놀라서 자신도 모르게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항상 눌리고 위축되어있던 대한! 자신이 떠올린 단어의 의미를 깨닫자 그는 뭔가 보이지 않는 막이 깨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스터, 수고하셨어요.

‘수고는 뭘!’

―흡수한 재능을 정말 완벽히 소화하셨네요.

에바의 말에 대한은 소리 없이 웃음을 지었다.

‘나 잘했어?’

칭찬을 바라는 아이 같은 대한의 질문!

에바는 속으로 실소를 하며 아낌없이 칭찬을 퍼부었다.

―그럼요. 미국인이 와서 읽는 줄 알았어요. 조금만 더 다듬는다면 아마 한영국 선생님도 능가할 수 있을 거예요.

‘에이, 설마!’

대한은 좋아서 죽을 것만 같았다.

언젠가는 반드시 한영국 선생님을 뛰어넘을 정도로 영어를 잘하고 말겠다는 의지를 불태웠다.

딩, 동, 댕, 동!

4교시가 끝났다는 차임벨이 울렸다.

한영국은 수업을 마치며 대한을 한번 쳐다봤다. 잘했다고 칭찬을 하듯 그에게 환한 미소를 지었다. 대한은 꾸벅 고개를 숙이며 마주 미소를 지었다.

선생님이 교실을 나가자 아이들이 일제히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대부분은 묘한 표정으로 대한을 쳐다봤다.

평생 잊을 수 없을 것 같은 즐거운 영어 수업 시간을 뒤로하고 대한은 느긋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급식실을 향해갔다.

왠지 예전처럼 매점을 향해 미친 듯이 뛰어가면 안 될 것 같았다.

4교시를 기점으로, 이전과 이후의 세계가 완전히 분리된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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