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화 <첫 번째 재능>
“어이! 돼지! 왜 늦었어?”
“야! 이 새끼야! 좀 빨리 다녀.”
“X만 한 새끼가 보기만 해도 졸라 역겹네.”
물론 모두가 대한의 존재를 무시하는 것은 아니었다. 이처럼 몇몇 일진들은 그에게 큰 관심을 보였다. 무시보다 더한 멸시라는 감정을 가지고 말이다.
쿵! 삐그덕!
얼마나 무게가 나갔는지 의자가 죽는다고 아우성을 쳤다. 하지만 대한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책상 위에 엎드렸다. 그러자 일진들도 관심을 끄고는 자기들끼리 떠들어댔다.
군중 속의 고독이랄까!
주변의 아이들은 서로 웃고 떠들어대는데 대한은 바다 한가운데에 홀로 둥둥 떠 있는 기분이었다. 그의 이런 마음을 느끼기라도 했는지 에바가 뿅 하고 튀어나왔다.
‘어! 너 이렇게 막 튀어나와도 돼?’
―전 오직 마스터의 눈에만 보이는걸요.
‘어휴! 그럼 다행이다.’
대한은 그녀의 말에 환하게 웃었다.
외로웠지만 이제 외롭지 않았다. 언제나 혼자였지만 더는 혼자가 아니었다. 에바는 앞으로 항상 그와 같이 있을 것이다.
―마스터에게 도움이 되려면 제가 이 행성에 대해 잘 알아야 합니다. 정보를 수집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세요.
‘정보 수집? 혹시 인터넷에 접속이라도 하려는 거야?’
―예, 초급 문명의 전파를 통한 통신이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것에 접속하면 필요한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급 문명이라는 말이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이거 허락하면 나 막 쓰러지고 그러는 거 아니지?’
―마스터의 생활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 수준에서 정보 수집을 할 거예요. 그러니 안심하세요.
‘그렇다면 허락을 안 해줄 수가 없지. 그렇게 해!’
―감사합니다, 마스터!
에바는 두 손을 모아 배꼽 인사를 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참 예의 바른 녀석이었다.
그는 에바와 함께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며 시간을 보냈다. 담임선생이 들어와 조회하고, 1교시가 지나가도 둘의 대화는 끊이지 않았다.
물론 다른 아이들의 눈에는 그냥 돼지 같은 놈이 허공을 바라보며 멍 하게 앉아있는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이제 대충 포르낙스 은하계와 스파이럴 제국이 있는 볼트 행성이 어떤 곳인지 알 것 같아.’
―지루하고 재미없으셨죠?
솔직히 지루했다. 공상 과학 영화 같아서 별로 재미도 없었다. 영화는 그나마 눈으로 볼 수나 있지 그에 대한 설명을 말로만 듣는 것은 역시 극혐이었다. 그렇다고 에바에게 솔직하게 자신의 마음을 그대로 털어놓을 수는 없었다.
‘뭐 딱히 꼭 그렇지도 않아.’
―마스터의 신체 반응을 보니 그렇다고 나오는데요.
‘내 생각이 꼭 신체 반응과 100% 일치하는 것도 아닐 텐데.’
―그건 그래요.
99.99%도 100%는 아니었으니 틀린 말은 아니었다.
에바는 갑자기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함께해 주지 않으면 효과가 많이 떨어지는 것처럼요.
‘말이 나와서 하는 얘기인데… 에바는 뭘 할 수 있어? 아니, 내게 뭘 해줄 수 있어?’
사실 진작부터 물어보고 싶었다. 정말 알고 싶었던 것은 피코셀이라는 에바의 능력이다.
에바는 대한의 말에 자세를 바로 했다. 뭐 그래 봐야 엄지만큼 작은 인형이 하는 미미한 진동 정도에 불과했다.
―저 에바는 우주 탐사선 ‘히릭스(Hilix)’에 탑승한 로열나이트 아카데미 훈련생들을 위한 에듀케이션 모듈입니다.
‘우주 탐사선? 어쨌든 에바는 선생님이라는 말이지?’
―선생님과는 역할이 좀 다릅니다.
‘그럼 트레이너?’
―역시 이해를 돕기 위해 시청각을 이용한 설명이 필요하겠군요.
에바는 허공에 손짓했다. 그러자 온갖 그림과 동영상 및 차트가 나타났다. 그녀의 설명이 시작되자 대한의 눈에 이채가 흐르기 시작했다.
‘대박!’
―확실히 에바는 대박이에요.
그는 순수하게 놀랐다.
피코셀이라고 해서 몸이나 좋게 만들어줄 줄 알았더니…….
에바의 능력은 생각보다 대단했다.
남의 재능을 흡수하여 마스터의 것으로 만들어주는 게 바로 그녀의 진정한 능력이었다.
‘에바의 말이 사실이라면 앞으로 나는 재능이 엄청나게 생기겠네.’
―이론상으로는 천만 개까지 재능을 얻을 수 있어요.
‘천만 개의 재능?’
대한은 천만 개의 재능이라는 말에 입을 딱 벌렸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게 대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감조차 잡을 수가 없었다. 그보다 먼저 천만이라는 숫자에 압도당해 버렸다.
‘아니지. 지금 내가 당장 천만 재능을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 천 리 길도 한걸음부터라고 그랬어.’
―마스터의 말씀이 옳습니다. 한꺼번에 천만 재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에요. 뭐든지 처음은 하나부터 시작합니다.
대한의 몸이 흥분으로 잘게 떨려왔다. 아니, 그의 몸을 덮은 살들이 파도치듯 찰싹거렸다. 그런데 그게 선생님의 주의를 끌었나 보다.
“거기 돼… 크흠, 쟤 이름이 뭐지?”
“누구요?”
영어 선생님, 한영국은 맨 앞에 앉아있는 학생에게 대한의 이름을 물었다.
“저기 창가에 앉아있는 덩치 큰 녀석 말이야.”
“이대한이요.”
간신같이 얍삽하게 생긴 서진평이 바로 대한의 이름을 얘기했다.
날카로운 인상의 한영국이 대한을 향해 손짓했다.
“대한아! 앞으로 좀 나와 봐!”
“예에?”
갑작스럽게 자신의 이름이 불리자 대한은 침을 꿀떡 삼켰다.
그는 긴장한 표정을 숨기지 못하고 자리에서 엉거주춤 일어났다.
‘어? 언제 선생님이 바뀌었지? 지금 1교시 아닌가?’
―지금은 3교시 영어 시간입니다.
에바가 친절하게 대답을 해줬다.
대한은 그녀와 얘기를 하느라 정신이 팔려있었다. 그래서 이미 3교시가 시작된 것도 모르고 있었다.
전면 보드에 적혀있는 꼬부랑글자를 보니 확실히 자기가 두 번째로 싫어하는 영어 시간이었다.
물론 제일 싫어하는 것은 수학 시간이다.
‘망했다.’
속으로 망했다고 생각하고 단상으로 올라갔다.
“우리 이거 같이 한번 읽어보자.”
“예.”
“Blockchains are disintermediated and transnational.”
“블록…체인쓰 아 디, 디스, 인터네셔날 앤드 트랜스네이션.”
순간 한영국은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발음은 고사하고 문장을 제대로 읽지도 못했다. 무엇보다 푸들푸들 떨리고 있는 살들을 보니 지금 대한이 얼마나 긴장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킥킥!”
“키득키득!”
다른 학생들은 대한의 후진 영어 발음과 잘못된 리딩에 웃음을 흘렸다.
“혹시 무슨 뜻인지 알겠니?”
“자, 잘 모르겠습니다.”
한영국은 아까부터 대한이 수업에 집중을 못 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영어를 읽지도 못하니 당연히 관심도 없고 노력도 안 하게 되는 것이다.
고개를 푹 숙인 대한을 보자 한영국은 화조차 나지 않았다.
‘에바! 나 영어 잘하고 싶어. 이것도 재능이겠지?’
―맞습니다. 언어도 재능의 영역에 들어갑니다. 마스터께서 원하시면 첫 번째 재능을 언어, 영어로 하겠습니다.
대한은 창피했다. 아니, 쪽팔렸다. 비록 고개는 숙이고 있었지만 멀쩡한 두 귀로 친구들이, 아니 그냥 같은 반 학생들의 웃음소리가 너무도 잘 들려왔다.
조롱과 무시가 가득한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 자체로 대한에게 스트레스이자 큰 상처였다.
‘에바, 내가 어떻게 하면 되지?’
―일단 흡수 대상과 신체 접촉을 하셔야 합니다. 악수하거나 피부에 손을 대는 순간 피코셀을 주입하겠습니다.
“Blockchains are disintermediated and transnational. 이건 작년 겨울에 실시한 모의고사에서 나온 본문의 문장이다. 해석해 볼 사람?”
“저요!”
“그래. 반장이 한번 해봐!”
반장 이지혜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문장을 해석했다.
“블록체인은 탈 중계화 그리고 초국가적이다.”
“잘했어. 손뼉 한번 쳐주자!”
짝짝짝 짝짝짝짝!
정말 별거 아닌데 손뼉까지 치고 난리다. 그래서 이지혜와 이대한이 더 비교됐다.
“너도 들어가!”
“선생님.”
그때, 대한이 갑자기 고개를 확 치켜들고 소리쳤다. 한영국은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왜 그래?”
대한은 두 손으로 긴장을 타고 있는 한영국의 손을 꼭 붙잡았다. 그리고는 간절한 표정으로 물었다.
“선생님, 저 사실 영어를 정말 잘하고 싶어요. 제가 지금부터라도 열심히 노력한다면 영어를 잘할 수가 있을까요?”
한영국은 갑자기 입에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혹시라도 대한이 화가 나서 달려든 게 아닐까 걱정했었다. 그런데 얘기를 듣고 보니 전혀 자신의 걱정과는 달랐다.
“그, 그거야… 물론이지. 누구나 노력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어.”
한영국은 솔직히 회의적이었다. 중학교 때 기본만 했어도 문장을 읽는 정도는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이렇게 아예 기초가 없는 학생은 아무리 열심히 해도 성적이 잘 오르지 않는다.
솔직하게 말해 줄까 살짝 고민도 했었다. 하지만 한번 열심히 해보겠다는 학생에게 절망을 선사하고 싶진 않았다.
“감사합니다, 선생님. 그 말이 제게 용기를 심어줬어요. 한번 열심히 해보겠습니다.”
“그래, 열심히 해라. 나도 도와줄게. 언제든지 모르는 게 있으면 찾아와!”
“예, 선생님.”
“들어가 봐!”
대한은 한영국에게 90도 각도로 인사를 했다.
물론 살 때문에 45도 이상은 잘 내려가지 않았다.
자신의 자리로 돌아온 대한은 떨리는 가슴을 부여잡고 남모르게 열심히 심호흡했다.
‘에바, 나 어땠어?’
―연기 잘하시던데요.
‘정말? 정말 그럴듯했어?’
―네.
‘다행이다.’
대한은 에바의 말에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렇다고 고개를 돌려 다른 아이들의 반응을 살피고 싶지도 않았다.
그로서는 정말 큰 용기를 내서 한 행동이었다.
‘아 참! 어떻게 됐어? 피코셀 잘 주입했어?’
―예, 마스터. 피코셀의 주입은 성공적으로 끝났습니다. 현재 대상자 한영국의 DNA를 분석하는 중입니다.
‘한영국 선생님에게 어떤 재능이 있어?’
―현재까지 분석해 본 결과에 의하면 대상자 한영국의 최대 재능은 ‘영어(A)’입니다. ‘일본어(C)’와 ‘당구(C)’ 그리고 ‘요리(D)’도 있네요. 역시 영어 선생님이라서 그런지 영어가 재능이었다.
‘영어의 등급이 A면 어느 정도지?’
―언어의 경우 등급 A는 거의 모국어 수준에 가깝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럼 나도 이제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잘할 수 있게 되는 거야?’
대한은 한껏 기대하며 물어봤다.
―그렇진 않습니다. 대상자와 싱크로율이 100%라면 모를까, 60% 아래인 경우에는 2단계 아래인 영어(C)가 최대입니다.
‘영어 등급이 C면 어느 정도 수준이지?’
―간신히 대화가 가능한 정도라고 보면 됩니다.
―아!
대한은 살짝 실망했다.
하지만 에바의 다음 말을 듣고는 눈이 번쩍 뜨였다.
―그렇다고 얻을 수 있는 재능이 고정된 것은 아닙니다. 얼마든지 노력으로 메꿀 수 있는 범위도 있습니다.
‘노력으로 재능을 메꾼다고?’
새로운 가능성이 보이자 대한은 의욕적으로 변했다.
―앞으로 최소 2주, 최대 한 달 동안! 재능 ‘영어’가 마스터의 몸에 안착됩니다. 이 사이 열심히 영어 공부를 하시면 재능의 등급이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얼마나 달라지는데?’
―운이 좋으면 등급을 최대 A까지 끌어올릴 수도 있습니다. 제가 볼 때 마스터께서 열심히 하신다면 등급을 B까지 올리는 것은 어렵지 않을 겁니다.
‘등급 B라면?’
―언어를 자유롭게 쓰고 소통할 수 있는 수준입니다.
개이득!
대한은 주먹을 꼭 쥐었다. 영어로 간신히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정도면 나쁘지 않았다. 한 달만 열심히 하면 영어를 자유롭게 쓰면서 소통할 수 있다. 아무리 그가 게을러도 이 정도는 한번 노력해 볼 만했다.
대한은 즉시 자세를 바로잡고 한영국 선생님을 쳐다봤다.
뭔 소리를 하는지 전혀 알아먹을 수가 없었다.
그래도 작심을 한 게 있었다.
그는 열심히 한영국의 말을 귀에 담아보려고 노력했다.
―대상자 한영국에 대한 DNA 분석이 끝났습니다. 재능 영어(A)를 흡수합니다. 대상자의 재능과 관계된 경험과 기억을 전송합니다. 대상자와의 거리가 더 이상 멀어지면 재능 흡수가 중단됩니다. 재능과 관계된 경험과 기억 전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대한은 에바의 설명을 들으며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코셀끼리는 어느 정도 떨어져 있어도 소통이 가능한 모양이었다.
그는 굳이 더는 같은 남자의 손을 만지지 않아도 된다는 사실에 만족했다.
우웅!
그때, 머리에서 알 수 없는 공명음이 울렸다.
“어!”
대한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
“They are resilient and resistant to change, and enable people to store nonrepudiable date, pseudonymously, in a transparent manner.”
한영국 영어 선생님의 입에서 나오는 외계어가 갑자기 영어가 되어 귀에 또렷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