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천만재능(Feat. 대한 TV)-1화 (1/331)

1화 <식스팩>

“준비됐냐?”

“예.”

“그럼 찍어라.”

“오케이, 액션!”

“액션은 지랄!”

대한은 범준이를 힐끗 한번 쳐다보더니 좌우를 살폈다.

땅거미가 지고 있는 이 시각.

굳이 후미진 연립 주택 뒷골목을 찾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하지만 그래도 괜히 걸리면 돌이킬 수 없는 쪽팔림을 감수해야 했기에 그는 다시 한번 주변을 꼼꼼히 살폈다.

물론 고새를 못 참고 촉새처럼 끼어드는 놈도 있었다.

“형,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카메라 돌아가고 있잖아요.”

“알았어, 인마! 지금 시작한다. 잘 찍어!”

범준이 재촉하자 대한은 얼른 자신의 티셔츠를 벗었다.

출렁!

옷에 가려져 있던 살들이 제 세상을 만난 양, 폭포수처럼 바깥으로 쏟아졌다.

대한은 눈앞에 보이는 철조망을 향해 자신의 넉넉한 배를 가져갔다.

철조망의 차가운 느낌이 출렁이는 뱃살을 가르는 듯했다. 하지만 꾹 참고 철조망을 향해 힘껏 몸을 들이밀었다.

“우와! 살들이 그냥 막 철조망을 씹어먹네.”

“이 새끼가…….”

약을 올리는 듯한 범준의 말에 대한은 인상을 팍 썼다. 그러나 동영상을 찍고 있는 범준을 당장 혼낼 수는 없었다. 그보단 언제 사라질지 모를 식스팩을 잘 찍는 것이 중요했다.

대한은 철조망에서 배를 떼고 범준이를 향해 몸을 확 돌렸다. 두 주먹을 불끈 쥐고 양어깨 위로 활짝 벌렸다. 동시에 배에 잔뜩 힘을 주며 환하게 웃었다.

“이야아! 식스팩 죽인다. 근데 진짜 1초 만에 사라지네.”

“잘 찍었냐?”

“네.”

대한은 범준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티셔츠를 도로 입었다.

그것도 일이라고 대한의 온몸에 육수가 줄줄 흘러내렸다.

손을 내밀자 범준이는 킥킥대며 그의 스마트폰을 건넸다.

대한이 화면을 터치해 범준이 찍은 동영상을 재생했다. 놀랍게도 철조망에 눌린 살들이 정말 식스팩처럼 보였다.

그가 회심의 미소를 짓자 범준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형, 이거 유튜비에 올릴 거예요?”

“왜? 별로냐?”

“아뇨. 올리면 진짜 개이득 볼 것 같아서요.”

대한은 범준의 말에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흔들었다.

“내가 아무리 병신이라도 자폭할 생각은 없어.”

“어? 알고 있었네.”

“이 미친놈!”

“헤헤, 난 또 아무 생각 없이 올릴 줄 알았지.”

“어쨌든 촬영 협조해 줘서 고맙다.”

“크크, 별말씀을…….”

대한은 범준의 머리에 손을 올리고 거칠게 흩트렸다.

범준은 그게 마음에 들었는지 주인 손길에 좋아 죽는 강아지처럼 헥헥대며 눈에 호선을 그렸다.

“형! 근데, 이거 나한테만 좀 보내주면 안 돼요?”

“안 돼.”

냉정한 대한의 말에 범준은 그를 새초롬하게 쳐다봤다.

“왜요? 진짜 나만 볼게요.”

“개 미친놈아! 내가 네 말을 어떻게 믿냐?”

“내가 뭘요? 나 진짜 거짓말 안 해요.”

“헐! 중2병보다 더 무섭다는 초딩 사춘기의 말을 믿으라고? 그냥 나 혼자 보고 말란다.”

“아이, 형! 왜 그래요? 그거 진짜 개 웃긴단 말이에요. 유튜비에 올리면 틀림없이 대박 날 거예요.”

“훠이훠이, 사탄아! 물러가라!”

대한은 막무가내로 엉겨 붙는 범준을 떼어 내며 얼른 집으로 도망쳤다.

신장 159.5cm에 몸무게 101kg. 고도 비만인 그가 달리기 시작하자 마치 커다란 공이 굴러가는 듯했다. 계단을 구르듯 타고 내려와 지하, 아니 정확히는 반지하 집으로 들어갔다.

다행히 범준은 집까지 따라 들어오는 만행은 벌이지 않았다.

“허억, 허억, 허억…….”

거친 숨소리가 귓전을 울렸다.

매일 축구부 도우미로 뛰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도 뛴 거라고 숨이 턱에 차는 것은 금방이었다.

‘하아! 이놈의 저질 체력!’

대한은 가만히 고개를 모로 저었다. 타고난 건지, 아니면 게을러서 그렇게 된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이제는 원망하는 수준을 넘어 거의 자포자기 단계에 이르렀다.

불도 켜지 않고 어두컴컴한 거실을 지나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쿵, 철컥!

방문을 닫고 고리를 채웠다.

그러자 괜히 뭔가 안심이 됐다.

나만의 공간!

누구도 터치할 수 없는 아지트…는 개뿔!

그냥 쓸데없이 힘만 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앞에 앉아 헐떡이는 숨을 조절하며 그는 스마트폰을 꺼냈다.

다시 한번 오늘 찍은 동영상을 틀어봤다.

비록 1초 식스팩이긴 하나 철조망에 의해 순간적으로 급조된 식스팩은 나름 근사했다.

진짜 식스팩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좋을까?

절로 부럽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치며 후두부를 강타했다.

“초등학교 때 괜히 보약을 잘못 먹어서는…….”

대한은 미간에 힘을 주며 작게 독백했다.

정말로 보약을 잘못 먹어서 폭발적으로 살이 쪘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어쩌면 그렇게라도 핑계를 대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어서 그런지도 모른다.

그는 소리 없이 한숨을 토해 내며 컴퓨터를 켰다.

다 쓰러져가는 집이지만 그래도 외아들이라고 부모님은 나름 괜찮은 성능의 최신형 컴퓨터를 사주셨다. 그나마 이것으로 온라인 게임이라도 하지 않았다면 아마 자신의 멘탈은 이미 산산조각이 나고 말았을 것이다.

흐음, 그것도 역시 핑계겠지.

대한은 세상의 모든 부정적인 기운이 머릿속을 꽉 채우기 전에 서둘러 온라인게임의 세계로 탈출했다.

타닥, 타다닥, 타다다닥…….

티칵티칵, 티칵티칵…….

절도 있게 기계식 키보드를 치는 소리. 빠르게 마우스를 클릭하는 소리가 방 안을 점령했다. 천사들의 합창처럼 두 소리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그 소리는 그에게 무척 듣기 좋은 음악이나 마찬가지였다.

“대한아! 밥 먹어라!”

방문을 두드리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얼핏 들려왔다. 헤드셋을 벗은 대한은 고개를 들어 시계를 쳐다봤다.

얼마나 정신없이 게임에 몰두했는지 어느새 시침은 밤 10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는 하던 게임을 멈추고 거실로 나갔다.

“너 또 게임 했냐?”

“…….”

“적당히 좀 해라. 게임으로 평생 돈 벌 거 아니면…….”

“네.”

언제 들어오셨는지, 식탁에 앉아있던 아버지가 잔소리해댔다.

대한은 빈 의자에 앉았다. 그리곤 자신을 위해 늦은 저녁을 차리고 있는 어머니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어느새 어머니의 옆머리는 새치라는 놈이 다 먹어 치웠다.

세월엔 장사가 없다고 했던가?

효자는 아니지만 그래도 언젠가는 효도하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아직 이렇다 할 기회조차 찾지 못했다. 이렇게 허송세월만 하다간 아무래도 너무 늦어버리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게임도 좋지만 그래도 밥은 먹어가면서 해야지.”

“예.”

같은 말이라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말이 이렇게 다르다. 틀린 말은 아닌데… 역시 받아들이는 감정의 차이가 크다.

“배고플 텐데 어서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그는 살짝 미소를 지으며 식탁 위를 쳐다봤다.

식당에서 남은 걸 몽땅 싸 오셨는지 커다란 도가니 그릇에 담긴 뼈다귀해장국이 꽤 수북하다.

대한은 침을 꿀꺽 삼키며 오동통한 두 손을 치켜들었다. 뼈다귀 한쪽을 잡고 쭉 빨아먹자 살은 사라지고 뼈만 남는다.

역시 ‘엄마손 해장국’ 식당의 뼈다귀해장국은 맛있다.

밥을 한 숟가락 퍼먹고 국물을 한 숟가락 마시고 다시 뼈다귀 하나를 집어 쪽쪽 빨았다.

냠냠, 쩝쩝, 냠냠, 쩝쩝…….

소리를 내고 싶지는 않지만, 어쩔 수 없이 소리가 났다. 아니, 뼈다귀 사이에 숨겨진 살을 발라 먹으려니 소리가 안 날 수가 없다.

대한의 손과 입이 물아일체가 되어 무아지경으로 움직였다.

순식간에 풍성했던 도가니가 바닥을 보였다.

뼈다귀해장국을 먹고, 아니 흡입하고 있는 이대한!

그 모습을 보고 입을 딱 벌리고 계신 아버지, 이태산!

보고만 있어도 배가 부르다는 듯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어머니, 김혜영!

좁고 음습한 반지하 방에 사는 한 가족의 여름은 오늘도 이렇듯 화기애매(?)했다.

* * *

“우와! 배부르다.”

방으로 돌아온 대한.

한 손으로 태평양처럼 넓은 자신의 뱃살을 어루만졌다.

거울을 보면 자괴감이 든다. 하지만 먹을 때만큼은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이런 기분도 그리 오래가지는 않을 것이다. 누가 뭐래도, 현실은 얼음 속에 칼날처럼 냉정한 것이니 말이다.

그때, 아버지와 어머니가 소곤거리는 소리가 미미하게 들려왔다.

“저거 이대로 내버려 둬도 되는 거야?”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뼈다귀해장국 5인분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우는 것 봤잖아?”

“그게 뭐가 어때서요? 난 잘 먹으니까 좋기만 하네요.”

“아니, 당신 진짜 몰라서 그런 소리 하는 거야?”

“모르긴 뭘 몰라요?”

“우리 아들 고도, 아니 초고도 비만이야. 저렇게 가만히 내버려 두면 큰일 날 수가 있다고.”

“큰일 날 게 뭐가 있어요? 잘 먹고 잘살면 되지.”

밥 잘 먹고 팩트 폭행을 당해 버렸다.

금방 속이 더부룩해지고 얹힌 느낌이 들었다.

그래도 언제나 자기편을 들어주는 어머니의 말에 조금은 위로가 됐다.

“어휴! 좋아. 그건 그렇다고 쳐. 그럼 앞으로 대한이 뭐 시킬 거야?”

“자기가 하고 싶은 거 하면 되지, 뭘 시키려고 들어요?”

“우리 집이 하고 싶은 거 다 하면서 살 수 있는 형편이라면 이런 걱정도 안 하지.”

“대학 졸업하면 자기가 알아서 잘하겠죠.”

“뭐? 대학을 졸업하면? 허 참! 반에서 꼴등 하는 놈이 무슨 대학이야?”

“좀 작게 말해요. 그러다 대한이 듣겠어요.”

어머니의 말에 아버지의 목소리가 더욱더 작아지셨다. 그래도 방문에 귀를 대니 잘만 들린다.

이놈의 집구석은 진짜 예의가 없다. 기본적으로 방음이란 게 전혀 안 되는 곳이다.

“그래, 좋아. 대한이가 어떻게 대학을 갔다고 치자. 그럼 우리가 대학 등록금 대줄 형편은 되고?”

“그러니까 앞으로 더욱 열심히 모아야죠. 대학 가려면 2년 남았잖아요.”

“대학 등록금이 한두 푼도 아니고……. 우리 지금 은행대출금도 다 못 갚았어. 무슨 수로 대한의 대학 등록금을 모아?”

“당신은 왜 매사에 그렇게 부정적이에요?”

“부정적인 게 아니라 현실적인 거지.”

“어쨌든 우리가 더 허리띠 바짝 졸라매야죠.”

“지금보다 어떻게 더 허리를 졸라매? 나 술도 끊고 담배도 끊었어. 교통비 아까워서 걸어 다닌 지가 벌써 1년이 다 돼가.”

대한은 아버지의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눈에서 눈물이 핑 돌았다. 그렇게까지 절약하며 살고 계신 줄은 진짜 꿈에도 몰랐었다.

“당신이 고생하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대한이 부모인데 그럼 어떻게 해요?”

“그렇게 말하니까 또 내가 할 말이 없어지네. 에이, 그만하자. 알았으니까 당신이 대한이 좀 잘 타일러서 공부 좀 하라고 해. 맨날 게임만 하니까 내가 다 불안해져.”

“흐윽, 알겠어요. 제가 잘 타일러 볼게요.”

아버지의 한숨 소리와 어머니의 흐느끼는 소리.

대한의 어깨가 연타를 얻어맞아 무겁게 짓눌려갔다.

“휴우!”

더는 엿듣는 것을 포기하고 대한은 침대에 발라당 누웠다.

밥을 먹고 행복했던 순간도 잠시. 어느새 그는 현실이라는 지옥 속으로 돌아와 있었다.

사실 아버지의 말씀 중 틀린 게 하나도 없다. 초고도 비만도 사실이고 반에서 꼴등 하는 것도 사실이다. 머리도 안 좋고 게으른 데다가 노력도 부족했다.

생각해 보니 게임 좀 하는 것 빼고는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렇다고 엄청난 실력을 감추고 있거나 프로게이머가 될 가능성이 있는 것도 아니다. 누구보다도 본인 스스로가 한계를 분명히 알고 있으니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당연히 대학 갈 성적은 되지 않는다.

그렇다고 고등학교만 졸업하고 바로 취업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요즘 세상에 번듯한 직장 구하기는 하늘에서 별 따기나 다름없단다.

게다가 키는 짜리 몽땅, 몸은 101kg이 넘는 살로 출렁.

얼굴엔 여드름이 가득하고 체력은 초 저질.

배운 기술도 없고 재능도 없는 무능하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이 정말 싫다.

차가운 현실이 비수처럼 심장을 파고드는 더러운 기분!

‘심야 만화방이라도 가볼까?’

답답한 마음에 대한은 바람을 쐬기로 했다.

얼마나 멍때리고 앉아있었는지 시나브로 시간은 어느덧 자정을 넘기고 있었다.

그는 혹시 몰라 후드를 걸치고 스마트폰과 지갑을 챙겨 방을 나섰다. 무거운 몸 때문에 걸음을 옮길 때마다 거실이 쿵쿵 울렸다. 그래서 얼음 위를 미끄러지듯, 발을 떼지 않고 조심스럽게 거실 바닥을 가로질렀다.

다행히 큰 소음을 내지 않고 무사히 집 밖으로 나오는 데 성공했다. 하긴 들켰더라도 두 분은 아마 자신을 그냥 내버려 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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