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매뉴얼>
‘맞아. 그런데 나 정말 먹방 찍으면 대박이 날까?’
―마스터, 여기 모인 싸가지없는 놈들이 하는 말을 곧이곧대로 들으시는 거예요?
‘날 놀리려고 하는 말이라는 것쯤은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혹시 내가 먹방을 찍어서 대박이라도 나면 집에도 도움이 되고 피코셀을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대한의 말에 에바는 큰 충격을 받았다.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돼, 아니 덩치만 큰 아이인 줄 알았는데 나름대로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마스터께서 이런 생각을 하고 계신 줄 미처 몰랐어요. 지금부터 제가 한번 시뮬레이션을 돌려볼게요.
‘그런 건 슈퍼컴퓨터 같은 게 있어야 하는 것 아냐?’
―아주 짧은 시간 동안 빌려 쓰면 돼요.
이런 일에 피코셀을 동원하는 것은 자원 낭비다. 이 행성에 존재하는 컴퓨터와 서버 그리고 슈퍼컴퓨터를 잠시 빌리면 얼마든지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있었다.
에바는 차원이 다른 과학 기술 문명을 가지고 있는 스파이럴 대제국 최고의 에듀케이션 모듈 중 하나이다. 지구의 저급한 초급 문명을 살짝 이용해 주는 것은 사실 일도 아니었다.
―결과가 나왔습니다.
‘벌써?’
―뭐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어서 바로 나오네요.
‘결과가 뭐야?’
―성공 확률은 50대50입니다.
‘그럼 50%라는 얘기네.’
대한은 낮은 성공 확률에 적잖이 실망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 보니 성공 확률이 반이나 됐다.
―단순히 먹방을 해서는 실패할 가능성이 큽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에바의 말에 대한은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다.
―몇 가지 높은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습니다.
‘그게 뭔데?’
―아주 감동적인 스토리를 곁들이는 것입니다.
‘나한테 감동적인 스토리가 어디 있어?’
―그럼 차라리 기한을 정해 놓고 다이어트를 하는 겁니다. 힘들게 살을 빼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분명 감동하는 사람들이 있을 겁니다.
‘정말 그렇게 사람들이 감동해 줄까?’
―열심히 운동하고, 식단을 조절해서 먹는 모습과 함께 매일 몸무게를 재서 인증한다면 더욱 극적인 효과를 노릴 수 있습니다.
‘흐음.’
대한은 무척 고민이 됐다.
먹는 것을 좋아하는 그가 과연 살을 뺄 수 있을지가 관건이었다. 그런데 에바는 남의 속도 모르고 아주 혼자 적극적이었다.
―마스터, 앞으로도 계속 이런 모습으로 사실 생각입니까?
―그, 그건 아니야.
―그럼 한번 다이어트에 도전해 보세요. 이번에 재능 ‘영어(A)’도 흡수했으니 영어 공부를 하는 모습까지 곁들인다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수 있을 겁니다.
그는 에바의 적극적인 설득에 마음이 움직였다. 그러나 반대로 실패했을 때 일어날 사태가 걱정이었다.
대한은 에바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심정을 토로했다.
‘나도 다이어트를 하고 싶어. 살도 빼고 온몸을 근육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이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게 하고 싶다고. 하지만 내가 먹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과연 성공할 수 있을지 그게 걱정이야.’
―그런 걱정은 조금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마스터께서 확실하게 살을 빼겠다는 의지만 있으시다면 제가 얼마든지 도와드리겠습니다.
‘어떻게?’
그는 에바가 어떻게 자신을 도와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에바는 대한의 앞에 당당히 서더니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누군지 벌써 잊으셨습니까? 저는 포르낙스 은하계를 지배하는 볼트 행성 스파이럴 제국의 로열나이트 아카데미 에듀케이션 모듈 에바입니다.
‘아! 맞다. 너 피코셀이지!’
잠깐 깜빡했다. 에바는 나노셀, 아니 그보다 더 발전된 개념의 피코셀이었다.
얼마든지 그의 몸 안에서 이런저런 도움을 줄 수 있었다.
―얘기가 왜 피코셀 하나로 끝나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에바가 날 도와줄 수 있다는 것은 이해했어. 나도 진지하게 한번 생각해 볼 테니까 에바도 어떻게 먹방, 아니 BJ 방송을 하면 좋을지 알아봐 줘!’
―네, 마스터.
대한은 쓰레기를 봉지에 담고 빈 식판을 들고 일어났다.
봉지를 쓰레기통에 버리고 식판을 반납했다. 하지만 그는 교실로 바로 돌아가지 않았다.
오후는 특별 활동 시간이다. 특히 대한에게 아주 소중한 시간이기도 했다.
숭신고등학교 축구부.
그는 숭신고등학교 축구부의 당당한 팀원이다. 물론 경기에 직접 출전하는 선수라기보다는 도우미에 가까웠다.
대한은 축구부 사무실로 가서 창고를 열었다. 이후 수십 개의 축구공을 꺼내 축구장으로 열심히 옮겼다. 냉장고에서 시원한 물을 꺼내고 생수로 빈자리를 채워놓았다. 노란 콘을 꺼내 생수와 함께 축구장으로 들고 갔다.
이십여 명의 축구부 선수들을 위해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은 꼭 이렇게 봉사를 했다.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다른 축구부 팀원들은 한 명도 보이지 않았다. 대한은 그사이 축구공 하나를 꺼내 인조잔디 위에 올려놓았다.
대한은 축구공을 발로 이리저리 툭툭 차보았다. 기본기가 없어서 축구공이 제멋대로 혼자 돌아다녔다.
“헤엑, 헤엑, 헤엑…….”
그는 굴러다니는 공을 쫓아다니는 것만으로 이미 호흡이 가빠졌다.
‘정말 체력이 저질이구나.’
대한은 결국 5분 만에 축구공을 손으로 집었다.
시원한 응달로 들어와 앉으니 천국이 따로 없었다.
“대한이 왔구나.”
“감독님! 어서 오세요.”
숭신고등학교 축구부 감독 최정규.
그는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하는 대한의 어깨를 한 번 툭 치고 지나갔다. 곧이어 이십여 명의 축구부 팀원들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대한이 오늘도 수고해 줬네.”
“대한아! 수고했다.”
“별거 아닙니다. 감사합니다.”
3학년 형들이 그에게 손을 흔들며 웃어줬다. 별거 아닌 손짓에도 대한은 괜히 가슴이 다 뿌듯해졌다.
에바는 그 모습에 없는 가슴이 다 짠해졌다.
―설마 이것 때문에 축구부에서 호구 짓을 하고 계신 것은 아니시죠?
‘무슨 소리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인데……. 그리고 이게 왜 호구 짓이야?’
―호구 아닌 호구 같은 호구라는 너!
‘에바!’
―죄송합니다. 마스터!
대한이 화를 내자 에바는 금세 꼬리를 내렸다. 하지만 얼굴은 여전히 불만이 가득한 듯 볼이 잔뜩 부푼 모습이었다.
대한은 그런 에바를 보면서 쓴웃음을 지었다.
에바가 호구라고 해서 화를 내긴 했다. 그러나 어쩌면 정말 호구가 맞는지도 모른다.
대한은 사람이 그립고 칭찬이 고팠다. 그래서 축구도 못 하는 주제에 축구부의 팀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이게 몹시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축구부 팀원들을 위해 그저 귀찮은 몇 가지의 일을 해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훈련을 시작하자.”
“예, 감독님.”
축구부 팀원들은 다들 모여 몸을 풀기 시작했다. 대한은 감히 그 자리에 끼지도 못했다. 물론 껴봐야 제대로 하지도 못했고 그저 민폐를 끼치는 일이었다.
그는 다들 열심히 스트레칭을 하는 모습을 보면서 에바와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에바, 재능 흡수에 대해 내가 특별히 더 알아야 할 게 있어?’
―있습니다. 사실 아직 제대로 설명해 드리지 못한 게 있습니다. 매뉴얼을 보면서 자세하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그녀는 허공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재능 흡수 매뉴얼을 띄웠다.
[재능 흡수 매뉴얼―루키]
1. 재능 흡수는 신체 접촉을 통해 가능하다. (악수, 맞닿은 피부, 침, 땀 등)
2. 재능 흡수와 전수는 바로미터가 차면 가능하다. 현재 약 한 달.
3. 재능 삭제는 언제든지 무제한 가능하다.
4. 최하 등급인 루키는 일 년에 평균 12개의 재능을 흡수할 수 있다.
5. 정신적 재능은 꿈이나 무의식을 통해 반복 학습 후 흡수할 수 있다.
6. 육체적 재능은 최대 24시간 몸살을 앓는 후유증을 겪을 수도 있다.
7. 영적 재능이나 강력한 능력을 흡수할 경우, 깊은 잠(또는 의식 불명)에 빠질 수 있다.
8. 재능 등급이 높을수록 흡수하는 시간이 오래 걸린다. 최대 한 달을 넘지 않는다.
9. 흡수한 재능은 직접적인 체험이나 연습을 통해 빠르게 숙련도를 올릴 수 있다.
예) ‘축구 재능(C)’이 있는 상태에서 ‘축구 재능(S)’을 흡수하면 한 달 후, 최소 ‘축구 재능(D)’에서 최대 ‘축구 재능(A)’을 얻을 수 있다.
10. 싱크로율
100%: 동일 단계 재능을 흡수한다.
80%: 1단계 아래 재능을 흡수한다.
60%: 2단계 아래 재능을 흡수한다.
40%: 3단계 아래 재능을 흡수한다.
39% 이하: 4단계 아래의 재능을 흡수한다.
11. 마스터의 등급이 올라갈수록 재능을 흡수하는 시간이 줄어든다.
예) 한 달 ▶ 보름 ▶ 일주일 ▶ 사흘 ▶ 하루
대한은 에바와 재능 흡수 매뉴얼을 공부했다. 하나씩 차분하게 설명을 듣자 앞으로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대충 감이 왔다.
―이제 재능 흡수에 대해 이해하셨습니까?
‘응, 덕분에 내가 잘 모르고 있었던 부분이 많다는 걸 알았어.’
에바는 대한의 말에 환하게 미소를 지었다.
―마스터, 첫 번째 재능 흡수는 언어였지만 두 번째 재능 흡수는 반드시 육체 관련 재능을 흡수하셔야 합니다.
‘내 스탯이 너무 허접해서 그러지?’
그는 침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점도 없지 않지만 당장 신체적 밸런스를 회복하지 않으시면 무병장수하기는 어려울 겁니다.
‘내 몸이 그 정도로 나빠?’
대한은 에바의 말에 충격을 받았다.
―원래 피코셀이 1조 개였다는 것은 잘 알고 계시죠?
‘그건 에바가 말해 줘서 알고 있지.’
―설마 제가 마스터의 몸에 들어온 것만으로 1천억 개의 피코셀을 소모했다고 생각하시는 것은 아니시겠죠?
‘그게 아니었어?’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히 아닙니다. 무려 10분의 1의 피코셀을 소모한 것은 전부 마스터의 건강 때문입니다. 만약 제가 바로 손을 쓰지 않았다면 지금쯤 마스터는 병원에 입원하고 있었을 겁니다.
‘와우! 난 진짜 상상도 하지 못했어.’
에바의 살벌한 말에 대한은 고개를 절로 흔들었다.
―문제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몸이 더 나빠질 수 있다는 겁니다. 그러니 다이어트와 함께 바로 운동을 시작하세요.
‘알았어, 그렇게 할게.’
다행히 에바의 협박성 발언이 잘 먹혀들어 갔다. 대한은 얼떨결에 다이어트와 운동을 하기로 약속하고 말았다.
―그런데 개인 방송도 하실 겁니까?
‘가정형편이 어려워서 대학에 가는 것은 포기했어.’
―공부를 너무 못해서가 아니고요?
‘크흠, 그것도 대학을 포기한 이유 중 하나야. 어쨌든 먹고 살려면 뭐든 해봐야지.’
―알겠습니다. 제가 한번 멋지게 시나리오를 만들어 보겠습니다.
이상하게도 에바는 개인 방송에 적극적이었다. 하지만 대한은 현실적인 어려움부터 생각했다.
‘그런데 편집자는 어떻게 구하지?’
―영상 편집자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굳이 따로 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저에게 맡겨 주세요. 결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좋은 영상 편집자는 구하기도 힘들지만, 비용도 많이 든다고 했는데……. 어쨌든 큰돈 굳었다.’
―참! 좋으시겠습니다.
‘응, 에바가 있어서 너무 좋아.’
―히잉! 그렇게 말하면 감동받잖아요.
대한이 좋다고 하자 에바는 즉시 귀여운 모드로 바꿔서 애교를 부렸다.
“야! 물 다 떨어졌어. 빨리 가서 좀 가져와!”
“어? 그래.”
그때, 축구부 팀원인 2학년 오규환이 다가와 소리를 질렀다. 그는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나 축구부 사무실로 달려갔다.
냉장고에서 수십 개의 생수통을 꺼내 비닐봉지 두 개에 나눠 담았다.
대한은 비닐봉지를 양손에 쥐고 축구장을 향해 걸어갔다.
겨우 그 정도를 뛰었다고 온몸에서 땀이 비 오듯 흘러내렸다. 확실히 운동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테이블 위에 비닐봉지를 내려놓자 오규환이 득달같이 달려왔다. 녀석은 뭐가 그렇게 불만인지 고맙다는 말도 없이 비닐봉지만 날쌘 독수리처럼 확 채갔다.
워낙 이런 일을 많이 당해서 그런지 대한은 그냥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에바는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
오규환의 이름을 확인하고 노트에 그의 이름을 적어놓았다.
노트의 이름은 ‘살생부’였다.
“다들 수고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수고하셨습니다.”
이윽고 축구부의 훈련이 모두 끝났다. 시계를 보니 벌써 3시간이나 지난 상태였다. 대한은 드디어 자신이 움직일 차례가 됐다는 걸 알았다.
그는 축구 감독 최정규를 시작으로 축구부 팀원들이 모두 재빨리 사라지자 본격적으로 뒤처리를 시작했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다. 물론 대한도 누구의 도움도 기대하지 않았다.
―마스터, 축구가 그렇게 좋아요?
‘축구를 잘하지는 못하지만 시합을 보는 것은 아주 좋아해.’
일종의 대리만족 같았다.
에바는 대충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이번 기회에 축구 재능을 흡수하는 것은 어때요?
‘축구 재능?’
―예, 기왕이면 보는 것보다 직접 하는 게 좋지 않겠어요?
‘지금 나보고 축구 선수를 하라는 거야?’
대한은 살짝 고개를 갸웃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