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마님 안마하신다 273화
“후우우…….”
강태한이 주변 산을 돌아다니고 있는 동안.
산 중턱의 공터에서는, 한창 천마안마의 안마사들이 심호흡으로 내면의 기운을 가다듬고 있는 중이었다.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영기(靈氣)가 머금어지고.
새롭게 들어온 영기가 점점 차오름에 따라, 기존에 체내에 있던 탁한 기운 또한 서서히 자연스레 밀려 나간다. 제대로 심법을 운용하는 것과는 비교할 수 없겠으나 가만히 숨만 쉬어도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다.
거기에다 심호흡과 함께 집중력을 더해 주면.
비록 그 방식이 미숙하고 어설플지라도, 꽤 나쁘지 않은 효율을 얻을 수 있다. 제대로 정돈된 명당이라는 것은 그 정도의 영향력을 지닌 곳이다.
“하하, 이야… 이것 참 신기하네.”
“이게 기감이라는 거군요. 이게 영기라는 거고.”
그들이 자리를 잡고 명상을 시작한 지 이제 두어 시간 정도. 짧은 시간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뭔가 제대로 된 성과를 거두기에는 다소 부족한 시간이다. 허나 그 정도 시간만으로도 안마사들은 자신들의 성취를 느낄 수 있었다.
누군가는 기감의 영역이 훨씬 넓게 확장되었으며, 누군가는 막혀 있던 벽을 뚫어 낼 계기를 얻어 냈다. 누군가는 기감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제대로 느껴 보는 기회가 되었다.
사실 그럴 만도 하다.
안마사는 대부분 기감이 트여 있긴 했으나, 그들이 기(氣)라는 것을 외부에서 제대로 느껴 본 적은 없었다. 기껏해야 강태한이 마련해 놓은 약차(藥茶)에서나 느껴 보았을 뿐이다.
헌데 이렇게 기운이 충만한 곳에서 호흡을 하고, 직접 영기의 존재를 체험하고 실감을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어떤 깨달음을 줄 수 있으리라. 적어도 이런 걸 느껴 본 적이 없는 현대인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요즘 원장님의 설명이 살짝 이해가 안 될 때가 있었는데, 지금은 그게 다 무슨 말이었는지 대강 이해가 갈 것 같구만.”
실제로 그들은 이제 막 기감이 트인, 다른 감각으로 치자면 이제 막 사물을 만져 보며 촉감을 익히기 시작한 어린아이와도 마찬가지다.
그런 상황에서 지금의 경험은… 그동안 먹기 좋게 조리해 놓은 식재료들만 먹어 오다가, 제대로 된 생채소를 처음으로 만져 본 느낌이랄까.
“그런데, 슬슬 살짝 배고프지 않나…….”
“그러게. 나도 이상하게 막 허기가 지네.”
“너희들도? 나도 그래. 슬슬 식사 때이기는 한데, 그렇다고 이렇게 배가 고플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남자는 허전한 표정으로 배를 쓸어 만지며 말했다.
명상에 집중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허기를 느끼지 못했었는데, 집중 상태에서 빠져나오고 나니 물밀 듯한 허기가 느껴졌다.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영기를 가다듬고 다루는 일에는 정신력이 소모되고, 정신력에는 열량이 소모된다. 더군다나 이들은 아직 미숙한 기감을 다루고 있었으니, 그만큼 더 많은 정신력을 소비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느닷없이 산을 오르고, 그 뒤에는 어느 때보다 깊은 명상에 빠져 있었던 참이다. 그사이에 딱히 뭔가를 먹은 적은 없었으니, 그동안 누적된 허기가 몰려오는 것도 당연한 일인 것이다.
“아… 진짜 너무 배고픈데?”
“일단 부원장님한테 여쭤볼까.”
때마침 최성현도 명상을 마치고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던 참이다. 배를 쓸어 만지고 있던 남자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 최성현에게 말을 걸었다.
“저, 부원장님.”
“예. 무슨 일인가요?”
“저희 혹시 식사는 어떻게 합니까?”
“아… 안 그래도 그거 말하려고 오던 참인데.”
최성현은 머쓱한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고는 조금 난감해하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때쯤에 말하면 딱 타이밍이 맞아떨어질 거라고, 떠나기 전에 강태한이 남겨 두고 간 말이었다.
“그, 이 주변에 보시면 풀이 참 많죠?”
“…그렇죠? 아무래도 산이니까.”
“듣자 하니 주변에 독초는 다 제거해 놨다고 하더라고요. 먹어도 되는 거, 먹어도 해가 되지는 않는 거, 먹으면 몸에 좋은 거… 뭐 이런 거만 남겨 놨다나.”
그게 방금 질문과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남자는, 이내 눈썹을 꿈틀거리더니 곧이어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러고는 자신의 추측을 조심스레 입에 담았다.
“그… 설마 직접 캐 먹어라, 이런 말씀인가요?”
“…네. 아마 생각보다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그러던데요.”
배고픈 이들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 * *
잠시 후.
“김씨, 뭐 좀 나왔어?”
“아니. 심마니도 아니고 갑자기 약초를 어떻게 캐?”
“방금 박씨가 더덕을 좀 캤다고 하긴 하던데…….”
“뭐? 진짜로?”
다들 조용히 명상의 시간을 보내고 있던 공터에서는, 느닷없이 먹을 것을 찾아 헤매는 채집의 현장이 되어 있었다.
“아, 날이라도 밝으면 좀 모르겠는데…….”
다만 그 공간은 다소 한정되어 있었다.
해가 지고 난 뒤의 산은 굉장히 어둡다. 아직 해가 완전히 저물지는 않았으나, 그렇다고 숲 안쪽까지 들어가는 것은 너무나 위험한 행동이었다.
자연스레 활동 반경은 좁을 수밖에.
더군다나 느닷없이 약초를 캐 먹으라고 해서 캐낼 수 있을 리가 없다. 설령 바로 옆에 식용 약초 대백과를 펼쳐 놓는다고 하더라도, 도시에서 살던 사람들이 풀을 구분할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다만.
“으음… 이쯤인가?”
그렇게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묵묵히 침묵을 지키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맨바닥에 앉아 눈을 감고 있다가, 간혹 가다 눈을 뜨고 손을 움직였다.
“오오… 진짜로 있네?”
그리고 간혹 가다가 나오는 수확물들은, 모두 이런 이들이 캐내는 것이었다. 방금 막 도라지 한 뿌리를 캐낸 황태진은 신기해하는 표정으로 자신의 수확물을 이리저리 살펴보기 시작했다.
“진짜 신기하네. 벌써 네 개째 아니야?”
“아니… 황씨, 어떻게 그렇게 밤눈이 좋아?”
“내가? 으음. 눈이 좋은 편은 아닌데.”
황태진은 이리저리 살펴보던 도라지의 흙을 털어 내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살면서 시력검사에서 좋은 결과를 받아 본 적은 없었으니, 빈말은 아니었다.
“그럼 어떻게 그렇게 잘 찾아?”
“그야 뭐… 감으로 찾는 거지.”
“감으로? 그건 또 무슨…….”
무슨 흰소리냐, 라고 말을 하려던 찰나.
그의 머릿속에 무언가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다. 남자는 꺼내고 있던 말을 멈추고는 잠시 눈을 감고 내면에 집중을 하기 시작했다.
눈을 감는다. 시각을 차단한다.
그 상태로 내면에 빠져들어 가기 시작한다.
들려오던 소리도 서서히 멀어지고, 냄새도 희미해져 간다.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다른 감각들이 무뎌지기 시작하고, 새로운 감각이 날카로워진다.
하나의 감각이 희미해지면, 그만큼 다른 감각들이 예민해지는 법. 그리고 그에게는 기존의 오감 외에 새롭게 트인 기감(氣感)이 있다.
‘어어……?’
그 순간, 전혀 모르고 있던 감각이 느껴졌다.
정확히는 내면에만 집중하고 있던 기감의 방향을 외부로 돌렸을 때다. 바깥에 존재하는 영기의 기운들이 희미하게 그의 감각을 자극했다.
대기 중에 떠다니는 영기, 주변에 자라 있는 풀들에서 느껴지는 생기. 그리고 간혹 가다 뭉텅뭉텅 느껴지는 덩어리진 영기들의 반응. 그것들은 땅속에서 자리를 잡고 있었다.
‘설마 이게……?’
자세한 위치는 알 수 없다.
그저, 그런 게 이 주변 어딘가에 위치한다는 것만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세밀하게 장소까지 찾아내기에는 아직 기감을 다루는 능력이 부족하다.
“으하아악!”
그럼에도 한동안 기감을 곤두세워 보았으나, 결국 그 이전에 집중력이 떨어져 거친 숨을 내뱉고 말았다. 그로 인해 명상이 끊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거, 이거였구만!”
다만 그의 얼굴에 실망감은 없다.
오히려 뭔가 하나 더 알아냈다는 만족감 그리고 그로 인한 성취감만이 표정에 나타나 있을 뿐이다. 그 반응에 황태진은 피식 웃음을 흘렸다.
‘처음에는 대체 왜 이러나 싶었는데…….’
당연한 말이지만, 이들 중에서 가장 기감의 성취가 높은 최성현 또한 진즉부터 채집에 기감을 활용하고 있는 중이었다. 한차례 주변을 훑어본 그는 뭔가를 깨달은 듯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도움이 좀 많이 되겠는데…….’
명상을 하고 기를 쌓아 올리는 것은, 어디까지나 본인의 내면에 집중하는 일이다.
허나 그들의 업무는 안마다.
결국, 기감을 얻고 쌓아 올린 성과를 활용하기 위해서는 내면에만 집중할 것이 아니라 기감의 방향을 외부로 돌리는 것도 필요하다. 상대방의 혈도를 읽어 내고 이를 바탕으로 몸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요구되는 능력이다.
그리고 그런 의미에서… 살짝 어둑어둑한 지금 이 시간의 약초 채집은 그 능력을 갈고닦는 데 굉장히 큰 도움이 되는 활동이었다.
땅속에 위치한 응어리진 영기를 감지하고, 그 위치를 특정해 내고, 마침내 캐내어 밖으로 꺼내고… 안마를 할 때에 손님의 몸 상태를 읽어 내는 것과 크게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물론 이대로는 좀 문제가 될 것 같긴 하지만 말이지…….”
최성현은 방금 막 찾아낸 약초를 캐내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단순한 계산이었다. 뿌리가 실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산에서 캐낸 것’치고는 그런 거다.
결국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그것도 근육 탄탄한 성인 남성 여러 명이 배를 채우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양이다. 영기는 충만하게 채워 줄 수 있을지 몰라도 열량은 제대로 채워 줄 수가 없다.
“야, 나도 찾았다! 쑥이다, 쑥!”
“남들 도라지, 더덕 캐는데 어디다 쑥을 내밀어?”
“나도 찾았다! 하하, 이거 어렸을 때 보물찾기 하던 느낌인데?”
최성현은 슬쩍 다른 안마사들을 쳐다보았다.
지금은 기감의 활용법을 익히고 실제로 몇 개 캐기도 하니까 들떠 있는 상황이었으나, 결국 배가 제대로 채워지지 않으면 분위기가 싸해질 수밖에 없다.
막말로 군대도 밥만큼은 제때제때 챙겨 주지 않는가.
이대로는 반발이 있을 수밖에 없고, 설령 반발이 없더라도 그리 적절한 상황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이다.
허나 그로부터 한두 시간가량이 더 지나고.
그런 최성현의 걱정은, 쓸데없는 걱정이었던 것으로 결론이 났다.
“…저, 원장님. 그게 다 뭡니까?”
“아, 이거요?”
강태한은 텐트 앞에 세워 둔 테이블 위에 짐을 퉁, 하고 내려놓았다. 거기에 올라온 것은 테이블이 좁아 보일 정도로 큼직하고 묵직한 고깃덩어리들이었다.
“음… 그러니까…….”
강태한은 턱 주변에 손을 얹은 채 잠시 생각에 잠겼다. 기억을 더듬는다기보다는, 마치 변명 거리를 생각하는 듯한 그런 표정이었다.
“이 주변에 지인분의 농가가 있는데, 이번에 멧돼지를 한 마리 잡으셨다고 받아 가라고 하셨거든요.”
물론, 거짓말이다.
방금 전 숲속에서 발자국을 발견하고는 직접 사냥하고, 깔끔하게 손질까지 싹 해서 가져온 멧돼지 고기였다.
“아하… 그랬군요.”
“하하, 역시 원장님은 다 생각이 있으셨네! 난 또 오늘 풀때기만 먹고 자는 줄 알고 걱정했지 뭡니까.”
다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럴듯하게 들리는 말이었다.
적어도 산에서 혼자 멧돼지를 잡고, 가죽부터 핏물까지 깔끔하게 손질해서 가져왔다는 말보다는 믿을 만한 말이었으니까 말이다.
* * *
“컷컷! 아주 좋아, 아주 잘 나왔어!”
헐리우드에 위치해 있는 한 세트장.
영화 촬영이 한참 이어지던 그곳에서, 감독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어지간해서는 칭찬도 인색한 그로서는 굉장히 이례적인 반응이었다.
“베네릭! 요즘 뭐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었나? 연기 상태가 아주 최고조인데? 하하!”
“고맙습니다, 감독님.”
그의 이런 호평을 이끌어 낸 것은 다름 아닌 배우들의 연기 상태였으며, 그중에서도 유독 돋보이는 것은 베네릭 브라운의 연기였다. 그는 만족스러운 웃음을 띤 채 베네릭의 어깨를 탁탁 두드렸다.
“시간을 두고 다시 찍는 편이 정답이었구만. 저번에 촬영했을 때랑은 정말 딴판이야.”
원래는 두어 달 전에 찍었어야 했던 장면이다.
다만… 그때 당시의 베네릭의 연기는 형편이 없었고, 몰입조차 제대로 안 되는 수준이었다. 그야 그럴 만도 했다. 이제 막 불임 판정을 받고 한참 충격에 빠져 있던 시기가 그때였으니까 말이다.
“감독님이 사정을 이해해 주신 덕분이죠, 뭐.”
“하하… 뭐, 그만한 가치가 있었으니까 말이야.”
때문에 감독은 해당 장면의 촬영 순서를 될 수 있는 한 뒤로 미뤄 두었다. 일정상 충분히 여유가 있기는 했으나, 그래도 상당한 배려를 받았다고 할 수 있는 부분이었다.
“…그런데 말이네, 저번에 그 문제는 어떻게 잘 회복이 된 건가?”
“그야 뭐… 아직은 잘 모르겠습니다만.”
베네릭은 슬쩍 자신의 하반신을 내려다보았다. 그러고는 머쓱한 미소를 지으며 엄지손가락을 세웠다.
“일단 적어도 매일매일 기운이 넘쳐나기는 합니다.”
한국에 찾아가 안마를 받고 돌아오고 난 이후.
그 뒤로 베네릭은 서서히 부부 관계를 회복시키기 시작했고, 그 덕분에 삶의 활력도 다시 되찾은 상태였다. 거기에는 두 사람의 노력도 있었으나 이 ‘정력적인 기운’이 큰 역할을 해냈다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기운이 넘쳐난다고 한다면?”
“그냥 뭐, 부족할 일은 절대로 없을 정도.”
“저, 절대로라고!”
감독은 저도 모르게 큰 목소리를 냈다가 주변 눈치를 살폈다. 그러고는 살짝 고개를 숙이며 조용해진 목소리로 물었다.
“그… 안마를 받고 그렇게 됐다고 했었지?”
“맞습니다. 한국에서요.”
“그게 그렇게 효과가 좋다고?”
“적어도 저는 뭐… 어, 죄송한데 잠시만요.”
베네릭의 말에 부쩍 관심을 보이는 감독.
다만 그 순간 주머니에서 울린 알림음에 베네릭은 양해를 구하고는 스마트폰을 꺼내 들었다. 평소라면 먼저 대화를 마치고 문자를 확인했겠지만, 오늘은 이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됐다네요.”
“음? 뭐가 말인가.”
베네릭은 비어 있는 손으로 한차례 얼굴을 쓸어 올렸다. 그러고는 입가를 감싸 쥐고, 스마트폰을 한동안 응시하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저, 드디어 아빠가 되는 모양입니다.”
오늘은 그의 아내, 라일리가 임신을 확인하러 병원을 찾아가는 날. 그리고 방금 도착한 문자메시지에는, 그들 부부가 그토록 바라 왔던 사랑의 결실이 맺어졌음을 알리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