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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77화 (277/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77화

“어, 그럼 그 말은…….”

강태한이 물어보고 난 이후.

송준우가 그 말에 반응을 보이기까지 약간의 정적이 있었다. 자기가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던, 어떻게 보면 뜬금없게까지 느껴지는 내용이었던 탓이다.

“제가 여기 아카데미의 수강생이 되라는 건가요?”

“그렇지.”

“여기 있는 다른 형들이나 아저씨들처럼 말이죠?”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순간, 송준우의 얼굴에 살짝 들뜬 표정이 나왔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지만, 송준우는 학교 외에 학원 같은 곳을 다녀 본 적이 없다. 지금보다 더 어릴 때도, 그 흔하다는 태권도나 피아노 학원 같은 곳도 다녀 본 적이 없었다.

물론 주변에 학원을 다니는 친구들도 학원에 가는 것을 그렇게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경험을 해 보지 못한 부분이기 때문일까. ‘학원에 가기 싫다’라고 투정을 부리는 모습들마저도 사치스럽게 보일 정도로 막연한 부러움이 있었다. 막연한 동경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근데…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희 집이 금전적인 여유가 그렇게 많지는 않아서요. 아무래도…….”

하지만 그가 고민하고 있는 대부분의 문제는 같은 결론으로 귀결된다. 송준우는 그새 살짝 풀이 죽은 표정을 지었다.

“음? 그건 아무 상관이 없는데.”

강태한은 의아한 표정으로 손을 저으며 말했다.

“돈은 안 내도 돼. 애초에 그렇게 할 생각이었으면 이렇게 권하지도 않았지. 정 뭐하면, 내가 대신 내줘도 되고.”

“…대신 내주신다고요?”

“그래. 그리고 수강생들이 다 성인들이기는 한데 딱히 나이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크게 문제가 될 만한 구석도 없어 보이고… 그렇지?”

그렇게 말하며 강태한은 슬쩍 최성현을 쳐다보았다. 아카데미의 원장인 최성현에게도 일단 동의를 구해 두려는 시선이었다.

‘뭐… 다 생각이 있겠지.’

최성현은 의뭉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으나, 알겠다는 의미로 고개를 두어 차례 끄덕였다. 갑작스러운 이야기라 조금 당황스럽긴 했으나, 강태한의 행동에는 항상 그럴 만한 이유와 결과가 따라왔었다.

“어때?”

“저… 으음.”

최성현의 동의를 구하고 재차 물어보는 강태한.

다만 송준우는 잠시 고민에 빠진 반응을 보였다.

일단, 안마를 해 주겠다고 했었다.

남들에게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어깨 결림과 불면증을 꿰뚫어 보더니, 그걸 낫게 해 주는 건 물론 심지어 키까지도 자라게 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런데 돈도 받지 않는다고, 그 대신 이곳에 다니면 안마 기술을 가르쳐 주겠다고 한다. 더군다나 이것도 무료다. 아니, 오히려 돈을 준다고 한다.

“근데, 왜 이렇게 잘해 주시는 거예요?”

처음부터 끝까지 너무 조건이 좋은 이야기다.

허나 그는 알고 있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것을. 청소년이 말하기엔 너무 현실적인 격언일 수도 있겠으나, 송준우는 이 말을 깊이 이해하고 있었다.

“이유라… 하긴, 이 말을 먼저 했어야 했네.”

그 반응에 강태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딱히 호의를 의심받은 것에 불쾌한 것처럼 보이진 않았고, 오히려 납득이 간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러고는 담담한 목소리로 넌지시 말했다.

“네 재능을 보고 투자를 하고 싶다.”

언뜻 가벼우면서도 진지한 말투였다.

“투자… 요?”

“그래. 묻어 두기엔 아까운 재능도 살리고, 더 나아가 내 사람으로 만들어 두고 싶다. 그것뿐이야.”

강태한은 그렇게 말하고는 테이블 위의 찻잔을 집어 들었다. 그러고는 차 한 모금을 천천히, 아주 천천히 마시기 시작했다. 잠시 상대에게 시간을 내어 주듯이 말이다.

“갑자기 부담스러우면, 없는 이야기로 해도 되고.”

“아뇨, 할래요!”

그리고 잠시 후, 찻잔을 내려놓고 슬쩍 발을 한번 빼는 시늉을 하는 순간, 송준우는 냉큼 고개를 끄덕이며 힘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잘은 모르겠지만…….’

이건 기회다. 그리고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자신은 나중에 정말 큰 후회를 할 것이다. 잘은 모르겠으나 송준우는 직감적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좋아.”

그리고 그 대답에, 강태한은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곧장 송준우의 등 뒤로 돌아가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에… 왜요?”

“왜긴 왜야. 안마부터 해 주려는 거지.”

“여기서 바로요?”

송준우는 의문이 담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허나 강태한은 고개를 끄덕이는 걸로 대답을 대신하고는, 곧바로 엄지손가락을 양쪽 어깨 아래쪽에 찔러 넣었다.

바로 그 부분에 위치해 있는 풍문(風門)혈.

바람이 드나든다는 그 이름처럼, 외부의 기운을 혈도로 받아들이는 데 가장 최적화되어 있는 혈.

“으윽?”

그곳이 찔리는 순간, 송준우는 자기 몸의 곳곳이 뒤틀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안쪽 깊은 곳에서부터 느껴지는 낯선 고통, 탈력감 그리고…….

상쾌함.

이 느낌을 뭐라고 할까.

굳이 비유를 들자면, 마치 잔뜩 엉켜 있던 고무호스가 물이 틀어지는 순간 후루룩 펴지는 듯한 그런 느낌이었다.

‘이 부근은 따로 손을 좀 봐줘야겠…….’

엉킨 곳은 풀어지고, 꼬여 있는 곳은 직접 펴 주고.

그 뒤로 몇 분 정도 지났을까.

잔뜩 꼬여 있던 혈도는 서서히 제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하고, ‘아홉 마리의 용이 엉켜 있는 듯하다’라는 신묘한 구룡신맥의 모습이, 천천히 그 안에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흔히 실리콘밸리라고 불리는 산호세의 한 대형 전자 제품 쇼핑몰.

“으흐으으… 그그극.”

“흐어어어…….”

쇼핑몰의 한구석에 마련된 이벤트 코너에서는, 느닷없이 다 큰 아저씨들의 신음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는 중이었다.

“이거어어… 정말 최고구마아안…….”

그곳은 다름 아닌 안마 의자 체험 기획 코너.

이번에 계약을 맺고 새로 물건을 들여오기 시작한 한국 회사, 바디케어의 제품들을 선보이고 직접 체험도 해 볼 수 있도록 마련한 판촉용 기획 코너였다.

이곳에서 야심차게 진열해 놓은 제품들은, 다름이 아니라 ‘더 마이스터’와 그 후속 제품인 ‘더 마스터.’

안마 의자 자체가 북미에선 좀 생소한 전자 제품들이지만, 전자의 경우엔 이미 스포츠 업계에서 알게 모르게 소문이 쫘악 퍼져 있다는 모양이고, 후자의 경우엔 에이플러스 쪽과 제휴를 맺고 개발했다 하여 실리콘밸리에서 화제가 되어 있는 상태다.

실제로 에이플러스 회사 내부에서도 직원들의 성화로 휴게실에 몇 개씩이나 배치해 놨고, 실리콘밸리의 다른 회사 직원들에게도 소문이 퍼져 해외 배송으로 힘들게 물건을 구하고 있다는 풍문.

그런 정보들을 이미 입수해 둔 터였기에, 이번 기획은 쇼핑몰 쪽에서도 나름 공간도 넓고 규모 있게 마련한, 꽤 야심차게 준비한 기획이었는데…….

“이봐요, 이거 몇 분이나 기다려야 하나?”

“죄송합니다. 지금 보시다시피 대기 줄이 좀 많이 길어서, 체험을 해 보시려면 적어도 오십 분 정도는 기다리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무래도 사전 시장조사가 많이 미흡했던 모양이다.

그렇게 넉넉하게 준비를 해 놨음에도, 사람들이 잔뜩 몰려와서 줄을 서고 있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이게 요즘 에이플러스에서 그렇게 핫한 물건이라면서? 해외 배송으로만 구할 수 있다는.”

“하하, 해외 배송으로라도 구하면 다행이지. 듣자 하니 현지에서도 매물이 부족한 상황이라, 해외 배송까지 매물이 잘 안 나온다고 하더라.”

“그 뭐야, 우리 경영부서에 케빈 있잖아. 그 양반은 아예 휴가 때 한국까지 가서 직접 구해 왔다더만.”

“에… 그렇게까지 할 만한 건가?”

“적어도 본인은 엄청 만족하던데. 일단… 내가 봐도 표정이 엄청 밝아지기는 했더라고. 맨날 아침마다 얼굴이 퉁퉁 부어 있었는데, 그것도 없어지고 말이야.”

길게 서 있는 줄에서 종종 들려오는 대화들.

실리콘밸리에서 에이플러스의 존재감은 꽤나 큰 편이고, 그곳의 직원들 사이에서 유행한다는 말은, 곧 실리콘밸리에서 유행을 할 것이라는 말과 크게 다를 게 없었다.

다만 주변에서 파는 곳도 없고, 따로 구하려면 꽤나 귀찮은 과정을 거쳐야 하기에 약간의 소문 정도만 퍼지고 있었는데…….

그런 상황에서 이 쇼핑몰에 그 소문의 안마 의자가 대량으로 들어오고, 그걸로 모자라 직접 체험도 해 볼 수 있다는 말이 들리니, 사람들이 몰려들 수밖에 없었던 것.

“에이플러스 직원들 반응이 그렇게 좋았다던데.”

“한번 체험해 보고 우리 회사 휴게실에도 넣어 놔 보려고. 가격대가 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뭐… 그만큼 능률이 올라간다면야.”

그리고 이 안마 의자 기획에 흥미를 보이는 것은 실리콘밸리의 직원들뿐만이 아니었다.

회사를 운영하거나 관리하는 입장에 있는, 인근 기업들의 간부급 인사들. 그들 또한 에이플러스에서 사용한다는 말에 관심을 갖고 이곳에 찾아와, 코너 인근에서 드문드문 보이고 있는 상태였다.

“이야, 진짜 좋네. 기다린 보람이 있다, 야.”

“요즘 에이플 직원들도 휴게실에 줄 서서 들어간다고 하던데, 그럴 만하네… 일주일 휴가 다녀왔을 때보다 몸이 더 가벼워진 것 같아.”

“…저기 뭐 하고 있나 본데? 줄 엄청 길어.”

“안마 의자? 잘은 모르겠지만 나오는 사람들 표정도 되게 만족스러워 보이고… 일단 대기표는 뽑아 둘까?”

게다가 체험 이후 손님들의 반응 또한 대호평.

만족한 얼굴로 나오는 그들은 그 자체가 걸어 다니는 홍보용 간판이나 다름이 없었고, 그걸 사람들이 보고 또다시 몰려들기 시작했다.

“아유, 이렇게 기다릴 바에는 그냥 좀 비싸도 돈 내고 말지… 이봐요. 마이스터랑 마스터라고 했었나? 이거 하나씩 계산 좀 해 줘 봐요.”

“죄송합니다, 손님. 지금 매장에 남아 있는 물건이 하나도 없어서요… 배송까지 좀 오래 기다리셔야 하는데, 괜찮으시겠어요?”

“…에? 그럼 저기 쌓여 있는 물건들은 뭔데?”

“지금 손이 모자라서 그대로 진열해 두고 있기는 한데, 이미 다 팔려서 운송대기 중인 상품들입니다.”

그 결과는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더 빠른 매진.

체험해 본 사람들이 앞다퉈 하나둘씩 구매해 가고, 개중에는 회사에 둘 목적으로 네다섯 개씩 사 가는 사람도 있고…….

‘완전 히트를 치는구만…….’

그리고 이를 멀찍이에서 지켜보고 있던 쇼핑몰 관계자는, 저도 모르게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 기획을 준비한 당사자였다.

이 아이템에는 엄청난 잠재력이 담겨 있다.

그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긴 했으나, 반대의 의견이나 우려가 많았던 것도 사실이다. 어쨌거나 미국에선 생소한 데다 가격도 비싼 고가의 제품이었으니까.

‘이 정도면 다른 지점들에서도 팔아 볼 만하겠는데.’

에이플러스와 제휴를 맺고 나온 제품이기는 하지만, 아직 에이플러스 쪽에서 홍보를 한 적도 없고, 애초에 북미권에서는 그리 대중화된 제품이 아니다.

그렇기에 신규 에이폰 출시와 같이 동아시아권 고객들을 노리고 진행한 제휴가 아닐까, 그런 분석들이 지배적이었었는데…….

아무렴 어떤가.

그것과는 별개로, 이 안마 의자에는 자체적인 포텐셜이 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이번 기획 코너의 성과만 봐도 그 정도 가치는 충분히 증명하고도 남은 셈이었다.

* * *

“우와아아아아!”

“헤, 비, 나이츠! 헤, 비, 나이츠!”

마이애미의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함성 소리.

수천 명은 되어 보이는 관객 중에서, 이토록 함성을 내지르는 이들은 모두 헤비나이츠의 팬이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일단, 이곳이 마이애미 헤비나이츠의 홈이라고 할 수 있는 경기장이었으며. 그리고 두 번째로, 직전에 끝난 경기에서 승리를 거둔 것이 헤비나이츠 팀이었기 때문이다.

[엄청난 경기였습니다. 특히 헤비나이츠 선수들의 활약이 굉장히 두드러지는 경기였는데요!]

[저는 솔직히 말씀드리자면… 원 사이드로 흘러가는 경기였다고 봐도 무방하겠습니다. 물론 굉장히 팽팽한 분위기였습니다만,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헤비나이츠 팀에서 슈퍼 플레이들이 터져 나왔거든요.]

관객들의 성원과 더불어 중계진도 살짝 흥분한 목소리를 담아 내고 있었는데, 그들 또한 헤비나이츠 선수들에 대한 칭찬 일색이었다.

[대부분의 스포츠가 그렇긴 하지만, 이 미식축구가 원래 팽팽한 상황에서 개인 기량이 더욱 빛을 발하는 법이거든요.]

[아, 그렇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헤비나이츠는, 팀원 개개인들이 멋진 기량을 뽐냈다고 생각합니다. 그중 최고는 역시 캘리버 선수였지만요.]

[그렇습니다. 캘리버 선수에 대해선, 할 말이 많죠.]

캐스터의 말에 해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어받았다.

[사실 엄청 걱정을 했었거든요. 시즌 복귀는 무리고, 이제 은퇴를 해야 한다는 말도 들려왔었고요.]

[하지만 그 소문이 무색할 정도로 좋은 성적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듣자 하니, 한국에서 어느 안마사분 덕분에 재활에 성공했다고 하죠?]

[맞습니다. 그리고… 듣자 하니 알베르토 감독도 그분에게 큰 빚을 졌다고 들었습니다만.]

[아, 마침 화면에 잡히고 있네요.]

경기를 마치고 돌아오는 선수들을 한 명씩 부둥켜 안아 주는 헤비나이츠의 감독, 알베르토 올리버.

풍성해 보이던 머리가 사실은 가발이었던 것이 밝혀져, ‘그 대머리’라는 별명도 붙어 있던 그였으나…….

[이런 말씀드려도 될지 모르겠지만… 그의 앞머리가 유독 눈에 들어오게 되네요.]

[동감입니다. 짧은 스포츠 머리입니다만, 그래도 굉장히 자연스럽네요.]

지금 카메라에 담겨 있는 그는, 비록 짧게 자른 머리이기는 해도 기적처럼 되살아난 본인의 머리카락을 당당하게 선보이고 있는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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