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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86화 (286/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86화

“어휴. 이걸 진짜로 하시네.”

병실 침대에 앉아, 노트북을 켜고는 곧바로 일을 시작하는 황 실장. 그 모습을 지켜보던 최성현은 약간 감탄이 어려 있는 목소리로 들으란 듯이 말했다.

“뭐 신기한 일이라고. 어차피 가만히 앉아 있는 것보다는 뭐라도 하고 있는 게 낫지 않겠냐.”

“그렇게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긴 한데…….”

최성현은 고개를 갸웃거리며 머리를 긁적였다.

“병실에서까지 일을 하시는 것도 하시는 거지만, 태한이가 말했던 대로 움직이시니까 좀 신기해서요.”

“태한 씨가? 뭐라고 했었는데.”

“사실 태한이가 실장님한테 노트북 갖다드리지 말라고 했었거든요. 황 실장님이면 병실에서도 일을 하실 거라고 그러면서.”

최성현은 천마안마의 사무실에서 노트북을 챙기고 나올 때의 일을 떠올리면서 말했다. 당시 최성현은 강태한의 말을 듣고는 ‘설마 그러겠냐’라는 뉘앙스의 답을 하며 고개를 저었었다.

솔직히 조금이라도 더 쉬고 싶은 것이 일반적인 사람의 마음이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게 사고를 당해서 병실에 누워 있는 상태라면 더더욱 그렇다.

허나… 결과를 놓고 보면 결국 이번에도 강태한의 말이 맞았다. 병실 안에 타닥, 탁 하고 울려 퍼지는 노트북 키보드 소리. 최성현은 가만히 황 실장의 모습을 지켜보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긴, 뭐… 이게 실장님다운 모습이기는 하네.’

얼핏 보기에 황 실장은 느슨하고 느긋한 성격처럼 보이기 쉽지만, 그와 함께 일을 몇 번 해 보면 그건 그저 겉으로 보이는 모습에 불과하다는 것을 금방 깨닫게 된다.

은근히 까다롭고 꼼꼼한 성격이라고 할까. 기준이 엄격하지는 않지만, 세세한 부분까지 제대로 돌아가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넘어가는 스타일이다.

사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기도 하다.

만약 황 실장의 능력이 어중간하고 일 처리가 어설펐다면, 천마안마가 이렇게까지 번창할 수도 없었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천마안마가 성공을 거둔 것은 누가 뭐라 해도 강태한 덕분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강태한 혼자만의 힘으로 모든 것을 이뤄 낸 것도 아니다.

안마와 관련된 일들은 강태한이 담당하고, 고객 관리나 사업적인 부분은 모두 황 실장이 도맡아서 한다. 달리 말하자면 강태한은 다른 것 걱정 없이 자신의 일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뜻이다.

만약 황 실장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해 주지 못했다면, 혹은 없었다면 지금처럼 강태한의 사업이 흥행할 수 있었을까. 최성현의 생각으로는 조금 애매했을지도 모르겠다는 것이 솔직한 결론이었다.

‘강태한’이라는 안마사 한 명은 어느 상황에서라도 성공을 거뒀을 것 같지만, 안마사 한 명이 성공하는 것과 사업이 성공을 거두는 것은 아무래도 좀 거리가 먼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야, 성현아.”

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와중.

한동안 말없이 노트북 화면을 쳐다보고 있던 황 실장이 최성현의 이름을 불렀다. 뭔가 거슬리는 게 있는 듯 살짝 날카로운 목소리였다.

“이거, 나 없는 동안 일 처리 누가 했어?”

“예? 그야… 제가 했는데요.”

그 질문에 최성현은 곧바로 답했다. 사실이기도 했거니와, 딱히 숨길 이유도 없었던 탓이다. 그러자 황 실장의 입에서 조그맣게 한숨이 나왔다.

“아흐… 일 처리를 이렇게 해 놓으면 어떻게 하냐.”

“왜요? 뭐 문제라도 있나?”

“당장은 별문제가 없겠지만서도…….”

황 실장은 노트북에 연결한 마우스의 휠을 스윽, 슥 내리며 말했다. 화면에는 그가 자리를 비운 동안 처리된 서류들의 내용이 주르륵 올라오고 있었다.

“그래도 이런 식으로 해 놓으면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어요. 저쪽에서 일 처리를 하는데 혼란이 생길 수도 있고.”

당장에 문제를 걸고 넘어질 정도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깔끔한 일 처리도 아니다. 비유를 들자면 급하게 납땜을 해서 붙여 놓기만 한 느낌이라고 할까.

“뭐, 그래도 제가 한 것치고 이 정도면 나쁘지 않은 거죠. 그렇지 않나?”

다만 최성현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서류 작업은 애초에 그의 역할이 아니었으니까!

병따개로 병을 따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숟가락으로 병을 딴다면 그건 그 자체로 제법 훌륭한 일이다. 그리고 객관적인 시점에서 봤을 때, 최성현 본인의 사무 능력은 대충 숟가락 정도라 할 수 있었다. 그것도 티스푼 정도 크기의 숟가락 말이다.

“흐음… 뭐 그것도 그렇기는 하네.”

“이것도 제가 부원장이라서 한 거지, 원래였다면 거들떠도 안 봤을 일이라고요.”

딱히 틀린 말은 아니었기에 황 실장은 수긍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 모습에 최성현은 싱긋 미소를 지으며 덧붙이듯이 말했다.

“그리고… 어쨌거나 당장에 사고만 안 날 정도로 해 두면, 나중에 실장님이 정리해 주지 않겠습니까.”

“에휴.”

황 실장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믿고 있기에 할 수 있는 말. 하지만 그러면서도 얼핏 뻔뻔한 뉘앙스로 들려오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황 실장은 최성현을 바라보더니 짧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아까는 일하지 말고 좀 쉬라고 하더니, 말이라도 말든가. 이러니 내가 쉴 수가 있나.”

“하하… 그 반대죠. 복귀하면 일이 좀 많으니, 지금 푹 쉬어 두시라, 뭐 이런 느낌이라고 할까.”

“말이나 못하면.”

황 실장은 툴툴거리는 목소리로 말하다, 저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한차례 침음을 흘렸다.

‘흐음… 앞으로는 안마사만 육성할 게 아니네.’

안마사는 당장 몇 달 내에 분점 몇 개를 더 늘리더라도 크게 상관없을 정도로 확보가 되었다. 앞으로도 인력이 부족할 일은 딱히 없을 것이다.

다만 이렇게 되고 나니 사무 쪽이나 접객 쪽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부실해졌다. 당장에도 황 실장이 자리를 비우니 일 처리가 엉성해지지 않았는가.

물론, 평소 모든 사무 작업을 황 실장이 혼자서 도맡아 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자잘한 작업들을 맡길 뿐이지, 중요한 일 처리는 강태한과 함께 황 실장이 거의 전부 처리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젠 가게 하나 운영하는 게 아니니까 말이지.’

지금 상황이 유지된다면야 이대로 가도 상관이 없겠지만, 그렇게 될 리가 없다. 잘은 몰라도 강태한이 그리고 있는 그림은 그보다 훨씬 큰 그림이다.

그렇다면, 그에 대비한 시스템도 미리 만들어 둬야 하지 않겠는가. 황 실장은 손으로는 노트북을 다루면서도, 머릿속으로는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간략하게 구상을 해 보기 시작했다.

* * *

황 실장이 사고 때문에 병실에 누워 있는 와중.

그 빈자리 때문에 운영 쪽에 다소 엉성한 느낌이 있기는 했다만, 천마안마의 사업 자체는 별다른 문제없이 순항을 해 나가고 있는 중이었다. 본점도, 인천의 레밍턴 호텔에 새롭게 열린 인천 지점도 말이다.

[본점이랑 비교해도 크게 밀리지 않네요.]

[실제로 본점에서 넘어오신 분들도 계시지만, 이번에 처음 보는 분들도 많았는데 어디서 구해 왔는지 다들 솜씨가 장난 아니네요.]

[일단 적어도 저는 대만족.]

[저도 만족.]

[더 최근에 생겨서 그런지, 아니면 레밍턴 호텔에 입점해 있어서 그런지 모르겠는데 시설이나 인테리어는 본점보다 더 깔끔하고 좋은 듯?]

[인천 사는 사람이면 어렵게 예약 전쟁 뚫을 거 없이 그냥 여기서 받아도 될 것 같네요.]

[일반 코스는 진짜 거의 비슷한 만족도인 것 같고, 장인 코스도 훌륭하고… 본점이랑 결정적인 차이는 천마 코스의 유무인데, 사실 천마 코스도 받고 싶다고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니까요.]

인터넷 커뮤니티와 SNS에 빠르게 올라오는 천마안마 레밍턴 호텔 지점의 리뷰들. 분위기를 대강 훑어보자면, 압도적으로 호평이 많은 상황이다.

분점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본점과 비교되는 걸 피할 수 없고, 기존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을수록 오히려 악평을 받기 쉽다는 걸 감안하면 상당히 이례적이고 이상적인 상황이라 할 수 있었다.

듣자 하니 덕분에 레밍턴 호텔의 방문객도 부쩍 늘었다나. 딱히 성수기도 아니고 연휴도 없는데, 일반 평일에까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상황이다.

사실 그 이전까지는 호텔이랑 그룹 쪽에서 ‘이렇게 대놓고 밀어줄 가치가 있겠느냐’라며 반대의 목소리들이 꽤 있었다는 모양인데, 분점이 오픈하고 며칠 간 매출 상황을 보더니 곧바로 합죽이가 되었다고 한다.

[솔직히 말하면, 생각보다 힘이 좀 들기는 하네…….]

다만 해당 분점의 점장, 김성훈의 목소리는 그렇게 마냥 밝아 보이지 않았다. 피곤에 찌든 그의 목소리에 강태한은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많이 피곤하신가 봐요.”

[손님들이 계속 와서 쉴 시간이 없더라고. 시간이 난다고 하더라도 점장이라 제대로 쉴 수가 없고.]

김성훈은 인천 지점을 책임지는 지점장이자, 해당 가게에서 가장 안마 솜씨가 뛰어난 안마사이기도 하다.

당연히 그에게 손님이 몰릴 수밖에. 지점장이 직접 안마를 하는 만큼 가격도 좀 비싼 편이건만, 그럼에도 예약표가 순식간에 꽉꽉 채워져 쉴 시간이 없는 상황이다.

더군다나 그냥 안마사가 아니라 지점장이기에 그 외에도 할 일들이 있고, 그렇다 보니 쉬는 시간이 되어도 마냥 쉴 수 있는 시간은 얼마 되지 않는다.

애초에 이제 막 개업을 한 참이라 여기저기 신경 쓸 곳이 많고, 가만히만 있어도 일거리가 굴러 들어오는 상황이다. 어찌 보면 피곤에 찌드는 것도 당연한 일이지 않겠는가.

[태한 씨가 좀 대단해 보이더라고.]

“저는 뭐, 황 실장님한테 전부 맡겼으니까요.”

강태한은 담담한 목소리로 그렇게 말했다.

딱히 겸손을 떤 것도 아니었고 없는 사실도 아니었다. 실제로, 강태한은 진행 방향을 정하거나 향후 기획 정도만 좀 도왔을 뿐, 운영과 관련된 대부분의 일은 황 실장이 도맡아서 했으니까 말이다.

[그것도 그런가… 재환이가 얼핏 보기에는 그냥 사람만 좋아 보이다가도, 알고 보면 되게 유능한 녀석이란 말이지.]

황재환이라 하면 황 실장의 본명이다. 김성훈은 본인의 면전 앞에선 절대 꺼내지 않을 칭찬을 입에 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그래도 뭐, 피곤하긴 해도 일하는 보람은 있네.]

“그래요?”

[사실 나도 예전에는 내 가게를 갖게 되는 것이 꿈이었었거든. 물론, 여기가 내 가게는 아니지만.]

김성훈은 멋쩍어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말에 강태한이 싱긋 웃으며 말했다.

“그 말씀은, 나중에 독립하시겠다는 건가요?”

[그건 아니지. 예전에 그랬었다고 했잖아.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가게를 운영하는 입장이 되어 보니, 나름 나쁘지 않은 기분이네.]

본래 김성훈은 본인이 안마사로서 더 이상 익힐 것이 없고, 나름 정점에 도달했다고 여기고 있었다. 그때는 어느 가게를 가더라도 항상 매출 1등의 자리를 놓친 적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그러다 보니 슬슬 자기 가게를 가져도 되겠다고 생각한 것도,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리라.

허나 그런 생각은 강태한을 만난 이후 자연스레 사라졌었다. 자신의 부족함도 그리고 아직도 배울 게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말이다.

허나 그렇다고 그 꿈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저 머나먼 날, 강태한과 비교해도 당당할 수 있을 정도의 수준이 되었을 때의 일로 미뤄 뒀을 뿐.

다만 그래서 그런 것일까, 본인의 가게가 아니라 지점장이라는 형태로 이뤄진 것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김성훈은 요 근래 전에 느끼지 못했던 묘한 만족감을 느끼고 있었다.

“좋은 일이네요.”

[그렇지.]

김성훈은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가, 이내 덧붙이듯이 말했다.

[일만 조금 줄어든다면 더 좋겠지만 말이야.]

“하하, 지금이야 뭐 개업한 직후니까 그런 거고, 아마 시간이 좀 지나면 금방 안정될 겁니다.”

약간 진심이 섞여 있는 김성훈의 너스레.

그 말에 강태한은 웃음을 터트리며 답했다. 딱히 빈말은 아니었다. 실제로 인천 지점의 상황은 굉장히 순조로웠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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