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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81화 (281/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81화

“하하하, 그렇게 해도 괜찮겠습니까?”

마르케시는 입꼬리가 실쭉 올라간 채로 입을 열었다. 확인하듯이 물어보는 그의 목소리는, 거의 환호처럼 들릴 정도로 들뜬 목소리였다.

“당연히 괜찮으니까 이야기를 꺼냈죠. 그렇게 하는 쪽이 저한테도 더 도움이 되고 말이죠.”

그런 마르케시에게 강태한은 당연하다는 듯한 목소리로 답했다.

천마안마의 분점을 낸다면, 굳이 그 범위를 국내로 한정지어 놓을 필요는 없다. 사실 아카데미를 만들고자 계획을 세웠을 때부터 생각해 두고 있던 그림이었다.

다만, 그렇게 해외까지 분점을 내기 위해서는 그곳에서 일할 안마사들이 필요하다. 그것도 강태한이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천마안마의 간판을 내걸 수 있을 정도로 괜찮은 실력의 안마사들이 말이다.

본점의 안마사들을 비롯하여 아카데미에서도 실력 있는 안마사들이 양성되고 있기는 하다만, 그들이 해외의 분점으로, 그것도 몇 년 이상 파견을 나간다?

사실상 현실적으로 어려운 이야기다. 언어나 소통의 문제는 둘째치더라도,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당사자들부터가 반대할 테니까 말이다.

‘하지만 꼭 이쪽에서 사람을 보낼 필요는 없지.’

허나 현지에서 사람을 뽑아 아카데미로 찾아오게 하고, 그들을 가르쳐 현지 가게를 운영하게 한다면.

그렇게 한다면 훨씬 더 자연스러운 그림이 나오게 될 것이다. 물론 다른 세세한 문제점들이 생길 순 있겠으나, 적어도 저 계획에서 가장 큰 문제점들은 거의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다.

“다만, 그렇게 계획을 진행시키려면 필연적으로 미스터 마르케시의 도움이 필요합니다만…….”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이 계획을 진행시키려면, 현지에서의 조력자가 필요하다. 적극적으로 현지에 천마안마의 분점을 내고자 하는 의지가 있는 조력자의 도움이 말이다.

현지에서 사업을 기획하는 것에서부터, 안마사를 희망하는 사람들을 뽑아 한국으로 보내는 것까지, 이쪽에서 단독으로 진행시키기에는 여러모로 애로 사항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다.

“좀 도와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그렇기에, 강태한은 구체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 마르케시의 동의를 구했다. 어찌 보면 이 계획은 강태한의 역할보다 현지 조력자의 역할이 더 중요할 테니까 말이다.

“물론입니다, 강 원장님!”

그리고 그런 강태한의 질문에, 마르케시는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즉각 답했다. 들뜨다 못해 흥분한 기색마저 느껴지는 그런 목소리였다.

“도움이 필요하신 부분이 있다면 뭐든지 말씀해 주시죠. 아까 사람을 보내 달라고 하셨죠? 이백 명? 삼백 명? 얼마든지 말씀해 주시죠.”

“하하… 삼백 명이면, 지금 저희 천마안마 본점의 안마사들보다도 몇 배는 많은 숫자 같은데요. 아카데미의 수용 능력도 안 될 것 같고요.”

“흐음, 그럼 아카데미부터 더 증축해 놓는 방향으로 갈까요? 제가 전액 지원을 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강태한의 제안에 적극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는 마르케시.

허나 그가 누구인가. 인도에서 강태한의 지인이 영화 촬영을 한다고 하니 대형 크루즈선을 통째로 보낸 인간이지 않은가. 이번에도 스케일이 다른 제안으로 강태한이 헛웃음을 터트리게 만들었다.

* * *

“오늘은 갑자기 불러서 죄송했습니다, 원장님.”

“아닙니다. 아까도 말했지만, 저도 미스터 마르케시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었거든요. 오히려 연락을 주셔서 감사했습니다.”

그로부터 삼십 분 정도의 시간이 더 흐르고.

강태한의 제안에 들떠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하던 마르케시는, 다음에 예정되어 있는 일정 때문에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게 회의실에는 강태한과 장태현 회장, 두 사람만이 남아 있는 상황. 마르케시가 일어나면서 자연스레 자리를 파(破)하는 분위기가 되었으나.

“혹시 차 한 잔 더하시겠습니까? 이번에 제법 괜찮은 찻잎을 선물 받았거든요.”

장태현 회장은 입가에 가벼운 미소를 짓더니, 새로 차 한 잔을 할 것을 권해 왔다.

“그렇게 권해 오시면, 맛을 보지 않을 수가 없죠.”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막론하고, 상대방에게 차 한 잔을 같이하자는 것은 ‘이야기할 게 있다’라는 말의 간곡하면서도 가장 대표적인 표현이다.

설령 딱히 그런 의미 없이 순수하게 차 한잔하자고 꺼낸 말이라 하더라도, 굳이 그 호의를 거절할 필요는 없으리라.

“하하, 감사합니다.”

강태한이 미소로 답하자, 장태현은 입구 쪽에 서 있는 비서에게 눈짓을 보냈다. 잠시 후, 테이블 위에는 겉보기에도 세련된 느낌이 물씬 느껴지는 동양식 다구(茶具)들이 올라왔다.

“서호용정(西湖龍井)이로군요.”

“어, 냄새만으로도 알아차리시는 겁니까?”

“뭐… 예전에 즐겨 마시던 차라서요.”

서호군산(西湖群山)의 주변 일대에서 재배되는 찻잎.

당시에는 서호용정 같은 거창한 이름은 없었으나, 그 일대에서 나오는 찻잎은 품질이 좋고 은은하게 단맛이 배어 나온다며 중원에서도 유명했었다.

강태한 또한 나중에 다도 정도는 즐길 여유가 생겼을 때 꽤나 자주 마셨었던 찻잎. 그리고 지금도 종종 생각이 나면 찾게 되는 찻잎이다.

시대를 다르지만, 그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은 맛을 품고 있다고 할까… 강태한에게 있어서는 그리우면서도 애틋해지는, 그런 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향이다.

“역시 원장님은 다도에 조예가 깊으시군요.”

“그렇게까지 말할 정도는 아닙니다만.”

장태현은 싱긋 웃으며 우려낸 차를 한 잔 따라 내고, 강태한의 앞으로 스윽 밀어냈다. 그러고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사실, 아까 전에 조금 놀랐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말입니까.”

“원장님께서 그렇게 큰 그림을 그리고 계셨다는 것에서 말입니다. 분점을 내시려고 준비하고 계신 건 알았는데, 단번에 범위를 해외까지… 보아하니 하루 이틀 생각하신 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즉석에서 번뜩이며 튀어나오는 계획도 있기 마련이지만, 그런 종류의 것들은 대부분 입 밖으로 구체화시키는 과정에서 티가 나기 마련이다.

허나 강태한의 말에서는 그런 느낌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거기서 장태현 회장은 눈치를 챘다. 이건 이 사람이 예전부터 생각해 둔 그림이구나, 하고.

“뭐어… 감탄하실 만큼의 일은 아닙니다. 애초에 막연하게 생각만 해 두고 있었던 거고요.”

보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연이 닿아 있는 사람들을 활용하여 좀 더 수월하게 계획을 전개해 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떠올렸었다.

어쨌거나 한 사람이 여러 방향으로 발을 뻗는 것보단, 각지에서 여러 사람이 한곳으로 발을 뻗어 주는 쪽이 더 일처리가 편할 테니 말이다.

물론 그렇다고 강태한이 발이 엄청 넓은 것도 아니고 결국에는 명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지만, 그건 그리 중요한 부분이 아니다.

천마안마의 이름이 더욱 널리 알려지고, 이런 식으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지면, 딱히 기존에 알고 지내던 사람이 아니더라도 먼저 분점 제안을 내밀어 올 테니까 말이다.

“사업을 크게 키우고 싶으면, 먼저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쪽에서 찾아오고 싶게 만들어라… 향간에 이런 말이 있죠.”

사업가에게 있어서는 그야말로 이상적이라고 할 수 있는 그림. 허나 대부분의 경우에는 허울 좋은 헛소리로 치부되는 말이기도 하다.

딱히 사업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도 알 수 있는 당연한 내용인데, 자기가 그렇게 되고 싶다고 해서 될 수 있는 것이 아닌 내용이기 때문이다.

약간 뭐라고 할까, 좋은 대학에 가고 싶으면, 수능에서 좋은 등급을 받아라…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허나 그 말인즉슨, 어찌 됐거나 그게 가능하기만 하면 굉장히 이상적인 상황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강 원장님이 딱 그런 입장이시군요.”

그의 여동생이자 라이너 호텔 그룹의 오너, 장재연과 천마안마의 협력 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다.

이것도 기획부터 실행까지 판은 다 상대 그룹 쪽에서 깔아 주고, 천마안마 쪽에서는 사람만 보내면 되는 굉장히 이상적인 구도다.

이를 활용하면 국내에서의 확장은 물론이고, 해당 그룹의 호텔들이 들어서 있는 동남아 지역에서도 쉽게 자리를 잡을 수 있으리라.

헌데 그런 상황에서 인도에서 손에 꼽히는 그룹의 수장, 마르케시의 협력까지 더해지게 된다면.

어쩌면 천마안마는 비상식적인 수준으로 빠르게 전 세계로 확장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호랑이에 날개가 돋친 격으로 말이다.

“나중 가면 전 세계에 천마안마의 지부가 들어서고, 막 그러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하하… 실제로 대기업을 운영하고 계신 분에게 그런 말을 들으니, 여러모로 머쓱한 기분이네요.”

“별말씀을. 저야 앞에서 아버지가 일궈 놓은 것만 겨우겨우 이어 가고 있을 뿐인데요.”

양쪽 사이에 한 차례씩 오고 가는 덕담. 말을 마친 두 사람은 서로 미소를 주고받더니, 거의 동시에 찻잔을 들어 올렸다. 장태현은 조심스레 녹차 한 모금을 마시고는,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그런 의미에서, 천마안마의 이름값이 더 비싸지기 전에 말씀드리고 싶은 제안이 있습니다만…….”

아니나 다를까, 역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모양이다. 대충 낌새를 본 강태한은 한입 마신 찻잔을 테이블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어떤 제안이실까요.”

“다른 건 아니고… 사실 오늘 원장님이 미스터 마르케시에게 꺼냈던 제안과도 어느 정도 유사한 부분이 있는 내용입니다만.”

장태현은 잠시 강태한의 눈을 마주 보다, 깍지 낀 손을 무릎 위에 올려놓으며 말했다.

“저희 그룹 계열사에서 운영하고 있는 실버타운이 있습니다. 외부 인원보다는 되도록 복지 차원에서 직원들의 가족 분들을 모시고 있는, 그런 곳이죠.”

“으음…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잘 만들어진 회사 복지의 사례 중의 하나로 인터넷 뉴스에서 몇 차례 언급된 걸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있으시다니 다행이네요. 어쨌거나, 해당 시설을 운영하면서 생긴 경험을 바탕으로 실버 사업을 몇 가지 진행시켜 볼까 하고 있습니다.”

실버 사업. 노인분들의 성성한 백발을 은빛으로 비유하여 지은 이름으로, 나이가 많은 노인분을 대상으로 진행되는 사업들을 말한다.

노인의 인구 비중이 점차 늘어감에 따라 향후 자연스레 규모가 커질 것이라고 평가받는 사업이다.

“제가 말씀드리긴 좀 그렇지만, 업계에선 제법 나쁘지 않은 평을 받고 있거든요. 이용하시는 분들도 제법 만족하고 계시고. 물론 직원들의 가족분이 대부분이지만… 그걸 감안하더라도 말이죠.”

다만 거기서 이야기가 끝날 거라면 강태한을 붙잡지도 않았을 것이다. 장태현은 강태한의 눈치를 한번 살펴보고는, 넌지시 입을 열었다.

“하지만 그래도 좀 더 특별한 뭔가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면, 시설에서 일하는 전담 안마사가 그 유명한 천마안마에서 직접 기술을 배워 온 사람이라든가,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흐음… 그렇군요.”

강태한은 침음을 흘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대강 이야기의 내용은 파악했다. 한차례 뜸을 들인 강태한은 평소의 담담한 목소리로 물었다.

“말씀인즉슨, 시설의 직원들을 저희 아카데미에서 수업을 받게 하고 싶다, 그런 말씀이실까요?”

“바로 그렇습니다.”

즉각 돌아오는 대답. 그 대답에 강태한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불현듯 떠오른 생각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도 나쁠 건 없는데 말이지…….’

왠지 모양새를 보아하니, 앞으로도 아카데미에 사람을 보내고 싶어 하는 곳들이 점점 늘어날 것은 느낌이 들었다. 불현듯 그런 직감이 들었다.

천마안마의 분점과 관련해서도 그렇고, 지금과 같은 제안, 혹은 에버튼 FC나 마이애미 헤비나이츠 같은 스포츠 팀에서의 제안… 물론 찾아오는 사람이 많다고 해서 크게 나쁠 것은 없을 것이다. 다만.

‘아까 마르케시가 아카데미를 증축시켜 주겠다고 했을 때, 냉큼 받을 걸 그랬나…….’

나중에 그렇게 됐을 때의 일까지 생각해 본다면, 지금의 아카데미 규모는 조금 작은 감이 있다.

농담처럼 가볍게 오고 간 이야기긴 했으나, 방금 전 마르케시가 꺼냈었던 말을 떠올리며 강태한은 내심 아쉬운 기색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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