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78화
[잠깐만요. 지금 두 분 이야기하는 뉘앙스가, 마치 알베르토 감독이 안마를 받고 다시 머리가 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들리는데요.]
다른 두 사람의 대화에, 세 명의 중계진 중 나머지 한 명이 의아함이 담긴 목소리로 물었다. 다시 생각해 봐도 이해가 안 간다는 듯한 반응. 허나 다른 두 사람은 담담한 말투로 즉각 대답했다.
[맞는데요. 그렇죠?]
[예. 저는 본인에게 직접 들었습니다.]
[어… 그게, 가능한 일인가요?]
남자는 순간 멈칫하더니 어색한 목소리를 냈다. 중계에는 담기지 않았으나, 그는 상당히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자신이 당연하다고 여기고 있던 상식이 부정된 영향이었다.
[안마로 탈모를 치료할 수 있다고요?]
[뭐 저야 잘은 모르겠지만, 가능하니까 지금 알베르토 감독이 저러고 계신 게 아닐까요?]
[감독님이 거짓말을 하신 게 아니라면 말이죠. 아니면… 요번에 갑자기 저렇게 짧은 스포츠머리 가발을 하고 싶어지셨거나?]
[하하하, 그럴 수도 있겠네요!]
가볍게 농을 던지며 웃음을 터트리는 두 사람.
허나 나머지 한 명은 그 분위기에 맞추지 못하고 그저 화면에 나와 있는 알베르토 감독을 빤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탈모를… 안마로 치료할 수 있다고?’
미국의 남성들, 특히 그중에서도 백인 남성들의 탈모 비율은, 5할 이상의 과반수를 넘어간다. 탈모가 아닌 사람보다 탈모인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거짓 하나 없는 실제 통계에 담겨 있는 내용.
허나 정작 도심 속 길거리를 걸어 다녀 보면, 딱히 대머리라든가 심한 탈모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이 많이 보이지는 않는다.
그 말인즉슨… 그만큼 평소 가발로 감추고 다니는 사람이 많다는 뜻. 그리고 지금 중계 박스에 앉아 알베르토 감독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 해설자 또한, 그런 사람 중의 한 명이었다.
[그 안마, 어디서 받으셨다고 합니까?]
[예? 아, 뭐… 그, 캘리버 선수의 재활 과정이 담긴 왓튜브 영상에 나온다고 들었는데요. 꽤 유명했던 영상 있잖아요.]
캐스터는 해설자의 질문에 답하면서도 동시에 손으로 목을 긋는 제스처를 취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어쨌거나 그들은 현재 방송 중이었고 너무 사적인 대화는 되도록 삼가는 편이 좋다.
오디오가 비어 있는 타이밍에 어느 정도 잡담이 오고 가는 것 정도는 상관이 없다만, 그 잡담도 되도록이면 경기나 선수들과 관련된 주제인 편이 좋다.
그런 의미에서 어디 미용실이 좋냐, 어디 가게가 좋냐, 이런 건… 아무래도 아웃이다. 뭔가 사정이 있어 아무 말이라도 해서 사운드를 채워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면 말이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다만 그러거나 말거나, 그 대답을 들은 해설자는 비장함마저 느껴지는 진지한 표정으로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고는, 자그마한 혼잣말을 되뇌였다. 방금 전 대화를 반드시 기억해 두겠다는 듯한 반응이었다.
그리고 그런 반응을 보이는 것은 비단 이 해설자 한 명뿐만이 아니었다.
“…뭐? 알베르토가 탈모를 고친 게 안마를 받고 그렇게 된 거라고?”
“에이. 진짜 헛소리다.”
“근데 설마… 에이, 진짜로?”
당연한 말이지만 세 사람의 대화는 전파를 타고 마이애미 전역으로, 아니 북미 전체로 송출되고 있는 중이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평소와 같은 해설진들의 시답잖은 잡담 정도로 여겨졌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삶의 큰 고민거리 중 하나를 해결할 수 있는 기적 같은 실마리처럼 들리는 대화이기도 했다.
“…일단 한번 찾아나 볼까.”
“어디 보자, 왓튜브에 영상이…….”
그렇게 솔깃한 사람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에 하나둘씩 왓튜브에 접속하기 시작했고.
한국에서 한 달가량을 머무르며 촬영된 캘리버의 재활 영상은, 그야말로 폭발적인 속도로 조회 수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안 그래도 높았던 조회 수가 1.5배가량 증가할 정도로 말이다.
* * *
[한아, 그것이 왜 궁금하더냐.]
몽롱한 의식. 그 속에서, 강태한은 저 호칭이 자신을 부르는 호칭이라는 걸 깨달았다. 너무나도 오랜만에 들어 보는 호칭이었다.
[뭐 솔직히 저야 이곳 사정은 잘 모르지만… 적어도 스승님이 이런 곳에 계실 만한 인재는 아닌 것 같아서 말이죠.]
답하는 목소리는 분명 자신의 것이었으나, 굉장히 낯설었다. 앳되면서도 가벼운, 지금의 자신과는 턱없이 먼 거리감이 느껴지는 목소리였던 탓이다.
허나 그 철이 없어 보이는 질문을 스승은 딱히 꾸짖지 않았다. 그는 정자의 난간에 걸터앉은 채 꽃이 달린 나뭇가지를 매만지며 입을 열었다.
[그동안 걸어왔던 길이 막혀 있는 것을 알았으니, 다른 길을 찾아보고 있는 것이다.]
그는 매만지던 나뭇가지에서 손을 떼어 냈다. 그러곤 강태한을 한차례 쳐다보더니, 피식 웃음을 흘렸다. 잘은 기억이 안 나지만, 아마 그때의 자신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었을 것이다.
[어려울 것 없이 간단한 이치다. 그동안 익혀 왔던 것… 때리고 부수는 것만으로는 앞에 있는 벽을 넘어설 수 없을 것 같으니, 혹시 다른 우회로는 없는지 찾아보려는 것이지.]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다시 슬쩍 옆으로 고개를 돌렸다. 반만 보이는 그의 얼굴에는 다소 복잡해 보이는 표정이 담겨 있었다.
[어쩌면… 우회로가 아니라 원래부터 이쪽이 제대로 된 길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고 말이다. 나의 스승님의 뜻이 본래 그러했던 것처럼 말이지.]
[이걸 조금만 더 일찍 알았더라면…….]
덧붙이듯이 말한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그새 기억을 더듬어 본 강태한은, 이 대화가 언제 있었던 일이었는지를 떠올려 냈다. 그가 알기로, 대화는 여기서 끝이 났었다.
저런 씁쓸한 표정을 하고 있는 사람에게 뭐라 말을 꺼내는 것은 꽤나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당시의 자신은 이제 막 무공을 익히기 시작한, 문외한이나 다름없는 입장이었으니 더더욱 그러했으리라.
[그래도 너는 제대로 길을 찾은 모양이구나.]
순간,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던 스승이 강태한을 올려다보았다. 꿈속에 있는 예전의 자신이 아니라, 기억 속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강태한을 말이다.
스승님이 이 당시에 저런 말을 하셨던가……?
그렇지는 않았던 것 같다. 무엇보다, 스승의 시선은 정확히 자신을 향하고 있었다. 서로 눈을 마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흐으음.”
그리고 잠시 후.
강태한은 침음을 흘리며 감고 있던 눈을 천천히 떴다. 꿈이라는 걸 알면서도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던 탓일까, 방금 전 내용이 실제로 겪은 일인 것처럼 생생하게 느껴지고 있었다.
“스승님을 뵙는 건 오랜만이군…….”
무림에 처음 떨어졌을 때,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다 굶어죽을 뻔한 걸 거둬 주었었던 은인.
단순히 강태한의 목숨만 구해 준 것이 아니라, 제자로 거둬 주고 기본적인 상식들과 무공의 기초를 가르쳐 줌으로써, 그 뒤로 무림이라는 세계에서 살아갈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 준 사람이다.
처음으로 만난 기연이자 의미 그대로의 스승이라고 할까. 물론 함께할 수 있었던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으나, 강태한에게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해도 무방한 사람이었다.
“제대로 된 길이라…….”
꿈의 내용을 되짚어 본 강태한은, 내려놨던 오른손을 천천히 들어 올렸다. 그와 거의 동시에 그의 손바닥에 큼지막하고 뚜렷한 푸른빛 구슬이 생겨났다.
기감이 뚫려 있지 않은 이에게도 선명하게 보일 정도로 압축되어 있는 강환(罡丸).
겉보기에는 그저 영롱한 빛이 맴도는 아름다운 물건이지만, 그 내부에는 그저 풀어헤치는 것만으로도 주변 일대를 초토화시킬 수 있는 파괴력이 담겨 있는 물건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걸 터트릴 생각은 없다. 강태한은 구체를 살짝 띄우고는 가볍게 손을 저어 그것을 흩어 버렸다.
이제 이 정도는 손쉽게 해낼 수 있다.
무림에서 처음 막 돌아와 운기조식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던 시절을 생각하면, 그야말로 일취월장을 해낸 수준의 성과라고 볼 수 있으리라.
‘하지만 딱 거기까지일 뿐이지.’
무림에서 갑자(甲子) 단위로 쌓아 뒀던 내공은 사라졌고, 그 상황에서 기(氣)라는 개념 자체가 희소한 현대에서 이 정도까지 힘을 회복해 낸 것은 확실히 대단한 일이다.
허나 그건 말 그대로 ‘복구’일 뿐이다.
애초에 경지를 넘어서는 데 필요한 깨달음은 이미 얻어 둔 상태였고, 그렇기에 강태한의 입장에서는 그 과정조차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말하자면 한번 걸어갔던 길을 다시 한번 걸어갈 뿐인… 아니, 중간중간에 세워져 있던 벽들도 이미 다 허물어 놓은 상태였으니, 그보다 더욱 쉬운 일이다.
결국, 무림에 있던 자신이 원래 부딪치고 있던 벽은 아직 넘어서지 못한 상태다. 깨달음을 얻기는커녕 조금의 진전도 없는 상태다.
거기에 조바심 같은 걸 느끼지는 않는다.
아직 원래의 힘도 완전히 복구해 내지 못한 상황에서, 그 앞의 깨달음을 얻고 싶어 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테니까 말이다.
다만… 지금 자기가 제대로 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인지. 그것에 대한 의심은 항상 있을 수밖에 없다.
무림인으로서 새로운 벽을 넘어서고 깨달음을 얻길 바란다면, 좀 더 수행에 몰두를 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생각을 완전히 떨쳐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물론 집중 좀 한다고 해서 갈피를 잡을 만한 이야기도 아니지만 말이야.’
천마라는 호칭은 저잣거리에서 주운 것이 아니다.
강태한은 당시의 무림에서 그 호칭에 어울리는 무(武)를 지니고 있었고, 일반적으로 무림인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까지 도달해 있었다.
그보다 높은 경지는, ‘존재하지 않을까’ 하는 추정으로만 있을 뿐이다. 이야기의 헛소리에만 존재하는 비현실적인 허상(虛狀)의 개념인 것이다.
허나, 강태한은 어느 날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다음의 영역은 분명하게 존재한다는 것을.
때문에 반쯤 은둔 생활을 하며 수련에만 집중을 하는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는데… 그때도 몇 년 동안 아무런 진전을 얻지 못했었으니, 이곳 현대에서 수련 좀 한다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강태한 본인도 명확한 답을 내리진 못한 상태.
허나 그렇다고 멈춰 서 있을 수는 없으니, 일단은 잡념들은 무시한 채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선택하여 걸어가고 있는 중이다.
“뭐… 적어도 안 좋은 꿈 같지는 않네.”
그런 상황에서 스승님의 그 말은.
설령 그저 꿈에서 나온 말이라고 할지라도, 강태한에게는 꽤나 큰 격려가 되었다. 그는 피식 웃음을 흘리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 * *
그때쯤.
한 왓튜브 영상이 한참 화제가 되고 있었다.
해당 영상의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한국에서 실제로 영업을 하고 있는 한 안마원과 관련된 이야기.
영상의 콘셉트 자체는 그냥 왓튜브에서 보기 흔한 가게 리뷰 영상, 혹은 돈을 받고 업로드 되는 홍보용 영상들과 크게 다를 것이 없었지만…….
[천마안마는… 뭐 가게는 잘 모르겠고, 여기 원장님은 저에게 은인 같은 분이십니다. 여러모로.]
[여기 천마안마의 원장님을 한마디로 설명하자면… 음. 미스테리어스 오리엔탈 마스터. 이 말이 가장 잘 어울리겠네요. 정말 최고입니다.]
[그냥 풀어서 말씀드리는 게 더 나을 거 같은데. 일단 바로 은퇴해도 이상할 게 없었던 제 커리어를 되살려 주신 분이고, 무엇보다 저희 팀의 챔스 진출에 가장 큰 도움을 주신 분이시죠.]
그 영상에 나오는 사람들의 구성이 하나같이 화제가 될 만한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사연들 또한 하나같이 화제가 될 만한 내용들이었다.
헐리웃 스타 베네릭 브라운이라든가, 에버튼 FC의 주장인 이보르 깁슨, 강주완이라든가…….
물론 대부분은 조찬혁, 이한건과 같은 국내 유명인들이었으나, 개중에는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글로벌 유명 인사들도 적지 않게 섞여 있어, 그야말로 폭발적인 조회 수를 끌어모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