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운석>
“휴우우!”
다 낡아빠진 연립 주택을 빠져나와 거리에 서서 길게 심호흡을 했다. 차가운 밤공기를 폐부로 깊이 들이마셨다. 그러자 답답한 가슴이 그나마 조금은 시원해졌다.
“아 참! 돈은 있나?”
대한은 급하게 지갑을 꺼내 열어봤다.
그의 얼굴이 낭패한 기색으로 물들어갔다. 생각해 보니 오늘 아침, 학교에서 일진들에게 지갑을 털린 것을 깜빡했다.
“쓰레기 같은 새끼들!”
대한은 놈들을 생각하자 절로 이가 박박 갈렸다.
흥분하니 숨소리도 급격히 거칠어졌다.
‘두고 보자. 반드시 이 원한을 갚고 말 테다.’
그는 고개를 치켜들고 하늘을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청산이 있는 한 땔감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무협지 속 주인공의 말처럼 당장은 아니더라도 당한 것만큼, 아니 당한 것에 몇 배로 갚아줄 생각이다.
그런 생각을 하자 자신도 모르게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대한의 머릿속에 그동안 당했던 치욕들이 하나둘씩 떠오르더니 이내 수십, 아니 수백 개로 늘어났다.
진짜 생각할수록 열이 뻗쳤다.
“어?”
그때였다.
하늘에서 뭔가 번쩍하더니 환한 달무리 같은 게 그려졌다.
반짝이던 빛은 이내 여러 조각으로 깨지고 쪼개져 사방으로 날아갔다.
저 하늘에 신이 있다면 꼭 내 원한을 갚을 수 있도록 도와줬으면 좋겠다고 막 그렇게 생각하던 참이었다.
‘별똥인가? 설마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신이 일부러 별똥을 떨어뜨린 것은 아니겠지……. 억! 지금 내가 이럴 때가 아니지. 얼른 소원부터 빌어야겠다.’
대한은 퍼뜩 정신을 차리고 마음속으로 빠르게 자신의 소원을 빌었다.
떨어지는 유성을 바라보며 소원을 빌면 꼭 이루어진다는 그런 개소리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맞다.
그건 개소리가 분명하다.
실제로는 믿지도 않으면서 사람들은 떨어지는 별똥만 보면 괜히 소원을 빌어야 한다고 호들갑을 떨어댄다.
이미 염세주의자가 다 되어버린 대한의 고개가 순간 갸웃거렸다. 떨어지는 유성중 하나의 방향이 좀 이상했기 때문이다.
‘설마, 저거 나한테 떨어지는 건 아니겠지?’
그는 진짜 설마 했다. 그런데 그 유성은 정말 무시무시한 속도로 대한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허억!”
쿵!
땅이 살짝 흔들릴 정도로 강한 충격이 왔다.
물론 대한을 향해서 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가 서 있는 곳을 살짝 지나 별똥별은 뒤쪽 숲속으로 순식간에 낙하했다.
후다다다닥!
대한은 급히 숲속으로 달려갔다.
경기도와 서울을 구분 짓는 경계선.
제법 수풀이 우거진 그리 크지 않는 숲속이었다.
‘이건 큰 기회야. 운석을 가져야 해. 먼저 발견하는 사람이 임자라고 했어. 팔면 큰돈을 벌 수 있어.’
그가 괜히 미친 듯이 뛰어간 게 아니었다.
대한도 나름 머릿속으로 생각이라는 것을 했다.
운석이 돈이 된다는…….
물론 그게 생각해야만 알 수 있는 사실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눈에 잔뜩 힘을 주고 운석이 떨어지는 곳을 지켜봤다.
덕분에 그리 어렵지 않게 크레이터(crater) 혹은 운석공(隕石孔)이라고도 부르는 운석 구덩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대박! 진짜 운석이다.”
대한은 신기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운석 구덩이를 향해 다가갔다.
뭔가 타다만 듯한 매캐한 냄새가 났다.
그는 스마트폰을 꺼내 플래시 앱을 켰다.
운석 구덩이 중앙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검은 돌멩이가 박혀있는 게 보였다.
대한은 급히 후드를 벗어 손에 둘둘 말고 땅속에 박힌 운석을 잡아 뽑아냈다.
핫팩이라도 든 것처럼 손에 후끈한 열기가 전해졌다.
뜨끈뜨끈한 운석을 쥔 그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제 이걸 팔기만 하면 큰돈이 들어오게 될 것이다.
살짝 분홍빛 망상에 빠져들려 할 때!
어디선가 호통을 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거기 누구야? 내 운석 손대지 마! 그거 내가 먼저 발견한 거야!”
“헐!”
대한은 깜짝 놀라 얼른 스마트폰의 플래시 앱부터 껐다. 그리곤 조용히 숲속으로 들어가 냉큼 줄행랑을 쳤다.
‘뭐래? 미친놈! 아주 지랄도 풍년이네.’
솔직히 누군지 궁금했다.
얼굴이라도 보고 싶었다.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저따위 헛소리를 어떻게 더듬지도 않고 잘도 주절댈까? 할 수만 있다면 놈의 상판대기에다 똥물이라도 퍼부어주고 싶었다.
멀리서 십 원짜리를 찾으며 욕하는 소리가 은은하게 들려왔다. 잡히면 죽인다느니, 배때기를 칼로 쑤셔버린다느니…….
대한은 그런 말을 듣고도 오히려 실실 웃음을 흘렸다. 물론 겉으론 웃으면서도 속으론 덜컥 겁이 났다. 왠지 잡히면 큰 봉변을 당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대한이 누군가? 은평구 신사동을 빨빨거리며 돌아다닌 지 어언 십 년. 그야말로 잔뼈가 굵어지다 못해 철근이 다 되어버린 놈이다.
이 근처의 숲은 눈을 감고도 싸돌아다닐 정도로 빠삭했다. 물론 이놈의 숲이라는 게 그다지 크지 않아서 가능한 일이지만 말이다. 그래도 아까보다는 훨씬 조심하며 숲을 빠져나왔다.
야밤이라 길거리에 사람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대한은 도둑고양이처럼 발뒤꿈치를 들고 살금살금 걸어갔다. 하지만 체력이 달리는지라 힘들어서 금방 포기했다.
어쨌든 터벅터벅 걷다 보니 집에 무사히 도착했다.
조심스럽게 현관문을 열었다.
거실을 지나 자신의 방 안으로 쏙 들어왔다.
“살았다.”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티셔츠가 푹 젖다 못해 식은땀이 배와 등에서 줄줄 흘러내렸다.
대한은 한숨을 내쉬며 그대로 침대 위로 꼬꾸라졌다.
털썩!
출렁이는 침대와 살들의 경쟁 속에서 잠시 숨을 골랐다.
운석 생각이 났다. 아직도 한 손에 들고 있는 후드를 펼쳐봤다.
후드는 이미 새까맣게 타서 검은 재가 묻어 있었다.
제일 즐겨 입던 후드였는데…….
아무래도 이제는 쓰레기통으로 던져버려야 할 것 같다. 그래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운석을 들어 살펴봤다. 뭔가 대단할 거란 기대를 했었다. 하지만 운석은 그냥 어린아이 주먹만 한 따뜻한 검은색 돌멩이에 불과했다.
심지어 과연 이런 걸 누가 돈 주고 사갈지 의심스러웠다.
대한은 눈을 감았다. 뭐 그리 대단한 일을 했다고, 눈꺼풀이 천근만근이었다.
‘잠깐 눈 좀 붙이자.’
대한은 잠시 이대로 침대에 누워 좀 쉬기로 했다. 그러나 피로가 겹쳤는지 어느 순간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도롱, 도로롱, 도롱도롱…….
살짝 가는 코를 골며 깊은 잠에 빠진 대한.
숨을 쉴 때마다 살들이 물결치듯, 아니 파도처럼 출렁거렸다.
혹시 먹는 꿈이라도 꾸는 걸까?
간혹 그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감돌기도 했다.
쩌억!
그때 갑자기 손에 쥐고 있던 검은 운석이 둘로 쫙 쪼개졌다. 그 안에서 알사탕만 한 은색 구슬이 뽀르르 튀어나왔다. 구슬은 누가 만지지도 않았는데 혼자 데굴데굴 굴러가더니 대한의 손안으로 쏙 들어갔다.
은색 구슬은 잠시 파르르 진동하더니 순간 액체로 변했다. 그리곤 마치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대한의 손바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스르륵!
시간이 지나자 대한의 몸에서 서서히 변화가 일어났다. 온몸이 펄펄 끓듯 고열이 나고 진한 땀이 줄줄 흘러내렸다.
피부는 찜통에 들어간 랍스터처럼 붉게 달아올랐다. 원래도 동그란 몸이 발갛게 변하자 마치 커다란 붉은 공처럼 보였다.
대한은 그렇게 걸쭉한 육수를 겁나게 흘려가며 새벽이 다 되도록 익어만 갔다.
* * *
동녘이 밝았다.
잠에서 깨어난 대한은 입맛을 다시며 일어났다.
“음냐, 음냐……. 쩝쩝!”
꿈속에서 뭔가 맛있는 거라도 먹었는지 머리도 맑고 기분도 아주 좋았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갑자기 손으로 코를 잡더니 오만상을 다 썼다.
“헉! 뭐야? 이 썩어서 곯아 내려앉을 것 같은 냄새는…….”
그는 얼른 일어나 창밖을 살펴봤다. 똥차나 쓰레기차가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러나 이른 새벽 골목 안은 텅 비어있었다.
혹시 길냥이가 몰래 기어들어 왔나 방 안을 살펴봤다. 하지만 그런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침대 위에 벌어진 참상을 발견했다.
순간 그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 마이 갓!”
냄새의 원인은 다름 아닌 바로 자신이었다. 쉰내와 썩은 냄새가 몸과 옷은 물론침대 시트와 이불까지 번져 있었다.
뭔가 이유를 생각하고 자시고 할 시간이 없었다. 당장 코를 뚫고 들어와 뇌리를 후벼 파는 지독한 악취에 그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대한은 즉시 침대 시트와 이불을 싹 걷었다. 그는 그것을 둘둘 말아서 빨래통에 처넣었다. 세탁기로 빤다고 해서 과연 저 냄새가 지워질지 걱정이 앞섰다.
아니, 그보다 먼저 자신의 몸과 옷에서 나는 이 고약한 냄새를 어떻게든 빨리 지워버리고 싶었다.
그는 나는 듯이 욕실로 달려가 훌러덩 옷을 벗어 던졌다.
샤워기를 틀자 물이 폭포수처럼 쏟아져 내렸다.
쏴아아아!
온수가 전신을 때리기 시작하자 그제야 좀 살 것 같았다.
샴푸와 린스를 했다. 이태리타월에 바디워시를 듬뿍 짜서 거품을 내고 몸을 박박 닦았다. 그러고도 냄새가 쉬이 가시지 않았다. 결국, 이 과정을 세 번이나 더 반복해야만 했다.
“킁킁! 어휴! 이제야 좀 살 것 같네.”
대한은 팔을 들어 이마에 흐르지도 않는 땀을 훔쳐냈다. 수건으로 사타구니 사이만 가린 채 욕실을 빠져나왔다.
어두컴컴한 거실을 빠르게 가로질러 자기 방으로 돌아왔다.
“우웩!”
하지만 방에는 아직도 숨어있는 복병이 있었다.
그는 헛구역질이 나는 걸 간신히 참았다. 급히 창문을 활짝 열고 방 안에 탈취제를 있는 대로 살포했다.
치이이이익― 치이이이익!
그런데도 이 고약한 냄새는 쉽게 가시질 않았다. 아무래도 한동안 창문을 열어둔 채 지내야 할 것 같았다.
반지하 방만 아니었다면 악취가 이렇게 독하게 배기진 않았을 텐데…….
그걸 생각하니 괜스레 마음이 울적해졌다.
‘가만, 그런데 내 몸에서 왜 그런 악취가 난 거지?’
대한이 그걸 생각한 순간, 몸이 얼어붙기라도 하듯 동작이 딱 멈췄다.
차분하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들을 반추해 봤다.
당장 야밤에 숲속에 떨어진 운석을 주어왔던 것이 생각났다. 누군가에게 쫓겼던 것도 기억났고 도망치느라 티셔츠가 다 젖어버릴 정도로 땀을 흘린 것도 떠올랐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이런 고약한 냄새를 풍길 수가 있단 말인가?
그는 여전히 이해가 되지 않아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침대 밑에서 반으로 쪼개진 운석을 발견했다.
“헉! 뭐야 이거……. 누가 이랬어?”
대한은 호들갑을 떨며 두 쪽이 난 운석을 살펴봤다.
그가 잠자는 사이, 누군가 일부러 들어와서 운석을 망가뜨린 게 아니라면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아쉬웠다.
아니, 진짜 안타까웠다. 운석이 온전했더라면 큰돈을 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천금 같은 기회가 홀라당 날아가 버렸다. 누가 이렇게 쪼개진 걸 운석이라고 사가겠는가!
대한은 아까워서 돌아가실 뻔했다. 하지만 깨끗이 포기하기로 했다. 이미 다 빠개진 운석 따위에 미련을 갖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그는 운석 조각을 서랍에다 대충 던져 넣고 손을 탁탁 털었다.
‘혹시 운석이 방귀라도 뀐 게 아닐까?’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냈다.
대한은 모든 원인을 운석의 방귀 사건으로 몰아버렸다. 그리고 오늘의 사건을 덮어버리기로 했다.
아무런 이유 없이 자신의 몸에서 그런 악취가 난다는 것은 도무지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꼬르륵꼬르륵!
무엇보다 그는 배가 고팠다. 그냥 단순히 배가 고픈 것만이 아니었다. 이상하게도 오늘 아침은 정말 죽을 것같이 배가 무지하게 고팠다.
대한은 거의 이성을 잃은 것처럼 부엌으로 돌진했다. 보온 밥솥에서 밥통을 통째로 꺼내어 먹기 시작했다.
냉장고에서 온갖 반찬을 꺼내 작살을 냈다.
커다란 냄비에 라면을 열 개나 끓여서 후루룩 마시듯 먹어치웠다.
그것도 모자라 햇반을 상자째로 꺼내먹고 햄과 치즈, 참치 통조림을 입 안으로 아예 털어 넣었다.
냠냠, 쩝쩝, 냠냠, 쩝쩝…….
이게 먹방이라면 정말 엄청난 인생작을 하나 만들었을 것이다.
어느새 식탁은 대한이 흘린 잔해로 수북해졌다.
텅 빈 밥통, 초토화된 냉장고, 가득 쌓인 쓰레기더미들…….
수상한 소리에 잠이 깬 이태산과 김혜영!
둘은 아들의 만행을 눈으로 목격하곤 입을 딱 벌린 채 경악했다.
그 모습을 발견한 대한의 얼굴!
오늘따라 유난히 어색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