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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님 안마하신다-275화 (275/286)

천마님 안마하신다 275화

“쉬는 날 등산하러 가는 건데도 괜찮으세요?”

강태한은 입가에 미소를 띤 채 넌지시 말했다. 어떤 대답이 돌아올지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일단은 형식 삼아 꺼내 놓는 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다들 의욕이 가득 채워져 있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물론이죠!”

“쉬는 날이 아니라 퇴근하고 난 이후에 당일치기로 간다고 하셔도 따라갈 의사가 있습니다!”

확실히, 이번에 다녀온 특훈의 효과는 뛰어났다. 고작 하루, 길어야 이틀 만에 얻어 낸 성과라고 하기에는 믿기 힘들 정도로 말이다.

강태한도 썩 괜찮은 결과라고 생각하고 있을 정도인데 다른 안마사들은 어떻겠는가. 그들이 봤을 때는 얼마 전까지 자신들과 비슷했던 동료들이 갑자기 훌쩍 커져서 돌아온, 그야말로 괄목상대(刮目相對)라는 말이 어울리는 상황이었으니까 말이다.

‘의욕이 없었다면 별 관심이 없었겠지만…….’

허나 천마안마의 안마사들은 다들 안마에 나름 진심이 된 사람들이었다. 물론 모두가 그랬던 건 아니지만, 이런 흐름에 어울리지 못한 몇 명은 이미 주변을 겉돌다가 알아서 떠나간 지 오래다.

지금 일하고 있는 안마사들은 모두… 말하자면, 그동안 강태한과 함께 일을 하며 꾸준히 강습도 받아 온, 나름대로 간추려진 정예들인 셈이다.

“일단… 다른 요일에 가는 건 힘들 것 같습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예약이 매일 같이 쌓여 있어서 휴일이 아니면 시간을 내기가 어렵거든요.”

“아… 그야 그렇긴 하시죠.”

강태한의 말에 안마사들은 크게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납득했다는 듯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럴 만도 하다. 이 안마원에서 가장 바쁘게 사는 사람은, 누가 뭐라 해도 강태한 본인이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말인데… 사실 이 일로 부탁을 좀 드리고 싶은 게 있었거든요.”

다만 사람 말은 끝까지 들어야 하는 법.

당연한 말이지만, 강태한 또한 이들을 그냥 방치해 둘 생각은 없었다. 지금 천마안마에 있는 안마사들은 모두 앞으로의 일정에서 핵심이 되어 줄 수 있는 인재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안마사분들을 몇 그룹으로 나눠서 차례대로 수요일에 시간을 낼 수 있도록 일정을 좀 조율할 생각인데,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요즘에는 거의 모든 안마사들이 예약이 쌓여 있어 마냥 쉽게 조율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손님들에게 양해를 구해서 다른 안마사로 대체를 하고, 시간이 남는 사람을 다른 곳에 채워 넣는 방식으로 어느 정도의 변동은 가능하다. 물론 복잡한 일이 되긴 하겠지만, 적어도 황 실장의 말로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했으니까 말이다.

“그렇게 차례차례 산을 다녀올까 하는데, 어떠실까요. 물론 참가하고 말고는 개개인의 선택입니다.”

강태한은 말을 마치고 잠시 눈치를 살폈다. 보아하니, 그럴 필요도 없었다. 아쉬운 기색을 풀풀 풍기던 얼굴에 환한 미소들이 피어올라 있었으니까.

“저희야 당연히 좋죠, 원장님!”

“혹시 순서는, 순서는 어떻게 되나요?”

“선착순입니까? 아니면 따로 기준이 있는 겁니까?”

다만 다들 의욕이 넘치다 보니 다른 문제가 생긴다.

앞으로도 특훈의 일정이 있다는 걸 알게 되고 나니 이제는 순서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 보아하니 모두가 일주일이라도 더 빨리 다녀오고 싶어 안달이 난 눈치였다.

‘흐음…….’

의욕이 높은 만큼, 순서를 그냥 아무렇게나 지정해 주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강태한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더니, 슬쩍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죄송한데, 슬슬 손님이 오실 시간이라 가 봐야 해서요. 자세한 내용은 실장님과 이야기를 해 보시는 게 어떨까요.”

“어? 나?”

사무실의 소파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황 실장.

방금 전까지 저쪽의 대화를 흐뭇한 표정으로 듣고 있던 그는, 갑자기 그를 지명하는 목소리에 놀란 목소리를 보였다.

“네. 실장님이 순서 좀 정해 주세요. 그럼 전 이만.”

“어어… 잠깐만!”

황 실장은 강태한을 불러 세우려 했으나, 그가 목소리를 냈을 때는 이미 강태한이 문을 닫고 나가는 중이었다. 평소보다 그의 걸음걸이가 빨라 보였던 것은 기분 탓이 아닐 것이다.

‘귀찮아질 것 같은 냄새를 맡은 거구만…….’

황 실장은 조그맣게 한숨을 내쉬었다.

누가 먼저 가고 늦게 가는지 정하는 일.

어떻게 보면 별거 없는 일이지만, 사실 사람 마음이란 게 그렇지가 않다. 그것도 이렇게 다들 먼저 가고 싶어 의욕이 넘치고 있는 상황이라면 말이다.

“자아, 그럼… 일단 각자 잡혀 있는 예약들부터 확인해 보면서 이야기를 할까?”

하지만 뭐.

이런 걸 도맡아 하는 것이 자신의 역할이지 않겠는가. 황 실장은 가볍게 어깨를 으쓱이고는,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안마사들에게 입을 열었다.

* * *

한편, 다른 동네에 위치해 있는 천마안마 아카데미.

처음에는 다소 혼란스러운 부분들도 많았고, 원장인 최성현부터 강사로 나오는 다른 안마사들까지, 여러모로 어색하고 시행착오를 겪는 과정들이 있었지만…….

그래도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른 지금은, 꽤 안정적으로 수업이 진행되어 가고 있는 중이었다.

수업의 커리큘럼도 나름 체계적으로 자리가 잡혔고, 그에 따라 수강생들의 수업 진도도 일정 시점부터 빠른 속도로 진척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요 근래 가장 눈에 띄는 변화는.

“아유, 이거 증말 시원하구만…….”

“노인정에서 나돌던 소리들이 헛소리가 아니었네. 여태 받아 본 안마 중에 제일 좋구만그랴.”

“하하, 감사합니다. 어르신.”

다름이 아닌 실습 시간.

인근 동네의 노인정과 소통하여 몸이 편찮으신 노인 분들을 초청, 가게 입장에선 매우 적합한 실습 대상을 손쉽게 확보해 오는 셈이고, 수강생들은 이를 통해 실습 경험을 쌓는다.

“오늘도 자알 받고 가네.”

“들어가세요, 어르신.”

실용적인 부분에서 학원에도 도움이 되고, 좋은 일을 한다는 뿌듯함은 덤으로 찾아온다. 더군다나 이런 활동들이 긍정적인 영향력이 된 덕분일까.

“요즘 들어 요 부근 동네들이 깨끗해진 느낌이네.”

“그러게. 원래는 길거리에 돌아다니는 사람도 별로 없고, 거의 반쯤 죽어 가는 동네였었는데…….”

서서히 동네에도 활기가 맴돌고, 무엇보다 주민들의 표정이 밝다. 낙후된 데다 유동 인구도 별로 없어 빈말로도 좋은 동네라 말하기 힘들었는데, 지금은 눈에 띄게 생기가 도는 느낌이다.

사실 굳이 동네 분위기까지 살필 것도 없다.

안마를 받기 전과 후, 실습 상대로 찾아와 안마를 받고 난 노인들의 모습만 봐도 충분히 변화가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그래… 진상 부리거나 하시는 분들은 없고?”

“뭐, 간혹가다 직원들 난처하게 만드시는 분들이 계시기는 한데… 그런 분들도 근육 좀 풀어 드리고 혈자리 좀 뚫어 드리면 거짓말처럼 친절해지시더라.”

최성현은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으며 히죽 미소를 지었다. 그러자 강태한이 피식 웃음을 흘렸다.

“하긴, 너도 이제 실력이 꽤 올라왔으니까.”

“이 자식 또 마음에도 없는 소리 하네.”

“아냐. 그 전에는 약간 기 좀 살려 주려고 그런 적도 있지만… 지금은 어느 정도 진심이 담겨 있다고.”

강태한의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최성현은 원래도 안마사들 중에선 가장 실력이 뛰어나고 깨우침도 빠른 편이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눈에 띄는 성취를 이뤄 낸 참이다.

그 성취의 계기가 된 것은, 두말할 것 없이 며칠 전에 있었던 산에서의 특훈이다.

그곳에서 내공 자체를 많이 쌓고 수련도 하긴 했지만, 특히 그에게 도움이 되었던 것은 저녁쯤에 있었던 약초 캐기다. 그걸 통해 외부로 기감을 돌리는 방식을 확실하게 감을 잡을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인마, 어느 정도 진심이라는 건 완전 진심으로 하는 말은 아니라는 거잖아.”

“뭐… 아직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긴 하니까.”

담담한 목소리로 사실대로 답하는 강태한.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굳이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 그의 성격이다. 다만 약간 머쓱하기는 한 듯, 테이블에 내려놓은 찻잔을 괜스레 집어 들었다.

“사실 나도 그런 듣기 좋은 빈말보다는 그런 말이 훨씬 더 낫기는 한데… 아, 쿠키 먹을래?”

“쿠키? 갑자기 웬 쿠키?”

“이번에 선물받은 게 있거든.”

최성현은 그렇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찬장에서 뭔가를 꺼내 왔다. 담겨 있는 통은 흔한 플라스틱 반찬 통이었으나, 안에는 제법 맛있어 보이는 수제 초코칩 쿠키가 담겨 있었다.

“누구한테 받았는데? 여자 친구분?”

“하하… 가인이는 이런 거 못 만들어.”

강태한의 머릿속에 가장 먼저 떠오른 사람은 최성현의 여자 친구인 정가인. 하지만 최성현은 피식 웃음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가인은 세계에서 제일가는 양궁 금메달리스트였지만, 요리 쪽은 잘 쳐줘도 브론즈 정도에 불과했다. 음식 같은 것과 음식 같지 않은 것의 미묘한 경계선 사이에 절묘하게 걸쳐진 느낌이라고 할까.

“그러고 보니 과일도 있네. 먹을래?”

“이거면 될 것 같아. 근데 과일도 선물받은 거야?”

“그런데?”

“어떤 분이 주신 건데?”

“뭐, 누구라고 콕 집어 말하긴 힘들고… 그냥 동네 어르신들이, 오며 가며 이것저것 많이 주시거든.”

언제쯤부터였을까.

어느 순간부터, 따로 말을 하지도 않았는데 어르신들은 안마를 받으러 올 때마다 이것저것 선물들을 챙겨 오시기 시작했다. 매번 빈손으로 와서 안마만 받고 돌아가기는 좀 미안하다면서 말이다.

더군다나 하나같이 대충 준비해 온 선물은 없고, 뭔가 엄선하거나 정성을 들인 티가 나는 선물들이다.

처음에는 당연히 거절을 했었지만… 그렇게 돌려보내니 가게 앞에 두고 가시거나, 아니면 다음번에 더 비싼 선물을 가져오신다거나 하는 부작용이 있어 그냥 주시는 대로 받는 걸로 방침이 바뀐 참이다.

헌데 그뿐만이 아니다.

안마를 받으러 온 어르신들뿐만 아니라, 동네 사람들이 운영하는 주변 가게들에서도 이것저것 챙겨 주기 시작했다.

마트에 캔 커피 하나 사러 갔다가 페트병 음료를 묶음으로 받아 온다거나, 커피 한잔 마시러 갔다가 케이크를 서비스로 받는다거나…….

“이 쿠키는 저기 큰길 쪽에 제과점 하시는 아주머니가 굽다가 잘못 나온 비매품들이라고 주고 가신 건데, 그런 것치곤 꽤 맛있어.”

“그러게…….”

안 그래도 이미 맛을 보고 있던 강태한이 동의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차와 함께 마시고 있기는 했지만, 자연스레 커피 한 모금을 떠올리게 만드는 맛이었다.

“생각 이상으로 잘 풀리고 있는 모양이네.”

“적어도 이번 실습 건에 있어서는, 그런 셈이지. 수강생 중에 진도가 빠르신 분들도 많이 계시고…….”

“다들 안마 솜씨들은 많이 올라오셨나?”

강태한의 말에 최성현은 싱긋 미소를 짓더니, 그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그건 네가 직접 확인해야지. 오늘 말이야.”

당연한 말이지만, 강태한은 이곳에 다과나 얻어먹으려고 찾아온 것이 아니었다.

진도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온 수강생들을 강태한이 직접 강습해 주고, 그와 동시에 대략적인 실력들을 가늠해 보기 위한 시간.

말하자면 강습을 빙자한 면접이라고나 할까.

누군가는 강태한의 눈길을 사로잡을 수도 있고, 유망주가 되어 천마안마의 일반 코스에 곧바로 투입이 될 수도 있다. 수업적인 부분에서나 취업적인 부분에서나 여러모로 기회가 될 수 있는 시간이리라.

“실례합니다.”

똑똑. 그때쯤 누군가가 바깥에서 문을 두드렸다.

아직 변성기가 오지 않은 어린 남자아이의 목소리. 허나 그 목소리와 어울리지 않게 톤과 말투는 굉장히 예의 바른 축에 속하는 것이었다.

“들어와.”

최성현이 말하자, 천천히 문이 열리더니 남자아이 한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초등학생 정도 되어 보이는 작은 아이였다.

“아… 혹시 바쁜데 방해한 건가요?”

“아냐. 괜찮아. 할아버지들 심부름이야?”

“네. 이번 주 실습에 참가하실 분들 명단이에요.”

최성현의 말에 아이는 들고 있던 종이를 내밀었다. 한편, 강태한이 아이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고 있자 최성현이 뒤늦게 웃으며 말했다.

“아, 얘는 송준우라고, 저번에 도와드렸던 할머니 손자야. 그 왜, 리어카에 매달려서 같이 내려왔다는 애 있잖아. 걔가 얘야.”

“안녕하세요.”

최성현이 소개를 하자, 송준우는 강태한 쪽으로 몸을 돌리고는 꾸벅 고개를 숙였다. 강태한은 그런 그에게서 눈을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얘가 키는 좀 작아도 되게 똘똘하거든.”

“송준우, 송준우라…….”

덧붙이듯이 소개를 이어 가는 최성현. 강태한은 그 말을 듣더니 두어 차례 이름을 되뇌었다. 그동안에도 그의 시선은 그대로 고정되어 있었다.

“확실히 똘똘할 것 같네.”

보다 정확히는, 그 내부의 혈도와 충만한 기운.

그의 앞에 서 있는 아이는, 적어도 강태한이 현대에서 보아 온 사람들 중에서는 내공을 갈고닦음에 있어 가장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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